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을 팝니다 - 왠지 모르게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의 비밀
신현암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들고 다녔던 흐름출판의

경제경영서 <설렘을 팝니다> 이제서야 펼쳐봤어요.

"설렘" 이라는 단어는 책표지에 보이는 심장박동의 움직임처럼

두근거림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30년 동안 마케팅 담당자로, 프로젝트 기획자로, 음반 제작자로, 경제연구소 책임자로

여러 감성 영역 중 저자 신현암은 마음이 들떠서 두근거리게 되는 것,

"어떻게 고객의 감성을 자극할까" 에 주목하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사례는 이론은 앞선다.

​여러 사례가 모여 이론을 만든다.

새로운 사례가 나타나면 발 빠르게 응용해 보고

만약 그것이 나에게 맞지 않으면 버리는 실리콘밸리의 "lean방식"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할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도쿄를 발견한 저자.

도쿄에서 만날 수 있는 21개 공간을 통해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이죠.

실제로 설렘에 관한 힌트를 얻기 위해 2018년 한 해 동안에는 102일간 일본에 머무르기도 했다고.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기능적 필요에 의한 구매가 10%라고 할 때,

심리적 욕망은 무려 90%에 달한다는 것도 파악하게 됩니다.

이 비율은 정말 이럴까? 싶은 생각도 잠시 들긴 하지만

개인의 욕망에 의한 구입에 상당부분 기울어진 구매를 하게 되는 것에

저 역시 일정부분 동감입니다.

너무 횟수가 잦으면 과소비, 충동구매로 가계 경제가 좀 위태로울 수는 있겠지만

조절한다는 전제하에 ㅎㅎㅎ

​그리고 또 사람마다 꽂히는 품목과 디자인,

나아가서는 브랜드의 가치와 기업의 철학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모든 품목에 다 심리적 욕망이 90% 인 것은 좀 문제가 있겠죠 ㅋㅋ

 

 

 

​카페처럼 꾸며둔 미술관은 마치 현실계와 동떨어진 '중간계' 를 연상케 한다는

글에 미술관 나들이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격하게 공감합니다.

현실에서 여유로움을 느끼기 어려울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면

그 어디에도 없는 평온함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설렘 포인트를 알고 이렇게 미술관이나 카페 공간을 만들었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도쿄의 특징적인 공간 21곳 중에서 제가 알만한 곳은 MUJI가 눈에 띕니다. ㅋㅋ

지난 오사카 여행 때도 무인양품을 들렀던 경험도 있고 국내에도 있긴 하죠.

국내에서 거의 가지는 않지만 오사카에서 짝꿍 셔츠를 구입하면서 조금 구경했던 기억으로

이 책에서 무지와 무인양품의 마케팅, 전략들이 이러했구나..... 흥미롭게 봤습니다.

이유있게 싸다는 전략으로 홍보와 마케팅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상품의 본질에 집중하는

무지다움, 무지답다는 것을 추구하는 철학.

40년을 이어온 무지는 미니멀리즘도 연상케 하는 브랜드이죠.

비움의 철학과 단순함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놀랍기도 하구요.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생텍쥐페리가 한 이 말이 무지에 딱 어울립니다.

 

 

​고객의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하는 것이 지금의 성공 공식.

백색 소음 속에서 독서가 잘 되는 저로서는 책 들고 스타벅스를 자주 가게 되요.

 간혹 윤리적인 이슈가 생기는 곳이기도 하지만

진동벨이 아닌, 고객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에서부터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스타벅스의 마케팅 전략은 최소한 저에게 만큼은 여러가지로 통했던 사례라고 생각해요.

저자가 말하길 지금은 제품과 서비스 대신 공간을 파는 시대.

<설렘을 팝니다> 에 소개한 도쿄의 특징적인 공간 21곳이

설렘을 주는 편안한 공간이라고 하니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발견하고자 하는 분들은

나~~중에 가보셔도 좋을듯 싶어요.

큐알코드를 읽으면 구글지도로 넘어가더라구요.

 

나의 감성을 자극하고 설렘 포인트를 건드린 공간에는

어떤 마케팅 전략이 숨겨져 있을까?

 

 <설렘을 팝니다> 경영사례집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산 남포동, 재개발로 몸살을 앓으며 점점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고양이와 할머니 사진들을 보면서 되새깁니다.

검은 봉지만 봐도 고양이인 줄 알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고양이 중증 환자라고 표현하는

전형준 작가는 이제 고양이가 없는 여행은 꿈꿀 수 없을 정도로

평생 고양이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 자기만의 소명을 안고 있습니다. 

 

고양이 덕에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사진 공모전에서 상도 타게 된 일들을


다 녀석들이 물어다 준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준 작가의


고양이 포토 에세이가 북폴리오에서 나왔어요.

사실 저는 고양이보다는 무조건 강아지를 좋아하는 쪽이예요.


<고양이와 할머니> 를 잃고 그것이 180도 바뀌었는가?


사실 그것도 아닙니다.


고양이는 뭔가 의뭉스럽고 감정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동물도 아닌거 같고


빨리 속을 보여주는 동물도 아닌 것 같구요.


무엇보다 저는 고양이 눈이 좀 무섭....^^:;


그런데 <고양이와 할머니> 를 읽고 나서 새로운 "발견" 은 있었어요.


외모가 역시 다가 아니라는 걸.


고양이의 진심.


할머니가 진심으로 사랑을 베푸니까 그런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할머니에게 꼭 붙어서 그 사랑을 오롯이 받아주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사람의 진심을 차갑게 뿌리치는 여느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들도 그래서 고양이를 제 자식처럼 여기며 고양이들의 처지를 염려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갈 날이 줄어들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면서도 말입니다.


나보다 타자를 더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조건없는 사랑이고 이타심이거든요.



