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계절의 여행 - 인생의 여행길에서 만난 노시인과 청년화가의 하모니
나태주 지음, 유라 그림 / 북폴리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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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책 한 권이 나왔어요.

 

오랜만에 만나보는 시화집입니다.

 

그것도 나태주 시인이 참여한 북폴리오 신간 <서로 다른 계절의 여행> 을 만났어요.^^

 

책표지를 유라의 그림 중 하나를 골라 채웠는데

 

조금 아쉽다면 뒷표지처럼 앞표지도 무광으로 했으면 더 예뻤겠다는 생각이.....


걸스데이 멤버로만 알고 있던 유라가 알고 보니 울산예고 미술과 졸업에

 

이렇게 그림 실력이 좋은 줄 이번에 처음 알았지 뭐예요.^^

 

지금 시니가니 세대는 유라를 잘 모를 수도 있어서

 

이 책을 보여주면 화가가 사실은 과거에 아이돌이었다는 것이 

 

아마 연결이 안 될지도 모르겠네요.

 

유라로서는 참으로 영광일 것이 최근 2년간 유라가 직접 캔버스에 작업했던 그림들을 보고

 

나태주 시인이 모든 시를 다 새로 썼다는 것!

 

 "봄이 피고 여름이 흐르고 가을이 익고 겨울이 내리다" 

 

라는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번 시화집에서는 

 

유라의 그림을 보면 그 계절이 바로 연상되는 행복감을 선사해 줍니다. 

 

거기에 나태주 시인의 시가 더해져서

 

계절과 여행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완성품이 되죠!

 

책 속에 들어가 있던 멋진 유라의 그림들로 12달을 채우고

 

한 폭으로 연결한 2022년 캘린더는 덤입니다.^^

 

4계절과 여행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이번 시화집 속 나태주 시인의 시 중에서도

 

저는 "풍경" 이라는 이 시가 참 좋았어요.

 

여행이라면 저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특히 제주도의 경우 갈 때마다 늘 이방인인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나태주 시인이 제 맘 속을 다녀갔는지 딱 제 마음을 표현해 주셨더라구요.

 

인간과는 종이 다른 나무나 풀들과 물론 교감하는 데 있어서 한계가 있겠지만

 

마음으로 먼저 말을 거는 사교성을 발휘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하죠, 여행이라는 것은.

 

나는 여기에 와서 너무 좋은데 너희들도 좋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풍경이 나를 한 가족으로 받아줄 때

 

비로소 편안하게 숨도 쉴 수 있게 된다는 것!

 

현학적이거나 어렵지 않게, 우리의 일상어로도 충분히 감동을 주는 

 

나태주 시인의 시는 언제 봐도 참 마음이 훈훈해 집니다.

 

"풍경" 이라는 이 시가 어디 제 마음만 대변하는 시이겠습니까.....

 

저와 같이 공감하는 분들이 많으실 거 같아요.

 

이것이 바로 시의 보편성이 갖는 힘이겠죠!

 

똑같은 시를 보면서도 각자가 다 내 마음 같다고 느끼게 되는 것.^^

 

 

 


"너를 사랑함으로 하여

 

더욱 내가 순해지고 깊어지고

 

끝내는 구원받는 그 어떤 사람이고 싶은 것

 

이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이기도 하다."

 

 

 

똑같은 시를, 똑같은 사람이 보는데

 

왜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걸까?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한 줄이 왜 오늘은 더 가깝게 다가온 느낌이 드는 걸까?

 

개인적으로 늘 궁금했던 것이었습니다.

 

시란 그렇게 섬세하고도 내밀한 인간의 심리 그 어디에 닿아 있는 것인가 봐요.

 

그래서 함부로 못하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싶은 건가 봐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나태주 시인의 시와

 

유라의 아름다운 그림이 하나로 어우러진 멋진 시화집이었습니다.

 

왠지 여행지에 가면 조용한 동네책방에서 더 많이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서로 다른 계절의 여행>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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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 노르웨이 코미디언의 반강제 등산 도전기
아레 칼뵈 지음, 손화수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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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책을 읽은 적이 있던가?


블로그를 찾아 보니 제가 좋아하는 Take on me 의 가수 A-ha 가 노르웨이 출신이라는 글이 뜨네요.^^


"노르웨이 코미디언의 반강제 등산 도전기" 라는 부제로는


저자 아레 칼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가늠하기엔 부족하겠다 싶은 에세이였어요.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등산과 야외 활동이


이제는 대중적인 취미 활동이 되어버린 노르웨이인들의 모습을 


 때로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기도 하고


코미디언인 저자 특유의 유머가 더해진 문체가 가독성과 흥미를 높여줍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소음보다는 널찍하고 조용한 환경에 익숙한 사람.


