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좀비의 목숨을 건 철학 수업
사쿠라 츠요시 지음, 김영택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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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좀비의 목숨을 건 철학 수업 - 사쿠라 츠요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한 순간도 생각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동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멍 때리는 순간에도 머릿속 어느 부분에선 생각의 톱니바퀴가 계속 굴러가고 있다. 잠들고 난 후에도 꿈속에서마저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이다. 하루를 보내고 난 뒤, 내가 해온 것들에 대한 성찰, 반성, 후회 그리고 다시 제대로 해보겠다는 다짐. 이 모든 것들이 생각을 통해 반복되고 좀 더 나은 나로 자라날 수 있게 해준다.

 

철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면서, 선택해서 고른 책들을 읽다 보면 내가 난독증인지, 수준 미달이라 그런 건지.. 생각보다 어려운 책들이 많았다. 유명하다는 철학 책들도 수면제가 되어 잠을 쏟아지게 만들기 때문에 점점 철학책들과는 멀어졌고, 책보다는 유튜브 등의 철학관련 영상을 더 보게 되었다. 그러다 『인간과 좀비의 목숨을 건 철학 수업』을 만나게 되었는데 내가 왜 철학 책을 읽으면 난독증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선생 : 대담한 게 아니라 분개하는 게다! ‘철학을 배우고 싶어서서점의 철학 코너로 간 젊은이가 그런 해설서 때문에 나는 역시 무리야라고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겠느냐! 적어도 앞으로는 철학을 배우려는 사람에게 어려운 말이야말로 뛰어난 표현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게 하고 싶지 않구나. 읽는 사람을 무시한 채 자기 만족을 위해서만 쓴 책과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말이다.

73P

 

『인간과 좀비의 목숨을 건 철학 수업』은 자살 명소로 유명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철학 수업을 담고 있는 책이다. 자살 명소에서 사진을 찍으러 간 SNS 관종 히로와 고대 그리스인이었지만 좀비가 된 대략 3000철학 좀비 선생이 우연히 만나 사제간이 되어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전에 읽었던 어려운 말이야말로 뛰어난 표현이라 생각하며 자기 만족을 위해 쓴 괴상한 철학서들과는 다르게 우리의 젊은이들을 대변하는(히로는 극 관종) 주인공 '히로와 좀비 선생의 대화를 보며, 쉽고 재밌지만 제대로 공감되는 철학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주인공 히로는 SNS의 좋아요가 아니면 인생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관종이지만, 알바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22살 청년이다. 좀비 선생과 투닥거리면서도 철학 수업 중에는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펴면서도 조금씩 좀비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생각의 깊이가 점점 깊어진다. 딱딱한 철학 수업이 될 수 있지만 관종과 철학 좀비라는 인물을 넣고 그에 맞는 재미있는 말솜씨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재밌다. 히로와 좀비 선생의 말 싸움은 시트콤같지만 뼈를 때리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결코 가볍지 않다.

 


"싫어요! 좀비가 남긴 밥을 누가 먹고 싶겠어요. 그리고 이렇게 맛있는 된장 돈가스 정식을 먹을 수 없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넌 참 아무렇지도 않게 좀비 가슴에 못을 박는구나. 그럼 내가 이상하다는 게냐?”

굳이 말씀드리자면 그렇죠. 된장 돈가스는 세계 최고의 요리니까요.  (중략) 가장 맛있는 음식일 게 분명합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된장 사람이라면 어떻게 먹어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 무시무시한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마세요. 선생님 빼고는 누구라도 된장 돈가스가 맛있다고 할 거에요! (중략)”

너는 변함없이 멍청하구나.”

왜요!”

어차피 나는 사람이 아니잖니. 이쯤에서 오늘의 수업을 시작하자꾸나.”

(82p)

 

위와 같은 만담 같은 대화가 이어지면서도 철학에 대한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읽다 보면 작가가 왜 좀비를 선생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재미난 만담스타일의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일까? 그 답은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좀비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갖고 있는 생각을 이해할 수 있으면서, 인간이 아닌 종족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인간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일반 좀비가 아니라 철학 좀비의 경우에만 해당한다.)

 

 

 

선생 :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겉모습과 마음 모두가 중요하지. 하지만 그만큼 상대를 좋아하는 인간의 마음도 중요하다는 게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쓰레기를 보물로 여길 수도 있고 보물을 쓰레기로 생각할 수도 있단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인 게다.

(149p)

 

연예인 사인이 그려진 종이 한 장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인일 땐 보물로 변했다가, 좀비 선생의 사인일 땐 종이 쪼가리로 취급해버리는 히로에게, 좀비 선생은 이야기한다. 인간이 타인을 평가할 땐 겉모습을 보며 판단하지만 지내다보면 마음을 통해 평가하기도 한다. 좋아했던 여자의 영혼이 배불뚝이 아저씨의 몸에 들어간다면, 겉모습이 아닌 영혼만으로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을 평가할 땐 그 척도가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를 항상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좀비 선생이 히로의 눈높이에 맞는 철학 수업을 하면 나 역시 그 수업을 함께 하게 된다. 말대꾸 대장인 히로 덕에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에 대한 것도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되는데, 3000살을 먹은 만큼 좀비 선생은 차분하게 하나 하나 잘 가르쳐 준다.

 

 철학이 나에게 어떤 학문이다라고 딱 정의하기는 어렵다. 철학을 잘 모르긴 하지만 나름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자부 했는데 정작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은 해보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에 대한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불신과 회피 등으로 내 생각의 에너지를 사용한 것 같아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남을 평가하기 전에 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한다면 나의 생각 에너지는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향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바로 어제도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말 한마디로 상처받고 몇시간동안 끙끙 거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흘러가는 일 중 하나이고 나중에는 기억도 안날 일 때문에 몇 시간을 낭비해버린 그 사실이 더 화가 난다. 바로 이럴 때 명상이 필요하다. 내가 어디에 집중하고 힘을 쏟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려면 짧더라도 명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 것 좀 더 어릴 때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조금은 지금보다 좀 더 차분해졌을까 궁금해지기도 하다.

 

 SNS에서 좋아요를 받아야 살아가는 의미가 생긴다는 히로의 그 의미, 점점 달라지는 과정에서 나 역시 배우게 되고,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약간 괴짜 느낌의 작가가 쓴 엉뚱한 철학서이지만 나 역시 히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걸 느끼고 배우다 보면 생각의 나이가 더 자란 것을 느낄 수 있다.

 

 특정인의 경험을 써 내려간 많은 책들이 베스트 셀러를 거쳐 결국 중고 서점에서도 안 팔리는 이유는, 그것이 그 사람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를 변화 시키기 위해선 나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 나에게 했던 충고들도 한번씩 곱씹어보며 나를 냉정하게 판단해보자. 낄낄거리며 관종 히로를 비웃지만 결국 내 모습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쓰고 남과 비교하는 어리석은 내 모습.

변화를 원하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철학서를 찾고 있다면 가볍게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어렵게 시작하기보단 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책을 만나게 되어 참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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