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작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주년 리커버 특별판으로 만나봤어요.

유대인계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벨기에 영화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 소설로 권위있는 공쿠르 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소설가들은 어떻게 해서 소설을 잘 쓰게 되었을까?

소설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늘 궁금했고

파트릭 모디아노에게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을까 싶더라구요.

역시.....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자질을 보였던.....^^;;

주변에 글쓰기 관련 전문가 어른이 있었고 그 도움을 받으며

22세에 첫 소설을 쓰기도 했던 소설가였어요.^^

우선 떡잎부터 달라야 하는건가 봅니다. ㅎㅎㅎ 

그리고 2014년의 파트릭 모디아노는 69세의 나이로 노벨문학상도 받게 되는데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수상 당시 "기쁘긴 한데 내가 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됐는지 모르겠다"

소감을 밝힌 게 특이하더라구요.

작가 자신부터 지난 노벨문학상 수상작들과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웠을까요......

하나 분명한 건 가독성이 막 좋아서 스토리에 빠져들어

재미를 느끼며 읽게 되는 소설은 아니었다는 것.

물론 가독성이 있다고 해서 작품성이나 상품가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은 분명 권위나 이슈에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제게도 사실 그렇게 자꾸 들려오는 소설이었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읽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었거든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상과 다른 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보는 일이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늘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인데요.

거기에 소설가를 알아가는 재미도 제게는 적지 않은 일이라

파트릭 모디아노 또한 어떤 소설을 쓰는 작가인지 궁금했습니다.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를 드디어 만나보네요~~^^


 


 

소설이 갈수록 좋아지게 되고 그래서 알아갈수록

새로운 소설을 만나게 되면 꼭 소설의 제목과 첫 문장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소설의 제목은 사실 끝까지 다 읽어본 후에 감을 잡게 되는 것이지만

소설의 첫 문장......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소설의 첫 문장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로 시작합니다.

​대략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는 소설인지 책 구매 페이지를 보면 나오는 키워드들 중에서

"인간 존재" 가 가장 크게 와닿아요.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는 소설의 주제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설마다 문체나 접근하는 방식들은 조금씩 다르겠죠.

이 소설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끝날까? 라는 호기심을 이 첫 문장이 강렬하게 이끌었습니다.

물론 소설에서 처음의 호기심이 끝까지 유지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

​이 소설은 어땠을까요? ㅎㅎ

 

 

 

 

 

"어린 시절에 나는 이곳에서 할아버지나 혹은 내 또래의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했을 것이고

쥐똥나무와 소나무 냄새가 나는 이 마술의 미궁 속에서 아마도

내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느낌상 그렇습니다.....

주인공 "기 롤랑​" 은 자신의 이름까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상실증에 걸렸어요.

그의 이름은 그를 마음으로 잘 챙겨줬던 흥신소 동료 사설탐정 위트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새로 신분증을 만들어주면서 지어준 이름일 뿐이었어요.

기 롤랑이 기억하는 자신의 과거는 위트를 만나고

사설탐정으로 일해온 지난 10년이 전부입니다.

기는 위트와 흥신소에서 사설탐정이 되어 사교계의 정보들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일을 해왔지만

흥신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위트도 니스로 떠나게 되고

기는 그때부터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소설은 이렇게 주인공 기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가는 것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요.  

 

 

 

 

 

​위트는 니스로 떠나지만 기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찾아가는 여정에

나름의 도움을 주기는 해요.

그것이 정말 그런 만한 가치가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고는 하지만..... 

위트의 이 지나가듯 던진 말이 참 의미심장하게 와닿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다 한들 그것이 기의 행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더 불행한 과거를 알게 되서 현재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따져가며 현재를 사는 것도 아니고

따진다 한들 그렇게 미래가 설계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듯이

과거 역시 내가 알고 모르고에 따라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본능적으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있다면 당연히 찾게 되지 않을까.....!!!

나의 존재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알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인간의 보편성이 여러가지가 있을 때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진실이라고 믿지만 정작 기억이 진실을 다 말해준다고도 할 수 없는.....

믿을 수 없을 인간의 기억에 대해서 이 소설이 생각하게 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어요.

그 누가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을까요?

유난히 기억을 잘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저처럼 기억력이 저질(ㅋㅋ) 인 사람도 있겠지만

그 누가 자신의 과거를 100%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구성되고 편집되어지는 것이 아닌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흩어진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파트릭 모디아노 작가 자신은 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하지만

문학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독자의 내면에 파동이 일게 하는 이런 문장은

정말 아무나 쓸 수는 없는 것이죠!!!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처음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작가마다 독보적인 매력을 끄는 지점이 있는데

이 소설가는 문장 하나의 힘이 아니라 몇 개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그 지점마다의 인상깊은 전달력이더라구요!!!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는 서사가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기 롤랑이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추적하는 일.

줄거리는 아주 간단한데 그 과정 속에서 만나는

 인물 하나 하나를 매우 중요하게 볼 부분은 아닌 거 같아요.