새로운 일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단조로운 일상에 익숙하고 자연 속에서 자란 사람.


크로스 컨트리 스키 선수로도 활약했을 정도로 신체를 움직이는 일에도 익숙한 사람.


사람들이 많이 모인 도심의 중심가에서


목적지를 따로 생각지 않고 정처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저자 아레 칼뵈는 자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렇게 의문을 갖죠.


자연 속에서 등산, 스키, 스키 점프 등 자신도 이렇게 활동적인 것들을 즐겼던 경험이 있는데


나는 왜 자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까?


언젠가부터 펍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던 유머 감각이 풍부한 친구들이,


그리고 수많은 노르웨이인들이 산 사진을 찍거나 눈 위의 스키 자국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포스팅을 하고 있는 거예요.



#눈위에서맞는행복한아침, #자연이최고, #밖으로나가,


#소파에서내려와, #야외가최고, #자연속에서의삶이최고, #산정상, 


#집안에서멀뚱멀뚱바보되지않기, #ilovenorway,


#산꼭대기에서바지를벗은채하늘을향해두팔을뻗는것은행복을향한지름길



저자는 자신의 삶에 의문이 생길 때면 계시를 받는 듯


자연 속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살아가면서 삶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한 번쯤은 누구에게나 오는데


그럴 때면 사람들은 자연에 애정을 갖게 되는 된다고.


그런 순간은 저도 제주도 여행 중에 발견하긴 했었죠.^^


그런데 여기에서 코미디언 특유의 관점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유머 감각과 머리숱을 잃어버리는 시기에 등산을 시작한다는 것.


유머 감각과 머리숱이 동시에 사라진다는 생각까진 재밌게 받아들였는데


너무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듯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좀 다른 생각이 들기도.


사람에게 진지함이 있다고 해서 유머 감각이 사라진 것이라고 보는 게 맞는 건가 저로선 의문이 생기기도 하더라구요.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돌아가면 유머 감각을 상실한 것으로 보는 저자의 생각이


너무 이분법적인 시각 아닌가?  물어보고 싶더라구요.


유머 감각을 유지하는 삶에 대한 긍정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다른 면모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보이기도 하지만


기조가 강한 것은 아니어서 뭐 사람은 다 다를 수도 있다 가볍게 넘어갑니다.


일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서 살짝 불편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요.





등산을 하는데 이렇게 한 줄로 가는 노르웨이인들.


워낙 인기 있는 곳이어서 이런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나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향하는 사람들을 아레 칼뵈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들이 왜 자연을 좋아하는지, 친구들을 뺏긴 기분도 들고


한편 너무나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자신도 반강제적으로 등산을 감행하면서 펼쳐지는 에세이,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등산을 좋아하는 건 한국 사람들도 지지 않죠.


처음에는 타인의 욕망이 마치 자신의 것인 듯 착각해서 등산을 시작한다고 하지만


직접 경험해본 후에는 그 착각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계속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등산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가 전과 달라져서 지속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구요.


그 의미와 가치는 사람들마다 행복에 대한 만족도가 다르듯이 일정한 기준이나 잣대는 없다고 생각해요.


건강이나 외모 등 구체적인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솔직히 운동을 할 필요가 있냐고 에세이 초반에 저자가 묻기도 했는데


행복을 위해 건강을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도 있고,


등산이 자신의 외모를 업그레이드 하는데 잘 맞는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건강이나 외모를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 말고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서 벗어나 자발적 고립을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 중에 제주도 오름을 즐겨 찾는 저도 해당되겠네요.^^





산의 정상에 올라가서 이렇게 두 팔 벌려 환호하는 행동이 마치


종교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저자의 관점도 재밌었어요.^^


왜 믿어야 하는지 말로 설명하기는 참 어렵고 잘 모르겠는데


난 그냥 이 종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야외 활동이나 산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놓고 말할 경우,


사회 부적응자나 패배자로 간주될 확률이 크다고 해요.


저자의 말을 들어 보면 등산 애호가들과 종교인을 비교하는 저자가 이해되기도 하구요.


현대로 오면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소음을 발산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신을 찾는 대신 자연을 찾는다는 시각도 흥미로웠어요.


과거 종교의 영향력 만큼이나 자연이 지금은 개인을 세상과 타자로부터 자유롭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너무나 커진 현재를 보여주기도 하구요.





 

저자는 산에 빼앗긴(?) 자신의 친구들을 되찾을 수 있겠다는 바램으로 그들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합니다. 


나아가 노르웨이인들이 자연을 찾는 이유와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노르웨이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어요.


