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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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생전에 남겼던 시를 읽고 나서

특히 여성에게 "자기 삶을 글로 쓰는 일의 가치" 를 긍정하게 되었다며 이 책을 쓴 배경을 밝힙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는 삶을 글로 표현하고 때로는 글을 통해 싸우기도 하고

글쓰기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던 25명의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태어난 시기도, 삶의 터전도, 쓴 글의 성격도 제각각인 여성들은

모두 글을 써서 돈을 벌었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린 사람들이었어요.

평생에 걸쳐 편견과 차별, 폭력에 맞서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그들은 말과 글의 힘을 믿었고 책 읽기를 너무나 사랑했던 좋은 독자, 그리고 멋진 작가들이었습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제목에서부터 제게는 바로 관심도서가 되었지만

또 하나 표지에 있는 그림이 궁금했어요.

다행히도 책 속에서 답을 주네요.^^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도덕과 절제, 정숙과 순종이라는 청교도적 세계관에 억눌려 살았던

에밀리 브론테의 남자 형제가 그려준 <앤, 에밀리, 그리고 샬럿 브론테> (1834) 입니다.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 을 쓰고도 출판이 되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죠, 여자라는 이유로.

최근에 영화로도 나왔던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속에서도

조가 직접 소설을 쓰고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가명으로 책을 내려고 시도했었죠.

에밀리 역시 가명으로 책을 냈지만 도덕성이 없다는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나중에 에밀리 본인의 소설임이 알려지고 나서도 인정은 커녕 거센 비난을 받게 됩니다.

몸은 허약해지고 결국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에밀리 브론테는 죽음에 이르게 되죠.

책 표지를 소개하려고 보니 에밀리 브론테에 관한 꼭지 내용을 소개하게 되네요.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는 이렇게 25인의 여성들의 삶을

쓰다 / 싸우다 / 살아남다 3부로 나눠서 구분짓고

글쓰기와 삶이 곧 하나였음을 그녀들의 인생을 비추어 보여줍니다.

이름만 봐도 관심가는 작가들이 꽤 많죠.^^

 

 

책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작품을 읽었거나 관심이 많은 작가로

도리스 레싱, 버지니아 울프, 프리다 칼로, 마거릿 애트우드, 수전 손택, 에밀리 브론테,

토니 모리슨, 가네코 후미코, 박경리, 헤르타 뮐러, 제인 구달 을 들 수 있겠네요.

​도리스 레싱 <다섯 째 아이>,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헤르타 뮐러 <숨그네> 읽었는데 다 좋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새 책을 만나게 될 때 늘 기대되는 지점은

새로운 사람들이 제 세계관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에서는 실비아 플라스입니다.

 

 

실비아 플라스라는 이름은 제주도여행 중에 책방투어 하면서 가 본 서점들마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을 봤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때도 이 사람이 누구지? 새 여성 시인이 눈에 들어오더니

이렇게 운명처럼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를 만나 제대로 실비아 플라스라는 시인을 알았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 되겠다는 야망있는 실비아 플라스는 대학시절에 남편을 만나

4개월만에 결혼하고 자신만의 시집을 발표해 호평도 받지만

여성으로서 임신, 출산, 양육이라는 삶의 굴레에 갇히는 시간동안

부부 갈등도 심해지고 급기야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죠.

원래 생활고를 겪기도 했던 실비아 플라스지만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남편의 외도도 아니고 생활고도 아닌, 바로 "글을 쓰지 않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읽고, 쓰고, 일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했다고 해요.

글 쓰는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려면 뭘 해야 할지도 고민했던 실비아 플라스.

한 가지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고 싶었던 실비아 플라스는 

글쓰기가 곧 그녀에게는 건강이었기 때문에

건강도 악화되기도 했고 ​남편과 별거하고 4개월 후

가스오븐에 자신의 머리를 박아 결국 자살을 택합니다.

​아직 그녀의 시를 접해보지 못했고 그녀의 감성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본연의 그녀를 느끼진 못했어도

그 누구보다도 글쓰기가 곧 삶이었던 여성은 실비아 플라스를 두고 하는 말인것 같아요.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에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세상에 떠도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더라구요.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아버지는 헨리 제임스, 토머스 하디와 친구사이.

버지니아 울프에게 아버지가 전하려던 독서지침을 기억하고 싶더라구요.


"마음에 드는 책은 반드시 두 번 읽어라."


저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겠어요. ㅎㅎㅎ

여기까지는 버지니아 울프 아버지 참 좋아보였는데

 학교는 남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버지니아 울프와 언니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정교육으로,

남자 형제들은 사립 기숙학교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도 진학했구요.

똑똑한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차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충격을 받고 정신착란을 겪기도 했지만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도모해 갑니다.

남편과 출판사를 차려 운영하기도 하고 위대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며

제임스 조이스, 프로이트, T.S.엘리어트과 교류하게 되죠.

