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0 - 새로운 시작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백지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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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말이야

 ‘신의 카르테라는 것이 있어.”

 갑작스런 그의 말에 이치토는 

 얼굴을 들어 올렸다.

?”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왕너구리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진지하기만 했다.


신이 각각의 인간에게 적어놓은 카르테가 있어.

 우리 의사는 신이 적은 카르테 위에 덧쓰고 있는

 존재일 뿐이라는 거야.”

                                                 <본문 중에서>

 

 

모든 것은  제로에서 시작된다. 남들이 1권부터 읽을 때 난 프리퀄에 해당하는 0부터 읽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왜 제목이 <신의 카르테>인가 그 기원을 먼저 알아야 이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읽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지던트이기 전에 구리하라 이치토의 의대 시절은 어떠했을까 들여다보는 일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시나노 대학교 의학부 학생 기숙사에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에 빠져서 풀베개를 줄줄이 암송할 수 있는 괴짜 구리하라 이치토, 그런 이치토의 삐딱한 독설에 늘 쓴웃음 지으면서 여친 기사라기 치나쓰를 두고 삼각관계를 벌였던 신도 다쓰야, 현재는 다쓰야의 여친으로 다쓰야의 꿈을 응원하고 았는 치나쓰양, 테니스 동아리의 부장을 역임한 경력자로 운동신경은 남다르지만 시험은 간당간당 치르고 있는 구사키 마도카양, 검게 탄 피부의 거한인 스나야마 지로, 의학부 최고령자인 구스다 시게마사씨가 차례로 등장하는데.

 

 

예상 밖으로 이들의 캠퍼스 라이프는 오래 공개되지 않더라. 국가시험 공부에 열중인 이들은 각자 어떤 진로를 밟을 것인지에 대한 기로에 놓여있었는데 도쿄에 있는 최대 의료기관인 데이토 대학교 부속병원 레지던트에 지원하려는 신도 다쓰야와 달리 ‘24시간 365일 진료를 모토로 내세운 지역의 혼조병원구리하라 이치토가 지원하면서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신도 다쓰야도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 같은데 친구들은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이치토는 어찌된 영문인지 근무하자마자 이쁨을 받는데 당직을 서는 날마다 환자가 평소보다 배로 늘어나지 않나, 왕너구리 선생님으로 불리는 내과부장 이타카키 겐조와 부부장인 나이토 가모이치를 보필하면서 의료현장에서의 첫 경험을 쌓는다. 많이 떨릴 법도 한데 제법 잘 넘어가는 듯하다. 가령 암으로 판정된 환자에게 그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려주기 같은 것 말이다. 환자를 끌어당기는 구리하라라고 불리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

 

 

그 와중에 딸 결혼식을 앞두고 치료를 잠정 중단하는 구니에다씨의 부성애는 절절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 남편의 결정을 말없이 눈물로 지지하는 아내와 그 사정을 알고도 일부러 모른 척 속아주는 딸의 결단까지, 축복이 슬픔으로 교차하는 상황에서도 의연하고 담담하게 대처하는 환자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 앞에서 절로 숙연해진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는 본격적으로 이런 사연들이 마음을 얼마만큼 뒤흔들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리고 산악등반 중 자살을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지만 결국 조난사고를 당해 어쩌면 의도하지 않았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지 모를 어느 중년남성을 구조해낸 여성 산악 사진전문가인 하루나양의 활약이 돋보였던 후반부였다. 구조하기는 했는데 의외로 혼조 병원에서의 진료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아 좀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루나양의 등장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던 걸 알게 되었다. 구리하라 이치토가 머물고 있는 하숙집의 하숙생들인 학사전무 같은 별명의 사람들도 인상적이긴 했는데 하루나도 같은 하숙생이었을 줄야. 그녀는 아마도 이치토에게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뭐냐? 서두에 다쓰야치나쓰를 두고 삼각관계를 벌였다더니 혼조병원에 와서는 도자이 간호사가 타주는 인스턴트 커피가 맛있다고 칭찬해줘서 그 무뚝뚝하다던 도자이 간호사가 하트뿅뿅하게 만들어 너구리선생님으로부터 "다정한 구리짱"이라고 놀림 받지 않았던가? 막판에 등장한 루나라는 여자까지 합류하는 것이더냐? 궁금증을 참지 못해 후속편에서 미래를 살짝 엿보았더니 흐흠, 관계가 그렇게 정리되는 것이었군. 그렇다면 이 못 말리는 사랑꾼 이치토 때문에 후속편을 읽어야만 하는 걸까.

 

 

우야동동 이 시리즈의 시작은 이번 책부터 읽는 게 순리일 듯싶다. 막 잠에서 깨어 눈을 떴더니 아침 해가 뜨기 시작하던 찰나를 담고 있는 이번 0을 먼저 읽어야 하루가 자연스레 연결될 테니까. 모닝커피에 토스트를 먹는 기분으로 읽는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기분이 들어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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