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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오쿠다 히로미 지음, 박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평점 :

예전 같으면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텐데
지난 8월에 생전 처음 해본 대장 내시경검사에서 용종이 나오고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기까지 숱한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던 나흘을 보내고 나니
나의 일상과 나이들어감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는 걸 실감했다.
더 이상 나이 듦을 저항하고 부정한다고 해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순리가
나만 비켜가는 것도 아니고 행복할 리 없다는 것도.
노화를 자각하게 되는 순간은 점점 더 심심치 않게 직면하게 될 것이고
좋든 싫든 간에 이 사실을 감당해야 한다면
내가 직접 내 삶을 꾸려가는 경험들을 축적하는 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지혜로운 방법이지 않을까.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은 92세와 54세 정신과 전문의가 만나
일반인으로서 자신들에게 닥친 실제 노년의 삶과
연구자의 입장에서 불안없이 노년을 맞이하는 방법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은퇴한 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아 여전히 활동 중인
54세 오쿠다 히로미가 이 책을 열고 대담을 이어간 후 마지막에 덮기까지
나카무라 쓰네코와의 편안한 대화를 통해 나이 듦의 철학을 들려주는 북폴리오 에세이이다.
100세 시대라 일컫는 요즘은 단순히 삶과 죽음을 운영하는 것에서 나아가
남아 있는 미래가 긴데서 오는 불안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또 하나의 관건이 된 것 같다.
아무런 계획과 설계없이 긴 노후를 마냥 떠안을 것인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방법과 노년에 대처하는 자세를 설정할 것인가.
답은 너무나 뻔하다.
54세의 오쿠다가 92세의 나카무라 선생님에게 독자를 대신해서
나이 듦에 대해 묻고 선생님의 무겁지 않으면서도 편안한 답을 통해
중장년층의 노년에 대한 고민을 정리해보는 시간으로 삼아도 좋을만한 책이다.
더불어 세상에 흩어져 있는 노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나 여러 의견들을
간명하게 정리한 칼럼까지 독자에게 유익하게 스며들 내용들이 담겨 있다.
미술 전시회 관람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곳곳에 편안한 그림들이 숨어 있는 이 구성,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든다.
나이 듦에 대한 불안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행복에 대한 만족도는 크기보다는 횟수에서 좌우된다고 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고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을 헤아리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신체의 부자유, 욕망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다소 겉도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래도 인간에게는 경험치가 주는 성숙도가 매우 결정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부터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걸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노화의 시간은 그들이 적응할 수 있는 만큼의 속도로 흘러가기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나이 듦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한편 참으로 무섭기도 하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명백하게 존재한다.
두 정신과 전문의의 대담 중에서 유의미하게 다가온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이다.
보통 사회는 20대부터 50대까지 중심이 되어 돌아가고
60대부터는 곁에서 도와주는 역할이 되어 일반적으로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어 있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리는 것이 한편 서운할 수는 있으나
달리 생각하면 책임이나 압박에서 자유로워 지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이쯤에서 정신승리하자는 거냐고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나 자신을 옭아매던 욕심에서 점점 자유로워지자는 것이다.
'젊음' 이라는 키워드, 젊은이들의 방식을 선호하고
그것이 마치 사회의 기준이 되어버린 분위기때문에 어려운 미션일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젊음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것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은 리즈시절 그대로인데 몸과 건강은 이미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
그 간극에서 혼란스러울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에.
너무나 바쁘게 살다가 이제 조금 여유를 찾게 되는 나이가 되어
평화롭고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삶이 되어도
그 나름대로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인생은 어차피 고통의 연속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삶의 질은 달라질 수 있다고도 했다.)
지나치게 여유가 있는 것도 불필요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땐 우선 불안의 뿌리를 찾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낮에는 몸을 바쁘게 움직이고 일하다가
밤에는 아무 생각없이 푹 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최고라고.^^
사실 이건 노년에게만 국한된 팁은 아닌 듯.