자연 속에 스며들면 나 자신이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등산을 시작했다는 아레 칼뵈는


이제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궁금해 지네요.^^


지금 내가 즐기고 있는 활동들이 나에게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인생의 의미가 과연 이것이 맞는 건지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허풍과 거짓말로 감추는 이들에게 저자는 코미디언답게 풍자의 도구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노르웨이인들이 생각하는 자연의 의미를 유쾌하게 파헤치는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심각하지 않게 다루고 있어서 가볍게 읽기 좋은 북하우스의 에세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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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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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어디까지나 존중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매우 인상적인 에세이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공이 깊은 분들의 에세이도 이따금씩 만나보긴 했는데

 

이번에 만나본 황정은 작가의 첫 에세이 <일기> 는 아주 찐~~하게 다가온 책이었어요.

 

포켓북 만큼이나 보통 책의 판형보다 작아서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읽기 좋게 생기긴 했는데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는 아주 꽉~ 차 있습니다.

 

읽다가 관심도 없고 몰입도 잘 안 되는 내용들이 있으면 보통 억지로 읽어내려 하지 않고

 

가볍게 넘어가는 편인데 그런 부분이 하나도 없었어요.

 

때로는 강력하게 말하고 싶은, 공유하고 싶은 이 사회의 메시지도 전하면서

 

어떨 때는 혼잣말 하듯이 가볍게 스리슬쩍 넘어가기도 하고.

 

황정은 작가의 책은 <연년세세> 연작소설이 처음이었고 이번 <일기> 라는 에세이가 두 번째 만남인데

 

가만 보면 황정은 작가의 문체가 듣기 싫은데 내 말 좀 들어보라고 억지로 붙잡아두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은.

 

그냥 제 느낌입니다. ^^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떤 날들의 기록이고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해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갈 수 있도록 '일기' 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라고.

 

독자들이 잘 피해갈 수 있도록 길까지 친절하게 열어 주긴 했지만

 

피해 갈건지, 그 길로 갈 건지는 뭐 어디까지나 독자 맘이니까요.^^

 

저는 '일기' 라는 제목보다도 #황정은 #에세이 # 창비  라는 해시태그가 더 크게 눈에 들어와서

 

피하기는 커녕 기꺼이 두 팔 벌려 안고 싶었습니다.

 

어떤 책들은 기대를 저버리곤 하지만 이번에는 저의 촉이 맞았어요.

 

기억에 남을 또 하나의 책을 만났습니다.

 

기억에 남는다는 건,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느 한 구석에 박히게 되었다는 것이라

 

이런 책을 만나게 되면 어딜 가나 추천하게 되거든요.

 

작지만 저에게는 소중한 책으로 오랫동안 소장하고 싶은 그런 책이 되었고

 

동시에 #황정은 이라는 이름도 이번 책을 만남으로 해서

 

저의 애정하는 작가 리스트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  

 

연작소설 <연년세세> 도 충분히 좋았는데 거기에 황정은 작가의 첫 에세이 <일기> 가 확실히 각인시켜 주는군요. 

 


누구든지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 감정들과 겹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되면

 

다른 누군가에게 끌리기 마련.

 

어떤 책을 만나든 겉표지를 꼼꼼히 살피는 습관 때문에 뒷표지에 있는 이 글을 가장 먼저 만났는데


황정은 작가의 첫 에세이 <일기> 를 제대로 읽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놓였다고 할까요?

 

최소한 이 책을 읽는 나의 시간이 아깝진 않겠어~ 라는 생각에.

 



당신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랐다.

 

지금도 당신의 건강,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황정은 작가의 말과 조금은 다르지만 결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저의 말은 이것입니다.

 

사람들과 헤어질 때도 다음을 기약하며.....

 

저랑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에서든 소통하는 모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모두들 무탈하기를.



그래야 우리의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까요.

 

또한 각자의 나날들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경의중앙선과 호수공원이 보이는 파주로 이사하고 나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허리 디스크 질환을 겪으며 건강이 매우 안 좋았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열심히 운동을 시작했다는 황정은 작가.

 

데드 리프트 90개, 스쿼트 60개, 플랭크 3분을 기본으로 하고 푸시업도 하고.

 

때로는 동네를 달리거나 산보도 하고. 

 

의식해서 호흡하고, 먼 것을 보고, 몸을 데우고 땀을 흘려 피를 잘 흐르게 하는

 

운동으로 작가 자신에게 가장 유효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걷기, 산책이라는데

 

저는 가만히 달리기라고 보태면서 읽고 있더라구요.^^

 

물론 저 역시도 와이드 스쿼트는 일상이고 달리다 보니 종아리가 두꺼워짐이 느껴져서

 

수시로 요가링을 끼고 집 안을 걸어다니긴 합니다 ㅋㅋ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탄생한 소설과 다르게

 

에세이는 온전히 그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 맞다는 걸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에세이 <일기> 의 시작이었어요.

 

황정은 작가는 이렇게 살고 있구나..... 그의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으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전체를 다 차지하면 사실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긴 해요.

