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일본 신 본격 미스터리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홉 번째 관 시리즈로 내놓은 <기면관의 살인>을 읽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의 괴기․호러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본연의 퍼즐 맞추기의 심정으로 집필했다고 하는데요. 그 점과는 별개일지도 모르겠으나 연쇄살인 대신 단 하나의 살인만이 발생해서 예상했던 패턴과는 적잖이 달랐습니다. 첫 번째 살인 이후 폭설에 갇혀 기면관에 고립된 여섯 명의 초대 손님과 종업원들을 두고 분명히 후속살인이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말이죠. 보기 좋게 비껴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만의 재미와 뚝심이 엿보여서 괜찮았습니다.

 

 

서막은 추리소설 작가 시시야 가도미가 자신과 닮은 괴기환상 소설 작가 휴가 고스케로부터 자신 대신 어느 서양식 저택의 주인장이 초대하는 연회에 참석해달라는 제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참가수당을 반씩 나눈다는 조건도 나쁘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 저택의 설계자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것에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에서 발생했던 각종 살인사건에는 그의 건축물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고 그 사건들에 연루되었던 시시야에게는 호기심이라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발을 딛게 된 것입니다. 그 저택의 이름은 진기한 가면을 수집해놓았다 하여, 기면관(奇面館)이라고 불리는데 가면관이 아닌 기면관이라는 호칭은 미스터리의 성격에도 부합되는 뉘앙스가 물씬 풍깁니다.

 

주인장인 가게야마 이쓰시는‘표정 증후군’이라는 요상한 증세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표정을 몹시 싫어하는, 마음속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비치는 사람들의 표정이라는 것을 견디기 힘든 공포로 받아들이는 증세라고 합니다. 사업가로서 원만한 대인관계가 필수라는 아킬레스건을 감안하면 이 같은 공포를 견디고 억누른다는 건 웬만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인장 가게야마의 설명은 얼토 당토한 횡설수설로 치부되지 않고 무언가 마음속에서 수긍하고 동조하는 움직임이 느껴지기에 제게도 ‘표정 증후군’대신 비스무리한‘대인 증후군’이 있어 사람만큼 불신에 두려움 가득한 생명체도 없다는 것도 압니다.

 

 

가게야마는 표정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인‘또 하나의 자신’, 즉‘도플갱어’를 찾고 있었던 것이고 자신과 유사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초대해 가면 연회를 열었던 것인데 참극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초대된 여섯 손님이 때늦은 폭설로 인해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보냈는데 다음 날 주인장 가게야마가 손가락이 잘리고 목 없는 시체로 발견되는 참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잠에서 깬 손님들에게는 각각의 가면이 씌워져 있었고 가면을 풀 수 있는 열쇠 또한 사라졌습니다. 이쯤 되면 범인은 내부인의 소행인지, 외부인의 소행인지 그리고 사라진 목은 어디에 있는지 진득한 추리가 시작됩니다. 바로 시시야 가도미에 의해서요.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면관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고 환희, 놀람, 탄식, 오뇌, 대소, 분노로 구분되어진 가면을 쓴 손님들의 신분부터 파악하는 일이 차순일 것입니다. 수집된 각종 가면들을 전시해 둔 컬렉션 룸부터 대면의 방, 그리고 기면의 방까지 위치, 구조, 용도 모두 인상적이고 특이한 것이 실제 거기에 가 본다면 그로데스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날 것 같아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가면을 주인장의 요구에 따라 쓰고 얼굴을 잃어 버린 여섯 사람들을 지켜보며 마치 장님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본명대신 가면이름으로 불리는 손님들 때문에 때때로 구별하지 못하고 착각에 헤매며 몇 번이나 앞 페이지를 뒤적였는지 모릅니다. 각자의 신분확인은 기면관 별관 방 배치도의 객실 호수에 표시된 가면이름으로 가능했으니 익명성이라는 공통성은 살인을 은폐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면책특권을 보장한 셈입니다.  