 

 

 

내내 틈나는 대로 읽으려고 들고 다녔던 <고양이와 할머니> 책도 덩달아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왔죠. ㅋㅋㅋ


할머니가 고양이들에게 그랬듯이,


저 역시 책들이 그렇습니다.


말이 통하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무엇!!


제게는 살아있는 친구같은 것이 바로 책이어서


할머니들에게는 고양이가 바로 그런 존재였겠죠.


자식도 되면서 말동무도 되면서 온기를 서로 나눠가질 수 있는 그런 존재.


​<고양이와 할머니> 커버에 있는 모델은 찐이예요.


이 책에는 고양이 주인공이 비중을 보자면 콩알이들과 찐.


독보적인 주인공은 찐 으로 해야겠네요. ㅎㅎㅎ


그리고 찐의 보호자 찐 할머니가 오랜 시간 봄 소풍을 가셔서 더욱 마음이 가는 고양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후에 좋은 식구를 만났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놓이긴 해요.^^


 

 

 

 

 

​평생 고양이 사진 찍으며 보답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고양이와 할머니> 포토 에세이의 저자 전형준 작가가 가장 처음 찍었던


길고양이 사진입니다.


사진은 찰나의 시간에 찍혀 지지만 전형준 작가가 찍은 고양이 사진들에는


애정이 담아 있다고.


고양이에 대한 천진난만한 애정으로,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사진을 봐주길 바라는 작가였어요.


그리고 그 마음들이, 고양이와 할머니를 곁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며 마음으로 수호했던 것이


고양이 포토 에세이 <고양이와 할머니> 에 모두 다 녹아 있습니다.

 

산문인데 시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은

일상글들과는 조금 다른 폰트로 예쁜 고양이 사진과 한 폭에 담았어요.

고양이 포토 에세이는 저도 처음인데 읽는 내내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고

 확실히 다른 책들보다 편하게 읽었어요.^^


 

 

<고양이와 할머니> 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콩알이 할머니.

사람도 춥고 배고프면 힘든데 너희들도 얼마나 춥고 배고프겠냐고

진심어린 공감을 보내주시는 콩알이 할머니.

물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할머니들이 그러하십니다.

공감능력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능력이라고 하는데

할머니들이 그런 최고의 능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셨죠.

동네 골목 구석구석 고양이들이 있는 곳마다 때가 되면 밥을 챙겨주고

인스턴트 커피 한잔에 소확행을 즐기는 콩알이 할머니.

​고양이 사료를 조금이라도 싼 곳에서 사려고 먼 길을 다녀왔다가 몸살이 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콩알이 할머니 막내 아들이 매달 세 포대씩 사료를 보내주는데도

너무 잘 먹어대는 많은 고양이들때문에 아들 몰래

용돈과 연금을 모아 고양이 사료를 몇 개 더 사신다고. 

할머니는 7천원짜리 멸치 먹는데 고양이들은 비싼 건 알아가지고 만2천원짜리 멸치만 먹는다고

투덜대면서도 꼭 챙겨주시는 콩알이 할머니.^^

이웃들도 콩알이 할머니의 고양이 사랑을 아시고 함께 키우고 계시죠.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듯~~

남포동의 사라지는 골목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그렇게 할머니들의 사랑을 받고 자랍니다.

할맨져스라고 ㅋㅋ


콩알이 할머니의 고양이들 중에서 전형준 작가가 찍은 무니의 사진을 보고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서고 콩알이 할머니는 부산에서 서울, 서울에서 호주로

무니를 입양 보내면서 사진에 담겨진 표정속에 마음이 다 묻어나요.

먼길 보내는 불안한 마음, 떨어져서 아쉽고 서운한 마음,

 

가서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가

표정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콩알이 할머니와 함께 동네에서 또 다른 고양이를 돌보는 찐 할머니.

폐암 말기에 치매 증상까지 있었던 찐 할머니는 이미 멀리 봄 소풍을 떠나셨어요.ㅠ


그래도 찐이 덕분에 그나마 그 시간까지 버티신 것이라고.


찐이가 없었으면 진즉에 아팠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와 찐이입니다.

아픈 자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이 이렇더라구요.


같은 날 눈 감았으면~~~!


찐 할머니의 바램이기도 했어요.


당신도 몸이 아픈데도 찐이가 혼자 남을 것이 걱정되는 할머니는 보는 사람마다


찐이 데려가 키울 생각 없냐고 물어보십니다.



 


부산 사투리 그대로 할머니의 음성지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말씀에서


코 끝이 찡했었어요.....지하철 안에서 앉아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 아픈것보다 찐이랑 떨어져 있어야 해서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더 마음에 걸리는 할머니 ㅜㅜ


콩알이 할머니, 찐 할머니 외에도 남포동의 사라져 가는 골목, 재개발에 들어간 이 골목에는


고양이들을 지켜주는 할맨져스들이 많으세요.


물론 할머니들 말고 아저씨들도 계시죠.^^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성별을 구분하진 않으니까요.


다들 처음으로 길고양이를 챙겨야겠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오신 것 보다는


그냥 집 없이 떠돌아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다가가기 시작하셨던거 같아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내 생활이 불편해질까봐 측은한 마음은 있어도 그냥 외면하게 되는데


할머니들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그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 자신에게도 부끄러움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 날이, 이런 부끄러움을 몇 번이고 느끼다 보면


다음에는 외면하지 않을 날도 올 것 같아요.


자신의 목소리를 끝내 외면하지 않을 거라면.

 

 

 

 

 


"고양이들도 그리움을 안다"


 

나와 다른 종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와 같은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생명체는 똑같이 뜨거운 피를 갖고 있고 심장이 뛰는, 구분짓기를 하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남포동 골목의 고양이를 지키는 할머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할머니들의 모습이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고양이를 돌봐주는 사람이겠지만


사실은 할머니 당신의 마음도 챙김을 받아서 고양이에게 되려 더 고마워하는 마음.


