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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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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2012, 황금가지.


 

1.

 

[개의 힘]에는 정도가 지나친 폭력이 굉장히 자주 나온다. 한 살인 장면은 이렇다. 그는 남자의 이마를 칼로 짧고 날카롭게 베었다. 그리고 피부를 잡고 아래로 벗겨 내렸다. 바나나 껍질처럼 가슴께까지 얼굴 껍질이 벗겨지는 동안 남자는 필사적으로 발을 굴렀다. 그는 발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자의 입에 총을 넣고 쏘았다. 배신자는 뒤통수를 쏘고 밀고자는 입 안을 쏜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폭력은 만성이다. 언제나 새로운 폭력이 있다.

 

폭력은 멕시코의 광경이다. 미국인이 살해당하면 전쟁이 벌어지지만, 멕시코인이 학살당하는 것은 언론보도에서도 묻힐 수 있다. 같은 중앙아메리카지만 멕시코는 가난하고 혼란한 나라다. 마약, 살인, 총과 화약, 범죄는 전부 아랫나라 멕시코에서 일어난다. 미국인은 휴가차 혹은 업무차 아래로 방문한다. 멕시코인은 살기 위해 혹은 일자리를 찾아서 국경선을 넘어 달린다. 멕시코에서 미국, 혹은 미국으로의 여정을 뜻하는 말은 엘 노르테(북쪽)’. 마약은 정제되어 북으로 올라간다. 검은 돈은 남으로 내려간다. 돈이 흘러가는 곳은 멕시코 정부가 아니라 그곳의 마피아들, 마약왕의 주머니다. 마약과 돈을 가진 자들에게 멕시코는 거대한 노름판이다. 영화 <대부>를 떠올려도 좋다. 다른 점은 더 현대적이라는 것과 더 대규모라는 것이다.

 

2.

 

이 책은 1975년부터 2003년까지 30년 정도의 마약전쟁을 기록한다. 멕시코의 티후아나, 과달라하라,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가 무대다. 주인공은 따로 없지만, 꼽아보자면 마약수사관 아트 켈러가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그가 마약전쟁에서 활동한 경력과 때를 같이 한다. 그는 CIA 출신이지만 마약 단속국으로 옮겨 경찰에서 활동한다. 쉽진 않다. 팀장은 CIA 출신인 그를 고깝게 여겨 현장에 홀로 버려둔다. CIA 수장은 착한 사람이 아니고, 믿어도 될 사람도 아니다. 멕시코 연방경찰은 마피아의 수하다. 그들에게 즉시 출격을 목적으로 증거와 증인을 들이대면, 이런 말이 돌아온다. “여기는 멕시코입니다. 세뇨르, 이 일들은 시간이 걸립니다.” 옆동네 온두라스의 마약 단속국 사무소는 사건 부족을 이유로 폐쇄되었다. 아트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힘이 필요하다.

 

전쟁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아트와 쌍을 이루는 적군은 바레라 가문, 그 중에서도 아트의 후견인 노릇을 했던 티오 바레라와 친구였던 아단 바레라이다. ‘바레라들의 이름은 멕시코에서 왕과 같다. 아니면 재앙이거나. 사람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입을 다물어버린다. 멕시코에서 마피아들에 관해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정말로 한순간에 비명횡사하기 때문이다. 마피아는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함과 행동력을 보이지 않으면 동료나 부하에게 제거당할 수 있다. 그들은 거의 항상 전쟁 중이다. 남들보다 빨리 뛰지 않으면 잡아 먹힌다. 그렇게 뛰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이 작품을 영상으로 만든다면 장편 드라마가 아니고선 힘들 것이다. 30년 분량의 기록에, 방대한 내용만큼 등장인물도 매우 많다. 각 조직의 거물이나 보스, 운전사, 신입 조직원, 경찰, 용병, 매춘부, 정치인, 그리고 중요한 이름이 될 만큼 살아남지 못한 포로들, 주민들, 젊은이들. 영상과 달리 제약이 없는 책이기에 담아낼 수 있는 방대한 세계다. (그리고 혹시 누가 누군지 까먹었다면, 책에 첨부된 주요 인물 및 단체 목록을 참고하시길.)