그저 기가 사진 속에 인물 중 누가 나인지,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추척해 가는 과정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의 만남에서 단서를 찾아가지만

추리소설처럼 결국에 답을 손에 쥐어주진 않습니다.

모호한 결말에 어쩌면 확실하고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게 뭔가? 싶을수도 있는 소설이예요.

​기 롤랑이 만나는 사람들의 기억은 또 100% 믿을만 할까?

당연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또한 불확실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 그래도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단서들로

그래도 결말로 갈수록 사진 속의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찾아내기도 해요.

이마저도 없으면 이 소설을 어떤 힘으로 읽어가야 할지 참 난감할 것 같기도 하거든요.


 

 


​자신의 이름은 무엇인지, 나의 어린시절과 젊은시절은 어떠했는지 주변인들을 찾아가며

조심스럽게 아주 약한 끈을 살살 잡아당겨가는 여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나일거야..... 상상하고 추측해가며 자신의 과거를 그려보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런 예상과 바램은 조심스럽게 잡고 있는 끈이 끊어진 것처럼 보일 때도 적지 않아요.

그런데도 주인공의 반응은 놀랍도록 담담합니다.

자신이 예상한 인물이 아니었을 때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 것을 봐도.....



 

 

기 롤랑이 만나는 주변인물들의 파편적 기억을 수집하고 연결해서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구성해 가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줄거리를 파악하기에는 난해한 소설이었고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기억에 의존해서

연결하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가 싶기도 한데

박진감이 넘치거나 기승전결이 있어서 막 흥미로운 소설은 아닌데도

희한하게 끝까지 기 롤랑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에 같이 가고 싶기는 하더라구요. ㅎㅎㅎ

순간 순간의 지루함은 독자의 몫입니다.

극복하셔야 해요..... ㅋㅋ

저도 잘 극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완독은 했으니 반은 극복한걸로.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소설은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축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겠어요 이제는. ㅎㅎㅎ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서 읽어갈 것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주제를 드러나지 않게, 하지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기도 하죠.

첫 문장에서부터 느껴지는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하여,

소멸된 과거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또한 어떤 의미가 있을까도 생각해볼 문제이고

인간의 기억이란 믿을 만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얘기해 봤었구요.

거기에 한국 독자가 깊이 공감하기는 어렵겠지만 프랑스의 독자들은

자신의 나라가 겪었던 현대사를 이 소설이

건드려주고 있다는 것에 더 흥미를 느낄수는 있겠다 싶기도 했어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던 시절, 전쟁으로 인한 역사적 아픔을

주인공과 그의 주변인물들이 몰래 도미니카인으로 위장해서 프랑스를 탈출해

국경을 넘어가는 과정으로 묘사하기도 하거든요.

여러 가지 축으로 생각해볼만한 소설인건 분명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명징한 소설은 아닌데 제게는 여운도 남고 사유해볼만한 주제도 던져주었기에

좋은 소설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리고 소설의 매력을 말할 때 가독성은 극히 부분일 뿐이니까요. ㅎㅎ

가독성이 좋지 않은 소설도 자꾸 극복해보는 시도는 권장하고 싶습니다.

저도 물론 그런 과정속에 있구요 ㅋㅋㅋ
독서능력에도 근육이 있다고 하잖아요.

들어본 말은 많아서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인상깊었던 구절들로 마무리 할께요.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나를 알아볼 것인가? 매번 나는 같은 희망을 품고 매번 실망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잠시 동안 나의 생각은 함수호로부터 멀리, 세계의 다른 끝, 오랜 옛날에

그 사진을 찍었던 러시아의 남쪽 어느 휴양지로 나를 실어갔다.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으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소녀가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만큼이나

빨리 저녁 빛 속으로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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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 권오숙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라는 작가도 저의 관심 작가중 한 명이어서


우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을 영화로 먼저 보긴 했는데 자막 없이요 ㅋㅋㅋ


열린책들 버전의 소설을 소장하고 있어서 물론 책으로 읽어봐야죠.


그 전에 제가 생각지 못하게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를 먼저 만났습니다.


지금은 끝났지만 셰익스피어 강좌를 가을 학기때 10회에 걸쳐서 들었는데


권오숙 교수님이 이번에 <살로메> 책을 새롭게 내시면서


외대카페 이문일공칠에서 작은 강의를 하게 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무조건 이번에 가서 들어야겠다 싶어서 다녀왔죠.

 

 

 

목요일마다 실낙원 강좌 들으러 갔던 한국외대인데 이곳 강좌도 이젠 끝나서 갈 일이 없네요.


내년 봄학기에 또 맘에 드는 강좌가 있으면 가게 될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외대 갈 때마다 근처 스타벅스를 갈 때면 늘 지나쳤던


외대카페 이문일공칠을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가봅니다.