저 문장은 어쩌면 전형준 작가처럼 저 역시 인간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일수도 있어요.


실제 고양이의 속마음은 저도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말은 못해도 할머니와 고양이는 서로 진심이 통했다고 믿어요.

 

 


 

 

 

사진을 찍는 전형준 작가의 모순된 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 순간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찍는 사진에도 일방적인 연민과 동정이 있다고.....


이는 인간이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 아닐지.....


모두 다 그러니까 작가의 이런 마음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가 없어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게 나쁘다면 나쁠까.....


나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나쁜 것.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니까요.


고양이를 챙기고 사진을 찍는 행위들이 스스로를

 

덕적으로 합리화하는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작가의 말이

 

제게도 내내 울림이 되어 다가옵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도덕적 인간이길 바라지 않을까......


저는 그런 경향이 더 크다고 볼 때 작가의 저 말은 너무나 공감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전형준 작가가 나빴다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그런 모순된 마음을 모르는 척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날 찍은 사진을 모두 지웠다는 것도 공감.


사람은 무릇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전형준 작가에 대한 진심을 저는 이 문장들에서 봤어요.


그리고 흐뭇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인연이라고 한다면,


고양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묘연이라고.


전생에 어떤 사이였길래 현생에서 이런 묘연을 갖게 되었을까 신기하기도 한데


그 묘연을 정말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는 고양이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 겨울에 마음을 참 훈훈하게 했습니다.


온기와 인정, 입가에는 미소가 생기게 하는 고양이 포토 에세이 <고양이와 할머니>,


너무나 반가웠어요.^^


제게는 묘연과도 같이 책과의 인연이 너무나 소중한 하루하루입니다!!!


"책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는 그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나....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서가명강 시리즈 8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고 싶었던 주제였는데 21세기북스 서가명강으로 만날 수 있어서 기대되는 책이었어요.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가 격동의 대한민국이 시작되었던 


광복 이후 제헌국회가 시작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정치사를 한 눈에 보여줍니다.


저자 스스로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을 쓰고 나서


일반인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한국 정치에 대한 교양서" 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도 했는데요.


중요하게 다뤄야 할 내용들을 가능하면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갈 정도로


한국 정치의 현대사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여기저기에서 알고 싶은 자료들을 골라야 하는 번거로움과 어려움이


이 책 한 권으로 전체 흐름이 정리되는 앎의 희열을 맛봤습니다.^^


서가명강 시리즈에서 4번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보니


잘 읽히고, 그래서 읽는 내내 재밌었어요!!


한국 정치를 생각하면 짜증나고 답답한 게 이제는

 

 

 당연시될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감정이었는데


강원택 교수님의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덕분에 한국 현대 정치사의 전체 흐름도 알게 되고


시민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을 다루고자


4개의 주제, 대통령 / 선거 / 정당 / 민주화를 뽑아서 구성했어요.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기점들, 중요한 주제가 갖는 역사성들을


일반 시민들도 알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교수님이 직접 쓰시고도


자신의 책 중에서 가장 재밌다고 생각했다는 책이죠.ㅋ


​읽어본 저로서는 그 말씀, 동의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을 벤치마킹 한 점이 있지만 같다고 볼 수 없는 지점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말하며 비서실을 통한 권력 행사가 적지 않지만


다수결 원칙이 아닌 정치적 합의를 취하는 한국 의회의 결정에 따라 정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 기억에 남구요.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격변이 일어나기 전에

 

 

언제나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요구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과

 

부정 부패가 만연했던 한국 정치사에서의 선거 행태들과

 

 

그로 인해 굴곡진 현대사를 갖게 된 점들을 짚어봅니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당을 지적하게 되는 건


아무래도 대의제를 취하는 한국에서 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는 '거리의 정치' 가 되게 함으로써

 

 '제도의 정치' 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더 심각한 것은 정치인들까지 거리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죠.


저자 역시 이 부분을 우려합니다.


지금 그런 정치인들이 너무 많아서 화 나기도 했던 부분.....;;


한국의 정치사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과정 속에서 지금 익숙한 정치인들이 어떻게 한국 정치사에 출연하게 되었는지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봤던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겹치기도 해서

 

때때로 복습도 되고 이해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어요.

 

이 정도의 복습이 필요한, 정치를 이해하는 일은 일반 시민들로서는 쉽지 않은 것이니까요.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저 또한 때때로 인간의 이기심으로 점철된 권력 추구 집단과


그릇된 사고방식의 추종자들을 가만히 보다 보면


정치 혐오가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피로를 느끼곤 합니다.


이런 이유로 정치에 관심을 끊게 되는 사람들도 여럿 있죠.


어쩌면 기득권들은,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들은 시민들이 이러면 더 좋아할 거예요.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려는 꼼수와 시커먼 속내로 계속 권위주의를 공고히 해 갈 것이거든요.


우리 모두 더불어 잘 사는 삶을 위해 시민으로서

 

 

더 적극적인 권한 행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민되기 참 어렵다는 토로가 있을 것 또한 예상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이 바뀌는 사회가 되도록

 

 

나부터 행동하는 용기와 적극적인 태도를 독려하고 싶어요!

 

우선 내 삶이 바뀌는 사회가 된다면 나아가 내 가족, 내 후손들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한국 정치사에서 한 국가를 개인의 이기심으로 쥐락펴락했던 인물들,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한국 정치사에서 1948년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나서부터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은 시작됩니다.


이제는 비공휴일이 되었지만 ​1948년 7월 17일은 제헌절.


이 책을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헌법이 제정되고 공포되었던, 정말 중요한 날이었어요.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민주 공화정이 되면서


모든 법률의 근거가 되는 헌법에 따라 작동하는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1960년 4.19 혁명,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해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등 개헌의 역사도 있죠.