 

개중에는 실존인물과 사건이 뒤섞여 존재한다. 이들은 중요 인물이지만 작품 내에서는 보통 주변인이다. 하지만 작품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 두어 명이 선거 전에 사망했다, 마피아의 짓이다. 선거 득표수를 세던 컴퓨터가 갑자기 정지하고 관리자들이 사망했다. 마피아의 짓이다. 국가기관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수근댈 법한 음모론이 여기서는 사실이다. 정확히는, 사실로 보인다.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악당들은 진상을 밝히지 않고, 이 일을 알 정도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추적자 노릇을 하지 않는 법이니까.

 

3.

 

폭력을 주재하는 것은 악이다. 폭력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개의 힘이 느껴진다. 이 힘을 쥐면 복수를 하거나 돈을 벌 수 있다. 마피아의 대부분이 악에 발을 담그다 못해 머리까지 빠진 사람들이다. 한번 들어서면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악은 추진력이 있어서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었다. 물리학의 법칙이다. 잠들어 있는 몸은 계속 잠들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는 몸은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 뭔가가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친구를 구하기 위해 총을 쏜 젊은이 칼란의 경우, 정말 오랫동안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살아남기 위해 발을 내딛을수록 중심 인물이 되었고, 빠지고 싶어졌을 때는 너무 유명해진 다음이었다. 혹은, 휘두를 때는 사소했던 악이 길고 거대한 복수를 불러오곤 한다. 아트는 동료의 죽음을 보상하기 위해 또다른 악인이 된다. 그러는 동안 개는 침을 흘리며 주위를 맴돈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악을 선택하는 위치에 있지만 실질적인 선택권은 없다. “충분한 힘으로 거대한 악을 활동하게 한 사람이라도 일단 악이 활동을 시작하고 나면 그 움직임을 멈출 힘이 없다는 사실을 티오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악과 결탁하기를 멀리하는 일이며 지속하다가 멈추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 시작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살기 위해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악에 휘둘린다. 악이 거대한 밀물처럼 밀려오는 세상에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다. 악의 힘을 휘두르며 살려고 달려나가는 것, 그러다 고꾸라지는 것, 아니면 정원을 돌보고 신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뿐이다. 반대되는 모든 증거에 대항하며.

 

4.

 

마약전쟁은 2003년에 접어들면 일단락된다. 그런데 무엇과 싸우는 전쟁인가?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을까? 전쟁의 선두에 섰던 아트 켈러는 결과에 만족했을까? “미국 내 비 마약위반사범의 3분의 2가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의 해법은 똑같이 무익한 비 해법이다. 그 질병은 무시한 채, 더 많은 감옥을 짓고 더 많은 경찰을 고용하며 증상을 치료와 관계없는 일에만 수십억 달러를 썼다. 내 관할 구역에는 마약을 끊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량 건강 보험이 없으면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며, 그런 보험에 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조금을 받아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대기자 명단이 6개월에서 2년 정도 밀려 있었다. 코카인 농작물을 못 쓰게 만들고 아이들을 유독물질에 중독시키는 데에 거의 20억 달러를 쓰고 있으면서, 마약을 끊고 싶지만 돈이 없는 사람을 도울 돈은 없었다. 미친 짓이었다. / 아트는 마약 전쟁이 외설스런 부조리인지, 부조리한 외설 행위인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두 경우 모두 피로 더럽혀진 비참한 광대극이었다.”

 

미국은 멕시코 마약을 소탕하기 위해 거대 농장에 대량의 고엽제를 살포한다. 붉은 양귀비 꽃은 전부 불타오르고, 고엽제는 사방으로 날린다. 그렇게 살해된 지역은 어떤 농작물도 자라지 못하는 죽음의 땅이 된다. ‘개의 힘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거대한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서는 다른 악의 힘이 필요하다. 아니면 그저 신을 희망하거나.


어느 쪽이건,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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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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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2012, 열린책들.

 

욕망은 결핍에서 나온다. 끌림은 갈망에서 나온다. [끌림] 안에는, 인간의 갈망과 그로 인한 약함이 담겨 있다. 인간의 가장 연약하고 부드러운 부분은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어머니, 가족, 연인, 이해자, 그런 관계들이 사람을 에워싸고 지배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상처받고 가슴 떨리고 갈망을 한다. 이 책은 연애소설치고 달콤한 로맨스는 없지만, 대신 관계에 대한 갈망과 연약함이 어떻게 사람을 뒤흔들고 끌어당기는지가 나타난다.

