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로 11.5cm 세로 20cm 가 채 되지 않는 200페이지 남짓 분량의


김사과 작가 중편소설 <0 영 ZERO 零> 을 만났습니다.


뜻하는 것은 하나로 통일되는데 이렇게 쓰기 불편하고 어려운 제목도 없네요. ㅋ


숫자와 한글, 영어, 한자가 모두 들어가 있는


작가정신 소설향 중편소설 시리즈가 리뉴얼 되었음을 알리는 첫번째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몰랐는데 더듬어 보니 이미 1998년도에 이미 시작된 시리즈이고


유명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던 소설향 시리즈더군요.


리뉴얼 되면서 앞으로도 주목받는 소설가들의

 

 

소설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예고편으로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박완서 작가님을 오마주한 <멜랑콜리 해피엔딩> 에 참여했던 작가 이름도 보이네요.

 

김사과 작가 역시 이 소설에 짧은 소설, 콩트를 냈는데

 

제겐 존재감있게 다가오지 않았나 봅니다.

 

지금 다시 리뷰를 보니 별다른 언급이 없었네요.^^;;


하지만 이번 소설을 통해서는 김사과 작가의 존재감, 분명히 생겼습니다!!

 

 

 

 

 

 

제목부터 예측이 잘 안되는 김사과 작가의 소설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뒤에 부록으로 들어 있는 김사과X황예인 대담을 먼저 봤어요.


어찌보면 소설의 스포가 될 테지만 그냥 이렇게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소설을 읽을 때 자기만의 룰이 다들 있겠지만


저는 책 마다 느낌이 닿는대로 읽는 편이라서요.....^^


어찌 보면 너무 헤매고 싶지 않은 생각, 왠지 헤맬 것 같은 선입견이 생겨버려서


라고 하겠습니다......


작가정신 소설은 가끔 난해한 소설들을 만나게 되었던 그 간의 경험 때문이라고도 할께요.


읽고 나니 제 의도대로 좀 덜 헤매면서 읽을 수 있었어요.


제 선택은 결국 성공한 걸로~~~!


이건 물론 각자의 선택입니다. ㅎㅎㅎ


"텅빈 세계, 맹독성의 구원자" 라는 대담 제목은 책을 완독하고 나니까 좀 알겠구요.


 

이번에 만난 김사과 작가의 소설은 제게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견고한 틀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왠만하면"  도덕적, 윤리적 관념 안에서 해석하려고 했고


그것이 불편함을 주지 않아서 유지하려고 했던 내 현상 해석의 습관들.....!


주인공 "나" 의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전형적 인물이라고 보긴 어려운데


나도 모르게 설득되어지는 느낌을 받아요.


내 안에도 주인공 "나"처럼 소시오패스적인 면이 있어서일까 잠시 흔들리고 섬뜩하기도 하지만.....


김사과 작가가 탄탄하게 소설을 구성했다고 하겠습니다.^^


세상은 잡아먹는 인간들과 잡아먹히는 인간들, 두 종류로 구성되어 있고


그 진리를 충실히 따르면 강해진다고 믿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 주인공을 보면서


충분히 소설 속에서 그런 행동방식을 보일 수 있다고,

 

 

독자로서 주인공의 행동이 타당해 보이기도 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이 일인칭 시점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불편했는데

 

 

희한하게 읽히는 것은 울퉁불퉁하지 않았던.


 소설 구성의 짜임이 나쁘지 않다고.....


이런 소설 구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소설 읽기의 매력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던


김사과 작가의 중편소설 <0 영 ZERO 零>.

 

 

소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장르라고 어디서 들었는데요. ㅎㅎㅎ


김사과 작가의 소설에서 그것을 분명히 경험합니다.


소설가는 질문을 던지고 독자는 그냥 글자를 단순히 읽어나가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소설 속 내용, 기법을 파악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내 생각의 틀, 견고하게 자리잡은 고정관념을 기분좋게 건드리고 흔들고 마침내 깨부수는 과정이


개인적 성장에는 훨씬 더 유익한 것이 아닐까요.....