 

다행히도 그렇지 않아서 끝까지 참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서

 

이 책의 독서에 투자한 저의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는 거.

 

소제목도 어쩜 읽기도 전에 그래서 무슨 얘기가 들어있을까? 호기심을 놓을 수 없게 참 잘 지었어요.

 

책마다 달라서 확신하긴 어렵지만 소제목 지분은 황정은 작가님일까, 편집자님일까?....

 

쿠키일기, 민요상 책꽂이, 흔..... 이건 뭐지? 싶었던 궁금증이 해소되었고

 

목포행 은 제가 예상했던 그것이 맞아서 같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P. 133

 

누군가는 세월호가 침몰한 장소가 진도 부근이니 모뉴먼트는 거기 설치하라고,

 

그것이 마치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공평한 의견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참사나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에 모뉴먼트를 세워 제대로 기억하고 

 

재발을 경고하는 일에 늘 소홀했던 이 사회의 사정을 생각하면 너무 순진한 의견이다.

 

나는 그런 의견들에서 어찌되든 알 바냐,

 

사라저버리라고 말하는 악의마저 느낀다.

 

세월호 침몰은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하고 끝난 사건이 아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진도와 안산에서 전국으로 이어지고 연결된 사건이므로

 

나는 산보하는 길에, 산보하는 길에도 그 기억들을 우리가 다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을 생각하고 다음을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 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습니까.

 

 

코로나 시국에 작가의 일상 또한 바이러스로부터 안녕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모든 활동들이 모두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작동하는 것은 아마도 작가적 관찰력이 아닌지.

 

관찰한다는 것에 대해서 전에는..... 말하자면 2018년 1월 나혼자 제주도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저 역시 관찰의 힘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드랬어요.

 

'새로운 나' 를 찾아,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고자 떠났던 제주도여행 이후로

 

저도 주변에 늘 있지만 사소하게 지나쳤던 모든 사람, 사물, 자연들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한발 더 가까이.....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보지 않고 좀 더 가까이.

 

나를 움직여 한 발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서 부터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된 것 같아요.

 

관찰한다는 것은 곧 관심을 갖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겠다는 것.

 

그렇게 황정은 작가는 자신의 첫 에세이 <일기> 가 사사로운 기록을 담았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들, 이 시간이 흐르고 있는 이 사회를,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삶을 영위해가는 사람들의 상처와 슬픔을 보듬으며 투박하지만

 

좀 더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고.

 

 지금, 여기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가만히 귓속말을 하는 거 같아요.

 

전에 없던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작가가 바라본 사람들의 불안감, 그 불안감이 증폭되어

 

서로를 혐오하고 구분 지으며 낙인 찍는 모습들을 가만히 대면합니다.

 

코로나 위기에 매우 취약한 사회적 안전망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드러나면서

 

어디에나 있는 혐오 문화를 작가의 일상과 잘 버무려내고 있어요, 그의 문장으로 어렵거나 추상적이지 않게.

 

이런 것이 필력인건가 ..... 싶습니다.^^

 

 

 

P. 17

 

혐오는 어디에나 있어. 내게도 있다.

 

나는 실은 많은 순간 내 이웃을 혐오하고 먹는 입을 혐오한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드러낼 권리가 내게는 없어.

 

그런 건 누구에게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에선 그걸 한다.

 

어디에나 있다.

.......

 

노래로 표정으로 말로 몸짓으로 혐오를 드러내면서, 혐오를 드러낼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P. 18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다뉴브> 엔 혐오를 드러내는 잔인성이 

 

특별히 잔인한 어느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 안에" 있다고 말하는 페이지가 있다.

 

그러므로 "외적 혹은 내적 법으로 적절히 막아내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 순간

 

약자를 찾아 난폭성을 발휘" 한다는 것이다.

 

 

 

 

P. 19

 

혐오를 드러낸 일화를 소개하며 <다뉴브> 의 화자는 말한다.

 

"그때부터 나는 힘, 지성, 어리석음, 아름다움, 비열함, 약함이란 것이,

 

빠르건 늦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상황이고 부분들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삶의 숙명이나 자신의 성격 탓으로 돌리며 이를 악용하는 사람은

 

한 시간이나 일 년 후 형언할 수 없는 똑같은 이유로 공격당할 것이다."

 

 

<다뉴브> 라는 책 당장 도서관에 가서 찾아봐야겠습니다!!!

 

 

 

황정은 작가와 주변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모두가 겪어야 했던 반강제적인 변화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차분하게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작가가 좋아하는 (저도 사실 가장 좋아하는 상상 속의, 아니 현실에 있는듯한 인물) 빨간 머리 앤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가정 폭력으로 상처입은 아이들을 사회가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작가적 시선으로 바라본 이 사회를 저 역시도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돋보이는 것은 역시 문장으로 표현해낸 몇 줄들이 곳곳에 깔려 있다는 것.