 

[끌림]의 소재는 감옥, 여자, 빅토리아 시대다. 밀뱅크 여자 교도소와 그 죄수들, 책의 화자인 두 명의 여자,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사회와 관습이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처음 봤을 때는 참, 퓨전 요리처럼 낯선 조합의 재료들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셋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예를 들어,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밀뱅크라는 실제의 감옥과 빅토리아 시대라는 사회적인 감옥이 등치되면서 어우러지는 부분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미혼 여자라면, 그것도 노처녀라면, 게다가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어두운 열정을 품고 있다면, 사는 게 감옥의 죄수와 같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화자인 마거릿이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감옥 방문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갇힌 감옥을 자각한다.

 

이야기는 마거릿과 셀리나 두 여자의 일기로 교차 진행된다. 마거릿은 숙녀출신이고, 우울증을 겪고 있다. 친밀하게 지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큰 충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친구분이었던 살리토 씨는 그녀에게 감옥에 여죄수들을 교화하러 방문하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한다. 죄수들에게는 숙녀의 모범과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거릿은 무슨 일이라도 할 일이 필요했기에 제안을 받아들인다. 셀리나는 감옥에서 만난 영매다. 젊고 아름답고 차분하며, 다른 죄수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그녀는 강령회 중 한 사람을 다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놀래켜 죽게 만들었기에 감옥에 갇혔다. 죽은 사람은 그녀의 후원자였다. 책의 첫 장면은 바로 이 사건부터 시작한다. 법정은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잘못은 그녀가 불러낸 영혼이 했지만, 영혼의 죄를 입증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셀리나가 갇힌다. 이후 마거릿의 일기에서는 밀뱅크에서 둘이 만나게 된 후의 이야기가, 셀리나의 일기에서는 사건이 있기 전 셀리나가 영매로 생활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둘의 이야기는 동등한 것 같지만, 독자는 마거릿의 시점에 더 잘 이입한다. 마거릿의 일기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그녀는 밀뱅크 감옥의 면면을 묘사하고 그에 대한 감상을 적는다. 걱정거리나 흔들림, 고민, 추측 또한 솔직히 기록한다.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것도 그녀다. 반면 셀리나의 일기에는 내면의 고민이나 고백은 없다. 일기 아닌 사무적인 일과의 기록도 종종 섞여있을 정도다. 어쨌거나 셀리나의 일기는 과거의 기록이기에 현재 마거릿과의 사랑에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독자가 따라가기에는 마거릿의 시점이 보다 우세하다.

 

마거릿에게는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인지 중반까지 결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짐작하기는 쉽다. 그녀는 우울증을 겪고 여자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자살은 죄이며, 자살미수자는 감옥에 갇힌다. 마거릿은 높은 집안 출신의 숙녀라는 이유로 감옥의 여자들과는 다른 처우를 받는다. 죄수가 되는 대신 약을 처방 받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자신이 다른 여자들과는 이질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더불어 그렇기에 다른 여자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강박을 죄책감처럼 품고 있다. 결혼식 때 쓸 천의 무늬로 꺅꺅거리며 수다를 떨거나, 어머니 말에 순종하며 집안에서 조신하게 지내야 한다. 이것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굴레다. 이에 순종하는 마거릿의 미래는 늙어가는 어머니 옆에 진흙색 드레스를 입고 노처녀인 채로 굳어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마거릿은 여전히 어머니에게 순종할 수가 없다. 아버지 없는 집안에 있는 것도 힘들고, 감옥에 가는 것을 그만둘 수도 없다. 그녀는 밀뱅크 감옥의 척박함을 묘사하면서, 잔인하지만 눈을 뗄 수 없다고, 기묘한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처음엔 그로테스크한 예술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과 비슷한 줄 알았다. 아니면 밀뱅크의 비일상적인 척박함이 오싹하지만 좋은 구경거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마거릿이 감옥 방문을 그만두지 못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녀는 죄수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자기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고. 그녀의 마음 속에는 자기가 저지른 ’(혹은 문제”)에 대해 마땅한 처벌을 받고 있지 않다는, 스스로라도 자신을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집에 있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꺼끌한 사실을 되씹는 것보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이 편안하다. 마거릿은 자신 역시 죄수들이나 교도관들처럼 밀뱅크에 사로잡혔다고 느낀다.