책도 많이 보이고 카페도 꽤 넓어 보여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외대카페 이문일공칠에서 이렇게 문화강연까지 하는 줄 몰랐어요.


따로 신청하지 않고 그냥 가서 앉으면 되서 넘 좋더라구요.


카페를 이용하니까 음료 하나쯤은 구매하는 게 매너인거 같아서


이문일공칠 카페라떼 맛 한번 보고 왔지요.


 

 

 


6시 강연 시작전에 도착해서


이문일공칠의 카페라떼 주문하고 구경도 좀 하구요. 


성서에서 유명한 여성으로 유디트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살로메 역시 못지않게 다양한 작품들의 소재로 쓰여지는 인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그림 참 인상깊게 봤는데


오스카 와일드가 성서를 통해 가져온 인물 "살로메" 역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더라구요.

 

 

 

 

 

화가나 작가들이 조금씩 자신의 해석을 넣어서

 

 

현재 우리가 문학작품으로 만나게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살로메 자체가 평범한 인물들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보바리 부인> 으로 유명한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도

 

 

 "헤로디아, 살로메의 이야기" 를 쓰기도 했습니다.

 

온갖 규범과 도덕에 얽매어 있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근엄하고 가면에 가려진 사회에 대해 조롱하고 공격했던 오스카 와일드.

 


겉으로는 점잖 빼지만 들여다 보면 퇴폐적이고 향락적이었던 영국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심미주의, 탐미주의 문학을 표방했던 작가의 정체성을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여준 작품이 극작가로서 쓴 희곡 <살로메> 인것 같습니다.


"살로메" 라는 이름은 원래 성서에는 안 나오고 '헤로디아의 딸' 이라고만 나왔었는데


유대 역사가의 책에 "살로메"라는 이름이 언급이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유대의 왕 헤로데는 살로메의 의붓 아버지,

 

 

친어머니의 현 남편이자 전 남편의 동생이 되기도 하구요.


살로메의 엄마가 원래는 헤로데의 형과 결혼했었는데


이후 동생인 헤로데 왕과 다시 근친상간적 결혼을 하게 되고


헤로데 왕은 아름다운 살로메를 계속 바라보면서 늘 욕망하면서


자기를 위해서 춤을 춰달라고 하는 인물.


당시 유대 율법에 따라 근친상간적 결혼을 한 것은 비난받을 일이었고


선지자라고 불리던 요한이 이것을 비난하자

 

 

 살로메의 엄마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을 몹시 싫어하게 됩니다.


이 점이 살로메로 하여금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닌거 같아요.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를 읽어 보면 모두가 자신을 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살로메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살로메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히 뭇 사람들과 달랐거든요.


오히려 살로메를 향해서 근친상간을 범한 여인의 딸이라며


저주를 받을것이라고 욕하며 다가오는 살로메를 철저히 거부합니다.


이 점이 살로메를 자극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원래 인간에게는 새롭고도 탐하지 못하는 것일수록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으니까요.


어제 메가박스에서 보고온 뮤지컬 웃는 남자

 

 

조시아나 여공작의 모습도 비슷하게 떠오릅니다.^^


뮤지컬 웃는 남자를 보신 분들은 어떤 느낌인지 대충 짐작하실수도 있을 거예요.

 

세례자 요한, 예언자, 이오카난이 모두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비극 <살로메> 는 수많은 대사를 성서에서 차용했기 때문에


 이사야서, 복음서, 아가서, 계시록 이 출처가 되기도 하죠.


헤로데 왕처럼 젊은 시리아인도 살로메를 쳐다보면서 계속 욕망하고


헤로디아와 헤로디아의 시종은 각각 헤로데 왕과 젊은 시리아인에게


살로메를 너무 많이 본다고, 그만 좀 쳐다 보라고, 무슨 일이 날거라고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극 전체가 길지도 않을 뿐더러 반복적인 대사가 많이 나와서


분량도 적고 각 캐릭터를 읽어내는 것도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닌데


오스카 와일드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집착과 탐닉, 미적 쾌락을 추구했던 유미주의의 철학들은


더 선명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구요.

 

 

 

 



 

오스카 와일드가 쓴 <살로메> 는 처음에는 불어로 쓰여졌다가


나중에 그의 애인 알프레드 더글라스 경이 영어로 번역해서 쓴 책에


오브리 비어즐리가 삽화를 그려 넣었어요.


그는 당시 보수적인 영국이 받아들이기에 파격적인 그림을 그렸던 삽화가였는데


불어판이 나온 것을 보고 그것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서 살로메를 잡지에 실었었고


오스카 와일드가 오브리 비어즐리의 살로메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작품을 잘 이해했다고 평가하면서 영역본에 그림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권오숙 교수님의 이 책에도 역시 오브리 비어즐리의 삽화가 들어가 있고


살로메의 치명적일 정도로 사악하고 잔인하고 에로틱한,

 

 

 때로는 괴기스러운 캐릭터를 살려주고 있어요.