 

세상에 널려 있어서 너무 흔한 단어 하나, 사람들의 행동조차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고찰해온 작가의 머리 속을 탐험하는 기분.

 

또 하나, 작가에게 그리고 제게 빠질 수 없는 이야기거리는

 

 책이라는 물성이 누구에게 닿아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

 

"책을 벗삼아 지혜롭게" 살고 싶은 제 바램대로 내내 책을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인데요.

 

전자책을 가끔 읽는 짝꿍과 달리 저는 종이 한장 한장 넘기면서 몰입하는 그 재밌는 일을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어서 종이책이 영원하기를 늘 바라는 한 사람이거든요.

 

황정은 작가 역시 전자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종이책의 매력을 풀어놓더라구요.

 

하나같이 맞는 얘기를 그만의 문장으로 명쾌하게.^^

 

 

 

P. 93

 

이미 넘긴 책장과 남은 책장의 분량을 손으로 가늠하는 것도 독서의 과정인데

 

전자책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내게는 아무래도 매력적인 매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종이책은 각각 다른 두께와 촉감으로 손에 잡히는데

 

 전자책은 단일한 단말기나 전자기기의 '그립감' 으로만 남아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읽고 있는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책을 통해 또 다른 좋은 책을 만나는 행복은 제가 독서를 끊지 못하는 이유.

 

저의 관심을 사로잡는 책들과 조우할 수 있게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는 것도 보태야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도서관으로 <일기> 에서 접한 책들을 한꺼번에 들춰보러 가려구요.

 

황정은 작가처럼 저 역시도 선형 경험적 독서가가 아니라

 

자주 중단되는 방사형 경험적 독서를 추구하기에.^^

 

한번 들어간 책갈피는 한참 뒤에야 그 책에서 나올 수 있거나 아예 붙들리는 것도 같구요.

 

심지어 현재 잊고 있는 책갈피도 있을 거예요.....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는 저에게는 참으로 꿀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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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60

 

그래도 나는 자주 바란다고 말하고 믿는다고 말한다.

 

예컨대 당신의 건강을 바라고 사람의 선의를 믿고 굳이 희망하는 마음을 나는 믿는다.

 

믿어 의심치 않겠다는 믿음 말고,

 

희구하며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믿음이 아직 내게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엔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결코 쉽지 않았을,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내밀한 상처까지도 드러내며

 

자유롭고자 용기를 낸 황정은 작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자신의 사사로운 아픔을 읽을 독자들이 오해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고,

 

끝내 이해해 줄거라 믿었을 거라는 걸 저 또한 믿어요.^^

 

 

 

 

P. 130

 

조금이라도 인간이 덜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이 행성에 이롭다는 것을 알수록 그렇다.

 

 

 

 

 

작가가 글로 풀어낸 이야기와는 결이 다르겠지만

 

이 문장은 저에게 새벽배송, 총알배송 같이 빠름과 부지런함을 강요하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느라 개개인의 여유로운 삶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지금의 세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새벽에 식료품을 받아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기는 건 그래도 

 

충분히 양보할 수 있다 하겠지만 책을 굳이 아침에 배송해야 할 이유가 있을지......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한 사람이지만 개개인의 여유로운 삶이 박탈 당하는 

 

이런 사회 구조가 한편 걱정스럽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문장이었어요.

 

절벽이 없는 평탄하고 안정적인 삶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누군가의 애쓰는 삶이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구한다.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나며, 픽션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타인의 애쓰는 삶은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서로가 서로의 삶에 책임이 있어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많은 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마음.

 

하지만 그래도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어 살만한 세상입니다.

 

창비의 새로운 시리즈 에세이& 의 첫 에세이인 황정은의 <일기> 에는

 

좋은 구절들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영화 스포하듯 남겨도 되나 싶으면서도 담지 않을 수 없는.....

 

 

 

P. 164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에 과정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늘어간다.

 

 

 

 

 

P. 76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하는 작가라는 사람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을 것인데 

 

작가는 아마도.....모든 평범한 사람들, 아니 좀 더 사회적으로 아픈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고 

 

자신이 가진 균형감과 분별력을 기반으로 해석하여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구나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는 잘 정제된 글로써 책이라는 물성을 가진 것 안에 담아.

 

 

 

 

누군가의 사사로운 기록인 이 책을 읽으면서

 

추구하는 가치들을 비롯해서 어떤 상황에서 느낄 법한 감정들,

 

나아가 지나온 저의 나날들 속에 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어서 불편감은 커녕 공감하고 몰입하는 시간이었어요. 

