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뎀션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에베트 그렌스" 경정 시리즈 제3탄!!!

 

"난 사형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엄격한 사형집행을 공약으로 내건 주지사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만약 내 아들 녀석이 진짜 범인이라면 녀석은 사형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니까요. 하지만...잘 모르시겠지만, 존은 살인범이 아닙니다."  - 본문 증에서 -

 

스웨덴의 "안데슈 루슬룬드(Anders Roslund)""버리에 헬스트럼(Borge Hellstrom)""에베트 그렌스" 시리즈로 모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명콤비들이다. 소아성애범죄를 다룬 데뷔작 <비스트(The Beast)>로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스릴러에 주어지는 글래스키 상을 수상했으며. 영화화를 앞둔 두 번째 작품 <쓰리 세컨즈(Tre sekunder)>까지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헤닝 만켈 이후 반도 최고의 스릴러 작가로 거듭나고 있다이번에 시리즈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리뎀션(Edward Finnigans upprattelse/Cell 8)>이 국내출간 되었는데 개인의 복수와 정의실현은 생각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주제의식이 극명하게 표현될 뿐만 아니라, 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를 모델로 교도행정의 실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지적하기도 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항해하는 오보 페리선에서 여성을 상대로 상습 성추행을 하던 남자가 밴드의 보컬에게 머리를 걷어차여 중상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한다.존 슈워츠라는 이 남자는 평소 그 성추행범을 눈여겨보다 마침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순간 폭발하였던 것인데 스웨덴에 거주하는 캐나다인의 신분인 존 슈워츠가 폭행죄로 구금 조사를 받던 중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되자 의혹을 느낀 "에베트 그렌스" 경정은 "존 슈워츠"의 신원조사에 착수한다. 

 

아뿔사, 그 남자는 처음부터 수상했었는데 신원 조사결과는 정말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존 슈워츠"는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에다 본명은 존 메이어 프레이였고 17살에 16살의 여자친구를 살인했다는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재소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사형집행을 2개월을 앞두고 6년 전 감옥에서 사망한 사람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 그가 지금 버젓이 살아 남아 스웨덴에서 다른 신분으로 결혼까지 해 아내와 아들까지 두었다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어찌 믿어야 할 것이며, 또 어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이 문제는 대외적으로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는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EU 간 체결된 범죄인 인도조약으로 인해 즉시 본국으로 송환시켜야만 하지만 분명 이 남자는 즉시 사형에 처할 운명이 될 것이라 스웨덴 정부는 거부와 송환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사형을 반대하는 인권단체의 시위와 청원까지 줄을 이으면서 쟁점사항으로 번져가는 상황에 이르자 스웨덴 정부는 자신들에게 쏟아질 여론의 질타에 미국이 아닌 제3국으로 보내어 어떤 책임에서도 회피하고자 한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존 메이어 프레이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대중은 그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조속한 사형집행을 촉구하는 여론으로 들끓는데...   

 

스웨덴 국영방송국 사회부 기자였던 "안데슈 루슬룬드"와 과거 범죄자였던 "버리에 헬스트럼" 콤비는 이 작품 <리뎀션>을 통해 몇 개주에서 사형제도가 아직 살아있는 미국과 사형제도가 폐지된 스웨덴이라는 국가적 비교를 통해 사적복수의 어디까지가 정당한 것인지 묻는다. 정의 실현인가, 아님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억울한 희생자를 감안하면 인권의 사각지대인가라는 무겁고도 민감한 이슈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사형옹호론자들과 사형폐지론자들의 논쟁은 쉽사리 좁혀질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사안인데 유족들에게는 보상이 될 것이며 범죄 예방효과라는 일석이조라는 해석에 일단 무게가 실린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당사자들에겐 죽은 자를 되살려내진 못해도 국가에게 보상을 요구함으로서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에 대의명분과 면죄부를 실어주는, 어떤 의미에선 공범이 되는 셈이다. 사랑하는 이의 피를 보았으니 반드시 살인자의 피를 다시 뒤 짚어 써서라도 합법적인 살인으로 보답 받고 싶은 심정은 구경꾼들은 헤아리기 어렵다. 나 또한 그런 차원에서 존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싶고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피의자가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정황증거에 의한 유죄평결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복수 대신 보상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되는 사형제도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들 중에 정말 무고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하늘만이 알 것이다. 이 책에서는 모든 것이 정리된 이후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해서는 안 될 사형제도의 허점을 증명하고자 하는 모종의 실험이 가진 의도를 점차 드러내면서 허를 찌르고 들어온다. 그래서 무죄입증을 위한 시도가 이처럼 허망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정의와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말은 살아남은 자에게만 해당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못했다면 그 보상은 또 어디에 청구해야한단 말인가? 진실을 호도하고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여론이라는 압박도 무책임과 또 다른 의미의 매카시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피해가진 못한다. 연대책임을 요하는데.

 

또한 "스벤""아니타" 부부 사이의 대화에서는 징벌을 받는 것은 정작 당사자가 아닌 남겨진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앗아간 행복에 신경 쓰인다는 말은 이 제도의 공명정대한 집행이 얼마나 절실한지가 주장된다. 시간에 쫓긴 졸속 집행 대신 한 치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는 엄숙함이 필요하다. 그렇게 이 책은 주제 면에서는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기는 하나 에베트 그렌스의 잦은 짜증과 괴팍함은 동어 반복적으로 다뤄지기에 인내심을 수시로 확인시켜 준다는 점은 확실히 치명적이다. 뭔가 삶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아 신선한 바람으로 환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고 마리아나 헬만손과의 데이트(?)는 그나마 숨통을 트여줘서 다행이다. 그래서 그런가 봐. 단점 대신 장점으로 승화시킬만한 실마리를 투입하기 위해서라도 로맨스는 필요한가 봐. 더욱이 늙은 남자 에베트 그렌스경정에겐 말이다. 하루하루 그녀 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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