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그리고 그의 이름을 지금까지 불리게 하는 그의 대표 작품인 소설 <이방인> 을


그동안 소장하고 있던 민음사 버전이 아닌 새움 출판사 이정서 번역으로 처음 만납니다!!!


이건 저로서는 예상치도 못한 전개였어요.


사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참 좋아하고 아주 가끔 민음사의 번역이 문제가 있는 소설의 경우에만


다른 출판사의 번역을 찾곤 했었는데 그렇게 유명한 소설 <이방인>의 민음사 버전의 번역이


이슈의 중심에 있는 소설이라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이 제게는 꽤나 충격이었어요.


번역 하나하나 어떻게 다 꼼꼼히 따져가면서 책을 골라 보겠냐는 생각부터


피로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 역시 나름 번역을 챙겨가면서 책을 골랐었는데


<이방인> 은 그냥 무조건 민음사 버전이지라는 인식으로 의심도 없이 골라서 구입했었고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 으로 먼저 만나지 않았더라면


번역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이 책을 만나기 전처럼


가볍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건 새움 <이방인> 을 번역한 이정서 번역가의 "직역이 아니면 안 된다"는 주장에


저도 기분좋게 설득당했고 두 번역의 차이점이 무엇일지에 대한 호기심과 약간의 의심으로


소장하고 있던 민음사 버전과 새움 버전의 <이방인> 첫 페이지를 비교하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1장이 끝날 때까지 두 버전의 번역을 비교해 가면서 읽어봤죠.


불어로 쓰인 <이방인> 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194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가장 정확한 번역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책으로는 미국의 번역서가 있다고 하는데


이 마저도 직역론자 이정서가 얘기하는 원문 그대로의 순서를 따르는 번역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시중에 나와있는 <이방인> 번역서 중에 가장 인지도 있는 민음사 버전을 포함하여


시공사, 열린책들의 번역들을 동시에 보면서


같은 문장인데도 미묘하게, 때로는 의미의 차이를 크게 보이는 번역들을 비교하는 부분은 흥미로웠습니다.


한편 놀라웠던 지점은 같은 문장을 이렇게 다르게 번역하게 되는 이유가


번역자들의 외국어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번역자들의 직업적 경험이나 재량(?) 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


그래서 그동안 우리가 읽은 <이방인> 은 알베르 카뮈의 것이 아니었다는,


다소 도발적인 번역에 대한 문제점을 6년전에 제기했던 이정서 번역가가


새움 출판사에서 6년만에 새롭게 개정판으로 내놓은 <이방인> 이라는 것.


번역자의 재량으로 의역을 했던 기존의 <이방인> 을 읽은 분들이라면


오랜만에 다시 알베르 카뮈의 걸작 <이방인> 을 원문 그대로 쉼표를 살리고 어순도 변함없이


원문을 직역 그대로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민음사 버전과 새움의 번역을 비교해서 본 바로는 개인적으로 저는


새움의 번역이 매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번역된 것이라 그럴까요....민음사 버전의 번역은 쓰인 단어 자체가 어렵고


현 시대의 언어와 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어느 것 하나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개를 비교해보니 그렇더라구요.


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참 애정하는 독자입니다.^^


하지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도 번역이 좋지 않은 작품이

 

 

분명히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계기는 되었어요!!


오랜 시간동안 읽혀져 온 인지도 있는 번역에 대해

 

 

의심없이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워낙 세계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원작자의 메시지 그대로 읽고 싶은 순수한 독자의 마음으로 번역에 대한 중요성을 새기면서


서론이 무지 길었습니다. ㅋㅋㅋ


그만큼 새움 버전의 <이방인> 은 번역에 대한 의미도

 

 

굉장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절반으로 구분할 때 왼편이 <이방인> 소설 내용 분량이고


오른편이 역자노트와 이방인 깊이 읽기, 역자후기까지 담긴 부록이거든요.


2014년 이정서 번역가의 책이 6년만에 양장본으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국내 번역에 대한 인식으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기존 <이방인> 의 오역을 지적했던 바,


번역이 얼마나 달랐고 번역으로 소설을 이해하는데 난관이 있었다면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


알베르 카뮈와 소설 <이방인> 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한번 더 ㅎㅎㅎ


이 소설 저도 이번에 처음 읽었지만 "이해가 안 되고 어려워서 또 읽어야겠다"가 아니라


묘하게 끌리는 알베르 카뮈의 문체 때문에 "또 읽어보고싶다" 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었어요.


전세계 101개 국가에서 번역된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정말이지 괜히 붙은 건 아닌듯!!!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각 개인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소설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독서모임의 필요성을 더더욱 느꼈던 소설입니다.


소설 <이방인> 의 유명한 첫 문장,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의역으로 인한 소설 <이방인> 의 오역을 안타까워했던 번역자 때문인지


저 역시도 번역의 차이에 따라 부분이 모여 

 

 

소설의 전체를 파악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 첫 문장에서부터 하게 됩니다.


주체, 주체의 행위, 시기. 어느 것에 힘주어 말했느냐라고 한다면

 

 

 알베르 카뮈는 "오늘" 이었더라구요.


하지만 다른 번역들은 다 조금씩 어감이 달랐고 힘주는 부분도 달랐거든요.