책을 내고 드디어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지만

1940년 독일이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이어서 영국 런던에도 폭격을 가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 런던이 황폐해 지고 전쟁의 참혹함을 절감하게 되면서

버지니아 울프도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글을 못 쓰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남편에게 편지를 남기고 세상과 작별을 하지요.

전쟁이 매일 열 시간동안 읽고 써왔던 작가로서의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빼앗아 갔고

더 이상 버지니아 울프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죠.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의 경우 글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던 여성들은 글쓰기를 했고 싸웠지만 결국 살아남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들에게 글쓰기는 삶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건 분명히 알겠습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에서 다뤘던 25인의 여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통해 삶을 개척하고 창조해 갔던 사람들이었어요.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까지 그들은 글쓰기로 인해 비로소 자기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글 쓰는 여자는 ......


빛난다 /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 온전히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을 증명한다 / 오래된 비밀을 밝힌다 / 자기 자신과 싸운다 / 오늘에 집중한다 / 서두르지 않는다

크게 도약한다 / 끊임없이 질문한다 / 결국 승리한다 / 앞으로 나아간다 / 세상을 포용한다

용기를 잃지 않는다 / 우정을 잊지 않는다 / 멈추지 않는다 / 자신의 뜻을 이룬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 자신의 운명을 믿는다 /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역사를 탐험한다 / 미래를 지킨다 /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긴다 / 희망을 들려준다


25개의 각기 다른 글 쓰는 여성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려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왜 남기고 있을까.....


이 책을 읽었던 순간에 느꼈던 찰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

나의 세상에 들어와 긍정의 힘을 심어주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 모두 "나"인 것이기에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인가 봅니다!^^

좋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너무나 좋았던 책.

 교훈도 얻었고 공감도 하게 되고 감동도 하게 되고....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변화하고 성장할 준비를 합니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읽고 싶어서 진작에 사두고도 아직 못 읽었는데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장영은 저자의 신간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를 먼저 보게 되네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삶을

흥미롭고도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삶에 또 하나의 작은 변화를 주는 글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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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
대니얼 서스킨드 지음, 김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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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쯤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미래에 사라질 직업" 이라며 과거의 지구인들(^^) 사이에서

한창 이슈가 되었던 때가 있었죠.

그 때 당시만 해도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오는 노동 패러다임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었어요.

미래의 일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불확실한 거라서 '정말 그럴까?' 의구심을 갖는 데에서 그쳤었는데

요즘 현실적으로 주변을 돌아 보면 정말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업무들을 이제는 인공지능이 맡아 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는 일이 많아졌지요.

첨단기술, 인공지능, 자동화, 기계화가 스멀스멀 인간의 노동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고

이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기계를 상대로 경쟁력을 갖춰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해요....;

와이즈베리의 경제경영 도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는 미래의 발전된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기술 진보가 인간의 노동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기술적 실업" 이라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정부, 기업, 개인적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흘러온 인간의 노동에 관한 패러다임이 기술 진보로 인해 변하다 보니

인간은 인공지능의 습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요.

넓은 의미로 볼 때 인간에게 노동(일)이란 개인의 미래이자 삶의 의미와 방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의 미래에 대한 왜곡된 주장들 / 기술적 실업 / 일자리가 줄어든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을 이제는 피할 수 없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불평등 구조는 심화되어 양극화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을

현재 어느 나라에서나 어렵지 않게 목도하고 있지요.

일자리를 잃어가는 인간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제는 정부의 역할로

분배 문제를 담론화시키고 책임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옥스포드 대학교 경제학과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저자 대니얼 서스킨드는

영국 정부에서의 정책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 인간의 노동력 수요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며

다가올 기술적 실업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일의 미래에 대해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1890년대 '말똥 대위기' 로 시작하고 있어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호기심있게 읽어나간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제게는 다소 머리 속에서 정리하면서 보기에 어려운 책이었고 

관심도에서도 떨어진 내용들도 적지 않았어요.

그럴 때는 안 읽히는 부분에 막 매여 있지 않고 그냥 쿨하게 패스하면서 읽습니다.

독서라는 행위에 독립운동을 한다는 그 어떤 결연함으로

목 매가며 읽을 것까진 없으니까요.....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만나는 책마다 그렇게 읽으면 저는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아마도 ㅋㅋ

간간히 소주제와 연결된 의미있는 문장이 보일 때에는 필사하면서 읽었는데

나중에 필사한 내용을 다시 훑어보지 않았으면 이 책의 핵심을 많이 놓쳤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 책의 시작이었던  '말똥 대위기' 사건을 가지고

저자가 메시지를 풀어가는 걸 보면서

이 책 전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의 이동수단, 운송수단으로서의 말이 헨리 포드의 자동차로 대체됨으로써

신기술이 동물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것은 비단 말에서 차로 이동수단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역할을 잃어버린 말의 자리에 인간을 그대로 대입하고 차의 자리에 인공지능을 넣으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시작되고 있더라구요.