 

셀리나. 그녀와 친밀해지면서, 마거릿이 감옥을 방문하는 것은 그녀를 만나기 위한 것으로 변한다. 셀리나가 영매라는 점은 셀리나와 마거릿의 삶에 새로운 차원의 감옥을 더한다. 영혼을 보는 영매가 된다는 것은 빨간색을 보지 못하는 색맹들 사이에서 홀로 색을 보는 것과 같다. 화려한 색채들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도, 이해 받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한번 보기 시작한 것을 잊어버릴 수도 없다. 마거릿은 이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힘들 게 뭐 있을까, 그녀의 삶이 바로 그렇게 외톨이였는데. 그리고 셀리나의 설명에 이끌려 이라는 두 번째 감옥을 느낀다. 우리는 의복이나 육체에 얽매여 살지만, 영혼 상태가 되어 자유로워지면 몸이나 성별 따위는 소용이 없다. 그것이 영혼과 영매의 시점이다.

 

이제 감옥은 마거릿 개인의 몸으로 옮겨온다. 셀리나가 그녀의 인식을 확장시킬수록 마거릿의 감옥은 견고해진다. 대신 이는 자유를 약속하는 감옥이다. 몸을 감옥으로 느끼기 시작하면, 그에 따른 성별, 나이, 체면, 그런 것들은 모두 벗어버릴 수 있는 대상으로 변한다. 마거릿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셀리나와 같은 종류의 감옥에 갇혀 있음을 느낀다. 밀뱅크 감옥에 가지 않아도 마음이 충분히 편안하다. 그 동안 답답했던 이유는 자신이 갇혀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갇혔으니까. 탈출은 지상명제고, 기다리는 것은 해방이다.

 

그리고 반전이 있다.

 

영혼, 영매,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이야기. 이게 어디까지 진짜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런 이야기에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 끌린다는 점은 확실하다. 끌림은 갈망에서, 갈망은 연약함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책의 여자들은 모두 귀퉁이가 짓무른 잎사귀처럼 마음 한 켠에 연약함이 존재한다. 멀쩡히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렇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약하고 부드러운 부분을 살살 건드리고 달래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상대방도 동일한 약점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영혼 이야기는 배경이 빅토리아 시대이기에 어울리는 소재다. 덜컹거리는 테이블이나 어둠 속에서 빛나는 손자국 같은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패티코트나 양복을 입은 유럽인들이어야 할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여자로서, 혹은 사람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갇혀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관계가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는가, 우리는 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발 더 나아가, 지금 쥐고 있는 한 줌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를 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관계의 어긋남에 대한 날카로운 공감을 느낄 것이다.

 

좋은 반전이 그렇듯, 이 책도 다 읽은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색다른 시선으로 읽힌다. 책을 다 보고 나면 첫 장면으로 돌아가보기를 권한다. 셀리나가 감옥에 들어가는 이유가 되는 사건 말이다. 그 장면에서 셀리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읽고 영매의 현실을 알게 되면, 현실 세계에 그녀가 어떻게 발 디디고 서있는지가 보인다. 거기에 그녀의 약점이, 홀로 내던져진 불쌍한 소녀가 갖게 되는 약점이 있다. 이를 통해 글 안에서는 뚜렷이 표현되지 않은 그녀의 연약함과 갈망을 추측해볼 수 있다. 셀리나는 이야기의 반을 담당하는 인물인데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기에 놓치기 쉽다. 마거릿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셀리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길. 책을 읽은 후의 여운이 훨씬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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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알라딘 신간평가단 11기 소설분야. 6월 추천 신간.


 이번에는 어째 죄다 추리소설이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좀 빼고 점잔을 떨어야 하나 고민했다. 다시 보니 최근 출간작 중에 추리소설 비중이 유독 높다. 몇 년 간 꾸준히 일본 추리소설이 밀려들어오더니, 다음 파도는 유럽권 추리소설인 모양이다. 재작년쯤부터 유럽 출신 '대작'들이 눈에 띄는데, 이름있는 것부터 들어오기 때문인지 다들 분위기가 한 묵직한다. 도저히 머리 식힐 겸 읽어보겠다는 말은 못 꺼내겠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건 보장하는 듯:)




 [디너] (헤르만 코흐 / 은행나무)


 이런 걸 읽고 싶었다! 군침이 돌면서 어서 읽고 싶어 두근거리는 책이다. 이게 다 먹을 거에 약해서 그런다. 목차가 아페리티프-에피타이저-메인-디저트-소화제로 흐르는 걸 보고 이미 읽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랴, 식사와 잘 결합된 이야기는 두 배는 맛깔나는 걸. 고양이가 들어간 그림은 두 배로 매력적인 것과 같다.