물론 부분을 가지고 전체 맥락을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가늠은 해볼 수 있겠다라고 한다면,


 소설 <이방인> 에 대해서 여러 방면으로 얘기하게 될 때,


인간의 죽음이 불가피한 것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될진데


카뮈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을 어찌 보면 순리로 받아들이며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바로 오늘은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오늘의 일이


앞으로 뫼르소의 인생에 어떤 부조리한 시간들을 경험하게 하는지 멀찌감치 내다볼 때


중요한 시점이며 사건이 되기에 이 첫 문장이 오랫동안 유명하게 얘기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동시에 어머니의 장례식을 대하는 뫼르소의 행동이


이 사회에서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의 부조리함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모습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없는 아들은


우연히 태양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결국은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는 이 연결고리를 과연 소설적인 허구라고만 볼 수 있을지.....


 뫼르소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는 평범한 모자지간의 정이 표현되고 있지 않기에


장례식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하는 아들 뫼르소의 모습은 그리 어색하지만도 않은 듯 한데요.


문제는 이 세상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아들이라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의례 슬퍼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그 당연할지도 모르는 생각으로부터 뫼르소는 분명히 벗어나 있기에 


'이방인' 이라고 말하자면 틀린 것 같진 않습니다.


대부분은 도덕적 지탄을 받지 않으려 타자를 의식해서 세상의 '유희' 에 편승하지만,


뫼르소는 그런 유희, 게임에 반응하지 않거든요.


이정서 번역자는 유희라는 기존의 번역을 '게임'이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하는데요.


그 게임에 부응하지 않았기에 결국은 뫼르소가 사형 선고를 받는 과정이 


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대답도 간단히,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 뫼르소는


말이 많아지다 보면 거짓말을 하게 확률도 높아지는

 

 

인간의 본성마저 꿰뚫고 뫼르소를 설정했나 싶기도 해요.


뫼르소는 말을 많이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말을 하는 인물인 것입니다.


카뮈는 말이 아니라 듣거나 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응시하는 것, 바라 보는 것에 힘이 실리고 있구나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도 뫼르소에 대한 신뢰를 가지며

 

 

법정에서 그를 변호하는 말들을 하기도 하니까요.


물론 대부분의 인간 관계가 그러하듯 각자의 이유와 이해관계로 다 그러하진 않습니다만.....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들은 뫼르소의 태도를 보면서 그를 재단하게 됩니다.


사회 안에서의 유희, 게임 속에서 놀아나지 않으려는, 자신의 본 모습을 유지하는 뫼르소가 이방인인건지


아니면 타자를 의식해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가면 쓴 모습을 보이는 세상 사람들이 이방인인건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제가 오히려 착각하게 되고 헷갈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어요.


무엇이 본질이고 진심인 걸까요...... 뫼르소가 이방인으로 비춰지는 이 현실 사회의 본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아들이


친구와 함께 해변가에 놀러갔다가 친구 대신에 어찌하다 권총을 건네 받게 되고,


친구를 괴롭혔던 아랍인을 우연히 대면하게 되면서 뫼르소 입장에서는


뫼르소를 위협하고 칼로 눈을 찌른 아랍인을 향해 정당 방위로 권총을 꺼내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죠.


아랍인과 뫼르소는 서로를 응시하며 긴장감이 드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그 유명한 일명 "태양 살인" 이 일어나는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저 역시 읽으면서 한 줄 한 줄


뫼르소에 이입되어 떨리고 긴박한 순간이 전해지는 듯 했어요.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햇볕으로 이글거리는 해변 전체가 뒤에서 나를 압박했다.


나는 샘을 향해 몇 걸음 내디뎠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아직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


나는 기다렸다. 타는 듯한 태양이 내 뺨에 엄습했고 나는 눈썹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


그 뜨거움 때문에 나는 서 있을 수가 없었고,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알았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한 걸음을 더 옮겨 봤자 햇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한 걸음을, 다만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이번엔,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아랍인이 칼을 뽑아서 햇볕 안에 있는 내게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며 번쩍이는 길쭉한 칼날처럼 내 이마에 닿았다.


그 순간,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내 눈은 눈물과 소금의 장막 뒤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


그 불타는 칼은 내 속눈썹을 물어뜯고 내 눈을 고통스럽게 파고들었다.


모든 것이 흔들린 것은 그때였다.


.......


내 존재 전체가 긴장했고 나는 손으로 권총을 꽉 움켜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카롭고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보였던 매정한 자식의 모습,


어머니 장례식이 있던 다음 날 수영하러 갔던 해변에서 옛날에 알던 여인 마리를 만나고


그녀와 잠자리를 했던 일들이 세상 사람들이 보이게는 부도덕한 편견으로 덧입혀지고


 이 살인이 뫼르소를 정당 방위한 것이 아니라 잔혹한 살인자로 몰아가는 법정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와 기자들, 뫼르소의 재판을 지켜보는 법정의 객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를 이방인으로 몰아가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 읽는 저도 점점 힘이 빠지더라구요.


살인이 일어나고 1부가 끝, 2부 부터는 체포 되고 심문도 받으며 법정에서 재판하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판사는 자신의 종교적 가치를 뫼르소에게 강요하면서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뫼르소에게 주기도 하는데요.


이는 법정 내에 있는 뫼르소를 위해 증언하러 온 친구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확장됩니다.


친구들이 뫼르소를 위해 강하게 변호를 하는데도 오히려 법정 관계자들이 가로막거나


더 말하려는 이들을 끌어서 증인석을 벗어나게 하는 등......


법정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심리적 동기나


그의 인간성, 그의 행동을 미루어 그의 살인 행위에 대해 잔혹하게 몰아가요.