기술 진보로 말에게 일어난 일이 인간에게도 일어날거라는 이 위기의식과 두려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그 뒤로 쭉~~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해 21세기가 되면 모든 사람이 일할 만큼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고 "기술적 실업" 의 위협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신기술이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낸다는 개념, 즉 "기술적 실업"

현재와 미래에 어떤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지 하나의 축이 되어

관련된 문제들을 꺼내고 그에 따른 대처법을 제시합니다.

일의 미래, 지능의 본질,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 이유,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인간의 삶과 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지요.

 

 

옛날에 세계 경제 포럼에서 발표했던 바,

 2020년까지 약 510 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보면

  자동화, 기계화로 인해 기계에 밀려 인간의 일자리를 뺏길 거라는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겠더라구요.

하지만 의외로 그런 예상은 빗나가고 있으며

인간의 일자리를 통째로 잃는다기 보다 인간이 하는 '업무'

기계들이 대신하고 있음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기계가 사람이 할 일을 다 뺏어간다는 공포가 있었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인간의 직업이라는 건 다양한 업무가 함께 구성되어 있는 것이어서

그 업무들 중 몇 가지는 기계가 얼마든지 잘 해내긴 하겠지만

모든 업무가 아닌 더 많은 업무를 기계가 차지하긴 할 거라고.

그래도 어떤 일들은 또 인간의 영역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여기에서 틀에 박힌 업무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로 구분하여

기계가 자리를 차지할 직업군과 인간의 노동이 여전히 남을 수 있는 직업군도 언급하죠.

전문직,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은 인공지능의 습격에서

그래도 경쟁력이 있는 직업일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 보면 또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예상과 다른 전개였어요.

전문직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신기술에 밀려난 것은 사실이지만

영원히 실업자 신세가 될 거라는 두려움을 뒷받침할 증거가 거의 없다는 게

인간의 입장에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도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자리는 충분치 않다는 거.....

(좋았다가 우울해 졌다가.....감정의 롤러코스터.....%EC%9B%83%EC%9D%8C%20%EB%85%B8%EB%9E%80%EB%8F%99%EA%B8%80%EC%9D%B4)

일거리가 부족한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는 현실은 덕분에 분명히 인식합니다...;

인간의 일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이 현상을 겪으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기술적 실업의 문제는 굉장히 관련성이 깊지만

이러한 사회 문제를 넘어서 더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으로 저는

기술 진보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의미에 대해서 강조하는 부분들이었어요.




그 옛날 인간을 고용할 수요는 언제나 충분했다는 "노동의 시대" 가 이제는 끝났다는 책의 제목,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팩트겠지요.

하지만 기술 진보로 인해 줄어든 인간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략할 수 있는 방법도 있어요.

교육을 받은 숙련된 기술이나 인간의 복잡한 손기술이 필요한 일들, 인간이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지식,

자동화가 어려운 분야, 경험과 지식이 충분해야 하는 영역의 경우는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들이어서 그래도 기계에 대해 인간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도 말하니까요.


​미래기술은 틀에 박힌 업무는 인간을 대체하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는 인간을 보완하게 될 것입니다.

 

 

 

책 후반부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삶의 의미를 연결지어 풀어가는 결말은

현대인들이 고민하는 부분과 닿아 있어서 생각하게 하는 좋은 흐름이었어요.

​인간이 해온 일을 이제는 기술이 잠식해 버리며 일자리가 줄어드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직업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라는 정확한 인식을 하게 해준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이것만도 제게는 인공지능에 대한 섬세한 지식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경제경영도서 이지만 인문학적으로 개인의 미래에 "일"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는 걸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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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 잠재력을 깨우는 단 하나의 열쇠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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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읽는 책에 따라 아침조깅을 기록으로 남기는 글 제목과 내용이 달라집니다 ㅋㅋ


"인간은 고독으로부터 고요를 얻는다!"


이 문장은 흐름출판의 자기계발서 <스틸니스 STILLNESS IS THE KEY> 속에서

 제게 꽤나 인상깊게 남아 있거든요.

 아침조깅을 하는 제게는 고독한 시간이 되지만 결코 외롭지 않아요.

 고독보다는 고요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시간이고

 차분함과 평온함이 외로움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하루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행복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조깅으로 라이언 홀리데이가 말하는 "내면의 고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예요.^^

    < 에고라는 적>, <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에 이어 제가 세 번째로 만나는

라이언 홀리데이의 책인데 개인적으로 <스틸니스 STILLNESS IS THE KEY>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쉽고 선명해 보입니다.

 그래도 전에 만나본 경험이 있다고 이번에는 좀 더 빨리 이 책과 친해진 느낌이예요.