 저자 이름이 헤르만이길래 독일 소설인 줄 알았는데, 네덜란드 사람이었다. 네덜란드라면 [밀레니엄] 시리즈가 나온 곳이다. 게다가 따끈따끈한(번역서치고는) 09년 작품이다. 차근차근 번역 출간되고 있어서 기쁘다.


 제목은 [디너]지만, 식사가 주된 내용은 아니다. 아들의 범죄에 대한 부모의 입장, 차별과 폭력, 가족과 이기심과 균열, 가치관의 붕괴가 주된 내용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우리가 품을 수 있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제발 이 문제가 아주 어렵고 복잡하게 제시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책을 읽는 사람들이 사건을 간단하게 치부해버리지 않고 고민을 할 테니까. 그래야 한 장 한 장 맛있게 먹을 테니까.




 [순서의 문제], [나를 아는 남자] (도진기 / 시공사)


 국내 작가의 추리소설은, 언제나 반쯤 기대하고 반쯤 발을 빼고 읽기 시작한다. 이건 기대하고 읽어도 될 것 같다. [순서의 문제]는 단편집, [나를 아는 남자]는 장편 소설. 딱히 시리즈로 묶인 건 아니지만 같이 나왔다. 맛을 보기 위해서는 역시 단편집인 [순서의 문제]를 먼저 읽어봐야지 싶다.


 소개글을 보니 탐정 역의 주인공 진구는 천재이긴 하지만 도덕관념은 좀 부실한 인물인 모양이다. 현대 한국사회의 배경에서는 쉽게 공감갈 만한 캐릭터다. 다만 이게 적극적으로 치사한 행동을 하는 이기적인 인물인 건지, 아니면 공감능력이 좀 부족해서 독특한 가치관을 보이는 건지는, 읽어봐야 알겠다.


 어쨌든 인물 구성은 잘 되어있는 듯. 추리소설은 주로 범죄를 다루는 만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기대되는 작품이다. 국내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도 보정치. 저자 직업이 판사인데, 이를 통해 쓴 법률 미스터리라는 점도 신뢰할 점.




 [불타버린 세계] (J. G. 발라드 / 문학수첩)


 어째서 문학수첩에서 나오는 발라드 책은 다 B급 영화 포스터 같은 느낌이 나는 걸까. 심지어 원작 표지도 아니다. 안 그래도 딱 B급 영화라고 오해하기 쉬운 내용인데, 보고있으려니 여러모로 기분이 미묘. 


 발라드의 장점은 인류 멸망을 정말로 잘 그린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특수효과 없이도, 읽다 보면 장을 거듭하여 확장되는 붕괴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굉장히 장대하다. 그러다 보니 '세계' 시리즈가 많다. [불타버린 세계]는 [물에 잠긴 세계]와 함께 지구종말 삼부작으로 엮이는 작품. 예전에는 그리폰 북스에서 [크리스탈 월드]가 나온 바 있고, 최근에는 [하이라이즈]가 나왔었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세계를 설정하고 그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들이 보이는 이상 행동들은 광기가 아니라 변질이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는 말처럼, 제반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인간 자체가 변질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다. 그렇기에 극한상황을 다루더라도 호러가 아니라 SF에 속한다. "장르의 시점을 바깥 우주에서 내적 우주로 전환"했다는 말은 이런 뜻이겠지 싶다. 아마 작가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커트 보네거트가 전쟁을 겪은 후 [제5도살장]을 비롯해 죽을 때까지 회의와 무력함과 아이러니에 대해 썼듯이. 발라드 역시 미쳐가는 세계 안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있으므로.




