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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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릴러물들을 읽다보면 기름기 쫙 빼서 지극히 건조한 하드보일드물을 접하게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수한 은유와 함축적 의미를 담고 해석에 상대한 시간을 들여 읽게 만드는 심리스릴러물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여 증거를 수집하기보다 머리 속에서 가설을 추출해 정황을 추측하고 범인의 심리와 패턴을 분석, 응용하므로서 범죄의 실체에 다가서는 학구파적 엘리트들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 유형입니다.

 

토니 힐 시리즈, 그리고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예를 들 수 있는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고 정의 내리고 싶네요. 저는 이 데이브 거니 시리즈를 다음 편인 <악녀를 위한 밤>으로 처음 읽고 지금에야 타임슬립하여 데뷔작을 읽었습니다. 후속작과 전작은 어떠한 관계에 놓여있으며 차별화된 변화는 있는걸까요? 영혼을 잠식할 불안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거니는 오래 전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인 멜러리와 해후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숫자를 임의로 생각해서 그 숫자를 한 번 말한 뒤, 받은 봉투를 열어보면 바로 그 숫자가 있을거라고 했다는군요. 장난이려니하며 열어 본 봉투 속에는 진짜 그 숫자가 있었고 이에 경악한 멜러니는 거니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궁금해? 궁금하면 오백원말고 수표를 지정된 사서함으로 보내라는 설명과 함께...

 

도대체 그 숫자는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이 낯선 이로부터 도착한 전화와 편지들은 멜러리의 신상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기에 해결을 바란 것이죠. 고심 끝에 도움을 주기로 한 거니가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뜻밖에도 멜러니는 자신이 운영 중인 수련원에서 총상과 함께 목에 수차례 찔린 자상을 남긴 모습으로 끔찍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범인이 동일한 수법으로 추가 살해한 희생자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 모든 살인에 얽힌 동일한 동기를 밝히는 데 주력하면서 대결은 게임의 방식을 차용하게 됩니다. 

 

거니는 시작부텀 머그샷에 빠져있네요. 머그잔과 자주 헷갈리는 저로서는 범인들의 측면과 정면을 찍은 사진들에 무슨 예술적 가치가 담겨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어쨌든 거니는 예술적 성취감과 부수입이라는 일거양득의 즐거움에 빠져있지만 아내 매들린은 강력계 뉴욕 강력계 형사에서 은퇴한 거니가 전원의 안락한 삶 대신 범죄의 잔여물들을 끝내 버리지못하고 집착과 미련을 가지는 것에는 당연히 싸늘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니는 예전에 이버지가 일에 빠져 가족들과 소원했던 관계를 기억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은 어버지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며 닮지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이미 첫번째 결혼생활에서 무심한 아버지로 일관해 아들을 뺑소니사고로 잃은 전력이 있는데다 재혼에서도 부인과 아들에 대하여 가정적인 모습보다 범죄해결에 관심을 두는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일에는 프로페셔널이지만 가정에서는 여전히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거니는 후속작에서도 변함없지만 껄끄럽고 영혼없는 관계에 삐걱하다가도 결말은 화해의 여지를 담고있는 점은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존 버든은 자신의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 조금씩 복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멜러리를 살해한 범인이 남긴 발자국이 숲 속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끊기면서 증발한다든지. 세리든 클라인 검사 사무실에서의 대책회의 분위기, 사건 해결 과정에서 겪는 범인과의 대치상황 등은 <악녀를 위한 밤>에서 헥토르가 살인 후 증발된 흔적부터 시작해서 전반적으로 놀랄만치 데자뷰 현상을 느끼게한다는 사실은 우연인지 의도적인 선택인지 의문점을 낳는것이지요.