 스토아학파의 철학을 라이언 홀리데이의 방식으로 21세기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스틸니스 STILLNESS IS THE KEY> 는 예수와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공자,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독교의 수도사 등 위대한 사상가들과 함께 

 레오나르도 다빈치, 나폴레옹, 존.F.캐네디,  안네 프랑크, 타이거 우즈, 빅토리아 여왕,

 작곡가 존 케이지, 야구선수 오 사다하루, 가수 로잔느 캐쉬, 카톨릭 사회 활동가 도로시 데이,

 TV쇼 진행자 프레드 로저스까지 자기의 위치에서 제 몫과 능력을 보이며 세상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

 이들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내면의 고요" 를 드러내 혼란을 가라앉히고 잠재우는 힘을 발휘하며

   각자가 선택한 문제해결 방식으로 대처하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유명인들의 중요한 삶의 순간을 이야기 할 때는 재미도 있더라구요. ㅎㅎㅎ

   존.F.캐네디가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힘은 당면한 문제를 폭넓게 바라보고 깊이 생각했던 것,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했고 무한한 인내심을 가졌으며

   상대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발휘했던 것.

   Stillness 를 얻었을 때 정말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명료함이 있음을

   존.F.캐네디를 통해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의 사생활은 말이 많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의 위치에 있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는데

   캐네디의 대처는 분명히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 있어요.

   나폴레옹의 삶의 방식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걸러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고,

   히틀러의 나치 요원들로부터 2년간 숨어 살았던 안네 프랑크는

   부모님에게 선물받았던 일기장에 속상한 일이 있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일기를 쓰며 자기 마음속의 고뇌를 종이에 옮겨 치유의 형식으로 일기를 썼어요.

   일기를 쓰면 스스로를 제3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달았던 안네 프랑크는

    나이에 비해 좀 조숙했고 깊이 사색할 줄 알았다고 합니다.

 

좋은 생각과 해로운 생각을 구분 지을 줄 아는 혜안은

내면이 고요할 때 빛을 보게 되는가 싶습니다!!!


읽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을 위한 글, 일기쓰는 일은 안네 프랑크 외에도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그 힘을 알았던 오스카 와일드, 수전 손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빅토리아 여왕, 버지니아 울프, 프란츠 카프카, 벤자민 프랭클린도 "내면의 고요" 를 위해 활용했던 방법이었어요.

   다윗에게는 진정한 자기인식으로 무장되어 있었고

   에고가 아닌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에고만을 믿었던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어요.

   스토아학파, 그리고 세네카는 덕을 최고선으로 여겼으며,

   치명적인 결함, 인간의 욕망을 앞에 두고 <도덕경> 을 통해 노자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이 너의 것이 된다." 고 했습니다.

   노자의 말에 저 역시 격하게 동의하는 바예요.

   우리는 스스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원해야 하고 인지할 수 있을 때

   살아있음,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되고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게 되며

   사심없는 순수한 행동에서 기쁨과 고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스틸니스 STILLNESS IS THE KEY> 에서 언급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모두 다 교훈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예요. 

   그들의 행동양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위기는 어떻게 극복했으며 어떤 이들은 무엇이 부족했는지,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책에서 소개된 인물들이 그렇다면 특별하기 때문에 잠재력을 깨우는 열쇠, Stillness 를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누구나 내면에는 "고요 Stillness" 가 존재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과 태도들을 통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요" 를

   어떻게 끄집어내 활용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고 말해요.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찾아가는 해법은 자기 안에 있는 것!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목표하는 것을 향해 갈 때마다 중간에 좌절시키는 분노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걸 슬기롭게 극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요.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세네카는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로막는다"고 말하고 있어요.

   욕망은 주의하면 되지만 분노는 제압해야 한다고.

   분노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기 때문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될 것이 없는 분노를 제압하는 방법은

   바로 스틸니스를 통해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라이언 홀리데이가 강조하는 "내면의 고요" 는 이미 옛날부터

   불교, 이슬람교, 히브리서, 힌두교, 그리스, 에피쿠로스 학파, 기독교 등에서 강조하고 있던 것을

   저자가 "Stillness" 라는 이름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역설합니다.

   흔들리지 않기, 흥분하지 않고 행동하기, 들어야 할 소리만 듣기, 안팎으로 평온한 상태 유지하기는

   모두 노자의 도,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와 결을 같이 하지요.

   정신, 영혼, 몸이 삼위일체가 되어 "고요를 취하는 능력 Stillness" 를 발견하기,

   내 것으로 만들기란 어찌 보면 어려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혼란이 끊이지 않는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요" 에 접근하는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은 감사라고 라이언 홀리데이는 말하고 있어요.

   고대의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해 왔던 내면의 고요, Stillness를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하기에 충분한 책이었어요.

   키르케고르는 산책을 방법을 통해 고요를 얻게 되었다는데

   제게는 아침조깅이 삶을 이해하고 감사하며 통찰의 희열을 경험하게 해주는 Stillness 의 원천입니다.^^

   내게 주어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만의 탁월함을 갖추게 되는 삶,

   고결한 영혼이 있는 삶을 추구합니다!

   스틸니스를 통해서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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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 산책 -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길
윤재웅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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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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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통해 하루하루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하는 요즘입니다.