 [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 북홀릭)


 마술과 저주가 횡행하는 세계에서 과연 '추리'로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소설의 배경은 북해에 위치하는 천해의 요새인 솔론 제도. 죽은 사람은 영주. 추리하는 사람은 동방에서 온 기사와 그 시종, 그리고 죽은 영주의 딸. 지극히 서양 중세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인데, 저자는 일본인이다.


 저자의 다른 작품 [추상오단장]은 굉장히 작고 엷은 소설이었다. 사건 조사도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인이나 트릭 같은 드라마는 남의 일이었다.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정체성 없음을 막연히 고민하는 건조한 청춘이고. 처음부터 좁은 스케일의 이야기를 다루기에 오히려 사건 하나하나가 반전이 되는 방식이었다. 아닌 책도 많이 썼다길래 그렇구나- 하고 있었는데, [부러진 용골]이 바로 그런 책인가 보다. 소개글부터 장르 색깔이 넘쳐서, 작가 이름이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갈 뻔 했다.


 이 작가가 글을 잘 쓴다는 건 충분히 알았으니, 이렇게 큰 이야기는 어떻게 끌어갈지 기대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저주와 마법이 횡행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추리의 판을 짤지도 흥미진진한 부분이고.




 [고독한 곳에] (도로시 B. 휴즈 / 검은숲)


 고전 헐리우드 영화의 팜므파탈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 몇 있다. 장식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 핸드백에 사실은 권총을 하나 숨기고 있다든가, 가련하고 힘없는 여자인 척 탐정에게 부탁을 하지만 알고 보면 흑막이었거나 매우 교활한 성격이라든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용할 줄 안다. 그리고 본성을 드러낸 후에는 대개 끝이 좋지 않다. 이런 '악녀'의 모습은 여성을 오로지 보호해야 할 존재로 보는 관점만큼이나, 사실과 다르다. 전형적인 악녀의 모습은 참 많이도 쓰였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 인물로서의 생명력, 입체감,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해지는 지점이다.


 [고독한 곳에]의 모습은 도발적이고 섹시하다. 온통 남자들 뿐인 하드보일드에 뛰어든 여자의 모습은 응당 그럴 것이다. 여성 펄프 픽션을 되살려 문학적/사회학적 여성성을 되짚어보자는 취지에서 재간되었던 책이라는데, 과연 어떨지:) 하드보일드라는 틀 안에서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도발적인 관점을 취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물론, 재미있는지도.




 [알렉스] (피에르 르메트르 / 다산책방)


 유럽권 추리소설 물결을 이어가는 책. 묵직하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 보인다. 특히 예문에서 보이는 '소설적'이고 유려한 묘사가 너무 좋다. 읽으면서 살살 녹을 지경이다.


 "카미유는 정말로 작다. (...) 이런 발육부진에는 모친의 책임이 크다. 모드 베르호벤, 저명한 화가. 그녀의 그림들은 열 곳이 넘는 국제 미술관의 카탈로그에 올라 있다. 대단한 예술가인 동시에 담배 연기를 영원한 후광처럼 두르고 살다시피 했을 만큼 엄청난 애연가이기도 했다. 이 푸르스름한 뭉게구름과 함께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상상한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담배 연기를 영원한 후광처럼 두르고 살고, 언제나 푸르스름한 뭉게구름과 함께 하는 저명한 여류 화가.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둔, 예술적 소양이 뛰어나고 키가 작은 카리스마 형사. 이 정보만으로도 생각의 가지는 잔뜩 뻗어나간다. 게다가 소개글이 참 충실해서 잘 읽으면 범인을 알아버릴 지경인데, 책을 재미있게 읽는 데에는 크게 상관없는 듯 하다. 범인이 어떻게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므로. 복잡하고 정교한 서사를 펼치는 책이라고 하니 걱정할 건 없겠다. 나라면 솔직히 인물 묘사 하나만 봐도 푹 빠져서 읽을 터다:) 문장으로 이렇게 매혹하는 책, 흔치 않다. 어서 다른 부분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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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신간평가단으로 뽑힌 후 첫 미션이다. 추천 신간 뽑기. 어디까지를 신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몰라 새로 나온 책 코너를 참고했다. 쓰면서 혼자 들떠서는 이 책 저 책 뒤적거렸다. 어떤 책이 있는지 구경하는 건 쇼핑할 때와 비슷한 재미가 있다. 책을 직접 읽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읽고 정리하지 않으면 남지 않지만. 이번에 살펴본 신간에는 어째 추리소설이 많다. 벌써 여름이 오나.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셜록 홈즈는 저작권이 풀린 뒤로 원작자인 코난 도일이 아닌 다른 작가들의 저작이 나오고 있다. 뤼팽 이름을 단 신간이 나왔길래 그런 건가 했는데, 모리스 르블랑이 쓴 미공개 유작 원고가 발견된 거라고 한다. 뤼팽 시리즈의 진짜 마지막 권인 셈이다.

