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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했던 것들
에밀리 기핀 지음, 문세원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3월
평점 :
우리가 원했던 것들 – 에밀리 기핀
싱글 대디 톰은 목수이다. 그는 밤에는 우버 택시 기사일까지 하며 열심히 살고 있지만 자신이
올라갈 수 있는 위치는 한계가 있고, 부양해야 할 10대
딸이 있다. 사춘기 딸과 티격태격하며 분주하게 살던 그의 삶에, 큰
사건이 터졌다. 그녀의 딸 라일라가 10대들의 파티에 만취한
상태로 사진이 찍혔는데, 그 사진엔 그녀의 가슴이 노출되어 있었다. 돌진적인
톰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부유한 가정주부인 니나는 자신의 위선을 인정하지 않고, 본인은 속물이 아니며, 필연적으로 비싸고 좋은 물건을 쓸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킨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위치가 같은 이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행실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부정하지만, 역시나 위선일 뿐이다. 자신의 위선을 덮기 위해 자선행사를 열고, 기부를 하지만 남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녀에겐
승승장구하는 언제나 완벽한 남편과, 곧 있으면 일류 대학에 입학하게 될 자랑스러운 아들이 있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 핀치가 라일라의 사진을 찍은 범인이었다.'
어느 정도의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부유한 가정의 피의자와 열악한 가정의 피해자의 싸움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니나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방향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바꿔 놓았고, 초반에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위선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순수한 어린아이가 자라, 세상의 중심이 ‘나’라는 청소년기를 지나고, 어느 정도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성립되면서 사회 안에서의 위치를 찾게 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모든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어느 정도의 위선을 장착하고 살아간다. 위선은 인간의 기본적인 방어적 행위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지만, 이해한다거나
쿨한 척하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기대한다. 그것 또한 스스로를 감추는 위선이다.

니나 역시 항상 자신의 가치관을 의심하며 살아왔지만 남들이 볼 땐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텅 비어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맞닥뜨린 아들의 행동이 그녀를 더욱 흔들었고, 그녀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그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자신을 먼저 의심하는 사람은 적다. 스스로는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정답이라는 기조를 갖고 살아간다. 이슈가 터져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슈는 내 탓이 아닌 남 탓이라는 기본 프레임을 갖고 판단을 시작한다. 넓게는, 우리 가족은 문제가 없으며 그 이슈를 만든 원인은 당사자 스스로에게 있을 것이라며 자신들의 흔적을 부정한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 기조를 갖고 살아간다면 발전은
없다. 자아성찰은 자신이 했던 것들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들이 정말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며 반성하고 스스로를 질책하며 더 좋은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더라도 내가 잘해서라고 생각하기보단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점들이 긍정적으로 적용되었는지를 생각하며, 좋은
기운이 계속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초반은 니나의 위선에 소름이 끼쳤고, 답답하게 앞으로 돌진만 하는 톰의 모습에 목이 턱턱 막혔다. 흐린
눈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만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단단한 매듭이 어떻게 느슨하게
풀리는지는 직접 읽어야 재밌기 때문에 더 이상의 스토리는 쓰지 않으려 한다. 반전 소설을 읽었을 때처럼
이마를 탁 치게 하는 전개가 아니라, 물방울들이 한 방울씩 스며들어 옷이 젖게 만들 듯, 서서히 서로를 이해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극단적인 갈등해결이 아니기에 의미가 있다.
요즘 이슈가 되는 인종차별, 청소년들의 성폭력, 젠더
이슈 등을 각각 다른 생각과 세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 없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것이 진정한 복수인지, 진짜 승리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였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져
비슷한 엔딩까지 가는 경우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복수와 용서에 대한 나름의 판단을 변화시키기엔 꽤나
좋은 이야기였다. 내가 그들처럼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단단한 그들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