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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 산책 -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길
윤재웅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걷기를 통해 하루하루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하는 요즘입니다.
처음에는 아침산책으로 시작해서 점점 달리는 시간을 늘려 이제는 아침조깅이 되었죠.^^
토요일 아침, 오늘도 변함없이 상쾌한 아침을 아침조깅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로 14일째~~ 어느새 2주가 되었어요.
요즘 아침조깅을 시작하면서 걷고 달릴 때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나만의 감상, 나만의 시선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블로그에 하루하루 기록하는 것이 제게는 또 하나의 삶의 기쁨과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만난 <유럽 인문 산책> 은 현재 제 삶의 결과 닮아 있는 책이었고
인문학이 멀리 있지 않음을 느낍니다.
요즘 읽고 있는 은행나무 신간 <유럽 인문 산책> 은 생각하는 산책자 윤재웅 국어교육과 교수가
유럽의 세 나라,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을 걸으면서
유럽 구석구석에 숨겨진 시간과 공간들을 건축, 문학, 시와 예술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삶의 기쁨과 의미를 새기는 인문학적 사유들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어의 아름다움도 널리 알리는 일을 하는 저자 윤재웅은 미당 서정주의 전문 연구가로도 알려져 있다고 해요.
미당 서정주 시인이 좋아하는 시인이라며 샤를 보들레르 얘기가 나오는데
이 때는 왜 갑자기 미당 서정주 시인 얘기가 나오나 했었죠 ㅋㅋ
미당 서정주의 전문 연구가인것을 나중에 알았거든요.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길 <유럽 인문 산책> 따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여행하는 기분도 들게 하는 책입니다.
은행나무의 책들은 저도 가끔씩 만나보고 있는데 <유럽 인문 산책> 이 책은 종이질부터 좀 고급진게 다르구요 ㅋㅋ
여행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윤재웅 교수가 직접 다녀본 유럽의 구석구석은
사실 모두가 여행하고 싶은 곳이어서 여행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봐도 좋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유럽의 세 나라를 산책하면서 저자의 인문학적 시선으로 발견한
"공간에 숨겨진 비밀들" 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잘 읽힌다는 의미이구요.
한편 가볍지만은 않은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럽의 역사를 통해
이미 유명한 유럽의 여행지가 이 책으로 인해 새롭게 보이면서 사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깊이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첫 장에 나오는 유럽의 나라 중 이탈리아는 사실 제가 조만간 가고 싶은 나라입니다.
2018년 11월에 가족여행으로 동유럽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는데
이국적인 것으로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지만
제가 관심있는 것은 서양 문화의 바탕이 되는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기독교 정신들이어서
그에 적합한 나라로 이탈리아를 염두해 두고 있거든요.
고대 로마 제국의 흔적들과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로마의 모습, 르네상스를 관통하는 문학과 예술 모두
제게는 호기심 투성이이기에 이탈리아는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인데
현재 시국을 보니 당분간은 어렵지 싶어요....ㅠㅠ
우선 <유럽 인문 산책> 에는 저자가 본 유럽의 건축, 문학, 예술에 관련된 공간들을 보여주는
화질 좋은 사진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글로만 상상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눈으로 유럽을 느낄 수도 있죠.
그저 관광객의 시선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저자가 건축물, 조각상, 그림마다 시선을 두고 사유했던 유럽의 지난 시간들까지 모두 소환해 주니까
각 나라들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럽이 겪어온 시간들과 공간들,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담겨 있죠.^^
로마 시내 곳곳에 깔린 돌길은 사실 고대 로마 제국의 역사상
말과 마차, 병력 이동이 가능하도록 실용적인 도로를 건설한 것인데
현대인들에게는 이것이 '진정한 로마스러움' 을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요.
로마 돌길은 이렇듯 제국의 찬란한 아이콘이지만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복과 약탈, 권력과 전쟁, 노예의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거든요.
하나의 사물과 현상을 서로 다른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도출되는
관점의 차이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냥 밟고 다니는 로마 시내의 돌길들을 인문학적으로 더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면
생각지 못하게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되는 것이죠.
이 외에도 '북유럽의 모나리자' 라고 불리는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와 화가 요하네스 메르메이르 이야기는
로마의 길바닥 화가들, 길바닥 명화를 얘기하면서 등장하기도 하구요.
고대 로마는 다신교임을 보여주는 신들의 집 판테온,
<피노키오의 모험>을 쓴 카를로 콜로디가 피렌체 사람이어서 피렌체 라는 도시를 만나게 해주기도 하죠.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라파엘로의 집단 초상화 <아테네 학당> 을 보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날 수 있고
십자가의 예수가 운명하자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는
<롱기누스의 창> 조각상 앞에서 예수의 고난과 사랑을 가늠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어요.
"슬픔",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의미를 갖는 <피에타> 는 14세기초 독일에서 발전하여
북유럽을 거쳐 24세의 미켈란젤로에 의해 세상에 사랑과 슬픔의 감정을 전합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이야기는 성경을 모르지만 알고 싶은 제게 흥미로운 내용이었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는 역시 관련된 이야기가 풍부하더라구요.^^
이탈리아의 체팔루에서는 영화 <시네마 천국> 을,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집으로 나왔던 살리나섬에서는 영화 <일 포스티노> 를 떠올립니다.
개인적으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를 인상깊게 읽었기에
이 영화를 찾아서 보기도 했어서 소설과 영화를 떠올리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어요.
