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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산 남포동, 재개발로 몸살을 앓으며 점점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고양이와 할머니 사진들을 보면서 되새깁니다.
검은 봉지만 봐도 고양이인 줄 알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고양이 중증 환자라고 표현하는
전형준 작가는 이제 고양이가 없는 여행은 꿈꿀 수 없을 정도로
평생 고양이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 자기만의 소명을 안고 있습니다.
고양이 덕에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사진 공모전에서 상도 타게 된 일들을
다 녀석들이 물어다 준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준 작가의
고양이 포토 에세이가 북폴리오에서 나왔어요.
사실 저는 고양이보다는 무조건 강아지를 좋아하는 쪽이예요.
<고양이와 할머니> 를 잃고 그것이 180도 바뀌었는가?
사실 그것도 아닙니다.
고양이는 뭔가 의뭉스럽고 감정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동물도 아닌거 같고
빨리 속을 보여주는 동물도 아닌 것 같구요.
무엇보다 저는 고양이 눈이 좀 무섭....^^:;
그런데 <고양이와 할머니> 를 읽고 나서 새로운 "발견" 은 있었어요.
외모가 역시 다가 아니라는 걸.
고양이의 진심.
할머니가 진심으로 사랑을 베푸니까 그런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할머니에게 꼭 붙어서 그 사랑을 오롯이 받아주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사람의 진심을 차갑게 뿌리치는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들도 그래서 고양이를 제 자식처럼 여기며 고양이들의 처지를 염려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갈 날이 줄어들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면서도 말입니다.
나보다 타자를 더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조건없는 사랑이고 이타심이거든요.

내내 틈나는 대로 읽으려고 들고 다녔던 <고양이와 할머니> 책도 덩달아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왔죠. ㅋㅋㅋ
할머니가 고양이들에게 그랬듯이,
저 역시 책들이 그렇습니다.
말이 통하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무엇!!
제게는 살아있는 친구같은 것이 바로 책이어서
할머니들에게는 고양이가 바로 그런 존재였겠죠.
자식도 되면서 말동무도 되면서 온기를 서로 나눠가질 수 있는 그런 존재.
<고양이와 할머니> 커버에 있는 모델은 찐이예요.
이 책에는 고양이 주인공이 비중을 보자면 콩알이들과 찐.
독보적인 주인공은 찐 으로 해야겠네요. ㅎㅎㅎ
그리고 찐의 보호자 찐 할머니가 오랜 시간 봄 소풍을 가셔서 더욱 마음이 가는 고양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후에 좋은 식구를 만났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놓이긴 해요.^^

평생 고양이 사진 찍으며 보답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고양이와 할머니> 포토 에세이의 저자 전형준 작가가 가장 처음 찍었던
길고양이 사진입니다.
사진은 찰나의 시간에 찍혀 지지만 전형준 작가가 찍은 고양이 사진들에는
애정이 담아 있다고.
고양이에 대한 천진난만한 애정으로,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사진을 봐주길 바라는 작가였어요.
그리고 그 마음들이, 고양이와 할머니를 곁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며 마음으로 수호했던 것이
고양이 포토 에세이 <고양이와 할머니> 에 모두 다 녹아 있습니다.
산문인데 시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은
일상글들과는 조금 다른 폰트로 예쁜 고양이 사진과 한 폭에 담았어요.
고양이 포토 에세이는 저도 처음인데 읽는 내내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고
확실히 다른 책들보다 편하게 읽었어요.^^