하지만 현재 굴곡진 현대사가 된 데에는 정당한 개헌의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과 이익 집단을 위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개헌의 역사도 있었다는 것을 짚어봐야 합니다.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을 읽으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정말 공부하듯이 이 책을 봤고


메모한 스타벅스 냅킨만, 지금까지 기록중에 최고일 정도 ㅋㅋ


1948년 제헌국회 이후 7월 20일 좌우 구분없이 해방 정국에도

 

 

모두의 인기를 업고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당시 반대축이었던 민족주의자 김구 선생님은 1949년 6월에 암살되시고....ㅜ


이 때부터 한국 정치사의 비극이 시작되었고 이후로도

 

 

계속 잔재로 인해 꼬이고 힘겨워지는 중.....ㅜㅜ


이때는 국회의원들이 투표하는 간접선거 방식이었죠.


1952년 2대 대통령 선거가 열리고 표결방식이 기가 막히게 기립표결로 통과 ...;;


양원제를 도입하기도 했던 초기의 역사도 새롭게 알게 되었고


헌법을 강제적으로 개정하는 못된 버릇이 시작되기도 했던 때.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대통령 3선 제한' 철폐를 위해서 사사오입개헌을 밀어부칩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이승만 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진 상태에서


1956년 실시된 정, 부통령 선거를 통해 민심이 표출하게 되죠.


3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리하지만 부통령 자리는 민주당이 차지하게 되면서

 

 

 어렵게 집권하게 됩니다.


1960년에는 온갖 부정적인 선거행태가 있었던 3.15 부정선거가 있던 해.


자신의 입지가 약해졌음을 느끼고 부정선거를 감행하지만 시민들의 저항으로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드디어 축출됩니다.


4.19 혁명을 촉발하게 된 계기에 바로 마산상고 김주열 군의 사건이 있었더라구요.


지식의 파편들이 이 책 덕분에 연결고리를 찾아갑니다.


선거부정으로 제1공화국이 몰락하게 된 것이죠.


4.19 혁명 일주일 후 이스암ㄴ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합니다.


이렇게 그냥 보내지 말고 책임을 물었어야 했는데....;;


1960년 7월 29일 윤보선과 장면의 조합으로 제2공화국이 출범하지만


계파 갈등으로 9개월만에 박정희 군사 쿠데타에 의해 몰락합니다.


1961년 그 유명한 박정희의 5.16 쿠데타.


박정희는 5.16 군사 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군정을 실시한 후


1963년부터 대한민국의 제5대, 6대, 7대, 8대, 9대 대통령을 맡게 되고


1963년부터 1979년까지.....17년간 독재..... 독재자의 딸이 또 대통령이 되었다는 건


아직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못했던, 정말 뼈아픈 현실이기도 했어요.


1969년에는 장기집권을 위한 욕망으로 3선 개헌 날치기 통과를 하기도 해요.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 역시 집권 연장을 위해 헌정을 왜곡한 것!!


1971년에는 박정희와 대결하게 되는 인물들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들이 등장합니다.


이어 1979년 10월 16일 유신정권 반대를 위한 민주화운동, 부마민주항쟁에 이어


1979년 10.26 사태라고 불리는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이 발생하고

 

 

 유신체제가 드디어 몰락하게 되죠.


하지만 그 틈을 노리고 1979년 같은 해 12.12 사태.... 전두환 군사 반란이 벌어집니다.

 

 

 (부글부글....;;)


육군사관학교 11기를 중심으로.


박정희는 또 육군사관학교 출신 김종필과 8기를 중심으로. ㅜㅜㅜ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조치가 내려지고 사실상의 쿠데타.


박정희는 없지만 유신 체제를 계승했던 전두환.


바로 어제 12.12 40주년을 기념해서 그 일당들이

 

 

자축했다는 보도를 보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꼭 세상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한.....


비상계엄 확대조치 이후 바로 다음날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이어졌고 수많은 희생자들이 ㅜㅜㅜ


1987년 6.29 민주화 선언으로 인해 대통령 직선제를 기본으로 하는 헌법이 개정됩니다.


당시 헌법 개정을 주도했던 정치인들은 유신 이전 상태로의 회귀를 민주화로 생각해서


안타깝게도 미래지향적인 헌법은 아니었어요.


이때가 9차 개정이었고 지금까지 현행 헌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 개헌에 힘을 싣긴 했지만 그냥 주저 앉은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해요.

 

특정 이익 집단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긴 했지만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은 많이 바뀌었고 분명히 섬세하게 헌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과거 한국의 정치적 지도자들에 대해서 저는 단편적인 것들만,

 

 

연결고리가 헐렁한 상태로만 알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이 책이 유기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했어요.


뭔가 막혔던 것이 조금은 뚫린 기분.^^


당시의 상황을 책을 통해 읽으면서 화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런 과거를 잘못을 돌아보면서 성찰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꾀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들이 이런 책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이슈가 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핵심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서 아주 유익했습니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지역주의에 의한 정당정치, 파행만 이어지는 의회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선거제도 역시 이번에 바꿔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불순한 이익집단들 정말 다음 총선에서 아웃시켜야 하는데.....!!!

 

볼수록 정말 ​"한국 정치에 대한 교양서" 맞아요.


그래서 꼭 이 책을 읽고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것을 인식하게 되고 바꾸려는 의지가 생길테니까요.


 

 

우리나라 정당의 계보가 나왔을 땐 유레카~~~^^


정당마다 찾더라도 한 눈에 보기 쉽게 정리된 자료를 찾는 것도 엄청 발품 팔아야 할 거 같아서요.