법원으로 뫼르소를 데리고 가는 호송차 내에 있는 경관들과의 대화에서도


짧지만 뫼르소라는 인물의 본 모습을 느낄 수 있던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긴장되냐는 경관의 질문에 뫼르소는 아니라고,


어떤 점에서는 소송을 보게 되어 흥미롭고, 살면서 이런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고 대답합니다.


저 상황에서 이런 대답을 한다는 것이 평범하진 않은 상황이긴 하죠....^^;;


뫼르소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거예요.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로 표현하고 딱 할 말만...


자신의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이 세상의 유희, 게임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


뫼르소의 이 같은 대답은 한 개인에게 어쩌면 위협을 가하고 있는 법정을 향해 끄떡없는 모습이


반대로 법정의 재판을 주도하는 행위자들에게는 권위에 위협을 가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대목이었어요.


"뫼르소" 라는 한 개인이 재판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는


굉장히 큰 사람처럼 다가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밖에도 내가 줄곧 숙고했던 두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새벽과 나 자신의 항소였다.


나는 하지만 따져보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


나는 여전히 내 생각의 방향을 돌리려고 애썼다. 나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이 소리가 그렇게 긴 시간 나와 함께 동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실제로 결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럼에도 이 심장박동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어떤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 보려 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일이었다.


새벽 또는 내 항소는 거기 있었다.


나는 마침내 가장 이성적인 것은 나를 강제하지 않는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어머니의 장례식, 살인, 재판과정 중에도 뫼르소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평정을 잃지 않았지만


역시 뫼르소도 인간인지라 죽음에 직면해 있음을 느끼는 시간에는


여러 생각들로 내면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그래, 난 그러면 죽는 거지.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그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삶이 괴로워하며 살아갈 가치가 잇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본질적으로, 서른 살이나 예순 살이나 죽는다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었으므로.


......


지금이든 혹은 20년 후든, 죽을 것은 언제나 나였다.


......


우리가 죽는 이상, 어떻게건 언제이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건 명백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항소의 거부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대화나 뫼르소가 묘사하는 재판과정 속 인물들의 모습들도 지루함 없이 읽혀지지만

무엇보다도 결말로 다다를수록 죽음에 직면한 진실한 인간 뫼르소의 내면의 목소리는

이 소설에 더 몰입하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내 미래의 깊은 곳으로부터, 내가 이끌어 온 이 부조리한 삶 내내,

모호한 바람이 아직 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 내게 불어왔고,

그 바람은 자신의 행로 위에서, 내가 살아 있을 때보다 현실적이랄 게 없는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이 내게 강요한 모든 것들을 평탄하게 만들었다.

......

우리가 선택한 삶, 우리가 고른 운명, 단지 하나의 운명은 내 스스로 고르는 것이기에,

......

다른 사람들 역시, 어느 날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고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한다 한들 뭐가 문제란 말일까?

​......

그가 떠나고, 나는 냉정을 되찾았다."

부조리한 이 세상에 진실이라는 무기로 저항했던 뫼르소의 내면을 따라


소설의 막바지로 가는 과정에서 소설이 주는 재미와 깊은 인상을


<이방인> 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찐~하게 느낀 것 같습니다.


<이방인> 의 미국판 서문을 깊이 읽기에서 언급하며 설명해 주는 내용들을 통해서도


알베르 카뮈가 소설 <이방인> 을 어떻게 생각하며 써내려갔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어요.


개인적이고, 외로워 보였던 뫼르소는 타자의 관점에서 보기에 이방인이기도 했으나


뫼르소 자신으로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하거나 거짓말 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려 하거나 항소하고자 하지도 않았어요.


가식없는 완고함으로 진실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인물로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남아있는


인간 뫼르소와의 만남,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진한 여운이 있습니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 놓인 인간이 어떤 운명을 만들어 갈 것이며


인간의 근본적 탐구를 위해 노력하고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실존주의 문학의 흐름에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이 많이 거론되는데 왜 그런지 읽어보니 좀 알 것 같습니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주인공의 내면 심리묘사가 재밌었고


독자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모든 인간이 사형수라면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욱더 진지하게 하게 만들었던 시간이었어요!!!


어려울 거라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을 원문만으로는

 

 

이만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지금의 이해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아요.

 

 

더 읽어봐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제게 영향을 미쳤던 그것 만큼은 잊지 않으려구요. 


클래식 클라우드의 카뮈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었어요.


언젠가는 읽으려고 사두었던 카뮈의 에세이 <페스트> 도


기존의 삶의 가치에 대한 부정을 표현했던 <이방인> 과 반대로 긍정을 표현했다고 하니


때가 되면 읽게 되겠죠..... 이렇게 새움 출판사의 2020년 개정판 <이방인> 을 만난 것처럼요.


세상과 인간을 좀 더 넓게, 그리고 깊이 보는데 저를 변화시켜주는 좋은 소설들 중에서도


역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은 조용히 강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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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저 역시 접하긴 했는데

 

 

이제서야 직접적인 연이 닿았습니다.


 '알고 싶다', '궁금하다' 는 생각을 늘 품고 지내다가


기회가 닿아 수오서재에서 나온 모지스 할머니 자전 에세이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를 만나게 되었어요.


이 책이 좀 더 특별한 건 일반 글자크기로 나온 책도 있고


모지스 할머니의 추억을 소환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엽서책도 있는데


제가 만난 책은 바로 큰글자책.


모지스 할머니의 삶이 완전히 새로워지게 한 것은 바로 그녀의 그림들.


큰글자책인만큼 판형도 큰 편이어서 그림을 좀 더 크게 볼 수 있다는 게 또 좋더라구요.