 

 

시시야 가도미의 일목요연한 추리 앞에 드러난 진실들은 아무도 모르는 기면관의 비밀구조, 그리고 특정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중의성, 사람이 하는 말 속에 있는 뜻밖의 함정(이것은 기면관의 배치도를 보고 무언가 잘못된 음모가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과 트릭 등 지나치기 쉬운 복선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쁨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범죄계획의 범위가 뜻하지 않게 확장되고 만 사연은 정말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의 절묘한 재미였기에 추운 겨울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차근차근 읽으면 정말 좋을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특히 쇠창살에 그런 비밀이라니요 ㅎㅎㅎ 이제까지와는 범행 동기나 수법에서도 차별화될 수작이라고 한다면 이제 아야츠지 유키토의 열 번째 관 시리즈가 점점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어떠한 트릭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할까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미래의 가면같은 컬렉션이 제게도 하나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신데렐라 카니발 ㅣ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 다니엘 홀베 지음, 이지혜 옮김 / 예문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50만부가 팔린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의 최고봉으로 넬레 노이하우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화려한 문구와 함께 저자인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유작이라는 쓸쓸함, 그리고 다니엘 홀베가 중단된 집필을 이어서 완성하였다는 사연까지... 여러모로 관심을 끌만한 요소는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독일 스릴러는 2012년 상반기 중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후 오랜만에 읽어 보는지라 그녀 이전에 활약했던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계의 인기작은 어떠할지도 궁금했습니다.

 

세 명의 여대생과 세 명의 남학생이 술과 마약에 취해 한여름 밤 광란의 파티를 엽니다. 파티가 끝난 후 캐나다 여학생 제니퍼 메이슨이 강간 살해당한 채 시체로 발견되는데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은 그날 있었던 참극을 기억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한 편 1년 만에 수사현장으로 복귀한 율리아 뒤랑 형사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사참여에서 배제된 상황에서 동료 형사들의 수사 결과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이 범인으로 검거되고 시간은 2년이 지나갑니다.

 

상사인 베르거의 직무대행으로 임명된 율리아가 사무실 근무에 염증을 느끼고 현장복귀를 갈망하던 차에 남자 대학생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됩니다. 그런데 현장에 출동한 프랑크와 자비네 형사는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구원을 받은 듯 한 평온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한 시체를 보며 과거 제니퍼 메이슨 살인사건과 유사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과거 사건과의 연관성을 눈치 챈 수사팀이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죽은 줄 알았던 제니퍼 메이슨이 나타나자 일순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용의자의 시체가 발견되자 더욱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져듭니다.

 

<신데렐라 카니발>은 율리아 뒤랑 시리즈의 12번째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탓에 주인공인 율리아가 과거 사이코 패스에게 납치당해 감금 강간까지 당하는 끔찍한 기억들로 인해 정신공황에 공포장애까지 아직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로 파악됩니다. 그녀의 진정한 고통은 그랬구나 하는 정도로만 짐작할 뿐 진심 공감되기에는 설명이 불충분한 점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현장수사에 처음 배제되는 점은 이야기 전개 상 당연할 것이고 직무대행은 그녀가 점차 수사조직에서 인정받아 크나큰 역할을 맡기 위한 권력의 발판 정도로도 인식될 수 있을 것 같아 주인공이면서도 지지부진했던 것에 활동에 대해서는 넓은 아량과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결국에는 직접 사건해결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은 육탄전을 보였으니 차기 시리즈에서는 제대로 된 그녀의 활약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수사팀의 일원이자 오랜 파트너인 프랭크 헬머와의 서열문제로 인한 트러블과 화해, 자비네와 슈렉 팀장의 비밀연애, 페터와 도리스 부부 형사의 연애사와 득녀 이야기까지, 한 가족 같은 구성원들이 들려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빡빡한 수사 일지에서 빛을 발하고 깨소금 같은 고소함이 살아 있기에 읽는 재미가 더욱 풍성해서 좋았습니다.

 

물론 범인이 초반에 밝혀지고 어렵지 않게 범인을 알아내는 수사 과정들, 그리고 또 다른 범인의 등장 등 사건의 정체와 해결과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다소 싱겁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듭니다. 반전이라고 할 만한 포인트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드레아스 프란츠가 생전에 끝장을 내었더라면 전개방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이것이 최선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평이하고 안이한 선택을 다나엘 홀베는 분명히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집필을 이어나간 핸디캡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해도 재미는 웬만큼 보장됩니다.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끌고가는 힘이라면 분명 장점입니다.