비어즐리의 그림을 보면 살로메가 남성을 압도하는 그림들도 적지 않은데요.


이 부분은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남자들은 늘 여성에게 거세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성 심리를 지니고 있고


<살로메> 가 이런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권오숙 교수님의 분석에 수긍이 가요.

 

 

 

 

살로메나 유디트가 욕망하고 파괴하고픈 대상의 머리를 자르는 것은


바로 머리가 성기를 대신하는, 상징적인 전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거든요.


순결함의 전유물은 젊고 예쁜 여성이었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살로메> 에서


살로메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에게 순결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가는 몸매, 하얀 피부, 빨간 입술, 풍성한 검은 머리 를 소유한

 

 

세례자 요한으로 그리고 있거든요.


여러가지로 <살로메> 를 통해 전통적인 도상들을 거부하고

 

 

또한 전복시키는 오스카 와일드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입에 키스할 거라고 말하는 살로메를 견디지 못하는


젊은 시리아인은 자결하게 되고 그의 피를 밟으며

 

 

헤로데 왕 앞에서 베일을 벗으며 춤을 추는 살로메.


헤로데 왕은 살로메에게 나를 위해 춤을 춰달라며 왕국의 절반을 주겠다고까지 합니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말을 듣고 살로메는


어머니인 헤로디아가 추지 말라고 하는데도 춤을 추겠다고 해요.


춤 추고 나서 살로메의 소원은 바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갖다달라는 것이었고 


사람들 대부분 세례자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기 때문에


유대왕 헤로데 역시 요한을 어찌하지 못하고 가둬두고 있던 거였거든요.

 

 

그 소원만은 거둬달라고 간청을 해도 살로메는 흔들림없이 요구하고


결국 처형 명령을 내리며 세례자 요한이 참수되는 성서 속 사건이 이렇게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속에서 차용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참수된 머리는 은쟁반 위에 놓여져서 살로메에게 전해지고


잘린 머리를 보면서 살로메는 살았을 때 못했던 키스를 하며 희열을 느낍니다.


자신의 사랑을 거부한 세례자 요한에 대한 복수심과

 

 

그의 육체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요한의 목을 요구한 것이죠.


이런 괴기스러움이라니..... 시체에 대고 ..... ;;


이후 헤로데 왕은 더이상 살로메를 욕망하지 않고

 

그녀의 행동을 괴물처럼 바라보게 되면서 두려움에 살로메를 죽이게 되고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인간의 욕망이 마치 괴물과도 같고 그래서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헤로데왕의 세례자 요한 참수 사건과


오스카 와일드가 그린 살로메의 최후는 정말 강렬했습니다.

 

여러 번을 반복해서 욕망하는 대사들을 말하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억압적인 사회에 대해서 오스카 와일드는 퇴폐적인 에로티시즘을 보여줌으로써

 

작가가 당시 사회에 저항의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정말 인상깊게 남는 작품 <살로메> 그동안 참 궁금했는데 이렇게 드디어 완독하는 날도 오네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역시 매력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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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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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n Meat 깨끗한 고기? 어떻게 이름을 붙여야 하는건지 감이 안 잡히는 건

이 새로운 용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지 못하니까 그런걸테죠.

책표지에서 소개해 주는 말은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고기', '두 개의 미래', '유발 하라리' 라는 표현들이 눈길을 좀 끌긴 하네요.

그리고 곳곳에 있는 소, 돼지, 닭  그림들.

다 읽고 나니 이런 sign 들이 뭘 얘기하는지 이젠 알겠습니다.^^

책이란 게 이렇게 속을 들여다보고 나면 겉을 읽어낼 수 있어서 참 재밌고 매력있어요!!!

겉만 봐서는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진리에 잠시 생각이 미치기도 하구요.

 

 

 

 

​책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키워드들을 잘 파악하는 것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볼 때,

클린미트를 읽다 보면 목차에 보이는 단어들 중에서만 해도

 배양 / 고기 / 청정고기 / 세포 / 전 인류 / 축산업 / 과학 / 녹색혁명 쯤이

 중요하게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볼수록 클린미트가 뭘 말하는 건지 궁금하시죠? ㅎㅎㅎ

이거슨 아는 자의 여유.....



 

"클린미트" 는 그야말로 생명과학, 첨단과학의 발전에 의한 부산물임에 틀림 없습니다.

동물에게서 얻는 고기를 이제는 과학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고기가 우리의 식탁위에 올라오는 날이 머지 않았고,

그것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전문가들조차 확신할 수는 없어요.

배양 고기가 슈퍼에 나오기까지 5년을 예상하고 있고

이 책을 그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고 바라고는 있지만요.

그렇다면 클린미트에 대해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건 개인의 선택의 문제!!!

"두 개의 미래,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문장은

<클린 미트> 에 유발 하라리가 써준 추천 서문의 제목입니다.