 

일반판에 수록된 그림 중 48점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 보너스가 또 있더라구요.


책에 실리지 않았던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70점이 새롭게 수록되어 있어서


수오서재에서 나온 모지스 할머니 자전 에세이는

 

 

그녀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린 그림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아주 귀한 큰글자책입니다.


아직은 큰글자책을 볼 일이 없지만 언젠가는 저도 큰글자책을 찾게 될 날이 올테죠.


왜냐하면 인생 마감하는 날까지 독서하는 것이 제 소원이라서요.^^


책을 읽지 못한다는 건 제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


그래서 평소에도 큰글자책이 궁금하긴 했는데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이 그런 경험을 주었습니다.


큰글자책을 만나고픈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먼저 읽고 부모님께 선물해 드리고 싶어서예요.


 

 

 

 

​저는 책의 가치를 깨닫게 되며 하루 하루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게 되었는데


부모님도 과연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실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그냥 살아 있다 보니 살고 있다는 허무하고도 의욕 없는 생각으로 살고 계시다면

 

​모지스 할머니의 끝이 없는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을 전해드리고 싶기도 했어요.


모지스 할머니의 자전 에세이는 충분히 독자에게 뭉클함과

 

그녀의 삶 자체가 전하는 영향력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

 

모지스 할머니가 백년을 살아오시면서 삶 속에서 깨달으신 명언이 아닐런지요.^^

 

 

 

 

 

스코틀랜드 계 이민자의 자녀로 1860년생 모지스 할머니의 풀네임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형제자매들도 많았지만 가정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12살부터 15년간 가정부 일을 하게 되요.


그러다가 같은 집안에서 일꾼으로 일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열 명의 자녀를 출산하게 되지만, 그 중 5명만 살게 되고

 

5명은 어릴 때 한 명이 죽고 나머지 4명은 태어나자마자 사산의 아픔을 겪습니다.

 

​농장생활을 하며 생활하던 여성이었고 여느 때처럼

 

 

나이가 들어서 자수를 놓으며 살다가


관절염으로 자수마저 못하게 되면서 바늘 대신 붓을 들게 된 모지스 할머니.

 

​그때 모지스 할머니의 연세가 76세.


5년만에 첫 개인 전시회를 열게 되고 이후로

 

 

미국인이 사랑하는 예술가 중 한 분으로 손꼽히죠.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어느 축제에서 과일 통조림이나 라즈베리 잼과 함께


그림들을 전시하게 되었는데 이런 그녀의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을 알아본


어느 수집가에 의해 세상에 모지스 할머니와 그녀의 그림이 알려지게 되었고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면서 입담 좋은 모지스 할머니의 인기는

 

 

더더욱 올라가게 되었다고 해요.^^

일반적으로 화가들의 그림은 보통 캔버스에 유채 작품들이 많은데


모지스 할머니 그림들을 보면 메이소나이트, 나무에 유채 작품들이 적지 않은거예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나무에 어떻게 그림을 그리나 싶은데


책 속에 이런 부분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준

 

 

모지스 할머니 덕분에 궁금증 해소되었습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액자를 사고 그 틀에 맞게


목판을 자르고 그 목판에 아마씨 기름을 바른 후


흰색 무광 페인트를 세 겹 칠해주면 칙칙한 나무색도 가릴 수 있고

 

 

물감을 많이 안 써도 된다네요.


튜브 물감이 제법 값이 나가서 아껴 쓰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고.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지스 할머니의 추억 소환은 책 속에서 내내 접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결혼 후, 그리고 자녀들이 큰 후 시간순으로


모지스 할머니의 자전 에세이가 이어지는데 책 속 내용에 따라


그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어서 모지스 할머니의 일상들을 독자들은 상상하게 되고

 

 그림으로 다음 페이지에서 확인하게 되기도 하구요.^^

 

​시럽도 만들고 사과 버터도 만들었던 모지스 할머니의 삶을 그녀 자신도


글과 그림으로 회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1860년생인 모지스 할머니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림을 제작한 연도를 볼 때마다 놀라게 되요.


작품 하나하나 다 놀라운데 마지막 작품 <호수> 만 해도


98세의 나이에 그리셨다는 거잖아요.


따뜻함 색감과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보여주는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스타일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도 풍경 그림들이 하나같이 다 멋집니다.


눈 내린 겨울 풍경도 좋아하셔서 작품으로 많이 남기기도 하셨죠.


 

만약 그림을 안 그렸다면 아마 닭을 키웠을 거라는 모지스 할머니.


절대로 가만히 앉아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겠거니

 

 

 

 

 

 

 

 

 

기다리고 있지 못한다는 모지스 할머니.


남에게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도시 한 귀퉁이에 방을 하나 구해서


팬케이크라도 구워 팔겠다는 모지스 할머니.


지금보다는 분명 불편했을 테고 느릿느릿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좋은 시절이었다고 그리움을 표하는 모지스 할머니.


모지스 할머니의 자전 에세이를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 전반적인 흐름이 보이게 되는데요.


좋은 일, 나쁜 일..... 살다 보면 다 겪어내야 하는 일들이 앞으로도 이어질텐데


내 삶은 앞으로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까 생각하게 하는 수오서재 에세이였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의 삶과 그림에 대중의 인기가 높아지던 때


미국 화단과 평단은 그녀를 외면했다지요.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가 뒤로 밀려났다는 불만도 한몫 했다고도 하구요.


