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결국은 비정규직이 된다 - 도쿄대 출신 빈곤노동자가 경험한 충격의 노동 현장
나카자와 쇼고 지음, 손지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실업률을 검색하면 5% 미만이 나온다. 주요 언론들은 일본의 실업률이 낮아졌고, 일자리가 넘쳐나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국민 입장에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고, 일본 정부가 참 대단해 보인다. 내가 일본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건 언론을 통해서가 대부분인데 많은 언론들은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며 우리나라는 한참 멀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일까? 일본의 고용이 그렇게 완벽할까? 가끔씩 보이는 일본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뉴스는 이 의심을 헛된 망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낮아진 실업률에 가려진 일본 고용의 이면이 종종 얼굴을 비추며 자신을 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실은 실업자라고 판정하는 기준은 나라마다 차이가 상당하다. 나라 상황을 반영해 실업자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도입해 통계를 낸다. 일본에서는 실업자의 정의를 엄밀하게 적용하여 정규직,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1분이라도 일하면 실업자가 아니라고 판정해버린다. 또한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은 노동자로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실업자가 아니다.

p.20

어느 나라든 실업률이라는 수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정치인들은 이 수치로 많은 의견을 내고 서로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치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상황이다. 탁상에 둘러앉아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공론을 버리지만, 수치가 낮아질 뿐 노동자들의 처우나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응? 우리 가게에 연수하러 온다고 했잖아. 연수 기간인데 돈을 왜 줘?”

그녀가 한 아르바이트 계약은 구두계약뿐이었다. 노동계약에 관련된 서류는 단 하나도 작성하지 않았고, 메모 한 장 없었다.

p. 68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이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크게 다르지 않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연수생 등. 저임금 또는 무임금으로 실컷 부려먹고 3개월 뒤에 해고해 버리는 고용주들의 만행은 어디서든 통하는가 보다.

나 역시 학생 때 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눈앞에서 알바비를 삭감해버리는 상황에 경험했었다. 하지만 고용주의 말이면 다 따라야 하는 줄 알았던 나는 받아야 할 비용의 3분의 2 정도만 받고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나왔다. 한 달쯤 지나서야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이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고, 알았다 해도 힘없는 학생이었던 나는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보다 똑 부러졌던 동료는 정해진 퇴근시간에 꼬박꼬박 퇴근했다는 이유로 3일 만에 잘렸던 걸 보면 정말 나쁜 고용주였다. 하지만 일하고자 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넘쳐났고, 그 베이커리는 계속 잘 되었다. 지금의 나였더라면 바로 신고해버렸을 텐데 참 아쉽다. 그런데 신고한다고 또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씁쓸해진다.


“나이 먹고 나면 어차피 다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않습니까? 괴로운 미래를 위해 지금 고생하라니, 미친 것도 아니고.”

p.116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청년들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숨 막히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갑질, 부당 초과노동,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그에 비해 얼마 안 되는 내 손에 들어온 돈을 보면 차라리 지금 행복하고 편하게 살자. 미래는 생각하지 말자. 나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 청년들을 비난하지만 청년들이 비난받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행복을 좇는 게 나쁜 것일까. 희망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정부의 죄는 없는 것인가. 탁상에 둘러앉아 입으로만 하지 말고 직접 발로 뛰며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느껴봐야 한다. 아랫사람들이 조사한 문서상의 수치, 언론의 말들만 듣고 계산기만 두들기며 바로잡을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절대 아니다. 노동자들의 희망은 단순한 볼펜 돌림으로 만들 수 없다. 나라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제발 이 사실을 느껴야 하는데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누구나 결국은 비정규직이 된다』는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을 부르는 기업의 문제, 철밥통으로 보이지만 언젠가 비정규직이 될 수 있는 정규직, 근무 현장의 현실, 고령자, 최저임금, 고용불안으로 인한 가난 등 비정규직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많은 노동 문제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일본의 노동환경이 우리나라와 닮아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문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도 않다.

많은 청년들이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하지만 꼭 그들이 원하는 직업을 가져야 성공한 삶은 아니다.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헛된 노동을 하지 않는다. 이 당연한 것을 깨닫는다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언젠가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