 

 

구약 성서에 나온 바다 괴물의 이름을 통치권자에 비유해서 지은

 

 

<리바이어던> 의 저자 토마스 홉스는


국가나 정치가 존재하지 않았던 자연상태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이고, 약탈과 다툼이 벌어지는 무질서의 상태.


홉스는 국가란 이런 자연상태에서 시민들 각자가 자신의 권리 중 일부를


포기한 결과 만들어진다고 보았어요.


시민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의 일부를 대표자에게 위임하고,


위임받은 자는 정치적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도록 하는 사회계약을 맺는다는 것.


홉스는 이를 "국가의 탄생" 이라고 했습니다.


국가가 탄생하고 나면 구성원 모두는 질서가 유지되고 갈등과 다툼을 제도화해


사회를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가 줄 수 있는 기능이고


현재 살기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정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다양한 이해관계,

 

 

가치의 충돌들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럴 때 바로 정치의 기능이 발휘되어 우리의 삶이 법과 질서에 의해


평화롭게 영위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며


21세기북스 서가명강 시리즈 8번째 책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강추합니다.^^


권력을 담당한 자들의 선의나 그들의 준법정신에 의존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예요.


올바른 관행이 많아지도록 제도와 절차를 탄탄하게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 읽어볼 책이 아니라 꼭 읽어봐야 할 책이예요!!!


책이 책을 부른다고,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을 읽고 나서 읽고 싶어진 책이 생겼어요.


계속 미루던 책, 이번에는 꼭  <리바이어던> 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 출간 10주년을 기념하는 리커버 특별판이 있는데

그 많은 소설들 중에서 선택된 10종중 <숨그네> 가 들어 있네요.

소설을 사랑하지만 세계문학을 특히나 애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예쁘게 나오기까지 했는데 일독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 ㅋㅋ​

 

루마니아 출신 헤르타 뮐러가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혼자 쓴 소설은 아닙니다.

헤르타 뮐러의 조국 루마니아는 1세기에 로마 제국에 정복 당한 후

13세기 경에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9세기 후반까지 오스만 제국의 간접 지배를 받았던 나라더라구요.

유럽의 남동부에 있는 루마니아가 한국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별로 없다보니 저도 이번에 살짝 조사를.^^

이 나라의 역사부터 알고 봐야 <숨그네> 의 탄생배경까지 연결이 되거든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흐름 속에서 루마니아는 독일, 이탈리아와 근접해진 여파로

1940년 안토네스쿠 장군에 의한 독재 체제, 파시즘 정권하에 들어섭니다.

1944년 독재자 안토네스쿠는 체포되어 처형당하고 소련에 항복한 루마니아는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줄것을 요구합니다.

17세부터 45세 사이의 독일계 루마니아인들, 남녀를 불문하고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가게 되는데 이 속에는 헤르타 뮐러의 어머니,

그리고 <숨그네> 를 함께 쓰다시피 한 작가의 동료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있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때쯤 세계 곳곳에서 격동의 시간들을 보내게 되는데

독일에 사는 루마니아인들도 참전을 ​하지 않았지만 강제추방을 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었더라구요.

이 당시 강제수용소에 이송되는 사람들이 유대인들만 있던 건 아니었다는,


드러나는 것만 알고 있었던 제 지식의 부족함을 한번 더 느낍니다.^^;;​

힘이 없는 국가의 국민들은 이렇게 인권을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네요, 어디에서나......

​마음 아픈 현실, 과거의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되뇌이며

이렇게 문학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들, 후대에게 물려줄 유산에 대해

깊은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겠죠.

재미에 더해 그런 작은 사명감까지 더해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를 읽었습니다.


​1953년생 헤르타 뮐러는 어린 시절 과거 루마니아 독재정권 속에서


침묵하고 불안해하며 공포를 느껴야 했던 시골 마을의 분위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성장했어요.


두려움으로 인해 금기시 되었던 수용소 시절 강제추방을 당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알게 된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 로부터


실제 우크라이나 강제수용소로 레오처럼

 

17세의 나이에 5년간 강제 노역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게 됩니다.


시인이 하는 말을 받아 적으며 소설을 완성한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는


그래서 상징과 은유가 담겨 있는 소설의 면면을 볼 수 있어요.


헤르타 뮐러에게는 <숨그네> 를 쓰게 된 것은 거의 "숙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침묵하는 것마저 고통이 되었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외쳐야만 조금이라도 그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헤르타 뮐러의 기록이

 

 

 

 

 

 

 

 


소설 <숨그네> 로 탈바꿈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전쟁중인 1945년 1월 15일 새벽 3시,


17세 소년 레오는 러시아행 명단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소련의 요구로 17세부터 45세까지 남녀 불문하고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은


소련 우크라이나 강제수용소로 강제추방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강제추방되는 이 상황이 결코 반가운 건 아닌데 레오는

 

 의외로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너무 나쁜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이라는 레오의 바램은 이 때뿐이었지만요.


가족들은 걱정하지만 사실 레오는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으로


 돼지가죽으로 만든 축음기 상자 트렁크에 짐을 싸서 경찰들을 따라 새벽길을 나섭니다.


레오에게는 동성애자라는 비밀이 있었고


레오의 종족에게는 그것은 금지된 것이었고 수치였기에


레오는 가족들한테서 벗어나고 싶었던 상황이었죠.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레오가 바라는 적당히 자유로운 삶과는


정확하게 정반대 지점에 있던 인권유린과 탄압, 배고픔으로 인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견뎌내야 했던 크나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오에게는 당시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전한


"너는 돌아올 거야" 라는 한 마디는 앞으로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5년간


레오를 끝까지 지탱하게 해준 말이었어요.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자생력이 있다는 헤르타 뮐러의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레오가 사는 마을 사람들이 특별한 날이면 모이는 박람회장에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가축운반용 열차를 타고 어딘지로 모를 곳으로 떠납니다.


