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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티파니 와트 스미스
제목부터 노골적인 이 책은, 평소 엄청 많이 느끼면서도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샤덴프로이데’에 대한 이야기이다. 발음부터 생소한 ‘샤덴프로이데’는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이라는 감정을
뜻하는 명사이다. 흔히 “쌤통이다”라고 생각하며 고소해하는, 통쾌하지만 약간 부끄러워지는 그 감정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처럼, 내 주변의 누군가가 잘되면 질투라는
감정이 생겨난다. 평소 나는, 나의 샤덴프로이데에 대해 개의치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나름의 방어적인 행동을 했다는
걸 알았다. 과연 어떤 사람이 샤덴프로이데와 무관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샤덴프로이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는 것이 더 확실해졌다.
샤덴프로이데는
소외와 분열을 부추기는 감정처럼 보일지 몰라도 거기에는, 혼자 실의에 빠지기보다는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는 우리의 욕구가 담겨 있다.
32p (프롤로그 중)
다른 이들의 불행을
보고 기뻐한다는 뜻 그대로만 보면 엄청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샤덴프로이데와 마주친다. 평소 미워하던 상사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환호 했을 때, SNS에서 항상 자랑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친구의 소식을 들었을 때, 1등만
한다던 친구의 아들이 내 아이보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을 때, 갖고 싶던 옷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의
옷이 더러워졌을 때 등등 위로해주는 척 하다가도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일은 누구나 매일 하는 일인 것이다.
샤덴프로이데는
개인보다는 집단에 속해있을 때 더 강해진다고 한다. 특히나 집단과 집단의 합법적인 싸움 중 하나인 스포츠에서는
노골적으로 샤덴프로이데를 드러내는 이들이 많으며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끈끈한 동질감으로 똘똘
뭉친 ‘우리 팀’ 을 제외하면, 다른 집단은 단순히 ‘다른 편’을
상징하는 2차원적 존재로만 보며 죄의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른
팀의 선수들이 다치고, 구르고, 어떠한 상황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 팀의 승리 여부와는 상관없이 통쾌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에게 느끼는 반감도 이처럼
편집증적이며 권력욕이 깃들어 있을까? 위선적인 심리인 것만은 확실하다.
누구나 남들의 시선을 끌고 돋보이고 싶은 순간에는 작은 허영을 부린다. 그러면서 최정상에
오른 이들의 내리막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일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를,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욕심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109p
우리는
인플루언서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보고 항상 그들의 SNS를 탐닉한다. 그러다가도
한가지 흠을 잡으면 악플을 달며 비웃는다. 성형을 해서 예뻐진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다가도 부자연스럽다거나
예전얼굴이 더 낫다느니 하는 트집을 잡으며 꾸역꾸역 썩은 미소를 날린다.
이
정도이면 이제 반대로 생각해볼 때이다. 그들을 비웃는다고 해서 내가 달라질까하는 문제이다. 그 순간은 뭔가 통쾌하고 10년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지만 뒤돌아서면
나는 달라진 게 없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다른 이들은 또 샤덴프로이데를 하겠지.
결국 문제는 이거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가? 사람은 자기보다 조금
못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한
연구에서 심리학자들이 “남의 아이가 당신의 아이보다 못생긴 편이 좋나요. 잘생긴 편이 좋나요?” 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모든 집의 아이들이 자기 아이보다 더 못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신의 아이가 못 생겨도 상관없나요?” 그러자 그들은 “네”라고 답했다.
134p
예전에 일했던
회사의 실장님이 자주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보다 성공하면 안돼. 모두 나보다 조금 덜 성공해야 해. 물론 망해서도 안돼. 그럼 내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그 당시엔 나이 먹어서 엄청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실장님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솔직한 말 같다. 나 역시 언제나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나보다 잘되면 배 아파서 안되지만 망해버리면 내 마음이 아프니까 그것도 안된다. 제대로 이기적인 의견이지만 반박할 사람이 있을까? (마음이 안 아프니
망해도 된다고 하는 사람이 종종 있기는 했지만) 그 분은 자신의 샤덴프로이데를 자주 공개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밉진 않고 오히려 상사로 참 좋아했었다. 참 재밌는 사람이다.
니체는, 샤덴프로이데는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채 앙갚음하는 기분을 낼 수 있는 음흉한 전략, ‘무능한 자들의 복수’라고 했다.
이 음흉한 전략이 뭐 어때서? 잠깐의 승리감을 느끼는 게 그리 나쁘진 않다. 자신의 샤덴프로이데를 알아 채고, 느낀 감정에 대해 곱씹어본다면, 오히려 나에 대해 더 깊은 생각과 성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구든
샤덴프로이데를 쉽게 꺾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함께 가야 할 친구로 보는 것이 맞다. 나의 샤덴프로이데를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이 나를 보면서 갖는 샤덴프로이데도 항상 상기시키며 그
선을 잘 지켜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쓴 사람도 지금도 어디선가 샤덴프로이데와 마주하고 있을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