<고양이와 할머니> 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콩알이 할머니.
사람도 춥고 배고프면 힘든데 너희들도 얼마나 춥고 배고프겠냐고
진심어린 공감을 보내주시는 콩알이 할머니.
물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할머니들이 그러하십니다.
공감능력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능력이라고 하는데
할머니들이 그런 최고의 능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셨죠.
동네 골목 구석구석 고양이들이 있는 곳마다 때가 되면 밥을 챙겨주고
인스턴트 커피 한잔에 소확행을 즐기는 콩알이 할머니.
고양이 사료를 조금이라도 싼 곳에서 사려고 먼 길을 다녀왔다가 몸살이 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콩알이 할머니 막내 아들이 매달 세 포대씩 사료를 보내주는데도
너무 잘 먹어대는 많은 고양이들때문에 아들 몰래
용돈과 연금을 모아 고양이 사료를 몇 개 더 사신다고.
할머니는 7천원짜리 멸치 먹는데 고양이들은 비싼 건 알아가지고 만2천원짜리 멸치만 먹는다고
투덜대면서도 꼭 챙겨주시는 콩알이 할머니.^^
이웃들도 콩알이 할머니의 고양이 사랑을 아시고 함께 키우고 계시죠.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듯~~
남포동의 사라지는 골목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그렇게 할머니들의 사랑을 받고 자랍니다.
할맨져스라고 ㅋㅋ
콩알이 할머니의 고양이들 중에서 전형준 작가가 찍은 무니의 사진을 보고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서고 콩알이 할머니는 부산에서 서울, 서울에서 호주로
무니를 입양 보내면서 사진에 담겨진 표정속에 마음이 다 묻어나요.
먼길 보내는 불안한 마음, 떨어져서 아쉽고 서운한 마음,
가서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가
표정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콩알이 할머니와 함께 동네에서 또 다른 고양이를 돌보는 찐 할머니.
폐암 말기에 치매 증상까지 있었던 찐 할머니는 이미 멀리 봄 소풍을 떠나셨어요.ㅠ
그래도 찐이 덕분에 그나마 그 시간까지 버티신 것이라고.
찐이가 없었으면 진즉에 아팠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와 찐이입니다.
아픈 자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이 이렇더라구요.
같은 날 눈 감았으면~~~!
찐 할머니의 바램이기도 했어요.
당신도 몸이 아픈데도 찐이가 혼자 남을 것이 걱정되는 할머니는 보는 사람마다
찐이 데려가 키울 생각 없냐고 물어보십니다.

부산 사투리 그대로 할머니의 음성지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말씀에서
코 끝이 찡했었어요.....지하철 안에서 앉아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 아픈것보다 찐이랑 떨어져 있어야 해서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더 마음에 걸리는 할머니 ㅜㅜ
콩알이 할머니, 찐 할머니 외에도 남포동의 사라져 가는 골목, 재개발에 들어간 이 골목에는
고양이들을 지켜주는 할맨져스들이 많으세요.
물론 할머니들 말고 아저씨들도 계시죠.^^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성별을 구분하진 않으니까요.
다들 처음으로 길고양이를 챙겨야겠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오신 것 보다는
그냥 집 없이 떠돌아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다가가기 시작하셨던거 같아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내 생활이 불편해질까봐 측은한 마음은 있어도 그냥 외면하게 되는데
할머니들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그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 자신에게도 부끄러움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 날이, 이런 부끄러움을 몇 번이고 느끼다 보면
다음에는 외면하지 않을 날도 올 것 같아요.
자신의 목소리를 끝내 외면하지 않을 거라면.

"고양이들도 그리움을 안다"
나와 다른 종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와 같은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생명체는 똑같이 뜨거운 피를 갖고 있고 심장이 뛰는, 구분짓기를 하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남포동 골목의 고양이를 지키는 할머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할머니들의 모습이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고양이를 돌봐주는 사람이겠지만
사실은 할머니 당신의 마음도 챙김을 받아서 고양이에게 되려 더 고마워하는 마음.
저 문장은 어쩌면 전형준 작가처럼 저 역시 인간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일수도 있어요.
실제 고양이의 속마음은 저도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말은 못해도 할머니와 고양이는 서로 진심이 통했다고 믿어요.

사진을 찍는 전형준 작가의 모순된 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 순간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찍는 사진에도 일방적인 연민과 동정이 있다고.....
이는 인간이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 아닐지.....
모두 다 그러니까 작가의 이런 마음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가 없어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게 나쁘다면 나쁠까.....
나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나쁜 것.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니까요.
고양이를 챙기고 사진을 찍는 행위들이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합리화하는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작가의 말이
제게도 내내 울림이 되어 다가옵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도덕적 인간이길 바라지 않을까......
저는 그런 경향이 더 크다고 볼 때 작가의 저 말은 너무나 공감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전형준 작가가 나빴다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그런 모순된 마음을 모르는 척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날 찍은 사진을 모두 지웠다는 것도 공감.
사람은 무릇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전형준 작가에 대한 진심을 저는 이 문장들에서 봤어요.
그리고 흐뭇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인연이라고 한다면,
고양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묘연이라고.
전생에 어떤 사이였길래 현생에서 이런 묘연을 갖게 되었을까 신기하기도 한데
그 묘연을 정말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는 고양이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 겨울에 마음을 참 훈훈하게 했습니다.
온기와 인정, 입가에는 미소가 생기게 하는 고양이 포토 에세이 <고양이와 할머니>,
너무나 반가웠어요.^^
제게는 묘연과도 같이 책과의 인연이 너무나 소중한 하루하루입니다!!!
"책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는 그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나....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