잠시 단체로 볼 일을 봐야 해서 기차가 멈추고 모두가 우루루 눈 위에서 수치스러움도 감당하며


열차가 자신만을 두고 떠나지 않기를 전전긍긍해야 했던,


생존 본능으로 며칠을 달려 강제수용소에 도착.


강제수용소의 생활은 정말 열악하고 참혹했습니다.


같은 수감자이지만 러시아인들의 말을 수용소 사람들에게 통역해 주며


자신은 우월한 존재임을 과시하는, 이런 부역자들이 꼭 있다니까요.ㅜㅜ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봐도 같은 수감자 입장이지만


그 안에서 나치당원들에게 붙어서 다른 수감자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도 표현하고 있죠.

평화로운 삶을 박탈당했던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특권을 누리는 자들은

꼭 존재한다는 사실도 달갑지 않지만 접하게 됩니다.


<숨그네> 에서는 그런 인물이 투어 프리쿨리치 였고,


1950년 1월에 수용소를 나온 후에 오스트리아에서 당시 수감자에 의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도끼에 찍혀 죽었다는 그의 죽음은 한편 씁쓸하게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죠.


눈을 감고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운명의 여신이 이번에는 응징을 해준거 같기도 하구요.

레오와 함께 수감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강제수용소 생활이 그려지고 있는데, 전체 흐름을 큰 맥락에서 보여주기 보다는

강제수용소의 참상의 ​부분 부분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보여주듯 세밀하게,

레오의 심리도 내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레오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현실적으로, 때로는 꿈 속에서


레오의 목소리를 통해 헤르타 뮐러는 "박탈당한 인간의 삶의 풍경" 에 대해


소설 <숨그네> 에서 끊임없이 사유합니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수용소 사람들은


황폐한 환경, 배고픔, 소련의 강추위, 향수병과 싸우며 때로는 버티며 살아가야 했어요.


배고픈 천사가 발작하여 우리 주변을 맴돌고


타인의 배고픔을 나눌 수조차 없는 뼈와가죽의시간이 오고,


남녀의 구분이 없어지며 점점 성은 퇴화되어 간다고도 표현하고 있을 정도.


손가락 두개 만한 널빤지로 밑창만 나무로 만든 나무신으로 6개월은 버텨야 했고


고무덧신은 수용소 사람들에게는 사치였어요.


설탕과 소금은 이미 그곳에서는 귀중품이 되었고


양배추수프만 먹던 "뼈와가죽의시간"도 견뎌내야 했습니다.


인간을 인내의 한계로 몰고 가는 수용소 상황을 헤르타 뮐러는


"실존의 절대영도" 라는 키워드로 표현하고 있고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수용소들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현재 존재하는 세계로 생각을 옮기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듯!!


뼈와가죽의시간, 수용소의 삶을 살면서도 레오가 놓을 수 없는 것,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었고 우연히 러시아인 마을로 나가 구걸을 하면서


석탄 판매를 하다가 방문하게 된 늙은 러시아 인에게 받은


손수건이 레오에게는 희망이 되어 자리하게 됩니다.


러시아 인이 레오에게 손수건을 준 것은 자신의 아들도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났고


레오를 마치 자신의 아들로 여기며 응원의 메시지를 준 것이 아닐까.....


두 명의 강제추방자가 된다는 것은 레오에게 버거운 일이긴 하지만


이를 계기로 레오는 귀향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손수건을 소중히 여기며


먹을 것과 충분히 바꿀 수 있음에도 손수건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두려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다가 무심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는데


이렇게 되면 정말 마지막 희망까지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용소 상황도 마침내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죽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1949년 마지막 겨울이 되어서는 러시아인 마을의 극장에서


수용소 사람들을 위한 영화와 주간뉴스도 볼 수 있게 되었고,


노동에 대가로 임금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으며,


물물 교환 장터에서 물건도 살 수 있는.....

 

점점 정상적인 생활, 정상적인 영양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시 두번째 사춘기를 맞이하는 남자와 여자로 돌아와


수용소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도 태어나게 되구요.


 

소설 제목 <숨그네> 처럼 헤르타 뮐러와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만들어낸 언어들이


곳곳에 볼드체로 등장하는 것도 독특했어요.


파고다, 귀부인, 피아노, 배고픈 천사, 심장삽, 감자인간, 양철키스, 볼빵..... 


시인의 이야기를 옮겨 적은 이 소설 속에는 이렇게 은유의 언어들이 있어서


술술 읽혀지지 않은 지점들도 있었지만 이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작의 면면이 아닐까요!!


"숨그네" 는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흔들리는 것을 상징하는, 작가가 만든 말.


전체주의의 횡포로 인해 공포에 떨며 살아야했던 나약한 개개인들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 자신만의 '손수건' 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손수건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었던 레오처럼


여러분에게도 손수건이 있냐고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에서 말했던 헤르타 뮐러.

​보이는 것은 레오를 중심으로 전쟁으로 인해

 

소중한 삶을 박탈당한 강제수용소 사람들의 참상이지만

보이지 않게는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 자유로움을 향한 저항과 투쟁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글을 쓰고 비밀 경찰의 탄압과 감시를 피해


독일로 망명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자유를 찾아 떠난 헤르타 뮐러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로 11.5cm 세로 20cm 가 채 되지 않는 200페이지 남짓 분량의


김사과 작가 중편소설 <0 영 ZERO 零> 을 만났습니다.


뜻하는 것은 하나로 통일되는데 이렇게 쓰기 불편하고 어려운 제목도 없네요. ㅋ


숫자와 한글, 영어, 한자가 모두 들어가 있는


작가정신 소설향 중편소설 시리즈가 리뉴얼 되었음을 알리는 첫번째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몰랐는데 더듬어 보니 이미 1998년도에 이미 시작된 시리즈이고


유명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던 소설향 시리즈더군요.