저자 폴 샤피로는 유발 하라리의 추천 서문에 큰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세계 최초로 청정고기를 시작한 저자 폴 샤피로는

동물권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온 여정을 확장하여 동물복지와

나아가 전 인류가 더 나은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클린 미트>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출연한 이래로 고기를 탐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달리고 있고

이로서 지구상의 척추동물 상당수가 호모 사피엔스에게 지배 당하고 있죠.

동물들이 기계 취급을 당하며 모든 생명체의 복지가 호모 사피엔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그 방향은 현재 호모 사피엔스 만을 위한 복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비효율적인 공장식 사육을 통해 동물권이 보장되지 않는 이 사회에 저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밟고 인간이 군림하려는,

마치 노예제도를 방불케하는 형국으로 묘사하기도 하죠.

동물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고

인간은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들을 길러낼 경작지와 목초지를 늘려감으로써

환경파괴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삶이 나아질수록 채식보다는 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구촌 상황을 볼 때

이런 추세라면 동물복지와 환경보존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희망을 잃어갈지도 모를 일이죠.

<클린 미트> 에서 말하는 청정고기는..... 네 "클린 미트" 를 우리는 청정고기라고 통칭합니다.

여기서 잠시 청정고기 라는 이름의 탄생을 얘기하자면,

이름 공모를 통해 시험관 고기부터 시작해서

합성 고기, 수경 재배 고기, 처칠 고기, 배양 고기, 청정 고기가 언급되었었고
순수 고기, 안전한 고기 등등 거쳐서 결국은 전에 한번 나왔었던 청정 고기로 확실히 정해졌어요.

처칠 고기 라는 이름은 '50년 뒤의 세계' 라는 책으로 미래를 예측했던 처칠의 생각을 담아서

나왔었고 윈스턴 처칠 뿐만 아니라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나 스타트렉 시리즈에서도

폴 샤피로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예측했던 선례가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청정고기를 꾸준히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는 일은

동물복지도 향상시키고 우리가 사는 지구의 환경도 지키는 일이라는 주장에 저로서도 마음이 동해요.

사람만이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동물권 역시 인권도 다름없이 보장해주고 싶은 마음이고,

영원히 살 수 없는 지구이지만 후손들에게

더 나빠지지 않는 지구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클린 미트> 를 읽고 나면 라이프 스타일이 조금 바뀔수도 있어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계속 동물의 생명을 해치면서 나오는 고기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동물의 골격근에서 채취한 줄기세포 하나로부터

수없이 세포분열하여 만들어진 배양고기, 청정고기를 먹을 것인가.


청정고기가 자연스럽지 않은 먹거리로 보일수도 있어요.

실제고기는 혈액, 지방, 결합조직들이 있어서 풍미와 질감이 좋아

사람들은 고기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지만

청정고기는 순수한 단백질 덩어리이고 지방이 없어서 다소 퍽퍽할 수도 있거든요.

스테이크조차 칩으로 먹어야 할 수도 있어요.

스테이크처럼 두꺼운 조직은 아직 청정고기는 불가능하다고 하니까요.

식감과 질감은 비교적 비슷하지만 육즙은 할 수 있는 청정고기 이지만

고기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제외하고는

청정고기를 먹을 때 느껴지는 정신적인 포만감은 이보다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정고기를 먹게 되면 동물로부터 나오는 고기를 멀리함으로써 여러가지 해악들을 줄일 수 있죠.

 

 

 

 

 

청정고기를 선택했을 때 장점은 동물복지와 환경보호라는

아주 간단하고도 거대한 이슈를 들 수 있지만,
청정고기를 선택하지 않고 고기를 계속 찾고자 할 때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여러가지가 보여요.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문제점들을 인식하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청정고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는 것으로 차량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더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축산업은 온실가스를 배출함은 물론이고 항생제와 독성물질의 주요 사용처이며

대기, 육지, 해양오염의 주범으로 얘기됩니다.

결국 저자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부터 지구를 도울 방법으로

청정고기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현재 가축의 사육과 도축을 멈출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세포농업을 통해

뉴욕에 자리잡은 여러 스타트업 기업들이 배양 고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2013년에는 소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햄버거용 패티 만드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었고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생산비용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에는 빌 게이츠도 청정고기 분야에 투자를 시작했다고도 하죠.

이 외에도 많은 사회적 리더들이 청정 고기에 투자를 하고 있어요.

그런 결과로 점점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고

2016년에는 배양 고기로 미트볼을 최초로 만들기도 했어요.

감자칩이나 육포조각처럼 얇은 조직으로 만들어진 스테이크도 칩도 만들어졌다죠.

실제로 오랫동안 채식을 했던 저자는 최초로 청정고기를 시식해본 사람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사실 기존에 고기를 먹던 사람들도

이 청정고기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의문을 갖기도 하죠.

맛에 있어서는 동물에게서 온 고기 맛을 청정고기가 능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예요.

고기..... 저도 워낙 좋아하는 거라.....