 

물론 책이라는 것이 도끼가 되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것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래도 에세이는 누군가의 내밀한 감정과 생각을 다 드러내는 것이다 보니

 

이것 저것 다 나랑 달라~ 라는 느낌이 들면 과연 끝까지 읽는 것이 편할까도 싶은 겁니다.

 

작가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끼워 맞추려는 의도적인 접근은 언제나 

 

독서하면서 늘 경계해야겠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할 것이겠지만

 

이건 좀 ..... 경계는 고사하고 그냥 흠뻑~ 빠져들어 읽고 싶은 책이랄까.

 

더 찾아보고 싶은 책들이 생겼습니다.

 

지은이 황정은 이라고 인쇄된 책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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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욕망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니고 있다.

 

욕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는 순간 채워질 때까지 멈추지 못하고, 놓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경험하고,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지고, 


그런 다음에는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진다는 저자의 문장이 말이 되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저는 왜 이 책을 대충 읽고 책리뷰를 남기지 못하고


2주를 꼬박 들고 다니면서 이제서야 지각 리뷰를 남기는 것일까요.....^^;


(오늘까지도 스타벅스에 들고 와서 드디어 완독했다는.....)


그럴 수 없음에도 사람마다 완벽하게, 내 맘에 들게 마무리하고 싶은 욕망은 기저에 깔려 있고


저는 캐럴라인 냅 생애 마지막 에세이 <욕구들> 을 읽고 난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이 책을 붙잡고 쉽게 놓지 못하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인상깊게 읽은 몇 군데 문장을 인용해서 나의 경험과 생각을 보태어


풀어내다 보면 왠만한 분량이 나오기는 할테죠.


나름 오랜 시간 북리뷰를 쓰면서 터득하게 된 기술이라면 기술이 될 수 있으니!


하지만 저의 지혜의 샘을 넓혀준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은 저만의 욕심.


 변변치 않은 책리뷰이지만 제 글에 공감해주는 이웃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있기도 하고


정성들여 쓴 글로 인한 주체자로서의 자유와 만족감을 향한 욕구는 아니었을까.





현대 문명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의 내면, 그들의 말과 행위에 대해서


연구하고 고찰해가는 작가들의 강력 추천을 받았다는 띠지의 홍보 문구가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킨 


캐럴라인 냅의 생애 마지막 에세이 <욕구들> 입니다.


Appetites : Why Women Want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려온 저자는 


<욕구들> 안에 거식증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절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원고를 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폐암 진단을 받게 되고 2002년 42세의 나이에 일찍 삶을 마감하게 되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식욕, 성욕, 인정욕, 만족감에 대한 캐럴라인 냅의 섬세하고 예리한 성찰이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쌓여온 경험들과 가족과의 관계, 주변의 일상들과 잘 버무려진 글이었어요.


전체적으로 단순명료한 글이 아니어서 눈으로만 읽어가다가는 다시 뒤로 돌아가는 일도 몇 차례 있었지만


담담하면서도 차분하게 들려주는 듯한 문체 덕분인지 긴 문장도 몰입하면서 읽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삶에서 '충족하는 일'이란 참으로 까다로운 것이 된 이유를 캐럴라인 냅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시각 중심적이고 상업적으로 탐욕적이며 재빠른 해결책과 즉각적 만족을 지향하는 우리 문화가 

 

거의 모든 길목, 거의 모든 전선에서 충족에 대한 바람을 부채질하는 동시에

 

정의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정해둔 기준이나 타자의 총합이 갈망하는 것이 마치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모두 한 곳을 향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라 믿고 내달리지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한 번만 귀 기울여 보았으면 해요.


이 사회가 나를 향해 부추기는 것이 무엇인지, 내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피곤하다 할지라도


깨어 있음으로 인해 나의 중심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캐럴라인 냅이 고통스러워 했던 것처럼 아마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허함과 불안감, 외로움, 고립감, 자기혐오, 슬픔 속에 허우적댈지도 모를 일입니다.






쇼핑, 다이어트, 성적인 문제 등 여성이 씨름하고 있는 욕구 문제들은 


지금도 어디에서나 도처에 깔려 있지만 개개인의 말과 행위에서 드러나는 그 민감한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입 받아온 이 사회의 관념상 여성의 욕구는 처음부터 제한되었고 축소되어 있고


여성의 갈망은 억제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어 왔으니까요.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만, 범위까지만 허락해야 한다는 관념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생기게 되는 것.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서 사회가 만든 틀 속에 갇혀서 검열 당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더불어 타자를 불편해 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이기도 하구요.


저자는 이 책 안에 자신이 현재 고통스러워하는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자신의 인생 여정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참으로 용기가 필요한 지점인 거 같아요.






저자가 거식증을 겪게 된 그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들과의 관계, 특히 엄마와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자에게는 가족에게서 조건없는 사랑을 받아온 풍요로움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외로움이 더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듯 해요.


