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씨돌, 용현 -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SBS 스페셜 제작팀 외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은 무엇일까. 먹고, 자고, 일하고, 말하는 등의 많은 것들이 떠오르지만, 남을 돕는 일을 우선순위로 올려놓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서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전혀 알지 못했던 ‘남을 위해’라는 말은 쉽게 내뱉기가 어렵다. 내 삶이 어느 정도 살만해져야 남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씨돌 아저씨의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을 돕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있었다.






  씨돌 아저씨는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처음 만났다. 산불 감시자 일을 하면서 깊은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다 무너져가는 낡은 집에서 생활하던 아저씨. 환하게 웃으면 어떠한 꽃보다 밝게 빛났던 아저씨의 모습으로 처음 기억한다. 추운 겨울엔 동물들 먹을 걸 먼저 준다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직접 키운 소중한 곡식들을 나누어 주고, 밭에 잡초가 가득해도 어느 하나 함부로 죽이지 않았던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그러면서도 자연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하는 아저씨.



  1987, 우리나라 최초로 직선제 대통령을 선출하는 13대 대선을 앞두고 시행했던 군 부재자 투표에서, 여당 후보를 두고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이 발각되어 폭행당해 숨졌던 정연관 상병.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데 발 벗고 나선 것은 김요한이라는 청년이었다. 아무런 인연도 없던 요한이 정연관 상병과 그의 가족을 위해 앞장서서 나섰으며, 또 다른 의문사를 당한 청년들을 위해 달렸다.

정권이 바뀌고 2004, 의문사 진상위원회에서는 정연관 상병 죽음의 진실을 인정하는 결과 발표 후 그는 사라졌다.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람들을 도왔기에 의심도 샀지만 결국 그의 진심을 느끼고 고마워했던 가족들을 뒤로하고 청년 김요한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1995 6, 서울에서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삼풍 백화점이 무너진 것이다. 그 당시, 방송에서는 구조장비가 있으면 사고 현장으로 와서 도와달라는 자막이 흘러나왔고, 그걸 본 많은 시민들이 달려와 인명구조를 도왔다고 한다. 나는 초등학생이었기에 그런 현실을 몰랐는데 이제 와서 보니 사고에 대한 일 처리는 무능하다 싶을 만큼 부실했다. 많은 봉사자들이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을 때 눈에 띄는 한 명이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기 몸 다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쉬지 않고 일했던 사람. 어느 정도 사건 현정이 정리가 되었을 무렵 그는 사라졌다.






  이 세 가지 이야기의 인물들은 모두 한 인물이다. 순박한 자연인의 모습을 한 씨돌 아저씨, 사회 약자들을 위해 뛰었던 김요한, 그리고 그 둘의 원래 이름인 김용현. 자신의 것은 하나 없이 오직 남들을 위해서만 살았고, 자연에서 살 땐 자연에게 자신을 맞추었던 그는 지금 한 요양원에 있다. 산중에 쓰러져 있던 아저씨를 등산객이 발견하여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우측 반신마비와 언어장애로 인해 예전 같은 삶은 살 수 없게 되었다.


  가끔은 하늘이 참 원망스럽기도 하다. 참 깨끗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말로에 다와서는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하지만 그는 요양원 생활 속에서도 자신이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것인지 미안해한다고 한다. 아무리 몸이 아프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저씨의 모습이라도 봉화치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의 미소는 여전했고 그의 마음 역시 따뜻했다.




  SBS스페셜은 보지 못하고 웹상에 떠도는 짧은 이야기로 아저씨의 삶을 알게 되었다. 새책들을 구경하다 이 책이 아저씨의 재활치료를 이해 인세 일부가 기부된다는 말에 구입하여 한자 한자 읽어보았다. 머리가 아프고 힘이 들 때마다 읽으면 힐링이 된다. 아저씨의 사진을 보기만 해도 천사의 미소를 본 기분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을 알린다. 나 역시 작은 선행이라도 알려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씨돌 아저씨는 다르다. 예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많은 잔뿌리를 숨기는 것처럼, 아저씨는 선행을 선행이라 말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들이라 말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란 말이 이렇게 고귀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 돈으로 하는 선행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진심을 다해 행하는 고귀한 선행. 나에겐 선행으로 보이는 것들이 아저씨에게는 그냥 당연한 일들이었다.

  씨돌 아저씨의 존재가 참 감사하다.

아무런 해가 되지 않고,

단지 소박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바라봐 주는 들꽃.

그와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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