고기를 대체하는 식물성 고기는 진작에 나와 있지만 저자는 식물성 고기가 시장을 평정해서

청정 동물 생산물이 불필요해 지기를 꿈꾸기도 합니다.

식물성 고기를 먹기만 해도 목초지와 경작지를 숲으로 돌려줄 수 있으니까요.

청정고기의 모든 공정은 배양기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투명해서

고기가 나오기까지 전염병이나 동물의 분변이 고기를 오염시킬 걱정도 안해도 되죠.

청정 고기를 먹게 되면 더이상 조류독감, 아프리카 돼지 열병, 구제역 등등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서

예방에만 급급한 문제들로부터 전전긍긍 하지 않아도 되고,

동물들의 안타까운 죽음도 최소화할수도 있을 테구요. 


 

생명과 감정을 가진 동물들을 배제하고 배양 공정을 통해 고기를 만들자는

폴 샤피로의 청정고기 이야기는 더 나은 지구를 위한 첨단과학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느끼는 동물들을 산업용으로 써야 할 이유가 없으며

세포농업은 청정에너지 운동이라는 생각으로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어요.

청정고기가 도덕적으로 선호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청정고기를 찾게 되는 일은 전 인류와 지구를 위해서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식량 혁명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신선한 충격과 흥미로움이 공존했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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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을 팝니다 - 왠지 모르게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의 비밀
신현암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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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들고 다녔던 흐름출판의

경제경영서 <설렘을 팝니다> 이제서야 펼쳐봤어요.

"설렘" 이라는 단어는 책표지에 보이는 심장박동의 움직임처럼

두근거림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30년 동안 마케팅 담당자로, 프로젝트 기획자로, 음반 제작자로, 경제연구소 책임자로

여러 감성 영역 중 저자 신현암은 마음이 들떠서 두근거리게 되는 것,

"어떻게 고객의 감성을 자극할까" 에 주목하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사례는 이론은 앞선다.

​여러 사례가 모여 이론을 만든다.

새로운 사례가 나타나면 발 빠르게 응용해 보고

만약 그것이 나에게 맞지 않으면 버리는 실리콘밸리의 "lean방식"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할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도쿄를 발견한 저자.

도쿄에서 만날 수 있는 21개 공간을 통해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이죠.

실제로 설렘에 관한 힌트를 얻기 위해 2018년 한 해 동안에는 102일간 일본에 머무르기도 했다고.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기능적 필요에 의한 구매가 10%라고 할 때,

심리적 욕망은 무려 90%에 달한다는 것도 파악하게 됩니다.

이 비율은 정말 이럴까? 싶은 생각도 잠시 들긴 하지만

개인의 욕망에 의한 구입에 상당부분 기울어진 구매를 하게 되는 것에

저 역시 일정부분 동감입니다.

너무 횟수가 잦으면 과소비, 충동구매로 가계 경제가 좀 위태로울 수는 있겠지만

조절한다는 전제하에 ㅎㅎㅎ

​그리고 또 사람마다 꽂히는 품목과 디자인,

나아가서는 브랜드의 가치와 기업의 철학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모든 품목에 다 심리적 욕망이 90% 인 것은 좀 문제가 있겠죠 ㅋㅋ

 

 

 

​카페처럼 꾸며둔 미술관은 마치 현실계와 동떨어진 '중간계' 를 연상케 한다는

글에 미술관 나들이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격하게 공감합니다.

현실에서 여유로움을 느끼기 어려울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면

그 어디에도 없는 평온함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설렘 포인트를 알고 이렇게 미술관이나 카페 공간을 만들었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도쿄의 특징적인 공간 21곳 중에서 제가 알만한 곳은 MUJI가 눈에 띕니다. ㅋㅋ

지난 오사카 여행 때도 무인양품을 들렀던 경험도 있고 국내에도 있긴 하죠.

국내에서 거의 가지는 않지만 오사카에서 짝꿍 셔츠를 구입하면서 조금 구경했던 기억으로

이 책에서 무지와 무인양품의 마케팅, 전략들이 이러했구나..... 흥미롭게 봤습니다.

이유있게 싸다는 전략으로 홍보와 마케팅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상품의 본질에 집중하는

무지다움, 무지답다는 것을 추구하는 철학.

40년을 이어온 무지는 미니멀리즘도 연상케 하는 브랜드이죠.

비움의 철학과 단순함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놀랍기도 하구요.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생텍쥐페리가 한 이 말이 무지에 딱 어울립니다.

 

 

​고객의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하는 것이 지금의 성공 공식.

백색 소음 속에서 독서가 잘 되는 저로서는 책 들고 스타벅스를 자주 가게 되요.

 간혹 윤리적인 이슈가 생기는 곳이기도 하지만

진동벨이 아닌, 고객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에서부터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스타벅스의 마케팅 전략은 최소한 저에게 만큼은 여러가지로 통했던 사례라고 생각해요.

