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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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세추세츠 뉴턴 시티 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앤드루 바버는 신중하며 사려 깊은 아내 로리와 한창 사춘기에 해당되는 열네살 아들 제이콥과 함께 중산층 가정을 꾸리며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앤드류네가 살고 있는 뉴턴 시티는 범죄와는 거리가 멀고 자녀교육에 더없이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조용한 지방도시이다. 그런데 콜드스프링 공원에서 한 소년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뉴턴의 주민들에게는 불시의 타격이 되고 불안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된다. 지검의 넘버 2"앤드루"가 직접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데 살해된 소년은 "제이컵"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또래 벤저민 리프킨이었고 사건발생 며칠 동안 수사는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앤드루는 인근에 사는 소아성애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면서 좀 더 밀어붙이면 그걸로 사건은 해결될 걸로 믿었다. 그러나 사건의 행방에 변수가 생기면서 앤드루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데 살인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흉기의 행방과 정황 등이 모두 자신의 아들 "제이컵"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면서 "앤드루"의 검사경력과 가정의 행복 모두 심각한 붕괴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은가? 그는 지금까지 사법제도를 신뢰하고 옹호하는 위치에 있었던 고상한 이었다. 그랬던 그가 사법제도에 대한 절대 신뢰를 부정하고 시스템에 대한 오류와 허점을 입증해서 아들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정반대의 입장, 로 격하되어버린 것이다. 죄의 유무만이 중요했던 이분법적 세계에 살았다고 인정하지만 하필이면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면 자신을 밟고 올라서기를 꿈꾸었던 야심만만한 후배검사 닐 라주디스와 대적하게 되었으니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어버린 셈이다. 또한 가족 중 범죄용의자가 존재한다는 건 일상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맹독이 스며든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동안 무탈하게 흘러왔던 가정은 비로소 구성원의 가치관이 불협화음을 빚으며 충돌하는 시발점에 놓이게 된다. 아들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고 자부했던 부부는 그것이 과신이 아니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고 남편은 근거 없는 낙관론을 아내는 지나친 신중론을 펼치면서 아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현저한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

 

 

사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생각이 옳다고 지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녀양육이란 현실에 있어서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여러모로 불완전하고 미숙한 점도 있고 반항도 하면서 그렇게 커나간다는 과정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방임할 것인가 통제할 것인가 하는 방법 선택에 있어서는 낙관과 신중함 모두의 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리라 본다. 그렇다면 작금에 닥친 불행을 두고 그런 관점에서의 부부의 고민과 충돌은 이해하고 싶어도 지나칠 정도로 반복적이어서 좀 줄여줄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적정 수준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들이라 컷팅이 필요했는데... 장르소설이라는 특성을 감안했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가정의 분열과 붕괴는 익히 다루어온 단골소재가 아니던가? 직계에서 대물림 되다시피 한 앤드루 집안의 살인유전자같은 비합리적 근거로 평결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려는 검사 측 시도도 현실적이지 못해 좀 황당한 설정인 것도 같은데 실제에서는 반영 가능한 일인지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직접 사건을 지휘하던 "앤드루"는 그 일에서 손을 떼게 되고 검사자리에서도 밀려나다시피 하게 되면서 결국 "제이컵"은 용의자로 재판을 받게 되고 "앤드루"는 증인이 되어 자신의 아들 "제이컵"의 무죄를 무조건적으로 믿으며 아들을 변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임한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은 부부 모두 아들 "제이컵"에 대해 너무도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아니면 잘 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한다. 이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정해진다. 무죄 입증이 아닌 유죄 입증불가 방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을 위해서라면 부부는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고 그렇게 해서 승리의 깃발을 쟁취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용서와 화해, 신뢰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리라. 한 번 뒤집어쓴 오욕은 평생을 씻어도 악취가 가시지 않으리란 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피해자의 아픔과 상처에 주목하고 있을 때 무고한 사람들에게 덧씌워진 낙인이란 형벌에 무관심 할 때 숙명처럼 감내해야만 하는 그들의 현실이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보다.

 

 

다시 재판과정으로 돌아가 보자. 정황 자체가 제이컵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진행되다 보니 이대로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검사와 변호사 측 공방도 추가 한 쪽으로 기울었다. 배심원단의 평결을 뒤집을만한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떤 터닝포인트를 기대했고 실제로 나왔지만 그런 뜬금없는 전개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 크게 달궈 놓은 것도 없지만 법정소설로서 급격히 냉각되는 패착이다. 이제까지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결말을 향해 이 소설은 달려간다. 충격적인 반전이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맞이했다. 분명 이대로 끝나지 않으리라 예상하며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있었다. 자세한 해설 없이 오로지 정황만으로 사건의 진실을 유추케 하는데 예상했던 진실에는 맞아 떨어진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전이라고 해야 할지는 애매하지만 라스트 신은 놀랍다 못해 악몽이다. 실제로 책을 덮고 자면서 이상한 꿈들에 시달려야 했고 깨어나서도 어느 정도의 후유증이 남았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이라고 했다. 그런 선택 말고는 다른 선택은 과연 없었을까? 그런데 묵직한 통증이 뒤통수를 내려치는 것 같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회의가 동시에 발생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법정소설로는 밀도가 떨어지는 실패작이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취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정당성 부여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최선의 작품이 될 수도 있는 양자의 기로에 정확히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솔직히 나는 법정소설의 최고봉을 기대했었다. 생생한 재판과정에서 파생되는 치밀한 플롯, 불꽃 튀는 논쟁 같은 것들을. 사실 이런 요소들은 없다. 낭패였다. 모든 것이 결말(또는 반전)을 위한 무의미한 소모전이었을 뿐이다. 법정이야기에 좀 더 완성도를 높였다면 나 또한 이 소설을 올해 최고작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종착역에 올인하기는 힘들다. 매끄럽지 않은 경유지로 인해 제이컵을 위하여(Defending Jacob)”의 심각한 옥의 티는 용서할 수 없는 재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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