그렇게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들을 B급으로 분류하기도 했지만


정작 모지스 할머니는 큰 돈과 대중의 인기보다 그저


자기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그 바지런한 손으로 1600여 점의 그림을 그린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속 디테일들은


그녀가 전하고픈 이야기, 자연과 사람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큰글자책을

 

 

부모님에게 선물로 드리게 될 것이 기대됩니다.


평생 책을 읽지 않던 분들이지만 이 큰글자책을 만나

 

 

삶의 색다른 경험으로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들만 모아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게 된다면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당장 보러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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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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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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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부터 시작된 나혼자 제주도여행, 오늘로 어느새 8일째가 저물어 가네요.


하루의 여행이 좀 고되다 싶을 때는 늦은 오후에 스타벅스에 들러서


쉬면서 책도 보고 여행 기록도 남기는데 이곳은 스타벅스 성산DT점.


주차공간이 많지 않은데 관광객은 많이 오고 가는 곳이라


들어올 수 있는 날이 복불복....^^;;


이 날은 운좋게 주차공간이 나서 작가정신 에세이를 완독하고 왔습니다.


작가정신과도 인연이 있는 박완서 작가님.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은 박완서 작가님이 낸 책들마다


서문과 발문에 남겼던 67편을 연대순으로 총망라한 에세이예요.


그야말로 인간 박완서와 작가 박완서, 두 가지의 모습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작가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박완서 작가님이 평생 책과 인연을 맺게 된 이유가


역사의 흐름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내용.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을 떠났던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일역의 외국문학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그 때 일생 중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고.

 

누구에게나 역사는 사소하게, 의도치 않게, 그리고 우연히 시작되는가 봅니다.


​박완서 작가님과 저의 제주도 여행 사이에도 은근 연결고리가 있어요.


작년 이맘때쯤에도 제주도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짧은 소설 <나의 아름다운 이웃> 리뷰를 썼었는데

 

올해 제주도여행 중에도 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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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번 작가정신 에세이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에도

 

<나의 아름다운 이웃> 에 적었던 서문과 발문을 싣기도 했습니다.

 

아주 짧은 이야기 모음이라고 시작한 박완서 작가님의 발문과 서문을 보면서

 

작가님의 속마음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어요.


콩트 (짧은 소설) 를 한 동안 쓰지 않은 이유가 청탁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부러 의지력을 발휘해서 끊어 버렸던 것.


그 이유를 들어보면 인간이자 작가 박완서님의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지요.


당시 문예지의 원고료는 엄청나게 쌀 때였고 반대로


당시 사보는 콩트를 선호하는 분위기여서 높은 원고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사보에 콩트를 몇 번 내다가 문득 높은 원고료 때문에


콩트 쓰는 일에 회의적이게 되셨다고.


작가로서 자기 세계도 확립하기 전에 돈 맛부터 알게 된 자신에 싫증이 나면서


편식하던 단 음식을 끊듯이 단호하게 안 쓰기로 작정한 것.


욕망에 현혹되었던 자신의 잘못을 채찍질하는 인간 박완서의 이런 모습에


작가 박완서로서 작가 세계의 공존을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 하나가


한번 더 박완서 작가님을 존경할 수밖에 없게 되었죠.


당시 자신은 주부일과 글쓰기를 겸업으로 삼았던 작가였고


글쓰기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콩트를 해서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콩트를 폄하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며


 진솔하고 가식없고 당당함 모든 것이 느껴지는 작가님의 서문과 발문이었습니다.


이런 작가님의 인간적인 면모에 감화되는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예요.

 

얘기 시작한 김에 인상깊었던 몇 가지 박완서의 모든 책에 있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적어볼까봐요.^^

​문학앨범을 낸 후 서문에 적은 바로는 사진 정리를 가장 싫어하시는 작가님의 성정도 알 수 있었죠.

 

사진은 ​아예 안 찍거나 한꺼번에 태워버릴 궁리를 할 때 가장 편안해 진다며


자신의 성격을 메마르다 표현하실 정도로 자신을 꾸미거나 감추거나 높이는 법이 없으십니다.


문학앨범, 이 책의 서문을 큰딸 호원숙에게 떠넘기고 몰라라 했다시며


독자들이 좋아하시면 출판사의 노고 덕분이고,


그렇지 않으면 작가님 딸의 탓으로 겸허하게 책임을 함께 하시는 모습도

 

어쩜 이렇게 당당하시고 강하신지.


​<꽃을 찾아서> 라는 소설집에 대해서 제가 사진을 찍어둔 이유는

 

출판사의 이름에 변화가 있기 때문이예요.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창작과비평사, 창비 출판사의 지난 역사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책 좋아하는 독자이자 "창작과비평" 계간지 구독자로서 이런 변화가 저 역시 무심코 넘길 수 없을텐데

 

작가님은 오죽하실까요.

 

박완서 작가님의 모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보면

 

그 작품을 남기기까지 에피소드와 삶의 소회, 시대상에 대한 고찰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책을 낸 출판사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표현과 그 노고에 대한 감사함을 항상 남기시더라구요.

 

​참 따뜻하시고 가식없으시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몸에 익으신 분.

​박완서 작가님의 책으로 저는 장편소설, 산문집, 콩트집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저희집에도 자전거 도둑이라는 책이 있었더라구요.


여기서 보면서 작가님이 동화집도 내셨구나~~!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생소한 출판사 한양출판의 ​<부숭이의 땅힘> 이라는 제목으로 1994년에 처음 나왔다가

 

땅힘이라는 단어가 어려워서 계림북스쿨에서는 <부숭이는 힘이 세다> 라고 바꿔서 나왔다는데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아이들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눈을 뜨고

 

시니가니 읽어보라고 빌려줘야겠다 하고 보니

 

계림북스쿨 버전도 인터넷서점에는 절판되었네요.