갓난 아기 시절에 쌍둥이 언니와 달리 건강하지 못할 거라는 유모의 어이없는 판단으로 


언니보다 묽은 분유를 먹어야 했던 경험을 털어놓을 때


어쩌면 자신의 허함이 이 때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포만이라는 개념을 박탈당한 생애 초기 저자의 경험이 슬픈 경험은 아니었을지 마음도 쓰이구요.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하는 시기이지만 그 때의 감정이 성인이 된 냅에게 남아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에 가족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이 세상 전부일텐데


캐럴라인 냅에게도 역시 인정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욕구의 핵심 대상이었을 거예요.


생애 초기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현재의 나를 형성했는지 들여다보는 계기를 심어주었습니다.


누구나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갈망하고 허기를 느꼈던 지점을 발견하게 될테니까요.


가장 공감이 되었고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이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당연스레 사랑이 충만할 거라고 신화처럼 굳게 믿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개개인에게 사랑보다는 상처와 아픔, 슬픔을 제공하는 근원지가 된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자처럼 상처가 남은 내밀한 속을 다 드러내어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마치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어서 두려울 수도 있는데


캐럴라인 냅의 용기 덕분에 저도 그동안 깊숙히 담아두기만 했었던 


가족에게서 받은 모든 사랑과 더불어 상처가 되는 부분까지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읽은 <욕구들> 에는 한 사람이 정말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개인에게 진정으로 충족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내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들여다 보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저자가 경험했던 가족과의 관계맺기와 허함과 갈망에 대한 감각들, 


자신이 허약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굶기를 통해 오히려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고


거식증이라는 불안감을 오히려 긍정할 수 있게 해주었던 굶기 강박이 주는 혜택이라는 지점은


캐럴라인 냅만의 삶에 대한 통찰이 더해져서 평범하지 않게, 새롭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가장 주체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음식 거부라고 믿었던


저자의 처절한 고민들을 들은 독자라면 누구나 다독여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요.


일상적으로 음식이란 것이 여자들을 초조하게 만든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저자는 자신에게 가혹한 음식 거부를 통해 일종의 소리 없는 항거를 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에서 자유를 느꼈음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먹는 것에 대해서 자기혐오가 내면화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에게도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발견하게 해줄 만한 책이 될 것입니다.





"자기 몸과 싸우는 대신 자기 몸을 존재의 집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다 보면


자기 존재에 관한 개념을 포용하기 시작할 거예요."






캐럴라인 냅이 들려주는 말들 중에서 하나 고르자면 이 정도입니다.


이런 말들이 수두룩하게 들어 있는 에세이라는 것.^^


무언가 끝도 없이 갈망하는 삶이 이어지겠지만


그렇게 해서 소멸한다 해도, 영원히 채울 수 없다 해도 놓을 수 없는 것은 


저자도 그랬던 것처럼 희망이겠죠.


그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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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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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과 좋아하는 소설가들의 작품에만 관심을 뒀을 뿐,

 

북하우스에서 나온 소설은 처음일 듯 싶습니다.

 

게다가 생소한 이름, 메가 마줌다르.

 

인도 서벵골주 콜카타에서 태어난 인도계 미국인으로 작년에 이 소설이 출간되고

 

흡입력 있는 소설이 나타났다며 문학계에서 주목했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저도 이 소설 처음 펼치고는 100페이지를 훌쩍 읽어낼 정도로

 

흥미진진한 "페이지 터너 소설" 이더라구요.

 

오늘 아침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북하우스TV 채널에 있는 

 

<콜카타의 세 사람> 북트레일러를 봤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기점으로 '콜카타' 지역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세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선택했고 이런 결과로 흘러가게 되었구나 한 눈에 들어왔어요.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건 언제나 조용했던 사람들 아닌가요?"

 

자신이 바라본 세상만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자신의 생각이 100% 사실이고 진실일 거라고 착각하고

 

폭력이 될 수도 있는 말과 자의식 만으로 여론을 조장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자기 식으로 규정하는 한,

 

부조리한 사회는 계속될 것이라는 씁쓸한 생각을 심어주기도 했던 소설이었습니다.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소시민들 조차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를 외면해 버리는 결과를 보면서

 

한편 절망적이었고 제게는 디스토피아 소설처럼 읽혀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자녀가 살아갈 세상으로 향할 것이고,

 

어쩌면 자신의 자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거라는 경고로

 

독자들에게 읽혀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모순 덩어리일텐데 하물며 인간이 만든 이 사회 공동체는 또 얼마나 비합리적일까요.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권력자들이 조종하는 대로 휩쓸려가는 어리석은 대중들과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집단과 애국심만 강조할 뿐, 

 

개인의 존엄성은 없는 인도 사회와 문화의 현실을 더 밀접하게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원제는 A Burning.