리뉴얼 되면서 앞으로도 주목받는 소설가들의

 

 

소설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예고편으로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박완서 작가님을 오마주한 <멜랑콜리 해피엔딩> 에 참여했던 작가 이름도 보이네요.

 

김사과 작가 역시 이 소설에 짧은 소설, 콩트를 냈는데

 

제겐 존재감있게 다가오지 않았나 봅니다.

 

지금 다시 리뷰를 보니 별다른 언급이 없었네요.^^;;


하지만 이번 소설을 통해서는 김사과 작가의 존재감, 분명히 생겼습니다!!

 

 

 

 

 

 

제목부터 예측이 잘 안되는 김사과 작가의 소설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뒤에 부록으로 들어 있는 김사과X황예인 대담을 먼저 봤어요.


어찌보면 소설의 스포가 될 테지만 그냥 이렇게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소설을 읽을 때 자기만의 룰이 다들 있겠지만


저는 책 마다 느낌이 닿는대로 읽는 편이라서요.....^^


어찌 보면 너무 헤매고 싶지 않은 생각, 왠지 헤맬 것 같은 선입견이 생겨버려서


라고 하겠습니다......


작가정신 소설은 가끔 난해한 소설들을 만나게 되었던 그 간의 경험 때문이라고도 할께요.


읽고 나니 제 의도대로 좀 덜 헤매면서 읽을 수 있었어요.


제 선택은 결국 성공한 걸로~~~!


이건 물론 각자의 선택입니다. ㅎㅎㅎ


"텅빈 세계, 맹독성의 구원자" 라는 대담 제목은 책을 완독하고 나니까 좀 알겠구요.


 

이번에 만난 김사과 작가의 소설은 제게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견고한 틀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왠만하면"  도덕적, 윤리적 관념 안에서 해석하려고 했고


그것이 불편함을 주지 않아서 유지하려고 했던 내 현상 해석의 습관들.....!


주인공 "나" 의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전형적 인물이라고 보긴 어려운데


나도 모르게 설득되어지는 느낌을 받아요.


내 안에도 주인공 "나"처럼 소시오패스적인 면이 있어서일까 잠시 흔들리고 섬뜩하기도 하지만.....


김사과 작가가 탄탄하게 소설을 구성했다고 하겠습니다.^^


세상은 잡아먹는 인간들과 잡아먹히는 인간들, 두 종류로 구성되어 있고


그 진리를 충실히 따르면 강해진다고 믿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 주인공을 보면서


충분히 소설 속에서 그런 행동방식을 보일 수 있다고,

 

 

독자로서 주인공의 행동이 타당해 보이기도 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이 일인칭 시점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불편했는데

 

 

희한하게 읽히는 것은 울퉁불퉁하지 않았던.


 소설 구성의 짜임이 나쁘지 않다고.....


이런 소설 구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소설 읽기의 매력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던


김사과 작가의 중편소설 <0 영 ZERO 零>.

 

 

소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장르라고 어디서 들었는데요. ㅎㅎㅎ


김사과 작가의 소설에서 그것을 분명히 경험합니다.


소설가는 질문을 던지고 독자는 그냥 글자를 단순히 읽어나가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소설 속 내용, 기법을 파악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내 생각의 틀, 견고하게 자리잡은 고정관념을 기분좋게 건드리고 흔들고 마침내 깨부수는 과정이


개인적 성장에는 훨씬 더 유익한 것이 아닐까요.....


분명 저도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도덕적인 잣대로 바라보게 하고


내가 정해둔 인간형 그 이상의 다양함도 있다는 것을, 고정관념에 균열이 생겼거든요.


틀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저의 세계관은 전과는 다르게


좀 더 확장되고 깊어지지 않을까요.


하나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것을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실험이 필요할까?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즉, 누구를 잡아먹을 것인가? 어떻게?


주인공 "나" 는 독일 문학을 전공한 명문대 출신의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고

 

소설의 시작부터 4년 남짓 연애 기간을 가졌던 남자 성연우가 등장합니다.


암 때문에 교양 강좌를 주인공에게 내어 주어야 했던 같은 학교와 같은 학과의 이민희가 있고,

 

아버지 회사의 파견 근무로 ​유럽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 알리스 청이라 불리는 주인공에게

한국계 독일인 남자 김명훈 또는 피터 슐츠라고 불리는 친구가 있고,

 

이민희 대신 맡은 대학 강의에서 알게 된 박세영 이라는 제자가 있고,

 

주인공 나에게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주인공을 좀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들을 두고 말하는 "나" 의 발언들은 저로선 충격적이면서도 실소를 자아내게 했던 대사들이....!!


이런 특징들을 포함해서 소설이 재밌어요 일단....ㅋ


주인공의 세계관은 문제적이고 이상했고 평범하지 않아서


이성적으로 이해하기에는 까다롭기는 했지만서도.


 



주인공 "나" 는 그래도 어린 시절 잘 나가는 알리스 청으로 살다가


크리스티나 라는 아이의 출연으로 세계관이 바뀌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듯 해요.


누구에게나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결정적인 변화를 갖게 하는 인물이 있는데


알리스 청에게 크리스티나가 그런 아이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런 결정적인 변화는 모두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는 걸, 좋은 사람만 있는건 아니라는 걸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했으니까요.


나는 가능한 빨리 세영이의 허여멀건 목에 이빨을 꼽고 신선한 피를 쪽쪽 빨고 싶을 뿐이었다!


........


식인종 또한 식인종에게 잡아 먹힌다.


세기의 식인종도 다른 식인종에게 잡아 먹히는 순간 쫑 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다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소설 속에서 자세한 설명이 주어지진 않았지만

 

흐름을 보면 주인공이 크리스티나에 의해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았어요.