처음에는 아침산책으로 시작해서 점점 달리는 시간을 늘려 이제는 아침조깅이 되었죠.^^


토요일 아침, 오늘도 변함없이 상쾌한 아침을 아침조깅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로 14일째~~ 어느새 2주가 되었어요.


요즘 아침조깅을 시작하면서 걷고 달릴 때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나만의 감상, 나만의 시선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블로그에 하루하루 기록하는 것이 제게는 또 하나의 삶의 기쁨과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만난 <유럽 인문 산책> 은 현재 제 삶의 결과 닮아 있는 책이었고


인문학이 멀리 있지 않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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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은행나무 신간 <유럽 인문 산책> 은 생각하는 산책자 윤재웅 국어교육과 교수가


유럽의 세 나라,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을 걸으면서


유럽 구석구석에 숨겨진 시간과 공간들을 건축, 문학, 시와 예술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삶의 기쁨과 의미를 새기는 인문학적 사유들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어의 아름다움도 널리 알리는 일을 하는 저자 윤재웅은 미당 서정주의 전문 연구가로도 알려져 있다고 해요.


미당 서정주 시인이 좋아하는 시인이라며 샤를 보들레르 얘기가 나오는데


이 때는 왜 갑자기 미당 서정주 시인 얘기가 나오나 했었죠 ㅋㅋ


미당 서정주의 전문 연구가인것을 나중에 알았거든요.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길 <유럽 인문 산책> 따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여행하는 기분도 들게 하는 책입니다.

 

 

은행나무의 책들은 저도 가끔씩 만나보고 있는데 <유럽 인문 산책> 이 책은 종이질부터 좀 고급진게 다르구요 ㅋㅋ


여행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윤재웅 교수가 직접 다녀본 유럽의 구석구석은

사실 ​모두가 여행하고 싶은 곳이어서 여행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봐도 좋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유럽의 세 나라를 산책하면서 저자의 인문학적 시선으로 발견한

"공간에 숨겨진 비밀들" 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잘 읽힌다는 의미이구요.


한편 가볍지만은 않은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럽의 역사를 통해​

이미 유명한 유럽의 여행지가 이 책으로 인해 새롭게 보이면서 사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깊이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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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에 나오는 유럽의 나라 중 이탈리아는 사실 제가 조만간 가고 싶은 나라입니다.


2018년 11월에 가족여행으로 동유럽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는데


이국적인 것으로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지만


제가 관심있는 것은 서양 문화의 바탕이 되는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기독교 정신들이어서


그에 적합한 나라로 이탈리아를 염두해 두고 있거든요.


고대 로마 제국의 흔적들과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로마의 모습, 르네상스를 관통하는 문학과 예술 모두


제게는 호기심 투성이이기에 이탈리아는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인데


현재 시국을 보니 당분간은 어렵지 싶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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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유럽 인문 산책> 에는 저자가 본 유럽의 건축, 문학, 예술에 관련된 공간들을 보여주는


화질 좋은 사진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글로만 상상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눈으로 유럽을 느낄 수도 있죠.


그저 관광객의 시선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저자가 건축물, 조각상, 그림마다 시선을 두고 사유했던 유럽의 지난 시간들까지 모두 소환해 주니까


각 나라들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럽이 겪어온 시간들과 공간들,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담겨 있죠.^^




 

로마 시내 곳곳에 깔린 돌길은 사실 고대 로마 제국의 역사상

말과 마차, 병력 이동이 가능하도록 실용적인 도로를 건설한 것인데

현대인들에게는 이것이 '진정한 로마스러움' 을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요.


로마 돌길은 이렇듯 제국의 찬란한 아이콘이지만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복과 약탈, 권력과 전쟁, 노예의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거든요.


하나의 사물과 현상을 서로 다른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도출되는

​관점의 차이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냥 밟고 다니는 로마 시내의 돌길들을 인문학적으로 더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면


생각지 못하게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되는 것이죠.


​이 외에도 '북유럽의 모나리자' 라고 불리는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와 화가 요하네스 메르메이르 이야기는 

​로마의 길바닥 화가들, 길바닥 명화를 ​얘기하면서 등장하기도 하구요.


고대 로마는 다신교임을 보여주는 신들의 집 판테온,

 <피노키오의 모험>을 쓴 카를로 콜로디가 ​피렌체 사람이어서 피렌체 라는 도시를 만나게 해주기도 하죠.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라파엘로의 집단 초상화 <아테네 학당> 을 보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날 수 있고

십자가의 예수가 운명하자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는

<롱기누스의 창> 조각상 앞에서 예수의 고난과 사랑을 가늠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어요.


"슬픔",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의미를 갖는 <피에타> 는 14세기초 독일에서 발전하여


북유럽을 거쳐 24세의 미켈란젤로에 의해 세상에 사랑과 슬픔의 감정을 전합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이야기는 성경을 모르지만 알고 싶은 제게 흥미로운 내용이었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는 역시 관련된 이야기가 풍부하더라구요.^^

​이탈리아의 체팔루에서는 영화 <시네마 천국> 을,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집으로 나왔던 살리나섬에서는 영화 <일 포스티노> 를 떠올립니다.