 

또한 과도한 심리묘사를 단점으로 지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과도한 행동묘사 내지 상황묘사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인물의 행동이나 표정을 설명할 때 그냥 ~~~~ 했다 하면 될 것을 마치 ~~~ 하는 것 처럼 ~~~~ 했다 라는 동일반복적인 패턴이 집요하리만큼 공식화되어있는 겁니다. 가량 도자기 가게에 황소를 들여놓는다는 표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염세적인 개구리의 표정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해서라도 유머스럽게 보이고자하는 강박증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네요. 그렇지만 오히려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이시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녀를 위한 밤>에서 보여준 상상플러스 + 넘겨짚기보다는 가설 자체가 좀 더 현실성이 있었던 점은 장점입니다. 숫자퀴즈에 숨겨진 트릭이 무엇일지 범인의 정체나 범행동기보다 더 궁금했던 제게 밝혀진 진실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단순한 발상에 기인하면 기본이 확인된다는 퀴즈를 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답니다.

 

한 번의 숫자게임은 우연에 운을 걸고, 또 한 번의 숫자게임은 지리적 잇점을 선점한, 천재적 발상이 아니라 넓게 보지 못하고 눈 앞의 허상에 매몰된 편협된 마음이 낳은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쨌거나 데이브 거니 시리즈사 본궤도에 오르기 위한 션결과제가 많겠습니다만 여전히 독툭한 정신세계만큼은 독보적입니다. 그리고 다혈질이기도 하고요. 최향에 대한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임을 잊지 말야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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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종말이 오다 - 종말문학 공모전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3
최경빈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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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개월여 동안 밀리언셀러클럽에서 한국장르소설들이 꾸준히, 그것도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수서평 회원 자격으로 받고 있는 것이지만 실상 외국 장르소설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깊이 뿌리박혀 있어 기왕이면 한국소설 보다는 외국소설로 받았으면 좋겠다는 푸념이 배어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전정보도 없이 읽게 된 이번 단편집은 “10개월, 종말이 오다라는 제목의 종말문학 장르인데 좀 더 세분화하면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생소한 타이틀을 달고 있네요.

 

신체강탈자문학의 정의랄까, 역사 같은 것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대중화된 장르는 아니겠죠. <옥상으로 가는 길>이나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4>같이 먼저 출간된 작품들은 여전히 척박한 토양 속에서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국내 장르소설의 현실의 한계를 깨뜨리기 위한 작가들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결과만큼은 대박에 미치지 못한 채 편차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큰 기대 없이 읽은 이번 수상작 모음집은 그야말로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박력과 흥분이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것들은 진짜였습니다. 당선작 <10개월>을 비롯하여 우수작 5편이 실려 있는데 편차가 크지 않음에 대만족이었습니다. 초속과 종속 차이가 크지 않은, 그야말로 오승환식 돌 직구였던 것입니다.

 

<10개월>은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이 남자로 변해버리는 이야기입니다. 바이러스처럼 전 세계적으로 남자 변이 증후군이 퍼지면서 성비의 균형이 점차 무너지고 여자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듭니다. 세상은 당연 일대 혼란이 벌어집니다. 어제까지 여자 친구였던 그녀가 수염에 떡대 좋은 남자로 돌변하고 아내이자 엄마였던 여자는 잠이 들면 남자로 변이된다는 소문에 남편과 아이들이 교대로 밤새 지켜가며 뜬눈으로 지새우려는 사투를 벌입니다. 남자였던 여자와 여자였던 남자는 성적호기심에 뒤바뀐 육체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야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여자의 숫자가 줄어들자 성적충동을 억제 못하는 일단의 남자들이 임산부를 납치해서 겁탈하려는 대목입니다. 임산부는 남자로 변하지 않는 특이현상(?)에 피그미족을 사냥하듯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욕구를 채우려는 것입니다 

 

이성과 도덕의 마지막 경계가 무너진 말세 그 자체를 이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 적도 드물다 생각하니 충격의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여자들의 수난에, 비록 소설이었지만 남자로서 읽는 동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맘이 들었고 혼돈의 세상 속에서는 소수자는 다수의 힘에 눌려 언제나 보호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공격당한다는 역사의 반복은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결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작가 기리노 나쓰오 식 소신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균형이 무너지면 어떠한 불행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전달과 함께 우리가 대처해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수작이죠.