 

그리고 생각거리를 여럿 남깁니다. 우선 객기를 주체 못하고 도덕적 불감증에 노출되어 쾌락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청춘들이 있습니다. 최고로 빛나야 할 시간들을 자유와 맞바꿔버린 채 피 눈물 나는 대가를 치러버린 비참한 말로는 많은 것을 반성하고 되돌아보게 합니다. 죄의식이니 죄책감이니 하는 것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다신 오지 않을 청춘이여!!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변태적 성적 욕망에 눈이 멀어 섹스산업의 번창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 일조하고 있는 사디스트들로 가학과 피학의 빈자리는 항상 누군가로 채워져 있다는 씁쓸함은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사회가 낳은 시대의 산물이요, 경종이기도 합니다. 범죄는 이러한 수요가 있는 한 지금도 이를 노린 배금주의에 희생자들을 만들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의 스릴러적 긴장에 가독성까지 모두 이러한 요소들을 기반으로 독자들을 지루할 틈도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몰아넣는데 성공한 편입니다. 실망스럽다는 분들도 제법 계시지만 축제가 전 이만하면 괜찮더군요.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자니 이 소설은 이런 아픔들만 노출시키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마지막 결말을 보십시오.‘최고로 빛나는 시간“에 대한 정의에서 누군가에게는 헛되어 소비 되어 버린 찌꺼기에 불과하지만 율리아 뒤랑과 프랭크 헬머는 12년에서 1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소중한 그 시절에 경의를 표합니다.

 

최악의 고비에 털썩 주저앉으며 이번이 마지막인가라는 좌절을 극복해가며 이 모든 걸 함께 버텨 준 파트너에게 이해를 얻은 점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고 범인은 잔에 물을 채우듯이 빈자리를 대신하겠지요.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한 두 사람의 파트너쉽의 결속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며 몽상 대신 범죄해결에 남은 미래를 걸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은 희망으로 훈훈했습니다. 다니엘 홀베가 이어나갈 새로운 시리즈가 기대되고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과거 유작도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게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이후 만난 독일 스릴러의 즐거움이었으며,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보다도 훨 만족스러웠던 작품입니다. 안드레아스 프란츠에게는 명복을, 다니엘 홀베에게는 격려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지 머니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0
옌스 라피두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옌스 라피두스의 범죄소설 <이지 머니>는 스웨덴의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범죄의 재구성이자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 세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칠레 출신의 마약상 "호르헤"는 자신과 거래하던 조직의 수장 "라도반"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마약밀거래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지만 증오와 분노로 인해 교도소를 탈옥하고 나와서는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조직에 대한 복수를 꿈꿉니다. 스웨덴 토박이 대학생인 "JW"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대한 불만과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하여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그러면서 실종된 친누나의 행방을 좇고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갱 조직원인 "므라도"는 이혼한 부인과 사이에 둔 딸의 양육권 분쟁과 함께 예전에 친구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수장 "므라도"에 대한 반감으로 독립하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세 명의 범죄자가 스웨덴에서 마약으로 벌어들이는 "눈먼 돈"를 쟁탈하기 위한 약육강식의 현장을 생생하면서도 거칠고 잔인하며, 스피디한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어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개봉된 바 있습니다.

 

 

바야흐로 범죄도 계급화, 세계화, 기업화되는 경향이 가속화중인 것 같습니다.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도 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벗어나기 위한 극빈층의 신분상승의 꿈은 "JW"를 통해서도 가늠 가능하듯 범죄 조직에 대한 꾸준한 공급원으로 양성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스웨덴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들면서 범죄조직의 국적도 글로벌화되고 있습니다. 스웨덴, 유고슬라비아, 칠레, 아랍계까지 여러 국적의 범죄조직은 해가 지고 난 어두운 밤 거리의 이권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데 흡사 기업운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교묘히 합법화를 가장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추세인 듯 합니다. 마약, 매춘을 비롯하여 다양한 업종방식과 더불어 스웨덴 경찰에서 공세를 진행 중인 대 범죄조직 소탕작전 "노바 프로젝트"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조직간의 합종연횡 전략같은, 범죄의 끊임없는 자생력에 혀를 내두르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아요.

