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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 노르웨이 코미디언의 반강제 등산 도전기
아레 칼뵈 지음, 손화수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11월
평점 :

노르웨이의 책을 읽은 적이 있던가?
블로그를 찾아 보니 제가 좋아하는 Take on me 의 가수 A-ha 가 노르웨이 출신이라는 글이 뜨네요.^^
"노르웨이 코미디언의 반강제 등산 도전기" 라는 부제로는
저자 아레 칼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가늠하기엔 부족하겠다 싶은 에세이였어요.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등산과 야외 활동이
이제는 대중적인 취미 활동이 되어버린 노르웨이인들의 모습을
때로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기도 하고
코미디언인 저자 특유의 유머가 더해진 문체가 가독성과 흥미를 높여줍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소음보다는 널찍하고 조용한 환경에 익숙한 사람.
새로운 일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단조로운 일상에 익숙하고 자연 속에서 자란 사람.
크로스 컨트리 스키 선수로도 활약했을 정도로 신체를 움직이는 일에도 익숙한 사람.
사람들이 많이 모인 도심의 중심가에서
목적지를 따로 생각지 않고 정처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저자 아레 칼뵈는 자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렇게 의문을 갖죠.
자연 속에서 등산, 스키, 스키 점프 등 자신도 이렇게 활동적인 것들을 즐겼던 경험이 있는데
나는 왜 자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까?
언젠가부터 펍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았던 유머 감각이 풍부한 친구들이,
그리고 수많은 노르웨이인들이 산 사진을 찍거나 눈 위의 스키 자국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포스팅을 하고 있는 거예요.
#눈위에서맞는행복한아침, #자연이최고, #밖으로나가,
#소파에서내려와, #야외가최고, #자연속에서의삶이최고, #산정상,
#집안에서멀뚱멀뚱바보되지않기, #ilovenorway,
#산꼭대기에서바지를벗은채하늘을향해두팔을뻗는것은행복을향한지름길
저자는 자신의 삶에 의문이 생길 때면 계시를 받는 듯
자연 속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살아가면서 삶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한 번쯤은 누구에게나 오는데
그럴 때면 사람들은 자연에 애정을 갖게 되는 된다고.
그런 순간은 저도 제주도 여행 중에 발견하긴 했었죠.^^
그런데 여기에서 코미디언 특유의 관점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유머 감각과 머리숱을 잃어버리는 시기에 등산을 시작한다는 것.
유머 감각과 머리숱이 동시에 사라진다는 생각까진 재밌게 받아들였는데
너무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듯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좀 다른 생각이 들기도.
사람에게 진지함이 있다고 해서 유머 감각이 사라진 것이라고 보는 게 맞는 건가 저로선 의문이 생기기도 하더라구요.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돌아가면 유머 감각을 상실한 것으로 보는 저자의 생각이
너무 이분법적인 시각 아닌가? 물어보고 싶더라구요.
유머 감각을 유지하는 삶에 대한 긍정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다른 면모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보이기도 하지만
기조가 강한 것은 아니어서 뭐 사람은 다 다를 수도 있다 가볍게 넘어갑니다.
일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서 살짝 불편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요.
등산을 하는데 이렇게 한 줄로 가는 노르웨이인들.
워낙 인기 있는 곳이어서 이런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나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향하는 사람들을 아레 칼뵈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들이 왜 자연을 좋아하는지, 친구들을 뺏긴 기분도 들고
한편 너무나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자신도 반강제적으로 등산을 감행하면서 펼쳐지는 에세이,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등산을 좋아하는 건 한국 사람들도 지지 않죠.
처음에는 타인의 욕망이 마치 자신의 것인 듯 착각해서 등산을 시작한다고 하지만
직접 경험해본 후에는 그 착각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계속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등산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가 전과 달라져서 지속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구요.
그 의미와 가치는 사람들마다 행복에 대한 만족도가 다르듯이 일정한 기준이나 잣대는 없다고 생각해요.
건강이나 외모 등 구체적인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솔직히 운동을 할 필요가 있냐고 에세이 초반에 저자가 묻기도 했는데
행복을 위해 건강을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도 있고,
등산이 자신의 외모를 업그레이드 하는데 잘 맞는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건강이나 외모를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 말고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서 벗어나 자발적 고립을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 중에 제주도 오름을 즐겨 찾는 저도 해당되겠네요.^^
산의 정상에 올라가서 이렇게 두 팔 벌려 환호하는 행동이 마치
종교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저자의 관점도 재밌었어요.^^
왜 믿어야 하는지 말로 설명하기는 참 어렵고 잘 모르겠는데
난 그냥 이 종교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야외 활동이나 산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놓고 말할 경우,
사회 부적응자나 패배자로 간주될 확률이 크다고 해요.
저자의 말을 들어 보면 등산 애호가들과 종교인을 비교하는 저자가 이해되기도 하구요.
현대로 오면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소음을 발산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신을 찾는 대신 자연을 찾는다는 시각도 흥미로웠어요.
과거 종교의 영향력 만큼이나 자연이 지금은 개인을 세상과 타자로부터 자유롭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너무나 커진 현재를 보여주기도 하구요.
저자는 산에 빼앗긴(?) 자신의 친구들을 되찾을 수 있겠다는 바램으로 그들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합니다.
나아가 노르웨이인들이 자연을 찾는 이유와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노르웨이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어요.
자연 속에 스며들면 나 자신이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등산을 시작했다는 아레 칼뵈는
이제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궁금해 지네요.^^
지금 내가 즐기고 있는 활동들이 나에게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인생의 의미가 과연 이것이 맞는 건지 정확히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허풍과 거짓말로 감추는 이들에게 저자는 코미디언답게 풍자의 도구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노르웨이인들이 생각하는 자연의 의미를 유쾌하게 파헤치는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심각하지 않게 다루고 있어서 가볍게 읽기 좋은 북하우스의 에세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