 

<베르테르 증상>은 세계최고 수준의 자살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는 문제작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최근 발생한 전직 유명 야구선수의 자살이 가져온 충격이 때마침 오버랩 되면서 자살증후군은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펴져나가는 내용입니다. 새삼 산다는 것의 의미와 고민을 되새겨줍니다. 특히 자살을 유도하는 매개체가 물이라니 닥치면 피해가기 어려운 영겁의 저주가 따로 없습니다. 역시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귀환>의 경우에도 우주 탐사 후, 귀환한 탐사사선이 이미 멸망한 지구의 인류를 탐사한다는 내용인데 기술자들이 장난으로 프로그래밍한대로 자의적 판단대신 입력된 설정대로 탐사를 수행하면서 맞게 되는 기이한 생명체들과의 조우와 임무종료까지... 외국 유명 SF작가들의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아름답고 처연하게 보여주는데 무엇인가 뭉클함이 가슴 한켠을 치고 올라오는 순간은 말을 잊게 합니다. 그리고 여운이 남습니다. 작가의 범 우주론적 상상력이 뛰아나서 좋았습니다.

 

<미래도둑><10개월>과 함께 이번 수상작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두 외계인이라는 전개는 재밌고 독특한 설정이 아니라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죽음의 향연을 보여줍니다. 외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곧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됩니다. 즉 인간의 형상으로 바뀌게 되는데, 문제는 아이의 성장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서 단기간 내에 어른으로 자랍니다. 그런데다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엄마 이런 식으로 외모와 기억까지 전부 그대로 복제해버립니다. 진정한 신체복제 = 강탈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제 아들이 남편이 되고 딸은 아내가, 동생이 엄마역할을 같이 하는 대 혼돈의 가족동거가 되면서 근친상간이라는 최악의 악수마저 둡니다.

 

이제 원본은 카피본을 죽이려 들고 카피본은 원본을 죽여 먹으려 드는데 그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극은 가족의 근간을 해체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드러내고 말죠. 극중 복제인간 은혜가 나랑 같이 죽을테냐.”며 진짜 은혜를 집요하게 쫒아오는 순간은 등골이 오싹하면서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공포스러웠습니다. 뒤돌아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후덜덜함이란 진정 압권 그 자체입니다. 밤에는 결코 두 번 다시 해당 페이지를 넘긴다는 것은 감당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쩜 이리도 읽는 이의 심장을 조여들어갈 수 있는지 작가의 진정한 능력에 감탄합니다. 향후 주목해야할 국내작가 중 한 명이 아닐까 합니다. 브라보!!!

 

그 밖에 한국근대문학에 신체강탈 소재를 퓨전화시킨 <운수 나쁜 날>이나 담배로 외계인과 대결하는 샐러리맨의 고군분투기 <금연 클럽>, 걸 그룹과 삼촌팬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 (극중 걸 그룹 지소는 분명 소시에 대한 풍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아이유를 연상시키는 비유도 있지요.)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고퀄의 진수를 뽐내고 있어 은연중에 국내 장르작가의 필력을 과소평가했던 저를 반성토록 합니다. 이 수상작 모두가 인류의 종말을 테마로 펼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후유증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중독성과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초에 만난 대박작으로 손색이 없는 필견의 소설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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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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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 신 본격 미스터리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홉 번째 관 시리즈로 내놓은 <기면관의 살인>을 읽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의 괴기호러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본연의 퍼즐 맞추기의 심정으로 집필했다고 하는데요. 그 점과는 별개일지도 모르겠으나 연쇄살인 대신 단 하나의 살인만이 발생해서 예상했던 패턴과는 적잖이 달랐습니다. 첫 번째 살인 이후 폭설에 갇혀 기면관에 고립된 여섯 명의 초대 손님과 종업원들을 두고 분명히 후속살인이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말이죠. 보기 좋게 비껴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만의 재미와 뚝심이 엿보여서 괜찮았습니다.

 

 

서막은 추리소설 작가 시시야 가도미가 자신과 닮은 괴기환상 소설 작가 휴가 고스케로부터 자신 대신 어느 서양식 저택의 주인장이 초대하는 연회에 참석해달라는 제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참가수당을 반씩 나눈다는 조건도 나쁘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 저택의 설계자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것에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에서 발생했던 각종 살인사건에는 그의 건축물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고 그 사건들에 연루되었던 시시야에게는 호기심이라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발을 딛게 된 것입니다. 그 저택의 이름은 진기한 가면을 수집해놓았다 하여, 기면관(奇面館)이라고 불리는데 가면관이 아닌 기면관이라는 호칭은 미스터리의 성격에도 부합되는 뉘앙스가 물씬 풍깁니다.