개인적으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를 인상깊게 읽었기에


이 영화를 찾아서 보기도 했어서 소설과 영화를 떠올리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어요.


이탈리아를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윤재웅 교수의 인문학적 시선을 따라간 곳들이


이것들 말고 더 많지만 소개하는 건 끝이 없으니 나머지는 직접 읽어보시길요.^^


아마도 독자마다 다른 지점에 관심을 갖고 머물러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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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샤를 보들레르 시인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사람의 공감능력을 길러 주는 좋은 시를 제가 아직 충분히 만나보질 못한 까닭에


여전히 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사랑하고 공감하는 법을 알려준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묘를 보면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시의 위력을 생각하게 합니다.




1919년에 개업해 현재까지 운영중인 100년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책방 투어를 따로 다니는 저로서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어요.


좋아하는 일과 삶이 하나 되어 즐기는 경지, 즉 향유하는 삶을 얘기할 때는


책이 가득한 서점에서 일하고 싶은 가슴 속 한 켠의 로망이 꿈틀대기도 했구요 ㅋ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마다 감탄해 마지않는 1인으로서 동경하는 이 마음으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이 외에도 건축의 기능 속에 철학, 미학, 심리학을 담아


주거 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들을 감상하는 것도 재밌더라구요.


아파트 설계의 창시자, 옥상정원,


고밀도 지역에 1층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 대한민국에서 보편화된 필로티를 처음 선보인 사람.


집단주거 공간이라는 발상을 건축에 적용해서 세상을 뒤엎은 르 코르뷔지에 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좀 더 관심있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혹시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전시를 접하게 되면 지금보다는 좀 더 그 의미와 가치가 보이게 되겠죠? ㅎㅎㅎ




 

​파리 시내에 지은 아랍문화원은 건축적인 미도 보여주면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으로 연결됩니다.


소설 속에서 뫼르소가 충동적인 살인을 저지른 대상이 아랍인으로 등장하지요.


 실제로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젊은 시절을 보내다 프랑스로 이주한 알베르 카뮈에게는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은 프랑스에서 볼 때 지역적으로도 이방인이지만


내면에서도 세상의 부조리와 결이 다른 카뮈 자신을 이방인으로서 뫼르소에게 투영했던 것이 인상깊었던 소설이었어요.


제가 손 꼽는 소설 <이방인> 은 한번 읽은 것으로는 카뮈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뫼르소가 느낀 태양빛처럼 너무나 강렬해서 잊혀지지 않아요.


인간의 욕망은 합리적이지만 세상은 불합리적, 그 사이의 불일치가 바로 부조리.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라고 윤재웅 교수가 말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세상은 막상 부조리한 모습을 하고 있고

<이방인> 에서 뫼르소가 보여줬던 모습은 그런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 저항을 선택했던 것일텐데요.

분노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의 삶을 선택했던 뫼르소를 보면서


앞으로의 제 인생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설계해 봅니다.


인상주의 대표화가 끌로드 모네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스페인으로 넘어가요.


프랑스는 짝꿍이 몇 번 가보고는 그림 관심없던 본인도 루브르 박물관 너무 좋았다며


제 생각이 났었다고 꼭 가보라고 하는데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세 나라 중에 고르자면 프랑스는 3등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 이탈리아 만큼이나 가고 싶은 나라가 또 스페인이예요.^^

스페인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길 가는 이의 본질은 고독.

길을 걸으며 티끌의 고독을 느끼는 인간.

아주 와닿는 구절입니다.

일상의 자기를 벗어나 한 번쯤 고독과 마주한 이들,

스스로가 티끌임을 절절하게 깨닫게 되는 이들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이 아닐지.

저도 그런 여행자이고 싶어요.

순례길의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는 별이 빛나는 들판의 야고보 성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아고보 성인의 묘가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목표로 순례길을 걷지요.

그 중에는 순례길에서 힘든 시절을 견디는 한국 청년들을 만나 어려운 시대를 떠넘겨 미안하다는

저자의 고백이 진심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청년들도, 기성 세대들도 모두 자신의 참된 가치를 찾기 위해 지금도 길을 떠나고 있는 이들.

그런 이들을 생각하며 저자가 남긴 구호는......

다정하세요, 다정합시다!

저도 같습니다. ㅎㅎㅎ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기 전에는 스페인하면 제게는 가우디의 나라!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의 가우디 건축물들을 보는 것 또한 큰 기쁨이겠죠?

먼저 보고 오신 분들 참 부럽습니다. ㅋ



 

윤태웅 교수가 순례길에서 만난 일흔한 살의 남자를 보면서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의 조르바를 떠올립니다.