분명 저도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도덕적인 잣대로 바라보게 하고


내가 정해둔 인간형 그 이상의 다양함도 있다는 것을, 고정관념에 균열이 생겼거든요.


틀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저의 세계관은 전과는 다르게


좀 더 확장되고 깊어지지 않을까요.


하나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것을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실험이 필요할까?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즉, 누구를 잡아먹을 것인가? 어떻게?


주인공 "나" 는 독일 문학을 전공한 명문대 출신의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고

 

소설의 시작부터 4년 남짓 연애 기간을 가졌던 남자 성연우가 등장합니다.


암 때문에 교양 강좌를 주인공에게 내어 주어야 했던 같은 학교와 같은 학과의 이민희가 있고,

 

아버지 회사의 파견 근무로 ​유럽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 알리스 청이라 불리는 주인공에게

한국계 독일인 남자 김명훈 또는 피터 슐츠라고 불리는 친구가 있고,

 

이민희 대신 맡은 대학 강의에서 알게 된 박세영 이라는 제자가 있고,

 

주인공 나에게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주인공을 좀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들을 두고 말하는 "나" 의 발언들은 저로선 충격적이면서도 실소를 자아내게 했던 대사들이....!!


이런 특징들을 포함해서 소설이 재밌어요 일단....ㅋ


주인공의 세계관은 문제적이고 이상했고 평범하지 않아서


이성적으로 이해하기에는 까다롭기는 했지만서도.


 



주인공 "나" 는 그래도 어린 시절 잘 나가는 알리스 청으로 살다가


크리스티나 라는 아이의 출연으로 세계관이 바뀌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듯 해요.


누구에게나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결정적인 변화를 갖게 하는 인물이 있는데


알리스 청에게 크리스티나가 그런 아이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런 결정적인 변화는 모두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는 걸, 좋은 사람만 있는건 아니라는 걸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도 했으니까요.


나는 가능한 빨리 세영이의 허여멀건 목에 이빨을 꼽고 신선한 피를 쪽쪽 빨고 싶을 뿐이었다!


........


식인종 또한 식인종에게 잡아 먹힌다.


세기의 식인종도 다른 식인종에게 잡아 먹히는 순간 쫑 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다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소설 속에서 자세한 설명이 주어지진 않았지만

 

흐름을 보면 주인공이 크리스티나에 의해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았어요.

 

크리스티나를 통해 얻은 진리를 소설에서 주인공은 타인들에게 이렇게 적용합니다.


실험하는 기분으로 더 멀리, 좀 더 높이 날려버리고 추락이 완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주인공은 그렇게 주변에 있는 타인의 에너지를 흡혈하면서 정작 의존하는 삶의 태도를 보이죠.


타인을 하나 둘 교란시키고 파괴시키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잡아 먹힐테니까요....

 

주인공이 선택한 이런 삶의 자세는 결코 ​건강하지도 않고 공멸하는 것 같은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도 못하겠어요.....;;

​주인공은 강의를 하면서 알게 된 제자들 중 또래의 인간들 가운데서


자신이 특별하게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박세영의 오만함을 발견하고 접근합니다


흡혈할 대상을 찾은 것일수도.....


박세영의 허영심을 주인공은 발견했고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잡아먹음으로써


구원자를 자처하겠다는 주인공의 세계관.....!!


이렇게 "투명한 학살" 을 자행하는 부류도 있다고 독자에게 동조를 구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독자에게 말걸기' 순간들은 간혹 등장하고 독자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소설이 참 독특했는데 흥미롭기도 했다고 할까요?^^

주인공이 누군가의 구원자라고 생각하며 만나게 되는 타인들로 소설 속에서


김명훈, 박세영, 그리고 어머니가 나오는데요.


이들은 정말 주인공이 구원해준 대상인지,

 

 

아니면 주인공의 희생자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부분인거 같구요.


주인공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벌어주는 돈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던 존재로 그려집니다.


사춘기 이후로 집안 일도 주인공이 다 했을 정도로 허약했고


그 허약함은 주인공을 낳으면서 얻게 되었다고 하는데


주인공은 그런 어머니의 말을 자신에게 죄책감을 안기려는 술책이라고.