 

주인장인 가게야마 이쓰시는표정 증후군이라는 요상한 증세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표정을 몹시 싫어하는, 마음속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비치는 사람들의 표정이라는 것을 견디기 힘든 공포로 받아들이는 증세라고 합니다. 사업가로서 원만한 대인관계가 필수라는 아킬레스건을 감안하면 이 같은 공포를 견디고 억누른다는 건 웬만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인장 가게야마의 설명은 얼토 당토한 횡설수설로 치부되지 않고 무언가 마음속에서 수긍하고 동조하는 움직임이 느껴지기에 제게도 표정 증후군대신 비스무리한대인 증후군이 있어 사람만큼 불신에 두려움 가득한 생명체도 없다는 것도 압니다.

 

 

가게야마는 표정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인또 하나의 자신’, 도플갱어를 찾고 있었던 것이고 자신과 유사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초대해 가면 연회를 열었던 것인데 참극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초대된 여섯 손님이 때늦은 폭설로 인해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보냈는데 다음 날 주인장 가게야마가 손가락이 잘리고 목 없는 시체로 발견되는 참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잠에서 깬 손님들에게는 각각의 가면이 씌워져 있었고 가면을 풀 수 있는 열쇠 또한 사라졌습니다. 이쯤 되면 범인은 내부인의 소행인지, 부인의 소행인지 그리고 사라진 목은 어디에 있는지 진득한 추리가 시작됩니다. 바로 시시야 가도미에 의해서요.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면관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고 환희, 놀람, 탄식, 오뇌, 대소, 분노로 구분되어진 가면을 쓴 손님들의 신분부터 파악하는 일이 차순일 것입니다. 수집된 각종 가면들을 전시해 둔 컬렉션 룸부터 대면의 방, 그리고 기면의 방까지 위치, 구조, 용도 모두 인상적이고 특이한 것이 실제 거기에 가 본다면 그로데스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날 것 같아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가면을 주인장의 요구에 따라 쓰고 얼굴을 잃어 버린 여섯 사람들을 지켜보며 마치 장님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본명대신 가면이름으로 불리는 손님들 때문에 때때로 구별하지 못하고 착각에 헤매며 몇 번이나 앞 페이지를 뒤적였는지 모릅니다. 각자의 신분확인은 기면관 별관 방 배치도의 객실 호수에 표시된 가면이름으로 가능했으니 익명성이라는 공통성은 살인을 은폐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면책특권을 보장한 셈입니다.  

 

 

시시야 가도미의 일목요연한 추리 앞에 드러난 진실들은 아무도 모르는 기면관의 비밀구조, 그리고 특정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중의성, 사람이 하는 말 속에 있는 뜻밖의 함정(이것은 기면관의 배치도를 보고 무언가 잘못된 음모가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과 트릭 등 지나치기 쉬운 복선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쁨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범죄계획의 범위가 뜻하지 않게 확장되고 만 사연은 정말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의 절묘한 재미였기에 추운 겨울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차근차근 읽으면 정말 좋을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특히 쇠창살에 그런 비밀이라니요 ㅎㅎㅎ 이제까지와는 범행 동기나 수법에서도 차별화될 수작이라고 한다면 이제 아야츠지 유키토의 열 번째 관 시리즈가 점점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어떠한 트릭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할까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미래의 가면같은 컬렉션이 제게도 하나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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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카니발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 다니엘 홀베 지음, 이지혜 옮김 / 예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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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만부가 팔린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의 최고봉으로 넬레 노이하우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화려한 문구와 함께 저자인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유작이라는 쓸쓸함, 그리고 다니엘 홀베가 중단된 집필을 이어서 완성하였다는 사연까지... 여러모로 관심을 끌만한 요소는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독일 스릴러는 2012년 상반기 중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후 오랜만에 읽어 보는지라 그녀 이전에 활약했던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계의 인기작은 어떠할지도 궁금했습니다.