 

아마도 절판된 책들은 도서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집으로 가면 한번 찾아보려구요.

 

다행히도 웅진주니어에서 다시 <부숭이의 땅힘> 이라는 제목으로 판매는 하고 있더라구요.^^

 

주인공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습관,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


사람사는 이치와 도리를 깨우치는 이야기들.

 

박완서 작가님의 동화집을 읽으면 이야기의 재미도 아이들이 더 알게 될 터이고


제가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왠지 효과를 볼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옵니다!!

늘 새로운 독자와 만날 수 있는 동화책을 작가님은

 

늙을 줄 모르는 책이라고도 하셨죠.

 

순수한 마음으로 쓰여진 것들이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들과 만나지길 꿈꿨던 작가님의 뜻이 영원히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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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스타벅스 필사노트에 14페이지에 걸쳐서 필사를 하게 하는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작가정신 덕분에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꾸준히 만나볼 수 있어서

 

새삼 굉장히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좋다~ 는 생각이 들었던 요즘.^^

 

어두워서 안 보이지만 ​저~~ 앞에 성산일출봉이!!!

 

이런 멋진 곳에 자주 올 수 있는 제주도민들을 마냥 부러워 할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 제가 있다는 그 자체에 대해 감사해하며 하루하루 여행중입니다!!!

정통적인 문학수업, 사사한 스승, 영향을 주고 받은 문우, 피나는 습작시절.

 

보통의 작가라면 하나쯤은 있을 법한 문단의 이런 경험중에

 

박완서 작가님은 하나도 해당되지 않아서

 

어설프게 틈입자처럼 문단에 뛰어들었다는 열등감과 소외감을 항상 갖고 있었다고 해요.

 

그 나름의 외로움도 있었겠다 미루어 짐작도 해봅니다.

 

​독자들에게는 누구나 우러러 보는 대상이자 크~~게 보이는 작가이겠지만

 

당사자는 또 하나의 작고 연약하고 고독한 인간일 따름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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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던 박완서 작가님.


소설 쓰는 고통을 꾸준히 드러내시면서도


남편과 자녀들 틈에서 그것이 비로소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게 했던 것 또한 부정하지 않으셨어요.


작가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이셨던 강한 분.


2011년 1월 이후로 어느새 올해로 박완서 작가님 서거 9주기를 넘겼네요.


소설 쓰는 고통을 즐길만한 기운이 남아 있을 때까지 소원 성취할 날을 꿈꾸셨던 작가님이셨는데


그 꿈을 이루고 갔다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 계실 박완서 작가님의 진심을


작가정신 에세이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에서 이 겨울에 만나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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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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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박 11일 나혼자 제주도여행 중에 <여행할 땐, 책> 리뷰를 남깁니다.

 

 

​오늘의 여행일정은 표선.


표선으로 잡은 이유는 표선오일장이 2,7일장이어서 였는데


표선오일장은 막상 가보니 굉장히 작고 조용하고 관광객의 옷차림으로 구경하기가


좀 죄송할 것 같은 느낌때문에 밖에서만 스캔해보고 그냥 나왔어요.^^;;


​그래도 세화오일장은 구경할만 했는데 표선은 굉장히 조용한 곳이더군요.


그리고 근처에 있는 제주민속촌 구경하고 싶어서 갔다오니 표선 일정은 끝.


원래는 알오름을 가볼까 했는데 백약이오름에서도 그렇고 바람을 너무 많이 맞아서


잠시 쉬고 싶어서 그냥 과감히 패스하고 성산으로 다시 넘어왔습니다.


갈치조림으로 점심 든든하게 먹고 다시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스타벅스로.


오늘도 혹시나 해서 성산DT점을 가봤거든요? 역시 주차공간이 없어 ㅋㅋ


나랑 안 맞는 곳인걸로.


수오서재 여행 에세이 <여행할 땐, 책> 은 김남희 작가님의 북토크도 다녀왔었고


굉장히 오래전이어서 사인해주신 걸 봤더니 12월 26일. ㅋㅋ


와~ 한달도 넘게 이 책을 들고 다님서 읽었나봐요.


다른 책들보다 확실히 오랫동안 끼고 지내긴 했는데 이 정도일줄이야.

 

 

 

 

​지금 나혼자 제주도여행 10박 11일중에서 어느새 절반이 지났더라구요.


여행과 책,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이 책을 제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요.


실제로도 김남희 작가의 구절 하나하나가


자신의 내면에 굉장히 솔직한 상태에서 뱉어내는 말들과도 같아서


굉장히 공감이 가고 작가가 말하는 여행자의 자세를 읽을 때마다 저 역시 격하게 수긍하며 읽었어요.

 

사인에도 카르페 디엠,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라틴어를 적어 주시더라구요.

 

 

 

 

출판사의 소개 문구 두 줄을 보는데 어쩜 제 생각과 이리도 똑같은지.


여행과 책의 힘을 저 역시 믿고 확신하는 한 사람으로서


요즘 이 책을 지인들에게 많이 추천하고 있거든요.


여행은 사람을 참 겸손하게끔 만들고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나 자신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하며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새롭게 하는 힘이 있어요.


김남희 작가가 북토크에서 여행자와 관광객을 구분해서 말했던 게 인상깊었습니다.


