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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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영문인지 아직까지 오쓰 이치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대신에 다른 필명인 야마시로 아사코의 소설로 그 아쉬움을 달래게 되었었는데 엠브리오 기담엔 만족했고 이번에 두 번째로 그의 소설을 만난다. 총 여덟 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포문을 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이란 단편이 되겠다. 언제부터인가 집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구두를 신고 있는 어떤 남자가 집안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내도 그 사실을 안대. 어떤 원인에 의하여 귀신이 이 부부에게 씌었을까? 부부는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여기저기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라고 인상착의를 그림으로 퍼 날랐더니 드디어 이 남자를 안다는 사람이 나왔지.

 

 

이 남자가 어떻게 된 걸까, 보단 귀신과 접속하게 된 연유를 분석했더니 당사자의 입장에선 토 나올 만했다. 그럴 수도 있구나, 하지만 아무렴 어때로 달관하는 부부의 의연함이 보기 좋다.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는 제목처럼 머리 잘린 닭이 잘린 단면 속으로 물도 마시고 잘 돌아 다닌다. 실제로 미국에서 닭이 머리 잘리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닭의 운명도 기구하지만 주인인 소녀의 운명이 더 기구해서 안타까움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 하는 단편은 이불 속의 우주이다, 어느 소설가가 근 10년 간 글이 써지질 않아 책도 못 내서 밥벌이 못했고 궁핌함에 이혼까지 했는데 우연히 출처 불명의 중고이불을 샀단다. 그런데 밤에 덮고 자는데 이불 속에서 따뜻하고 복슬복슬한 어떤 것의 실체가 느껴지더란다. 놀라서 이불 걷었더니 아무 것도 없고 다시 덮고 누우면 그 느낌이 전해진다, 어떤 날은 알몸의 여인이 등 뒤에서 안는 경우도 있었다. 부드러운 그 머릿결과 살결은 느껴져서 황홀했지만 여전히 그 실체는 없다는 것.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기이한가?

 

 

그밖에도 자식을 죽음으로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아버지의 부성애와 엄마의 모성애를 다룬 단편들에선 가슴이 먹먹해졌다가 마지막 단편에선 평안함과 위로를 받게 된다. 이렇듯 이 단편들은 죽음과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상실과 비애로 슬프고 그립지만 싹이 솟듯 또 다른 재생의 기회를 얻어 삶은 계속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호러는 맵기 단계에서 초심자 수준으로 완화되어 있기에 오쓰 이치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그 아련함을 즐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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