주인공 "나" 는 어머니를 나쁜 여자는 아닌데 한없이 무능하고 더럽게 운 좋은 여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어머니의 유일한 구원자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두고 주인공이 보여주는 행동에서 도덕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이 소설에서 가장 불편한 장면들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 둘이서 오붓하게, 똘똘 뭉쳐서 잘 살아간다는


이상적인 그림은 이 소설엔 없습니다.


최소한 주인공 "나"의 세계관으로는 어머니가 살면서 보여준 모습을 봐도 그렇고


홀로 된 어머니가 경제적인 자립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하고도 다소 패륜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거든요.


 인륜이라면 그렇다 치더라도 천륜까지 주인공의 세계관은

 

 

다를바가 없다는 지점은 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도 요즘들어 적잖이 하게 될 때


주인공의 행동방식이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더라구요.


모든 부모가 희생적이지도 않고 모든 자식이 효도해야 한다는 것도

 

 

태초부터 없었던 건 아닌가 싶거든요.


서로 어울려 살아가면서 질서있는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형성되어진 것일 뿐.


주인공의 어머니는 분명치 않지만 딸의 귀에 대고 '악마' 라고 말한 듯 한데


어머니의 재산과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산 모두 주인공이 손에 넣고


어머니는 작은 살 집을 얻어주고 동부이촌동에 아파트를 구입한 주인공의 행동은


정말 악마적 행동을 한 것인가.....


먹고 먹히는 힘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보는 주인공의 관점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이 살아온 삶과 비슷하게 살았던 다른 누구라도 충분히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주인공의 행동이 타당했다기 보다는 내 사고방식만으로 고정된 틀 속에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세상을 좁게 바라보는 것인가 싶은 생각을 해봤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나는 과연 이 생각에서 자유로울까.......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에게 죄책감들을 선사함으로써 나 자신은 깨끗해지고


주변 존재들은 파멸시키고 싶었던 주인공 "나".

 

​먹고 먹힘으로써 결국은 0, 제로, 아무것도 없다, 텅 비어 있다는 김사과 작가의 결말은


인간의 삶이 더 나쁜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주인공처럼 흡혈하고 기생적인 세계관 속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형을 가질 것인가, 해악을 많이 끼치는 인간형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또 한번 진중한 선택을 묻는 것 같아요.



기존의 사고의 틀을 전복시키는 문장들이 많아서 읽다가 멈추고 읽다가 또 멈추게 만드는


김사과 작가의 소설 속 문장들 하나 남겨봅니다.



 

알다시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모든 것은 네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죄다 네 탓이라는 말이다.


네 인생이 불행한 것도, 네 인생이 행복한 것도, 네가 산 채로 쭉쭉 빨리는 기분이 드는 것도,


네가 생선 가게로 가득한 천국의 고양이라 스스로 느끼는 것도 전부 다,


너 자신에게 달렸다.


-p. 100-




인간들은 사랑을 하고, 증오를 하고, 질투를, 그리움을 갖기도 하고


야망을 갖기도 하며 그에 따른 일련의 좌절을 겪는다.


하여 훨훨 날기도 하고, 하루 아침에 고꾸라지기도 한다.


아주 온갖 지랄들을 한다.


하여 온갖 일에 써 먹을 수가 있는 요상한 생명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도시에는 흘러 넘친다.


......


그것들을 제대로 사용해본 적도 없으면서 인생의 불운함을 한탄하는 것은,


가득 쌓인 생수를 바라보며 목이 말라 죽어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멍청함이다.


-p. 101-





인간과 삶에 대한 나만의 이론을 정립했다.


......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 삼킨다.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 아시죠?


각자 정립해가고 있는 세계관을 허무는 책을 만났을 때


당황스럽지만 동시에 신선한 충격이 되어 인상적인 책으로 다가온다는 것.


이번에 만난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 이 그러했습니다.^^


김사과 작가의 소설도 앞으로 관심있게 볼 계기를 만들어준 작가정신의 소설향 시리즈였어요.


맹독성 있는 인간의 모습,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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