관광객은 자신이 다녀간 흔적을 쓰레기로써 여기저기에 남기지만,


여행자는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왔다가 바람처럼 지나 간다고.


나 하나 실천해서 지구의 환경이 갑자기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행자로서 환경도 생각하며 다니게 된다고 하는데 저 역시 그런 마음.^^


지금 혼자서 제주도여행 하는 중에 인적이 없는 곳을 다니는 일이 너무나 흔한 일인데


그런 곳에서 혼자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으면서 여기저기 둘러 보는 와중에


 오히려 복잡한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구요.


제주도 여행중에 수오서재 여행 에세이 <여행할 땐, 책> 을 읽는 맛이 훨씬 더 좋구만요.

 

 

 

 

​늦게 도착했는데 크지 않은 공간이긴 하지만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맨 뒷 줄에 조용히 들어가 앉았는데 따뜻한 커피를 주시니 좋았습니다.

 

날씨가 좀 추웠거든요.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시면서 여행 에피소드를 참 재밌게 풀어주셨어요.^^


필력도 있으시고 입담도 좋으시고.


하긴 그러한 생명력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 계신 거겠죠.


이날 북토크에서 얘기해주신 것들은 나중에 책을 읽어보니


다 책 속에 있는 내용과 겹치는 것들이더라구요.


거기에 좀 더 책에는 없는 얘기도 섞어 주시고.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세계 곳곳을 다니는 일은 저로선 용기가 안 나서 작가님의 실천력이 참 부럽고 대단하다 싶어요.^^


돈, 시간, 체력, 호기심.


김남희 작가가 밝히는 여행할 때 필요한 것 4가지.


작가님은 돈만 없을 뿐이지 나머지는 다 문제가 없고


자신을 정착하게 할만한 남자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여행을 하면서 밥 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심장 한쪽이 따끔따끔하다는 김남희 작가님.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에 만족할 줄 알고,


현지인들의 삶을 침범하지 않고 존중할 줄 알며,


인간이 보기 어려운 생명체들을 좀 더 가까이 보겠다고 경계를 넘어서는 교만을 범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자연과 인간, 동물들 모두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거든요.


그럴 때 여행은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욕망이 균형을 깨뜨리고 있고 그런 후에


다시 균형을 맞추겠다고 억지로 개입하는 인간들이라니.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쓸고 간 자연의 뒷 모습은 점점 황폐해지고 있음을 걱정하고 있죠.


​"삶이 마지막 날까지 배낭여행자로 살 수 있기를"


​그래도 저는 개인적인 바램으로 김남희 작가님도 좋은 분 만나서

 

정착하는 안정된 삶도 누려보셨음 좋겠는데 말이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행할 땐, 책> 김남희 작가의 북토크를 다녀온 후

왠지 한 줄 문장이 떠올라서 적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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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땐, 책> 으로 김남희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나보았는데


앞으로 찾아서 읽게 될거 같습니다.


인상적인 구절은 정말 많아서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그래도 하나 골라보자면 가장 공감가는 문장으로.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책도, 여행도 더 넓은 세계를 열어주는 문이다.​

......

책과 여행을 통해 나는 타인의 마음에 가 닿고,

지구라는 행성의 신비 속으로 뛰어들고,

인류가 건설하거나 파괴한 것들에 경탄하고 분노한다.​

그럼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지금 나혼자 제주도여행을 하는 저 역시


이와 같은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요.


김남희 작가님과 생각의 결이 좀 비슷한가 봅니다.^^

 

 

 

 

 

 

​읽고 있던 '어떤' 책이 '특별한' 책이 되는 순간은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을 만날 때 찾아옵니다.


이 책이 그래서 이제부터 제게 특별한 책이 되었어요.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인도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늘 호기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나침반 삼아 읽고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작은 것들의 신> 외에도 제가 아는 책, 모르는 책 골고루 섞여 있는데요.


오르한 파묵의 <내 마음의 낯섦>,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 도 읽어보고 싶어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는 읽은지 너무 오래되서


이번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뭉개뭉개~~^^


그냥 이 책은 읽어보세요.....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내 안에서 살아나게 합니다.


오래 들고 다녔더니 제 책 중에서 가장 너덜너덜해졌어요. ㅋ


강추하는 책. ㅎㅎㅎ


제주도여행 와서 비로소 <여행할 땐, 책> 을 마무리하네요!!!


이제 다음 책으로,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나아갈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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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지음, 장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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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주도여행 오면서 챙겨온 책들 중 하나 흐름출판의 만화 에세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예요.


일본 만화가 미야가와 사토시가 실제로 엄마를 잃은 슬픔을 연재한 것이 화제를 모았고


흐름출판에서 책으로 나왔더라구요.


제목이 그냥 얼핏 보면 '유골을 먹고 싶었다'.....^^;;


쩜쩜쩜..... 뭐 이런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정작 읽어 보면


부모와 자식간의 복잡미묘한 관계속에서 사랑표현을 맘껏 하지 못한 아쉬움을 안은 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곧이어 감동하게 되는 에세이였습니다.

​저자가 직접 겪은 이별의 슬픔을 참 담담하고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판타지가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일상속에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념들과 감정들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만화 에세이는 저도 처음인데 역시 만화라서 그런지 금방 읽혀요 ㅋㅋㅋ

올해는 책좀 읽어볼까? 하시는 분들, 이 책부터 시작해 보세요 가볍게.....

 

 


일본의 지역 사투리를 쓰는 저자의 가족임을 감안해서


번역자가 충청도 사투리로 바꾼거 같아요.


