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두 - 함정임 소설집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도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10년 전 즈음인 것 같은데 그녀가 뜬금없이 <곡두>라는 책을 사달랬다. 작가도 책 제목도 들어본 적 없었지만 책 선물은 가격 면에서 부담 없이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 같아 내심 기뻤다. 그런데 나중에 읽어 보니 어떻더냐고 지그시 물었더니 영 탐탁지 않은 반응이 돌아 왔었다. ‘, 뭐야, 기껏 사다주었더니. .’ 나도 영 불만스러웠지만 그만큼 별로였나 보다 했다. 그렇게 이 책은 책장 뒷칸에 꽂혀 눈에 띄지 않게 방치되었으며 무관심 속에 서서히 그 존재감을 잃어만 갔던 거다.

 

어차피 책장이란 공간은 살생부가 살아 숨 쉬는 곳이기에 넣고 빼고 하다 보니 그때서야 수줍게 얼굴을 드러냈던 이 책. 한참 지났고 정보도 전혀 없지만 지금 내가 읽는다면 어떨까? 표제작 곡두에서는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녀가 전처와 이혼하고 혼자 살던 그를 만나 재혼하게 될 상황에 다다른 이야기이다. 인륜지대사,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대신에 식장에 손을 잡고 들어갈 대타가 필요했다. 그 사람은 배다른 오빠 하린 뿐이었다, 여태 왕래없이 일면식 없던 오빠를 지금에서야 찾는단 말인가.

 

 

오빠 하린이 있다는 통영의 어느 식당을 찾아 간 그녀는 오빠를 만나지 못하고 그의 흔적만을 뒤쫓아 연명예술촌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지두화를 그린다는 오빠와 겨우 전화 연결이 되었지만 여동생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하린이 수화기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기겁한 것이나, ‘오빠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는 그녀의상반된 증언이 등장하는 장면이 꽤 인상적이다. 실재와 억압된 무의식이 빚어낸 환상이야말로 작가의 현실 인식이라고 하였다. 비록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단편소설이었지만.

 

 

사실상 몇 편은 묶여서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주인공들은 역마살 낀 것 마냥 정처 없이 여행을 다니며 방황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 와중에 익숙했던 것들과의 작별과 상실이 모티브가 되어서 책장을 덮고 나면 좀 우울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녀가 썩 내켜하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것 같고 지금이라도 읽었으니 도리는 다 한 것 같다. 덧붙이자면 작가의 후기보다 더 독한 평론만 쏙 뺐더라면 다 좋았을 게다. 나를 넘 힘들게 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