 

 

저자 옌스 라피두스는 기존의 범죄소설들이 경찰 또는 탐정 위주의 캐릭터였다면 범죄자 그 자체를 그려보고 싶었으며. 범죄에 대한 해결보다는 플롯을 통해 범죄의 재구성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 로 활동 중인 옌스 라피두스는 과거에 참여했던 아파트 무장강도 사건 재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범죄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서 "왜? 이들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결국 "그 길 밖에 없었다."는 해답을 이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교화 대신 범죄의 길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필연이라는 종착역까지의 여정이 어떻게 끝맺게 될 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범죄의 세계에 매혹되고 있습니다. 그들과 그것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면서도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을 대중들에게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어떠한 감정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하류인생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지요. 그런 세상은 또 없으니까요. 그것이 호기심이든, 동경이든, 혐오든 상관없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지 머니 2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1
옌스 라피두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옌스 라피두스의 범죄소설 <이지 머니>는 스웨덴의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범죄의 재구성이자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 세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칠레 출신의 마약상 "호르헤"는 자신과 거래하던 조직의 수장 "라도반"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마약밀거래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지만 증오와 분노로 인해 교도소를 탈옥하고 나와서는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조직에 대한 복수를 꿈꿉니다. 스웨덴 토박이 대학생인 "JW"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대한 불만과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하여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그러면서 실종된 친누나의 행방을 좇고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갱 조직원인 "므라도"는 이혼한 부인과 사이에 둔 딸의 양육권 분쟁과 함께 예전에 친구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수장 "므라도"에 대한 반감으로 독립하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세 명의 범죄자가 스웨덴에서 마약으로 벌어들이는 "눈먼 돈"를 쟁탈하기 위한 약육강식의 현장을 생생하면서도 거칠고 잔인하며, 스피디한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어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개봉되었습니다.

 

바야흐로 범죄도 계급화, 세계화, 기업화되는 경향이 가속화중인 것 같습니다.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도 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벗어나기 위한 극빈층의 신분상승의 꿈은 "JW"를 통해서도 가늠 가능하듯 범죄 조직에 대한 꾸준한 공급원으로 양성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스웨덴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들면서 범죄조직의 국적도 글로벌화되고 있습니다. 스웨덴, 유고슬라비아, 칠레, 아랍계까지 여러 국적의 범죄조직은 해가 지고 난 어두운 밤 거리의 이권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데 흡사 기업운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교묘히 합법화를 가장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추세인 듯 합니다. 마약, 매춘을 비롯하여 다양한 업종방식과 더불어 스웨덴 경찰에서 공세를 진행 중인 대 범죄조직 소탕작전 "노바 프로젝트"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조직간의 합종연횡 전략같은, 범죄의 끊임없는 자생력에 혀를 내두르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아요.

 

 

저자 옌스 라피두스는 기존의 범죄소설들이 경찰 또는 탐정 위주의 캐릭터였다면 범죄자 그 자체를 그려보고 싶었으며. 범죄에 대한 해결보다는 플롯을 통해 범죄의 재구성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 로 활동 중인 옌스 라피두스는 과거에 참여했던 아파트 무장강도 사건 재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범죄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서 "왜? 이들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결국 "그 길 밖에 없었다."는 해답을 이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교화 대신 범죄의 길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필연이라는 종착역까지의 여정이 어떻게 끝맺게 될 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범죄의 세계에 매혹되고 있습니다. 그들과 그것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면서도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을 대중들에게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어떠한 감정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하류인생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지요. 그런 세상은 또 없으니까요. 그것이 호기심이든, 동경이든, 혐오든 상관없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해가 고즈넉이 저물려고 하는 자주 빛의 하늘에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이 어디로인가 날아가는 중입니다, 고개 들어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한 여자가 나와 있는 표지를 들여다보노라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왠지 담겨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작가가 누마타 마호카루라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이미 출간된 전작들로 극심한 호불호가 엇갈렸던 그녀의 소설들은 광명의 빛줄기 보다는 칠흑 같은 어둠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리도록 독자들을 방임하는 것이 작풍으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두 남녀의 기묘한 동거는 달콤함이 아니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혐오와 경멸로 점철되어 불쾌한 마음에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지독한 악취가 글로 읽혀져 세상이 거부하고 싶게끔 하지요. 8년 전 자신을 철저하게 이용한 후 가차 없이 버린 쿠로사키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여자 토와코는 열다섯 연상의 진지라는 중년남자와 동거 중입니다. 진지는 볼품없고 지저분한 외모에다 어눌한 말투와 매사에 서투르고 미숙한 남자입니다. 여자들이라면 결코 쳐다보지도 않을 형편없는 남자라 토와코는 끔찍이 그를 싫어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기생하다시피 얹혀삽니다.