너무나 기본이지만 불안 없이 노년을 맞이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방법으로
하루 7시간의 충분한 수면과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가부좌를 하고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는
비파사나 명상이나 마음챙김 명상까지 현실적인 조언들도 놓치지 않았다.
사실 어떤 인생도 완벽하지 않고, 모두 불완전하다.
어띠까지나 내가 결정해서 내 삶을 꾸려가기에 달려있다.
에세이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의 후반부에 가서는
안락사나 존엄사에 대해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연명치료가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이 글을 통해 감지되기도 했다.
일본의 의료는 현재 연명지상주의이기 때문에
가족이 연명치료를 원하면 아무리 90세에 가까운 노인일지라도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의사 또한 이 지점에서 임의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생애 말기에 꼭 챙겨야 하는 것은
가족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의료 선택에 대해서 사전에 스스로 자기 의사를 표명하는 존엄사 선언서를 남겨두는 것을 말한다.
연명치료에 대해 당연히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고
가족들에게도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를 미리 준비해두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일 것이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미리 준비해두지 않았을 경우
닥칠 혼란에서 당사자는 더이상 자기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존엄사 선언서를 마련해두는 일이 물론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은 면도 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가족간에 연명치료에 대해서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껄끄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차치하고 이 사안은 나의 삶을 내가 결정하는 일의 중요성과
주체적으로 결정할 때 내 삶의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논의가 될 것이다.
그저 '누워있는'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존엄한 죽음이라 말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생명 연장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태에서 인공영양, 정맥영양으로
죽음을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시기까지 늦출 수는 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내용은 고독사에 관한 생각이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일본인의 국민성을
고독사에 대한 시각으로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했다.
92세의 정신과 전문의 나카무라 쓰네코는 그래서 고독사를
미움받을 일을 차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꽤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않은 채 혼자서 죽음을 맞이한다' 는 의미로 고독사를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이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엄마의 배속에서 나와 바로 눈을 뜨고 다리로 몸을 지탱해서 일으켜 세우는 여타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오롯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 나간다.
생이 그러한데 인간의 죽음 또한 가족에게 어떠한 폐도 끼치지 않고 행해질 수는 없다.
죽는 순간마저 가족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고
그로 인해 미움을 받을까 염려하는 그 심정이 한편 안타깝기도 하다.
죽음 이후는 당사자가 생각할 부분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 가족의 몫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는
그들이 곤란하지 않도록, 걱정하지 않도록 인생의 끝맺음을
자신이 직접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고독사를 이야기하다 보니 아들러 심리학의 일본 전도사격인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가 떠오른다.
2014년에 일본을 거쳐 국내에서까지 오랫동안 흥행을 거둔 이 책은
개인적으로 아들러 심리학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속내를 말하기보다는 자신을 억누르는 걸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일본인들이지만
그 점은 한국도 못지 않아서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는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고약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억지로 이어가기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사람을 찾는 게 더 현명한 일이다.
혼자인 건 부끄러운 일이고 고독은 비참한 것이라는 이상한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을 몰아세우고 결국은 자기 혐오에 빠지기 쉽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나의 결정을 가지고 지금 결론을 내봤자
훗날 어떻게 변할지 인간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또한 지금의 행복도 같은 형태로 내내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현재 괴롭더라도 그 또한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는다.
"그 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이렇게 되뇌여도 내가 선택한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올 것이다.
자신을 탓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럴 때는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것을 주문하면서 동시에
혹여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그것이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자신을 믿어주면 될 일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 몸의 자유를 점점 잃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말고
많이 해둘 것을 당부하는 92세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이 가슴에 박힌다.
'지금, 그리고 여기' 에 집중하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와 나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는 것!
북폴리오 에세이에서 건져낸 지혜의 한 줄이다.
일본의 두 인생 선배가 전하는 진솔한 대화 속에서
각자가 소중하게 여겼던 삶의 철학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이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