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의 영희 씨 창비청소년문학 70
정소연 지음 / 창비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국내에 SF를 쓴다는 자각을 갖고 SF를 지향하는 작가는 한줌이다. 그리고 하나하나가 뿌듯한 이름이니 모든 이름을 외워둘 필요가 있다. 한줌이라는 말은 비하가 아니라 사실이다. 국내 SF 역사는 한 백 년쯤 되지만 매번 흐름을 이루지 못하고 단절되었다. 80년대에는 〈스포츠 서울〉에서 신춘문예 SF 부문을 마련했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90년대에는 PC통신에 힘입어 '등단' 없이도 신인 작가들 책이 출간됐지만 현재까지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는 듀나 뿐이다. 2000년대에는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이 열렸지만 3회에 그쳤다. 현재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주관하는 웹진 크로스로드나 국내 최대의 장르 작가집단일 환상문학웹진 거울이 있는데, 언제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어디 가서 자랑해도 좋을 작품이 발표되곤 한다. SF를 읽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SF를 읽는 사람들마저 잘 모르기도 하지만, 다시 장담컨대 국내에도 SF 작가들이 있고 이는 하나하나가 뿌듯한 이름이니 외워둘 필요가 있다. 정소연은 그 한줌에 들어가는 이름이다.


단편집 『옆집의 영희 씨』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초연함이다.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우주비행사가 되려고 평생 노력했는데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경우, 중요한 시험을 치는 중에 곤경에 빠진 사람을 만났는데 도울 사람이 자기밖에 없는 경우, 자기 일을 완수하기 위해 남의 꿈을 끝내야 하는 경우 등, 정답이 없고 피할 수 없는 갈림길이다. 각 인물은 목표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원하던 궤적에서 빗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 앎에 으레 따라붙는 불안, 공포, 회의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기 발 디딘 자리에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할 자유를 누린다. 『옆집의 영희 씨』에 실린 단편들이 무력감이나 자포자기가 아니라 초연함으로 나아가는 이유다. 


정소연은 장애, 청소년, 성정체성에 관심을 갖고 이런 주제를 다루는 소설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는 번역자이기도 하다. 『옆집의 영희 씨』에서도 젠더는 빈번히 암시되는 주제다. 이는 등장인물의 성적 지향이 특이하게 취급되지 않는다든가, 여성 화자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데 천착하지 않는 방식으로 암시된다. 작가가 차별과 편견에 무지하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언급 없음', '주목 없음'이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본연의 자신으로 존재하게 하는 최선의 상태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 이 리뷰는 <다른 시대, 다른 세상의 여자들: 여성주의와 장르소설의 상호작용>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로, 여러 책을 다룬 글은 각 책으로 연결할 수 없어서 권마다 분리해서 올립니다. 전체 글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lakinan.tistory.com/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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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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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에 관한 책이고, 그래서 이론, 역사, 지식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저를 순식간에 끌어들였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되돌아간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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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1호 - 창간호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 / 엘릭시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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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 빠졌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알고 나누고 이야기하는 것이 깊이 빠져드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미스테리아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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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여성 - 젠더와 한국의 민족주의
최정무 외 지음, 박은미 옮김 / 삼인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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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여성이 맺어온 다양한 관계들에 대해 각각 분석합니다. 여성-남성-가부장제의 구도가 아니라 여성-국민-근대국가의 구도로 본다는 게 드물고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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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 - 뇌과학 전문가 박문호 박사의 통합 뇌과학 특강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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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고 자세하고 예쁜(!) 도판이 좋은데, 모두 이 책을 위해 새로 그린 거라는 데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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