저자가 말하길 지금은 제품과 서비스 대신 공간을 파는 시대.

<설렘을 팝니다> 에 소개한 도쿄의 특징적인 공간 21곳이

설렘을 주는 편안한 공간이라고 하니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발견하고자 하는 분들은

나~~중에 가보셔도 좋을듯 싶어요.

큐알코드를 읽으면 구글지도로 넘어가더라구요.

 

나의 감성을 자극하고 설렘 포인트를 건드린 공간에는

어떤 마케팅 전략이 숨겨져 있을까?

 

 <설렘을 팝니다> 경영사례집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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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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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산 남포동, 재개발로 몸살을 앓으며 점점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고양이와 할머니 사진들을 보면서 되새깁니다.

검은 봉지만 봐도 고양이인 줄 알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고양이 중증 환자라고 표현하는

전형준 작가는 이제 고양이가 없는 여행은 꿈꿀 수 없을 정도로

평생 고양이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 자기만의 소명을 안고 있습니다. 

 

고양이 덕에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사진 공모전에서 상도 타게 된 일들을


다 녀석들이 물어다 준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준 작가의


고양이 포토 에세이가 북폴리오에서 나왔어요.

사실 저는 고양이보다는 무조건 강아지를 좋아하는 쪽이예요.


<고양이와 할머니> 를 잃고 그것이 180도 바뀌었는가?


사실 그것도 아닙니다.


고양이는 뭔가 의뭉스럽고 감정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동물도 아닌거 같고


빨리 속을 보여주는 동물도 아닌 것 같구요.


무엇보다 저는 고양이 눈이 좀 무섭....^^:;


그런데 <고양이와 할머니> 를 읽고 나서 새로운 "발견" 은 있었어요.


외모가 역시 다가 아니라는 걸.


고양이의 진심.


할머니가 진심으로 사랑을 베푸니까 그런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할머니에게 꼭 붙어서 그 사랑을 오롯이 받아주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사람의 진심을 차갑게 뿌리치는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들도 그래서 고양이를 제 자식처럼 여기며 고양이들의 처지를 염려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갈 날이 줄어들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면서도 말입니다.


나보다 타자를 더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조건없는 사랑이고 이타심이거든요.



 

 

 

내내 틈나는 대로 읽으려고 들고 다녔던 <고양이와 할머니> 책도 덩달아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왔죠. ㅋㅋㅋ


할머니가 고양이들에게 그랬듯이,


저 역시 책들이 그렇습니다.


말이 통하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무엇!!


제게는 살아있는 친구같은 것이 바로 책이어서


할머니들에게는 고양이가 바로 그런 존재였겠죠.


자식도 되면서 말동무도 되면서 온기를 서로 나눠가질 수 있는 그런 존재.


​<고양이와 할머니> 커버에 있는 모델은 찐이예요.


이 책에는 고양이 주인공이 비중을 보자면 콩알이들과 찐.


독보적인 주인공은 찐 으로 해야겠네요. ㅎㅎㅎ


그리고 찐의 보호자 찐 할머니가 오랜 시간 봄 소풍을 가셔서 더욱 마음이 가는 고양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후에 좋은 식구를 만났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놓이긴 해요.^^


 

 

 

 

 

​평생 고양이 사진 찍으며 보답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고양이와 할머니> 포토 에세이의 저자 전형준 작가가 가장 처음 찍었던


길고양이 사진입니다.


사진은 찰나의 시간에 찍혀 지지만 전형준 작가가 찍은 고양이 사진들에는


애정이 담아 있다고.


고양이에 대한 천진난만한 애정으로,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사진을 봐주길 바라는 작가였어요.


그리고 그 마음들이, 고양이와 할머니를 곁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며 마음으로 수호했던 것이


고양이 포토 에세이 <고양이와 할머니> 에 모두 다 녹아 있습니다.

 

산문인데 시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은

일상글들과는 조금 다른 폰트로 예쁜 고양이 사진과 한 폭에 담았어요.

고양이 포토 에세이는 저도 처음인데 읽는 내내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고

 확실히 다른 책들보다 편하게 읽었어요.^^


 

 

<고양이와 할머니> 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콩알이 할머니.

사람도 춥고 배고프면 힘든데 너희들도 얼마나 춥고 배고프겠냐고

진심어린 공감을 보내주시는 콩알이 할머니.

물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할머니들이 그러하십니다.

공감능력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능력이라고 하는데

할머니들이 그런 최고의 능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셨죠.

동네 골목 구석구석 고양이들이 있는 곳마다 때가 되면 밥을 챙겨주고

인스턴트 커피 한잔에 소확행을 즐기는 콩알이 할머니.

​고양이 사료를 조금이라도 싼 곳에서 사려고 먼 길을 다녀왔다가 몸살이 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콩알이 할머니 막내 아들이 매달 세 포대씩 사료를 보내주는데도

너무 잘 먹어대는 많은 고양이들때문에 아들 몰래

용돈과 연금을 모아 고양이 사료를 몇 개 더 사신다고. 