책 속의 삶보다 활기 넘치는 실제 경험을 더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


화려한 언변보다 묵묵히 자기의 삶을 행동으로 옮겼던 사람.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자키스의 묘비명을 보면서 카잔자키스가 동경했던 그 사람, 조르바의 자유로운 삶은


순례길을 걸었던 여행자들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은 바램이 담긴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였고

그 실천에 대한 덤으로 자신이 직접 본 세상과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온 몸으로 느끼며

깨닫게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 것일까? ㅎㅎㅎ


 

 


생각하는 산책자 윤태웅 교수가 걸으면서 경험한 <유럽 인문 산책> 은


유럽의 유명한 여행지에 압도되어 관광객들이 느끼는 감상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가 느껴집니다.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일이 삶 속에서 어우러질 때 천국은 멀리 있는 게 아니며,


천국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란 걸 느꼈다는 글귀가 기억에 남습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면서 경험하는 아침조깅을 통해 소소하고 작은 일상 속 경험들이


 여행이 주는 임팩트 있는 경험만큼이나 새로 태어나고 거듭난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것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진정한 여행은 나를 감싸고 있는 공간들을 새롭게 탄생시킨다.


 

​지혜와 성찰을 늘 곁에 두며 삶을 가꿔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유럽 인문 산책>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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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제학 -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
새뮤얼 보울스 지음, 최정규 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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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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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는 참 어려워 보입니다.

 

거기에 자유주의가 결합하면서 노동자, 소농, 도시 빈민들은 시장 경제에서 점점 버티기 어려워지고 있죠.


이 시점에서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을 잠시 짚어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물질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


"인센티브가 그것이 부여하는 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가정 아래 수립된 정책 수단은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처럼 사람들이 부정직하며 사악하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데


 정책 수립에 관여하는 사람이 이렇게 확신하고 제안하게 될 경우


또 다른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조심스레 언급하기도 해요.


'보이지 않는 손', '이기적 인간' 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명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경제학의 지평을 넓혀온 선구적 학자 새뮤얼 보울스는 이 명제가 지금도


실제로 시장과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의 선택에 숨겨진 작동 원리를 규명하고 검증하며


 경제학에 "도덕경제학" 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어요.


저자 새뮤얼 보울스는 지난 30년간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 왔고


저명한 경제학상을 수상한 만큼 설득력 있는 주장과 근거들을 <도덕경제학> 에 담았습니다.

 

​인류에게 윤리적이고 관대한 동기가 보편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근거들을 믿으며


저자의 오랜 여정은 시작된 것 같아요.


인간이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관대하다는 전제 하에

그런 인간에게 잘 작동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 행동에 관한 새로운 경험적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연구하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시민들을 위한 더 나은 법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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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이코노미쿠스 (경제적 인간), 마키아벨리, 법질서, 호모 소시알리스 (사회적 인간),

 몰아냄 효과, 끌어들임 효과, 인센티브, 인간의 윤리의식, 인간의 이기심,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

 공공의 이익, 호혜성 (서로 혜택을 누리게 되는 성질), 사회적 선호, 시민적 덕성, 아리스토텔레스적 입법자.


저자가 말하고픈 "도덕경제학" 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키워드을 모아 봤어요.


실례를 들어서 제약이나 인센티브가 과연 의도한 대로 인간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가 묻는다면


저자의 대답은 "NO"입니다.


이제는 행동에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 옛날처럼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요.


경제적 인센티브 없이도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선한 시민의식,


다시 말해서 윤리적인 동기나 그 밖의 비경제적인 이유로도


충분히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이 인간의 이기심을 조장해서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몇 가지 실험으로 근거를 제시해서 설득력을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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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제학> 전반에 걸쳐서 제약조건이나 인센티브를 제공했을 때 


정책입안자의 기대와 다르게 역효과를 일으켰던 사례로


이스라엘의 하이파 어린이집에서 지각한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던 실험 내용이 자주 언급되기도 해요.


일과 후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자녀를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는데


결과는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지각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인간 선택의 작동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던 것이죠.


오히려 지각한 부모의 수는 두 배로 늘어났고 벌금제도를 없앤 후에도 지각 부모 수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지각을 하지 않게 하려는 벌금 부과라는 제약 조건이 오히려 부모들에게는 벌금을 냄으로써


지각한 것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내재적 면죄부를 주는 일로 작용했던 것이죠.


하이파 어린이집의 사례를 보면서 인간의 모든 행동에 가격을 매기는 순간,


우리가 돌보아야 할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자산이 잠식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입니다.


​경제적 인센티브와 제약조건 만으로는 정책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데 시너지를 낳을 수 없어요.

