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드업 걸
파올로 바치갈루피 지음, 이원경 옮김 / 다른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이 여자는 와인드업일 뿐이야.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생물. 영리한 짐승. 그리고 강한 자극을 받으면 위험해지는 존재" (본문 중에서)

 

2010 휴고상, 2009 네블러상, 2009 타임지 선정 올해의 소설, 2009 미국도서관협회 최고의 SF!

 

이 화려한 수상내역들이 가리키는 단 하나의 책은 바로 <와인드업 걸> 이라는 SF 소설이다. SF소설이라... 참 오랜만에 읽어본다. 작년 상반기 중에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을 마지막으로 읽은 뒤로는 평소에는 손길이 잘 가지 않는 장르인데 우연한 기회에 제공받아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

 

<와인드업 걸>의 배경은 미래의 태국이다. 전 세계를 휩쓴 유전자 조작으로 인하여 전염병과 기아가 만연하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난 후, 지구상의 인류는 각기 고립된 채 메탄가스와 압축 스프링을 이용한 동력에 의존해 살아간다. 태국의 유전자 변형 작물을 이용해 다시 세계를 지배하려는 다국적 기업, 통칭 칼로리 회사라고 불리는 이 기업들과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해가는 수도 끄룽 텝(방콕)을 수호하려는 태국 정부가 한 데 뒤섞여 권력과 이권을 놓고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압제의 현실 속에서 칼로리맨 앤더슨과 와인드업 걸 에미코는 생존을 위한 위험한 밀애를 시작한다.

 

이처럼 배경이 태국이다 보니 태국식 언어, 지명, 인명 등과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각종 미래 용어들이 상당히 낯설다. 다행히 마지막 장에는 주요 용어들에 대한 사전적 해설이 곁들여 있어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뒷장을 확인해서 의문점을 해소시킬 수는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축을 구성하는 단어는 "환경성""무역성"이다. "환경성"은 쁘라차 장군이 수장으로 있는 정부기관으로 태국을 위협하는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되어 탄소배출권 거래감독, 기후 파괴 감시 등의 업무를, 아까랏 장군이 수장으로 있는 "무역성"은 국가무역을 담당하면서 "환경성"과 적대적인 관계를 취하고 있는 정부기관이다.

 

사실상 태국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양대 기관으로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실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지 소설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도 태국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방콕이 물난리로 침수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걸 보면 허황된 미래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을 잘 투영하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 두 정부기관을 등에 업고 다국적기업들이 태국의 먹거리 유전자를 얻기 위한 부당거래를 통해 돈벌이에만 열을 올리는 추악한 현실은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한 민초들의 배고픔과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또한 지구의 환경은 석탄 같은 자원전쟁과 국수주의와 융합해 나날이 파괴속에 신음하고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가장 SF적으로 읽게 만드는 키워드는 바로 "와인드업" 이라는 불리 우는 신인류들이다. 일본에서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대체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시킨 또 다른 생명체가 "와인드업" 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되, 인간에 대한 복종과 봉사를 유전자적 본능으로 주입시킨 존재들로 우월한 신체능력에 반해 더위에 취약한 폐쇄된 모공구조가 특징인 "와인드 업은 비서로, 때론 군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여주인공 에미코는 주인에게 버림받고 태국에서 불법체류중이다.

 

불법수입된 물건취급 받는 에미코는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여 능욕을 당하면서도 언젠가는 "와인드업" 들이 사는 마을로의 탈출과 이주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결국 우발적으로 태국의 고위층을 살해하게 되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태국 전역이 무역성과 환경성과의 내전에 빠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와 연계해서 유전자 해커인 기븐스 박사가 했던 "인간이 곧 자연이라네, 인간이 세상이고, 세상은 인간인 것이야 " 라는 말을 통해 과학적 호기심이라는 탈을 쓴 진화라는 게임이 가져다 준 오만함의 극치가 남긴 상처들은 얼마나 크고 깊은 지 가늠하기 어렵다. 전염병과 기아, 환경파괴, 신인류 "와인드업" 의 존엄성 파괴 등 크나큰 댓가를 치르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속에서 결코 읽기가 만만치 않았던 소설 "와인드업 걸" 은 그래서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현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후손들에게 유토피아를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물려줄 것인가? ! 당신과 우리 모두는 어떻게 행동하여야하는가? 그것의 해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환경파괴 ,과학적 폐단, 계급구조, 권력암투, 자원전쟁, 민족주의, 인권 등 다양한 키워드와 시각적 관심을 보여주는 파올로 바치갈루피 작 <와인드업 걸>은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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