 게다가 이번엔 뤼팽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란다. 이런 사랑 이야기가 들어가는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개인적인 면모가 드러나서 좋다. 훨씬 인상적으로 읽게 된다. 홈즈의 2차 창작물에서 아이린 애들러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걸 보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겠지(비록 원작에서는 연애담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뤼팽이야 여자에게 친절한 만큼 얽힌 여자도 좀 있고 이미 기암성에서 결혼도 했다지만, 이번엔 어떤 이야기일런지.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다.



 

 [사랑의 기초] 세트

 알랭 드 보통의 글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가 현대인의 일상을 세밀하게 포착해낸다는 평가에는 동의한다. 작품집 [동물원에 가기]에 등장했던, 첫 데이트 때 허둥거리며 혼자서 속으로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널뛰기를 하던 장면도 기억한다. 그 정신 없는 심리상태를 끝까지 담담하고 철학적인 문체로 표현해내는 점이 재미있었다. 이번에는 작가 정이현과 세트로 책을 냈다. 마치 [열정과 냉정 사이]처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작품활동을 했다는데, 솔직히 두 책이 어떻게 어우러질지 조금 궁금하다.

 



 [화차]

 완역본이라고? 분량이 추가됐다고? 이전 판 [화차]에는 빠진 분량이 있었단 말이지? 그럼 읽어봐야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등장하는 인간군상이 현실적이어서 좋다. 범죄자는 유난히 악한 개인이나 미친놈이라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다. 사건을 수사하는 인물들 역시 특별히 천재적이거나 정의롭지는 않다. 이들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그렇기에 사회의 평범이라는 거죽 아래에서 들끓는 갈등의 결이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바로 그 점이 매력이다.

 특히 [화차]아파트에 관련된 이야기라 국내에서 호응을 더 잘 이끌어내는 것 같다. 영화도 잘 됐으면 좋겠다.

 





 [티모시 아처의 환생]

 현대문학에서 필립 K. 딕 걸작선을 내고 있는데, 이걸 다 읽어보지 않고는 PKD를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힘들 것 같다. 이전에 출간되었던 단편집은 재치 있고 사람 뒤통수를 칠 줄 안다는 느낌이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장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음울하지만 일면 잔잔하기도 했다. 이들과 비교하면 걸작선들은 읽기에 훨씬 황폐하고 혼란스럽다. 단편은 차라리 짧기라도 하지, 장편은 파괴력이 더 크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쪽이 PKD의 진면목이구나 싶다. 너무 천재적이라서 미친 사람, 뛰어났기 때문에 그냥 미치지도 못하고 그걸 작품으로 만들어낸 사람, 지금에 와서야 더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사람. 누구나 좋아하기는 힘들겠지만 다 읽고 나서 안 좋아하기도 힘들겠다.

 ‘걸작선은 총 10권 예정인데 벌써 8권이 나왔다. 잠깐 쉬었더니 읽을 게 금방 쌓였네.

 





 [죽음의 전주곡]

 시공사 임프린트인 검은숲에서 낸 책국내에 안 들어왔던 작품들로 소개하고 있는 듯 하다처음 시작이었던 로버트 매케먼의 [소년시대], [스완 송]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이 작가가 처음 소개되는 거라는 데 놀랐고검은숲에서 내는 책들에 관심이 생겼다. [죽음의 전주곡저자인 나이오 마시는 애거서 크리스티도로시 L. 세이어즈 등과 함께 추리소설 4대천왕:D 이라는데마찬가지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것 같다고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환영할 만한 일이다.