할머니는 7천원짜리 멸치 먹는데 고양이들은 비싼 건 알아가지고 만2천원짜리 멸치만 먹는다고

투덜대면서도 꼭 챙겨주시는 콩알이 할머니.^^

이웃들도 콩알이 할머니의 고양이 사랑을 아시고 함께 키우고 계시죠.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듯~~

남포동의 사라지는 골목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그렇게 할머니들의 사랑을 받고 자랍니다.

할맨져스라고 ㅋㅋ


콩알이 할머니의 고양이들 중에서 전형준 작가가 찍은 무니의 사진을 보고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서고 콩알이 할머니는 부산에서 서울, 서울에서 호주로

무니를 입양 보내면서 사진에 담겨진 표정속에 마음이 다 묻어나요.

먼길 보내는 불안한 마음, 떨어져서 아쉽고 서운한 마음,

 

가서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가

표정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콩알이 할머니와 함께 동네에서 또 다른 고양이를 돌보는 찐 할머니.

폐암 말기에 치매 증상까지 있었던 찐 할머니는 이미 멀리 봄 소풍을 떠나셨어요.ㅠ


그래도 찐이 덕분에 그나마 그 시간까지 버티신 것이라고.


찐이가 없었으면 진즉에 아팠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와 찐이입니다.

아픈 자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이 이렇더라구요.


같은 날 눈 감았으면~~~!


찐 할머니의 바램이기도 했어요.


당신도 몸이 아픈데도 찐이가 혼자 남을 것이 걱정되는 할머니는 보는 사람마다


찐이 데려가 키울 생각 없냐고 물어보십니다.



 


부산 사투리 그대로 할머니의 음성지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말씀에서


코 끝이 찡했었어요.....지하철 안에서 앉아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 아픈것보다 찐이랑 떨어져 있어야 해서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더 마음에 걸리는 할머니 ㅜㅜ


콩알이 할머니, 찐 할머니 외에도 남포동의 사라져 가는 골목, 재개발에 들어간 이 골목에는


고양이들을 지켜주는 할맨져스들이 많으세요.


물론 할머니들 말고 아저씨들도 계시죠.^^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성별을 구분하진 않으니까요.


다들 처음으로 길고양이를 챙겨야겠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오신 것 보다는


그냥 집 없이 떠돌아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다가가기 시작하셨던거 같아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내 생활이 불편해질까봐 측은한 마음은 있어도 그냥 외면하게 되는데


할머니들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그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 자신에게도 부끄러움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 날이, 이런 부끄러움을 몇 번이고 느끼다 보면


다음에는 외면하지 않을 날도 올 것 같아요.


자신의 목소리를 끝내 외면하지 않을 거라면.

 

 

 

 

 


"고양이들도 그리움을 안다"


 

나와 다른 종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와 같은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생명체는 똑같이 뜨거운 피를 갖고 있고 심장이 뛰는, 구분짓기를 하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남포동 골목의 고양이를 지키는 할머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할머니들의 모습이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고양이를 돌봐주는 사람이겠지만


사실은 할머니 당신의 마음도 챙김을 받아서 고양이에게 되려 더 고마워하는 마음.


저 문장은 어쩌면 전형준 작가처럼 저 역시 인간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일수도 있어요.


실제 고양이의 속마음은 저도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말은 못해도 할머니와 고양이는 서로 진심이 통했다고 믿어요.

 

 


 

 

 

사진을 찍는 전형준 작가의 모순된 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 순간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찍는 사진에도 일방적인 연민과 동정이 있다고.....


이는 인간이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 아닐지.....


모두 다 그러니까 작가의 이런 마음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가 없어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게 나쁘다면 나쁠까.....


나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나쁜 것.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니까요.


고양이를 챙기고 사진을 찍는 행위들이 스스로를

 

덕적으로 합리화하는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작가의 말이

 

제게도 내내 울림이 되어 다가옵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도덕적 인간이길 바라지 않을까......


저는 그런 경향이 더 크다고 볼 때 작가의 저 말은 너무나 공감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전형준 작가가 나빴다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그런 모순된 마음을 모르는 척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날 찍은 사진을 모두 지웠다는 것도 공감.


사람은 무릇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전형준 작가에 대한 진심을 저는 이 문장들에서 봤어요.


그리고 흐뭇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인연이라고 한다면,


고양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묘연이라고.


전생에 어떤 사이였길래 현생에서 이런 묘연을 갖게 되었을까 신기하기도 한데


그 묘연을 정말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는 고양이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 겨울에 마음을 참 훈훈하게 했습니다.


온기와 인정, 입가에는 미소가 생기게 하는 고양이 포토 에세이 <고양이와 할머니>,


너무나 반가웠어요.^^


제게는 묘연과도 같이 책과의 인연이 너무나 소중한 하루하루입니다!!!


"책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는 그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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