 

세 명의 여대생과 세 명의 남학생이 술과 마약에 취해 한여름 밤 광란의 파티를 엽니다. 파티가 끝난 후 캐나다 여학생 제니퍼 메이슨이 강간 살해당한 채 시체로 발견되는데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은 그날 있었던 참극을 기억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한 편 1년 만에 수사현장으로 복귀한 율리아 뒤랑 형사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사참여에서 배제된 상황에서 동료 형사들의 수사 결과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이 범인으로 검거되고 시간은 2년이 지나갑니다.

 

상사인 베르거의 직무대행으로 임명된 율리아가 사무실 근무에 염증을 느끼고 현장복귀를 갈망하던 차에 남자 대학생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됩니다. 그런데 현장에 출동한 프랑크와 자비네 형사는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구원을 받은 듯 한 평온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한 시체를 보며 과거 제니퍼 메이슨 살인사건과 유사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과거 사건과의 연관성을 눈치 챈 수사팀이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죽은 줄 알았던 제니퍼 메이슨이 나타나자 일순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용의자의 시체가 발견되자 더욱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져듭니다.

 

<신데렐라 카니발>은 율리아 뒤랑 시리즈의 12번째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탓에 주인공인 율리아가 과거 사이코 패스에게 납치당해 감금 강간까지 당하는 끔찍한 기억들로 인해 정신공황에 공포장애까지 아직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로 파악됩니다. 그녀의 진정한 고통은 그랬구나 하는 정도로만 짐작할 뿐 진심 공감되기에는 설명이 불충분한 점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현장수사에 처음 배제되는 점은 이야기 전개 상 당연할 것이고 직무대행은 그녀가 점차 수사조직에서 인정받아 크나큰 역할을 맡기 위한 권력의 발판 정도로도 인식될 수 있을 것 같아 주인공이면서도 지지부진했던 것에 활동에 대해서는 넓은 아량과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결국에는 직접 사건해결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은 육탄전을 보였으니 차기 시리즈에서는 제대로 된 그녀의 활약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수사팀의 일원이자 오랜 파트너인 프랭크 헬머와의 서열문제로 인한 트러블과 화해, 자비네와 슈렉 팀장의 비밀연애, 페터와 도리스 부부 형사의 연애사와 득녀 이야기까지, 한 가족 같은 구성원들이 들려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빡빡한 수사 일지에서 빛을 발하고 깨소금 같은 고소함이 살아 있기에 읽는 재미가 더욱 풍성해서 좋았습니다.

 

물론 범인이 초반에 밝혀지고 어렵지 않게 범인을 알아내는 수사 과정들, 그리고 또 다른 범인의 등장 등 사건의 정체와 해결과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다소 싱겁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듭니다. 반전이라고 할 만한 포인트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드레아스 프란츠가 생전에 끝장을 내었더라면 전개방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이것이 최선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평이하고 안이한 선택을 다나엘 홀베는 분명히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집필을 이어나간 핸디캡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해도 재미는 웬만큼 보장됩니다.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끌고가는 힘이라면 분명 장점입니다.

 

그리고 생각거리를 여럿 남깁니다. 우선 객기를 주체 못하고 도덕적 불감증에 노출되어 쾌락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청춘들이 있습니다. 최고로 빛나야 할 시간들을 자유와 맞바꿔버린 채 피 눈물 나는 대가를 치러버린 비참한 말로는 많은 것을 반성하고 되돌아보게 합니다. 죄의식이니 죄책감이니 하는 것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다신 오지 않을 청춘이여!!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변태적 성적 욕망에 눈이 멀어 섹스산업의 번창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 일조하고 있는 사디스트들로 가학과 피학의 빈자리는 항상 누군가로 채워져 있다는 씁쓸함은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사회가 낳은 시대의 산물이요, 경종이기도 합니다. 범죄는 이러한 수요가 있는 한 지금도 이를 노린 배금주의에 희생자들을 만들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의 스릴러적 긴장에 가독성까지 모두 이러한 요소들을 기반으로 독자들을 지루할 틈도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몰아넣는데 성공한 편입니다. 실망스럽다는 분들도 제법 계시지만 축제가 전 이만하면 괜찮더군요.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자니 이 소설은 이런 아픔들만 노출시키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마지막 결말을 보십시오.‘최고로 빛나는 시간에 대한 정의에서 누군가에게는 헛되어 소비 되어 버린 찌꺼기에 불과하지만 율리아 뒤랑과 프랭크 헬머는 12년에서 1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소중한 그 시절에 경의를 표합니다.