 

콜카타 빈민가 바로 옆에 있는 콜라바간 기차역에서 112명이 사망한 기차 테러 사건을 중심으로

 

20대 초반의 가난하고 젊은 여성 지반, 지반의 학창시절 체육 선생, 지반이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줬던 트랜스 여성 러블리,

 

세 사람의 인생이 교차하며 언젠가부터 제어 불가능한 운명 속에 놓이게 됩니다.

 

영어권 지역에서 출간할 당시 기차 방화 사건을 제목으로 달은 듯 싶은데,

 

북하우스에서 번역한 <콜카타의 세 사람> 이라는 제목이 더 상징적으로 다가오고 적절하게 잘 지은 것 같아요.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거의 처음 아니면 몇 년 만인 듯 싶고,

 

인도의 사회 현실과 국민성이 소설 곳곳에 디테일하게 반영되어 있어서 

 

낯선 것에서 오는 흥미와 호기심만으로도 읽어나가기에 지루하지 않을 소설이었어요.

 


우리 조국에 대해 아무 존중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 소에 대해서도 아무 존경심 없이 고기와 가죽을,

 

온갖 종류의 역겨운 것들을 얻으려 공격한다.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결코 없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건 자기 자신, 우리, 이 사회, 나아가 개개인의 행복한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대중을 하나로 묶을 애국심 뿐이었습니다.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국민 정서가 애국심이 부족함을 한탄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이 나라는 부정 부패한 정부와 경찰들에게 저항을 할 때 

 

오히려 테러리스트 라는 낙인을 찍으며 권력자들의 선동에 의해 우매한 대중들은 움직일 뿐입니다. 

 

물론 책임은 권력자들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대중들에게도 지어져야 할 일.

 

주인공 지반이 결국은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작은

 

어쩌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이 문장 하나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국가에 대한 충성심 부재' 라는 프레임에 끼워 넣고 보자면 인도에서는 이것이 큰 죄가 되는 것.

 

"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죽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본다면,

 

정부 역시 테러리스트 라는 뜻 아닌가요?"

 

여기에 지반의 수많은 페이스북 친구들중 한 명과 기차테러사건에 대해 짧은 대화를 주고 받은 것을 가지고

 

테러사건과 관련있는 자라고 규정하고 테러리스트라고 낙인 찍으며

 

법원과 검찰, 경찰, 대중들 모두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정황적인 증거만으로 희생양을 삼습니다. 

 

사건을 조작, 설계해 나갔던 실체는 새롭게 정권을 잡게 된 국민복지당이지만

 

결국은 지반의 체육 선생도, 지반이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줬던 히즈라 여성 러블리까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두 지반에게 등을 돌리며 부조리한 사회의 흐름에 

 

어떠한 비판의식도, 저항도 없이 동조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정당의 일원이 되어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 진실과 다르게 지반에 대해 증언하는 체육 선생도,

 

지반의 변호를 맡았던 국선 변호인도, 진실을 알리겠다고 인터뷰했던 기자도,

 

심지어 지반의 진심을 알고 고마움을 느꼈던 러블리도 

 

나중에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이기적으로 돌아서는 걸 보면서

 

 정의도 없고, 인간성도 없는 이 사회에 과연 희망은 있을까 싶었습니다.

 

인도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사는 세상의 현실인 듯 씁쓸하게 다가온 소설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깨어있는 시민으로서의 소명의식을 더 견지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트랜스 여성인 히즈라 일가나 인도에서 무슬림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가난뿐만 아니라 사회적 멸시와 차별을 온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소외된 이들의 버거운 현실을 보고

 

최소한 인도의 독자들은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예요.

 

힘과 돈의 논리가 인간을 조종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한 부조리함을 걷어내기란 역부족인 걸까요.....

 

P. 309

 

체육선생.....

 

그는 무엇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며 진실을 위조해 왔던가?

 

무엇을 위해 자비를 비는 남자, 소고기 먹는 자의 유령을 잠자기 직전 떠안게 되었는가?

 

혼자 있을 때면 머릿속에서 흐느껴 우는 유령,

 

운동장에서 여학생들이 나오길 기다릴 때면 자신에게 애절하는 유령을.

 

 

 

 

 

 

<콜카타의 세 사람> 속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체육선생과 러블리, 국선 변호사, 기자의 선택에 

 

정의롭지 못하고 비도덕적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지만,

 

정작 우리가 저들의 신발을 신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그 순간 나 자신을 위한 선택보다, 대의적이고 정의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결과를 알지도 못한 채, 운명에 휩쓸려 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래서.....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콜카타의 세 사람> 은 이 사회를 그저 보여줄 따름입니다.

 

각성하는 것은 읽어내는 독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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