이탈리아를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윤재웅 교수의 인문학적 시선을 따라간 곳들이
이것들 말고 더 많지만 소개하는 건 끝이 없으니 나머지는 직접 읽어보시길요.^^
아마도 독자마다 다른 지점에 관심을 갖고 머물러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샤를 보들레르 시인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사람의 공감능력을 길러 주는 좋은 시를 제가 아직 충분히 만나보질 못한 까닭에
여전히 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사랑하고 공감하는 법을 알려준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묘를 보면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시의 위력을 생각하게 합니다.
1919년에 개업해 현재까지 운영중인 100년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책방 투어를 따로 다니는 저로서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어요.
좋아하는 일과 삶이 하나 되어 즐기는 경지, 즉 향유하는 삶을 얘기할 때는
책이 가득한 서점에서 일하고 싶은 가슴 속 한 켠의 로망이 꿈틀대기도 했구요 ㅋ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마다 감탄해 마지않는 1인으로서 동경하는 이 마음으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이 외에도 건축의 기능 속에 철학, 미학, 심리학을 담아
주거 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들을 감상하는 것도 재밌더라구요.
아파트 설계의 창시자, 옥상정원,
고밀도 지역에 1층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 대한민국에서 보편화된 필로티를 처음 선보인 사람.
집단주거 공간이라는 발상을 건축에 적용해서 세상을 뒤엎은 르 코르뷔지에 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좀 더 관심있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혹시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전시를 접하게 되면 지금보다는 좀 더 그 의미와 가치가 보이게 되겠죠? ㅎㅎㅎ
파리 시내에 지은 아랍문화원은 건축적인 미도 보여주면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으로 연결됩니다.
소설 속에서 뫼르소가 충동적인 살인을 저지른 대상이 아랍인으로 등장하지요.
실제로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젊은 시절을 보내다 프랑스로 이주한 알베르 카뮈에게는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은 프랑스에서 볼 때 지역적으로도 이방인이지만
내면에서도 세상의 부조리와 결이 다른 카뮈 자신을 이방인으로서 뫼르소에게 투영했던 것이 인상깊었던 소설이었어요.
제가 손 꼽는 소설 <이방인> 은 한번 읽은 것으로는 카뮈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뫼르소가 느낀 태양빛처럼 너무나 강렬해서 잊혀지지 않아요.
인간의 욕망은 합리적이지만 세상은 불합리적, 그 사이의 불일치가 바로 부조리.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라고 윤재웅 교수가 말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세상은 막상 부조리한 모습을 하고 있고
<이방인> 에서 뫼르소가 보여줬던 모습은 그런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 저항을 선택했던 것일텐데요.
분노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의 삶을 선택했던 뫼르소를 보면서
앞으로의 제 인생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설계해 봅니다.
인상주의 대표화가 끌로드 모네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스페인으로 넘어가요.
프랑스는 짝꿍이 몇 번 가보고는 그림 관심없던 본인도 루브르 박물관 너무 좋았다며
제 생각이 났었다고 꼭 가보라고 하는데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세 나라 중에 고르자면 프랑스는 3등 .....
이탈리아 만큼이나 가고 싶은 나라가 또 스페인이예요.^^
스페인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길 가는 이의 본질은 고독.
길을 걸으며 티끌의 고독을 느끼는 인간.
아주 와닿는 구절입니다.
일상의 자기를 벗어나 한 번쯤 고독과 마주한 이들,
스스로가 티끌임을 절절하게 깨닫게 되는 이들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이 아닐지.
저도 그런 여행자이고 싶어요.
순례길의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는 별이 빛나는 들판의 야고보 성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아고보 성인의 묘가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목표로 순례길을 걷지요.
그 중에는 순례길에서 힘든 시절을 견디는 한국 청년들을 만나 어려운 시대를 떠넘겨 미안하다는
저자의 고백이 진심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청년들도, 기성 세대들도 모두 자신의 참된 가치를 찾기 위해 지금도 길을 떠나고 있는 이들.
그런 이들을 생각하며 저자가 남긴 구호는......
다정하세요, 다정합시다!
저도 같습니다. ㅎㅎㅎ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기 전에는 스페인하면 제게는 가우디의 나라!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의 가우디 건축물들을 보는 것 또한 큰 기쁨이겠죠?
먼저 보고 오신 분들 참 부럽습니다. ㅋ
윤태웅 교수가 순례길에서 만난 일흔한 살의 남자를 보면서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의 조르바를 떠올립니다.
책 속의 삶보다 활기 넘치는 실제 경험을 더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
화려한 언변보다 묵묵히 자기의 삶을 행동으로 옮겼던 사람.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자키스의 묘비명을 보면서 카잔자키스가 동경했던 그 사람, 조르바의 자유로운 삶은
순례길을 걸었던 여행자들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은 바램이 담긴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였고
그 실천에 대한 덤으로 자신이 직접 본 세상과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온 몸으로 느끼며
깨닫게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 것일까? ㅎㅎㅎ
생각하는 산책자 윤태웅 교수가 걸으면서 경험한 <유럽 인문 산책> 은
유럽의 유명한 여행지에 압도되어 관광객들이 느끼는 감상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가 느껴집니다.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일이 삶 속에서 어우러질 때 천국은 멀리 있는 게 아니며,
천국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란 걸 느꼈다는 글귀가 기억에 남습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면서 경험하는 아침조깅을 통해 소소하고 작은 일상 속 경험들이
여행이 주는 임팩트 있는 경험만큼이나 새로 태어나고 거듭난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것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진정한 여행은 나를 감싸고 있는 공간들을 새롭게 탄생시킨다.
지혜와 성찰을 늘 곁에 두며 삶을 가꿔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유럽 인문 산책> 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