 

그렇지만 토와코의 경우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의 망상에 갇혀 살던 그녀는 백화점 직원 미즈시마와 불륜에 빠져있어 도적적 해이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점은 친 언니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고도 별다른 반박을 못하는 토와코의 반응을 통해 독자들의 심정을 속 시원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이죠. 정신적 공황에 놓여있던 그녀에게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 옛 사랑 쿠로사키가 5년 전 부터 실종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그녀는 혹시 진지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닐까라는 의혹을 품게되는데요. 현재 그녀가 만나는 미즈시마의 주변에도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자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자신의 사랑을 음해하려는 진지의 음모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나날이 커져 갑니다. 여기서부터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환희에 젖어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듯한 사랑은 길어봐야 2년 반을 못 넘는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녀는 왜 아직도 쿠로사키를 못 잊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후반에 들어서 그 비밀이 드러나면 비로소 그녀가 가진 망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됩니다. 미즈시마는 그녀에게 타클라마칸 사막 이야기를 가끔씩 들려주는데 그 사막 이름에 담긴 ‘드리운 죽음, 무한, 출구가 없는 것’ 이란 의미들은 자생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그녀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네요.

 

자신이 딛고 있는 이 세상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지 모른 채 모래구덩이에 발이 빠져 휘청거리며 허망하고 기이한 허무감이 몸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녀에게 사랑이야말로 새들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욕망을 실현시켜줄 구원의 손길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랑에 배신당한 그녀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일련의 행동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진지는 어렸을 적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불우한 성장환경으로 아픈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어서인지 토와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집착 수준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그녀로부터 수시로 구박받고도 공세를 멈추지 않지요. 같은 남자가 봐도 숨 막힐 정도의 집착이지만 한편으로는 천성이 악한 남자가 아니기에 연민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또한 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인 튀김우동, 소 이야기 등을 통해 자신이 못 누렸던 애정과 행복을 토와코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은 눈물겨운 순정이 담겨있기에 이런 순애보가 또 있을까 싶어 무작정 미워할 수 없게 하지요.

 

그렇게 왜곡된 사랑으로 힘겨운 전개를 보여주던 이야기가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라며 진지는 토와코에게 진정한 해방구를 제공하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남녀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진리를 도외시한 채 자신의 기준대로 반응하기를 기대하기에, 남녀 간의 사랑은 오해와 사고와 문제로 가득한 것이겠죠.

 

토와코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느끼는 회한을 보며 우리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여성은 ‘이상’으로 사랑을 하고, 남성은 ‘속셈’으로 사랑을 한다는 명언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토와코를 만난 쿠로사키와 미즈시마가 그랬다면 목숨 걸고 사랑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진지는 속설을 거부한 남자기에 특별합니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사랑에 빠져 있기도 쉽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이므로. 하지만 한 사람 곁에 머물면서 그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랑을 주면서도 그 누구보다 외롭고 공허했던 두 사람 토와코와 진지. 처음부터 중반 이후까지 두 사람을 저주하던 제가 압도적인 결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랑을 준 사람도 후횐 따위 없었노라고 자신 있어 할 때 받은 사람도 억만금을 주어도 얻지 못할 진정한 행복을 누렸었음을 뒤늦게 알아 차렸기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사랑이 뭐길래 밉지 않나요? 이 순간에도 이 세상의 많은 남녀들이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울고 있습니다. 지금 사랑이 탐탁치가 않다구요? 한 남자의 절대적 순애보를 한번 만난다면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감동과 슬픔에 몸을 떨게 될지도 모릅니다.

2012년을 빛낸 최고의 일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