 

최악의 고비에 털썩 주저앉으며 이번이 마지막인가라는 좌절을 극복해가며 이 모든 걸 함께 버텨 준 파트너에게 이해를 얻은 점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고 범인은 잔에 물을 채우듯이 빈자리를 대신하겠지요.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한 두 사람의 파트너쉽의 결속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며 몽상 대신 범죄해결에 남은 미래를 걸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은 희망으로 훈훈했습니다. 다니엘 홀베가 이어나갈 새로운 시리즈가 기대되고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과거 유작도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게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이후 만난 독일 스릴러의 즐거움이었으며,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보다도 훨 만족스러웠던 작품입니다. 안드레아스 프란츠에게는 명복을, 다니엘 홀베에게는 격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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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머니 1 밀리언셀러 클럽 130
옌스 라피두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옌스 라피두스의 범죄소설 <이지 머니>는웨덴의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범죄의 재구성이자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 세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칠레 출신의 마약상 "호르헤"는 자신과 거래하던 조직의 수장 "라도반"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마약밀거래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지만 증오와 분노로 인해 교도소를 탈옥하고 나와서는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조직에 대한 복수를 꿈꿉니다. 스웨덴 토박이 대학생인 "JW"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대한 불만과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하여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그러면서 실종된 친누나의 행방을 좇고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갱 조직원인 "므라도"는 이혼한 부인과 사이에 둔 딸의 양육권 분쟁과 함께 예전에 친구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수장 "므라도"에 대한 반감으로 독립하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세 명의 범죄자가 스웨덴에서 마약으로 벌어들이는 "눈먼 돈"를 쟁탈하기 위한 약육강식의 현장을 생생하면서도 거칠고 잔인하며, 스피디한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어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개봉된 바 있습니다.

 

 

바야흐로 범죄도 계급화, 세계화, 기업화되는 경향이 가속화중인 것 같습니다.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도 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벗어나기 위한 극빈층의 신분상승의 꿈은 "JW"를 통해서도 가늠 가능하듯 범죄 조직에 대한 꾸준한 공급원으로 양성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스웨덴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들면서 범죄조직의 국적도 글로벌화되고 있습니다. 스웨덴, 유고슬라비아, 칠레, 아랍계까지 여러 국적의 범죄조직은 해가 지고 난 어두운 밤 거리의 이권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데 흡사 기업운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교묘히 합법화를 가장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추세인 듯 합니다. 마약, 매춘을 비롯하여 다양한 업종방식과 더불어 스웨덴 경찰에서 공세를 진행 중인 대 범죄조직 소탕작전 "노바 프로젝트"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조직간의 합종연횡 전략같은, 범죄의 끊임없는 자생력에 혀를 내두르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아요.

 

 

저자 옌스 라피두스는 기존의 범죄소설들이 경찰 또는 탐정 위주의 캐릭터였다면 범죄자 그 자체를 그려보고 싶었으며. 범죄에 대한 해결보다는 플롯을 통해 범죄의 재구성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 로 활동 중인 옌스 라피두스는 과거에 참여했던 아파트 무장강도 사건 재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범죄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서 "왜? 이들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결국 "그 길 밖에 없었다."는 해답을 이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교화 대신 범죄의 길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필연이라는 종착역까지의 여정이 어떻게 끝맺게 될 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범죄의 세계에 매혹되고 있습니다. 그들과 그것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면서도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을 대중들에게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어떠한 감정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하류인생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지요. 그런 세상은 또 없으니까요. 그것이 호기심이든, 동경이든, 혐오든 상관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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