 

크리스티나를 통해 얻은 진리를 소설에서 주인공은 타인들에게 이렇게 적용합니다.


실험하는 기분으로 더 멀리, 좀 더 높이 날려버리고 추락이 완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주인공은 그렇게 주변에 있는 타인의 에너지를 흡혈하면서 정작 의존하는 삶의 태도를 보이죠.


타인을 하나 둘 교란시키고 파괴시키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잡아 먹힐테니까요....

 

주인공이 선택한 이런 삶의 자세는 결코 ​건강하지도 않고 공멸하는 것 같은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도 못하겠어요.....;;

​주인공은 강의를 하면서 알게 된 제자들 중 또래의 인간들 가운데서


자신이 특별하게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박세영의 오만함을 발견하고 접근합니다


흡혈할 대상을 찾은 것일수도.....


박세영의 허영심을 주인공은 발견했고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잡아먹음으로써


구원자를 자처하겠다는 주인공의 세계관.....!!


이렇게 "투명한 학살" 을 자행하는 부류도 있다고 독자에게 동조를 구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독자에게 말걸기' 순간들은 간혹 등장하고 독자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소설이 참 독특했는데 흥미롭기도 했다고 할까요?^^

주인공이 누군가의 구원자라고 생각하며 만나게 되는 타인들로 소설 속에서


김명훈, 박세영, 그리고 어머니가 나오는데요.


이들은 정말 주인공이 구원해준 대상인지,

 

 

아니면 주인공의 희생자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부분인거 같구요.


주인공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벌어주는 돈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던 존재로 그려집니다.


사춘기 이후로 집안 일도 주인공이 다 했을 정도로 허약했고


그 허약함은 주인공을 낳으면서 얻게 되었다고 하는데


주인공은 그런 어머니의 말을 자신에게 죄책감을 안기려는 술책이라고.


주인공 "나" 는 어머니를 나쁜 여자는 아닌데 한없이 무능하고 더럽게 운 좋은 여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어머니의 유일한 구원자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두고 주인공이 보여주는 행동에서 도덕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이 소설에서 가장 불편한 장면들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 둘이서 오붓하게, 똘똘 뭉쳐서 잘 살아간다는


이상적인 그림은 이 소설엔 없습니다.


최소한 주인공 "나"의 세계관으로는 어머니가 살면서 보여준 모습을 봐도 그렇고


홀로 된 어머니가 경제적인 자립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하고도 다소 패륜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거든요.


 인륜이라면 그렇다 치더라도 천륜까지 주인공의 세계관은

 

 

다를바가 없다는 지점은 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도 요즘들어 적잖이 하게 될 때


주인공의 행동방식이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더라구요.


모든 부모가 희생적이지도 않고 모든 자식이 효도해야 한다는 것도

 

 

태초부터 없었던 건 아닌가 싶거든요.


서로 어울려 살아가면서 질서있는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형성되어진 것일 뿐.


주인공의 어머니는 분명치 않지만 딸의 귀에 대고 '악마' 라고 말한 듯 한데


어머니의 재산과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산 모두 주인공이 손에 넣고


어머니는 작은 살 집을 얻어주고 동부이촌동에 아파트를 구입한 주인공의 행동은


정말 악마적 행동을 한 것인가.....


먹고 먹히는 힘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보는 주인공의 관점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이 살아온 삶과 비슷하게 살았던 다른 누구라도 충분히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주인공의 행동이 타당했다기 보다는 내 사고방식만으로 고정된 틀 속에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세상을 좁게 바라보는 것인가 싶은 생각을 해봤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나는 과연 이 생각에서 자유로울까.......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에게 죄책감들을 선사함으로써 나 자신은 깨끗해지고


주변 존재들은 파멸시키고 싶었던 주인공 "나".

 

​먹고 먹힘으로써 결국은 0, 제로, 아무것도 없다, 텅 비어 있다는 김사과 작가의 결말은


인간의 삶이 더 나쁜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주인공처럼 흡혈하고 기생적인 세계관 속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형을 가질 것인가, 해악을 많이 끼치는 인간형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또 한번 진중한 선택을 묻는 것 같아요.



기존의 사고의 틀을 전복시키는 문장들이 많아서 읽다가 멈추고 읽다가 또 멈추게 만드는


김사과 작가의 소설 속 문장들 하나 남겨봅니다.



 

알다시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모든 것은 네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죄다 네 탓이라는 말이다.


네 인생이 불행한 것도, 네 인생이 행복한 것도, 네가 산 채로 쭉쭉 빨리는 기분이 드는 것도,


네가 생선 가게로 가득한 천국의 고양이라 스스로 느끼는 것도 전부 다,


너 자신에게 달렸다.


-p. 100-




인간들은 사랑을 하고, 증오를 하고, 질투를, 그리움을 갖기도 하고


야망을 갖기도 하며 그에 따른 일련의 좌절을 겪는다.


하여 훨훨 날기도 하고, 하루 아침에 고꾸라지기도 한다.


아주 온갖 지랄들을 한다.


하여 온갖 일에 써 먹을 수가 있는 요상한 생명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도시에는 흘러 넘친다.


......


그것들을 제대로 사용해본 적도 없으면서 인생의 불운함을 한탄하는 것은,


가득 쌓인 생수를 바라보며 목이 말라 죽어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멍청함이다.


-p. 101-





인간과 삶에 대한 나만의 이론을 정립했다.


......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 삼킨다.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 아시죠?


각자 정립해가고 있는 세계관을 허무는 책을 만났을 때


당황스럽지만 동시에 신선한 충격이 되어 인상적인 책으로 다가온다는 것.


이번에 만난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 이 그러했습니다.^^


김사과 작가의 소설도 앞으로 관심있게 볼 계기를 만들어준 작가정신의 소설향 시리즈였어요.


맹독성 있는 인간의 모습, 신선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