 [끌림]

 [벨벳 애무하기] [핑거스미스] 제목은 들어본 적 있는데, [끌림]과 함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이라고 한다. 빅토리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솔깃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그렇다.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소설이자 추리소설이라고 하니 덮어두고 집어들 만 하다. 감옥 생활, 영매,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레즈비언 소설이기도 하다는데, 이건 쉽게 솔깃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요소다. 여자-여자 사이의 양가감정이나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는, 보통 연애로 수렴하고 마는 남-녀관계보다 더 복잡하고 기묘한 방법으로 사람 신경을 건드린다. 이 책도 그렇게 매력적인 모양이다.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번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나왔다. 문학동네에 호감이 가는 요소다. 1, 2회보다 표지도 귀여워졌다. /현대 한국소설은 잘 모르지만, 매년 출간되는 수상작품집에서는 동시대 동연배의 냄새가 난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더 나아가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난다. 거기에 젊은작가상이라 더 호감이 간다.

 이런 수상작품집은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안전하게 끊임없이 접할 수 있어서 선호한다. 작품에 대한 비평도 곁들여서 말이다. 간혹 평이 작품과 안 어울리면 기분이 착잡해지지만, 대개의 경우 글 쓰는 사람들답게 배울 점이 있어 좋다. 1, 2회 젊은작가상 작품들에서 그런 식으로 좋았던 건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였다. 맹목적인 분노에 휩싸이지만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작품이라, 타인의 시선이 도움이 되었다. 3회가 나왔다니 반갑다. 젊은작가상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처럼 길게 가기를 바란다.

 



 [개의 힘]

 읽어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정말 강렬하고 절묘한 책이라고 하길래 관심이 생겼다. 멕시코, 마약 조직, 단속반, 피와 배신과 인간 본성에 내재된 악, 전부 소설보다는 영화(특히 헐리우드 액션 영화)로 더 익숙한 단어들이다. 내용 소개만으로 보면 현대에 계승된 하드보일드 느와르같을 느낌인데, 책에 대한 평가들을 보면 이보단 더욱 묵직하고 밑바닥을 기는 내용인가 보다. 1970년부터 30년에 이르는 시간을 다루고, 백 넘는 등장인물이 나오며, 역사적 사건들도 함께 뒤얽힌다고 한다. 내용과 주제만이 아니라 책 무게도 꽤나 묵직할 듯.

 







 [팡토마스]

 " 천재적인 형사와 더 천재적인 범인 - 팡토마스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더라, ‘이상한 표지를 찾다가 발견한 책이다. 하지만 표지 문구를 읽다 보니 뭐야 이거, 재미있어 보여…!’ 싶더라. 그래서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아무리 봐도 유령(Phantom)이나 환상(Fantasy)에서 따온 이름인 팡토마스(Fantomas)는 희대의 범죄자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 누구도 아니면서 분명 누군가이긴 한,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기도 한 존재. 성격은 절대악. 뤼팽도 그렇고 팬텀도 그렇고 20세기 프랑스에서는 안티 히어로가 인기였던 모양이다. 특히 이 시리즈는 두 작가의 공동 작업으로 쓰였는데, 구술 작업을 기반으로 해서 글이 쭉쭉 읽힌다고 한다. 그리고 확실히, 19세기-20세기에 히트한 소설이라면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완역본을 밤새워 읽은 뒤로 생긴 믿음이다

 이런 생각으로 [팡토마스] 책을 앞뒤 돌려가며 구경하다 보니, 표지의 남정네가 자꾸만 사람을 빨아들인다. 무서운 아이...!




 [마법사가 곤란하다]

 이거 귀엽다. 총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 그 중의 하나인 <가울 반점>은 네이버 오늘의 문학으로 본 적이 있다. 작은 동네의 중국집과, 끝내주게 맛있는 짜장면, 이혼,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로, 무뚝뚝하고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아버지에게 참 정이 간다. 별로 예쁘장하지도 않은 인물인데 이렇게 정이 가는 걸 보면 화자인 주인공도 참 잘 자란 아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투리가 실감나게 도드라지는 것도 좋았다. 중국집이란 소재를 활용해 챕터마다 깨알같이 달린 부제도 센스가 좋다. 표제작인 마법사연작도 그런 듯. 예를 들면, 주인공인 저격 마법사 이름이 마춘대.

 파란미디어의 임프린트 새파란상상은 몇 년 전부터 이렇게 장르소설에 걸쳐있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내고 있는데, 하나같이 적당하고 괜찮아서 괜히 친밀감 느껴진다. 찬찬히 다 읽어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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