많은 사투리중에 왜 충청도 사투리였을까 궁금하긴 하네요,


부모님이 충청도에 살고 계셔서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좀 알기에 ㅋㅋ 

 

 

 

 

그런데 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의 제목을 접하면 누구나 드는 질문일 거 같아요.


저자가 이 제목으로 하기로 결정했고 바꾸고 싶지 않은 이유는 작가의 말에-.


 

 

 

20대 젊은 나이에 혈액 질환으로 수술과 투병 생활을 했던 저자 곁에서

 


정성껏 간호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묵묵히 아들의 곁을 지켜줬던 엄마.

 

 

평소에 화를 안 내는 엄마가 딱 한 번 화를 냈을 때가

 


자식을 가질 수 없을 거라며 스스로 포기했던 저자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의 정액을 체취해 두자고 강하게 말했던 엄마.

 


그런 엄마가 곁에 계셔서 안정감을 얻고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생각에

 


저도 너무나 공감이 되었고 표현이 맘에 들더라구요.

 


구원.... 불경한 생각.... 이런 어휘들이 저자의 언어인지 번역자의 언어인지는

 


구분할 수 없으나 책의 격이 한결 높아 보이는 지점이 있는듯 하구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저자는 이렇게 엄마의 빈자리, 엄마가 남기고 간 것들을 돌이켜 보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경험을 묵묵히, 때로는 감정에 복받쳐가며 감당해 냅니다.

 

나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어리석은 생각,

 

"우리 엄마만큼은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은 기분".

 

누구나 생각하는 것을 저자도 하고 있었고,

 

 

여느 독자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보통 사람들의 삶이 느껴져서

 


또 편안하고 친근감 가지며 읽었나 싶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여서 그런지

 


국적과 문화가 다른 부분이 주는 이질감은 거의 없이 읽었어요.

  

 

​저자가 투병생활을 할 때 꼭 나을 거라는 엄마의 그 때 그 자신감이,

 

엄마의 투병생활을 보면서 저자도 똑같이 느끼는 이 지점.

 

가족에게 별 일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이 근거없는 자신감의 정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의 병이 낫길 바라는 마음으로 100일 기도를 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일이라는 것도 너무나 공감.

 

누군가를 위하는 일이지만 결국은 내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라는

 

이 복잡미묘한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의 줄다리기라니~~!!!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저자 역시 위암 말기를 버텨내고 있는 엄마의 투병생활에

 


옆을 지키고 있는데 전에 없던 큰 코골이를 하기 시작하는 엄마.

 


그리고 숨 쉬는 간격이 길어지기 시작하는데......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 저자가 용기를 내어 하는 말에 저도 눈물이 맺히더라구요 ㅠㅠㅠ



고마워. 고생했어요.


잘 가요.....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요.



너무 담담하고 진솔한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무너질지도 몰라요.

 


감정의 격함이 다를 뿐 이런 감정은 누구나 갖게 되지 않을까요.

 


부모님이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살아계시든, 이미 이별하는 경험을 하신 분들이든 간에.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의 유골까지 먹고 싶다는 생각이 왜 들었는지는

 


저자 본인도 정확하게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둘 사이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던 사랑의 가장 근원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엄마를 잃는 것과 반려자를 잃는 것, 어느 쪽이 더 힘들까?" 


어느 한 쪽만을 단정지을 수는 없고


관계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


저는....음....어렵습니다....모르겠어요.....


사실 이걸 굳이 먼저 내 생각이 어떠하다 정해둘 이유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ㅠㅠ


저자처럼 그냥 내 소중한 가족들은 현재로서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같이 잘 살 수 있을거라는 생각.....


덧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생각하며 부정하고 싶은 마음인가 봅니다.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는 경험을 하면서도


남아있는 가족들은 밥이 넘어가는 게 과연 이게 정상인가 스스로를 탓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시간은 흘러 어느새 슬픔을 추스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죽음이 자식을 움직이게 한다는 구절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살아가고자 힘을 내기 시작했겠지요.


엄마의 죽음과 함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제주도에서는 4.3의 아픔과 상처를 다독여주면서 전해진 말이 있대요.


제가 지금 나혼자 제주도여행 중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며칠 전에 세화오일장 가서 발견하고 찍었던 벽화와 문구가 생각나더라구요.



"살암시믄 다 살아진다"



살고 있으면 다 살아진다 


힘들다는 건 내 욕심이 만들어낸 것이고


너무 열심히 하지도 말고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도시에서 여유로움을 잃어버리고 바쁘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울림이 있는 말이예요!!!


저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겨두려고 합니다.


2018년 1월에 나혼자 제주도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것도


제 기준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스스로 힘들어했던 어리석은 저 자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때 이후로 나혼자 제주도여행의 성격은 물론 달라졌지만요.


지금은 그저 해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안식일이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여행중이예요.^^


가족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동시에 점점 커집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한 뒷모습은 볼 때마다 진하고 묵직하게 전해지는 감동이 있어요~~~!!

 

 

생각지 못했는데 현재 제가 머물고 있는 제주도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한 마디가


만화 에세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와 절묘하게 겹치는


삶과 죽음을 통한 통찰을 발견합니다.


가족의 조건없는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느라 감사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만화 에세이 읽고 나면 완전 정신 차릴듯 한데요.^^


저도 우리 시니가니에게 좀 읽어보라고 슬쩍 밀어넣어야겠어요.....


만화니까 읽어봐 ㅋㅋㅋ


읽다가 밀려오는 감동은 너희들이 감당하고....^^


결국 너희들의 삶은 너희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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