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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월 28일부터 시작된 나혼자 제주도여행, 오늘로 어느새 8일째가 저물어 가네요.
하루의 여행이 좀 고되다 싶을 때는 늦은 오후에 스타벅스에 들러서
쉬면서 책도 보고 여행 기록도 남기는데 이곳은 스타벅스 성산DT점.
주차공간이 많지 않은데 관광객은 많이 오고 가는 곳이라
들어올 수 있는 날이 복불복....^^;;
이 날은 운좋게 주차공간이 나서 작가정신 에세이를 완독하고 왔습니다.
작가정신과도 인연이 있는 박완서 작가님.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은 박완서 작가님이 낸 책들마다
서문과 발문에 남겼던 67편을 연대순으로 총망라한 에세이예요.
그야말로 인간 박완서와 작가 박완서, 두 가지의 모습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작가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역사의 흐름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내용.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을 떠났던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일역의 외국문학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그 때 일생 중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고.
누구에게나 역사는 사소하게, 의도치 않게, 그리고 우연히 시작되는가 봅니다.
박완서 작가님과 저의 제주도 여행 사이에도 은근 연결고리가 있어요.
작년 이맘때쯤에도 제주도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짧은 소설 <나의 아름다운 이웃> 리뷰를 썼었는데
올해 제주도여행 중에도 쓰고 갑니다.^^

당연히 이번 작가정신 에세이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에도
<나의 아름다운 이웃> 에 적었던 서문과 발문을 싣기도 했습니다.
아주 짧은 이야기 모음이라고 시작한 박완서 작가님의 발문과 서문을 보면서
작가님의 속마음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어요.
콩트 (짧은 소설) 를 한 동안 쓰지 않은 이유가 청탁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부러 의지력을 발휘해서 끊어 버렸던 것.
그 이유를 들어보면 인간이자 작가 박완서님의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지요.
당시 문예지의 원고료는 엄청나게 쌀 때였고 반대로
당시 사보는 콩트를 선호하는 분위기여서 높은 원고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사보에 콩트를 몇 번 내다가 문득 높은 원고료 때문에
콩트 쓰는 일에 회의적이게 되셨다고.
작가로서 자기 세계도 확립하기 전에 돈 맛부터 알게 된 자신에 싫증이 나면서
편식하던 단 음식을 끊듯이 단호하게 안 쓰기로 작정한 것.
욕망에 현혹되었던 자신의 잘못을 채찍질하는 인간 박완서의 이런 모습에
작가 박완서로서 작가 세계의 공존을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 하나가
한번 더 박완서 작가님을 존경할 수밖에 없게 되었죠.
당시 자신은 주부일과 글쓰기를 겸업으로 삼았던 작가였고
글쓰기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콩트를 해서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콩트를 폄하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며
진솔하고 가식없고 당당함 모든 것이 느껴지는 작가님의 서문과 발문이었습니다.
이런 작가님의 인간적인 면모에 감화되는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예요.
얘기 시작한 김에 인상깊었던 몇 가지 박완서의 모든 책에 있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적어볼까봐요.^^
문학앨범을 낸 후 서문에 적은 바로는 사진 정리를 가장 싫어하시는 작가님의 성정도 알 수 있었죠.
사진은 아예 안 찍거나 한꺼번에 태워버릴 궁리를 할 때 가장 편안해 진다며
자신의 성격을 메마르다 표현하실 정도로 자신을 꾸미거나 감추거나 높이는 법이 없으십니다.
문학앨범, 이 책의 서문을 큰딸 호원숙에게 떠넘기고 몰라라 했다시며
독자들이 좋아하시면 출판사의 노고 덕분이고,
그렇지 않으면 작가님 딸의 탓으로 겸허하게 책임을 함께 하시는 모습도
어쩜 이렇게 당당하시고 강하신지.
<꽃을 찾아서> 라는 소설집에 대해서 제가 사진을 찍어둔 이유는
출판사의 이름에 변화가 있기 때문이예요.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창작과비평사, 창비 출판사의 지난 역사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책 좋아하는 독자이자 "창작과비평" 계간지 구독자로서 이런 변화가 저 역시 무심코 넘길 수 없을텐데
작가님은 오죽하실까요.
박완서 작가님의 모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보면
그 작품을 남기기까지 에피소드와 삶의 소회, 시대상에 대한 고찰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책을 낸 출판사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표현과 그 노고에 대한 감사함을 항상 남기시더라구요.
참 따뜻하시고 가식없으시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몸에 익으신 분.
박완서 작가님의 책으로 저는 장편소설, 산문집, 콩트집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저희집에도 자전거 도둑이라는 책이 있었더라구요.
여기서 보면서 작가님이 동화집도 내셨구나~~!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2020 스타벅스 필사노트에 14페이지에 걸쳐서 필사를 하게 하는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작가정신 덕분에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꾸준히 만나볼 수 있어서
새삼 굉장히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좋다~ 는 생각이 들었던 요즘.^^
어두워서 안 보이지만 저~~ 앞에 성산일출봉이!!!
이런 멋진 곳에 자주 올 수 있는 제주도민들을 마냥 부러워 할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 제가 있다는 그 자체에 대해 감사해하며 하루하루 여행중입니다!!!
정통적인 문학수업, 사사한 스승, 영향을 주고 받은 문우, 피나는 습작시절.
보통의 작가라면 하나쯤은 있을 법한 문단의 이런 경험중에
박완서 작가님은 하나도 해당되지 않아서
어설프게 틈입자처럼 문단에 뛰어들었다는 열등감과 소외감을 항상 갖고 있었다고 해요.
그 나름의 외로움도 있었겠다 미루어 짐작도 해봅니다.
독자들에게는 누구나 우러러 보는 대상이자 크~~게 보이는 작가이겠지만
당사자는 또 하나의 작고 연약하고 고독한 인간일 따름이기도.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던 박완서 작가님.
소설 쓰는 고통을 꾸준히 드러내시면서도
남편과 자녀들 틈에서 그것이 비로소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게 했던 것 또한 부정하지 않으셨어요.
작가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이셨던 강한 분.
2011년 1월 이후로 어느새 올해로 박완서 작가님 서거 9주기를 넘겼네요.
소설 쓰는 고통을 즐길만한 기운이 남아 있을 때까지 소원 성취할 날을 꿈꾸셨던 작가님이셨는데
그 꿈을 이루고 갔다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 계실 박완서 작가님의 진심을
작가정신 에세이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에서 이 겨울에 만나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