여기에 윤리적,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도덕경제학> 을 읽으면서 느낀 건 저자 새뮤얼 보울스가 제시하는 실험 사례들을 통해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타적인 인간 본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 책의 부제와 같이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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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통해 인간의 선택에 숨겨진 작동 원리가 보여서 이 부분도 흥미롭더라구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상대 경기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상관없이 상대 경기자와 협력할 때보다


상대 경기자를 배반할 때 항상 더 높은 보수를 받게 된다는 룰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전통 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이기적이고 사익을 추구하려는 존재라고 본다면 당연히 상대 경기자를 배반해서


더 높은 보수를 받으려고 할 것 같잖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경기자의 절반 정도가 배반이 아니라 협력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협력자를 배반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더 높은 물질적 보수보다는


두 사람 모두 협력해 얻어진 결과를 더 선호하며 (호혜성),


상대방도 자신과 똑같은 이유로 협력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


새뮤얼 보울스가 실험에서 도출해 낸 결과인거죠.^^


이기심을 벗어나는 사람들의 선택 방식은

무조건적 이타주의자, 조건부 이타주의자, 정의를 추구하며 불평등을 싫어하는 자 등등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데 여기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는


타인과 협력하려는 선한 시민의식의 발로라기 보다는


다른 경기자가 배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협력이 상대방에게 이용당하는 사실이


너무나 싫어서 이런 선택을 하는 작동 원리가 흥미로웠어요.


물론 20-30%는 자신만을 고려하는 선호를 가지기도 한다는데 여러분은 어느 쪽에 해당되십니까?^^

 

이 상황을 "믿음에 따른 조건부 호혜성" 이라고 책에서는 정리하고 있어요.

이런 실험들을 통해서 예상과 다른 결과를 몇 가지 더 보여주고 있는데


그 안에 숨겨진 인간 행동의 작동 원리들이 참 재밌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경제학 도서라기 보다 행동심리학의 관점이 보이기도 해서 재밌게 읽은 부분도 적지 않았죠.


하지만 결국은 이 실험들을 통해서 저자는 인간의 사회적 선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인센티브가 예상과 다르게 사회적 선호를 몰아내는 이유들을 알아보면서


인센티브가 자신들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그러한 인센티브의 정치적 본질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어요.


즉 인센티브 제공이 사회적 선호를 여러모로 훼손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회적 선호" 이타주의, 호혜성, 타인을 돕는데서 얻는 내적 즐거움,

불평등 기피, 윤리적 헌선, 자신의 부나 물질적 보수를 극대화하는 수준 이상으로

타인을 돕는 여러 동기 들을 일컫습니다.


 

 

 

​이스라엘의 하이파 어린이집에 아테네인들이 자문을 했다면 이렇게 공고했을 거라는 글이

저로서는 굉장히 공감이 가더라구요.^^

실제로 제약조건이 역효과가 났던 것은 벌금이 사람들의 사회적 선호를 몰아냈기 때문이었죠. (몰아냄 효과)


하지만 이렇게 아테네인들이 자문하는 것처럼 벌금 부과에 도덕적 메시지가 더해되면

부모들의 윤리적 관심, 사회적 선호를 끌어들임으로써 (끌어들임 효과)

 

시민적 덕성을 고양하고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벌금과 도덕적 메시지는 어느 것 하나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해 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함을 증명하고 있어요.

 

 

 

 

​도덕적 교훈의 유무에 따라 정책의 결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또 다른 사례를 들어서 비교하기도 하는데요.


지각에 부과한 벌금 제도는 밀어냄의 효과로 인해 역효과가 났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비닐봉투에 세금을 매기고 난 후 비닐봉투 사용이 96프로나 감소하는 사례를 들면서


사람들의 사회적 선호를 끌어들임으로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저자가 이런 다양한 사례들을 비교 분석하여 제시한 까닭은

사회적 선호에 토대를 둔 도덕 감정

좋은 정부의 필수적인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모아진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전제가 어색하지 않은 자본주의 시대, 자유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살고 있지만


새뮤얼 보울스가 <도덕경제학> 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의 현상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내용의 핵심은 아마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인센티브는 이기적 인간을 만들기도 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호혜적 선택을 한다.


이타적 인간 본성을 무시한 정책과 제도는 실패한다."

 



이타적 인간 본성과 인센티브는 이런 흥미로운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도덕경제학> 을 통해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번 읽을 때는 경제학이라는 개념으로 보다 보니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두 번 읽었더니 처음에 몰랐던 내용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도덕경제학" 이라는 새뮤얼 보울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재밌게 읽히더라구요.


물론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과 관계들도 있었지만


흥미로운 실험 내용들이나 실험과 현실의 차이, 실험을 근거로 하는 저자의 주장이 제게는 나름 신선했습니다.


경제학 하면 비인간적인 학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무엇보다도 인간의 심리, 인간의 선택과 행동들에 민감한 학문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보상, 처벌, 규칙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인간 행동의 비밀 속에는


경제적 인센티브로 대체할 수 없는 타인을 고려하는 사회적 선호, 이타적 인간 본성  이 있었다고


결론을 내려봅니다!


이 책을 넓고 깊게 읽어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도덕경제학> 이라는 용어의 비밀을 알 것 같아요.^^


경제학이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해 준 책이어서 제게는 의미있는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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