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가 있던 자리
웬디 매스 지음, 정소연 옮김 / 궁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망고가 있던 자리]는 만화화된 작품을 먼저 접했다. 만화로도 인상적이었는데, 책으로 읽으니 책이 더 좋았다. 만화에서는 다루지 않은 보다 자세한 내용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 소녀 미아가 공감각자라는 걸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까지의 갈등이 기억에 남는다.

 

미아는 글자에 색이 보이는 공감각자다. 숫자에도 하나하나 색깔이 입혀져 보이기 때문에 수학 시간에는 집중하기가 힘들다. 상담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미아가 가운데 아이 증후군이라고 말한다. 가운데인 둘째 아이는 첫째나 막내나 달리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을 끌어보고자 특이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미아 입장에서는 진짜이고 진심인데, 다른 사람들은 진지하게 듣지 않고 헛소리로 치부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다 억울했다. 공감각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아는 입장에서 보면 가운데 아이 증후군이니 하는 건 어리석은 해석으로 들리기도 한다. 문제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제 깜냥으로 재단하려 들거나, 손쉽게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자폐아를 다룬 만화 [사랑하는 내 아들아]의 첫 부분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온다. 막 결혼한 신혼 부부는 행복한 미래를 예감한다. 첫 아이도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거나, 웃지 않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자폐아의 전형적인 증상이지만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다들 엄마가 잘못 키워서 그런다고 수군거리고, 남편조차 엄마가 똑바로 못 하니까 애가 이상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성질을 부린다. 이런 오해는 병원을 찾아가고 나서야 바로잡힌다. 자폐는 선천적 결함이고 엄마의 양육 방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엄마가 잘 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잘 못 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의사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설명해준다. 그때서야 이 초보 엄마는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다른 아이를 기르는 건 어렵다. 아이가 남 앞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면 남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람 마음이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고깝게 보는 시선도, 다른 사람들의 아무 생각 없는 말도 마음이 아프다. 그게 거듭되면 우리 아이는 왜 평범하게 행동하지 않을까 내심 원망스러운 마음도 든다. 주인공 미아가 다른 공감각자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이의 부모도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들은 아무리 다그쳐도 아이가 색을 보는 일을 막을 수 없으니까, 대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혼을 낸다. 그들은 난처함, 부끄러움, 부모로서 부족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상태였을 것이다. 미아의 부모도 처음부터 미아를 지지해준 것은 아니었다. 남들과 다른 것에 자신감을 갖기까지는 미아만큼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매우 난폭하다. 눈에 띄기 전까지는 없는 것이고, 눈에 띄면 기분 나쁜 것이다. 공감각, 자폐아, 문제행동, 모두 분명히 실재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맞닥뜨리기 전까지 자기와는 관계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문제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모른 척 하고 살았을 뿐이라는 걸 안다. 통계적으로 공감각자는 2천 명에 한 명꼴로 나타나고, 자폐 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만 명당 15-20명 정도라고 한다. 한국 국민 수를 5천만으로 잡으면 각각 2 5천 명씩이다. 계산해 보면 전교에 한두 명은 있다는 말이고, --고를 거치면서 안 만나기가 더 힘든 비율이다. 당장 자기 옆 사람의 현실이어도 이상하지 않다. 평범함에서 이를 배제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너는 특별해. 너 자신은 그 자체로 소중하단다. 그런 말이 정답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그리고 정답은 쉬운 답이 아니다. 정말로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정말로 신경을 써야 한다. 정확한 지식, 그걸 수용할 수 있는 열린 태도, 사려 깊음, 관심과 애정,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사람인 이상 실천하기는 당연히 힘들다.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할 수는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라는 문제로 고민해본 사람은 다른 사건에도 무관심하지 않은 걸 거다. 다른 소수자에게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감수성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주하게 되는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난 다음엔, “사람은 누구나 특별하고,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작중 미아가 보는 색채의 세계는 참 아름답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의 단어를 간직하는 것처럼, 알록달록한 단어를 간직하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한다. 원제가 [A Mango-shaped Space]던데, 고양이 모양의 망고색 흔적은 보기만 해도 따뜻하고 귀여울 거라 생각한다. 그런 걸 본다는 게 조금 부럽다. 미아의 입장에서 나온 책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편견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이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제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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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이 달은 유독 "살인"과 시집이 많다. 세간에는 모 로맨스 소설이 폭풍처럼 유행하는 모양이던데, 개인적으로는 장르 쪽 신간에 더 마음이 쏠린다.





 [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톨 펴냄.


   이거야말로 이 달의 대박 신간. 제목부터 꽤 재미있는 기획이다.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을 목표로, ‘오싹한 이야기를 주제로 모은 단편집이라고 한다. 게다가 기존 작품의 선집이 아니라 새로 쓴 작품들이다. 20명의 20 작품으로 750페이지. 충실하다. 목록에 장르 작가들이 많이 보이는 건 그들이 그만큼 재미있는 글을 쓰기 때문이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참여한 작가 전부를 아는 건 아니지만, 닐 게이먼을 좋아하고, 마이클 크라이튼이 잘 팔리는 책을 써왔다는 걸 알고, 할란 앨리슨에 감탄한 적이 있기 때문에 꼭 읽어보려고 하고 있다. 스티븐 킹이나 마이클 무어콕도 있다. 어떻게 읽어도 손해는 안 보겠다.


덧붙여, 작품집을 전체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수상 작가인 마이클 셰이본이다. 그는 이런 발상에서 작품을 시작했다고 한다. "1950년대의 어느 시기에, 이제부터는 간호사가 등장하는 로맨스물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소설을 문헌목록에 일체 수록하지 않고, 서점의 서가와 도서관에서도 금지된다면? 설령 '문학의 신'이라 할지라도 간호사 로맨스물이 아니라면 어떤 장르든 소설을 써서 돈을 받지도, 책을 출간하지도, 유명인사 대우를 받지도, 독자들에게 사랑받지도 못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로맨스 중에서도 하필이면 간호사 로맨스물이라는 점이 참 뜬금없는데, 과연 어떤 단편을 썼을지 궁금하다.



 


[파저란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진혜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


   내가 왜 독일 소설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쩐지 독일이라고 하면 문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신뢰가 간다. 저녁 시간대 TV에서, 보통은 예능이 뒤덮을 시간에, 평행우주와 관련된 물리학적/철학적 토론 프로그램을 버젓이 방영하는 곳이기 때문이라든가. 독일에서 독일사를 전공한 사람들은(최소한 지금까지 만나본 중에는) 어쩐지 다 온화하고 학자풍의 사람이었다든가. 맥주와 아이스와인과 빵이 맛있는 곳이라든가. 헤르만 헤세와 괴테와 릴케 등등의 나라라든가. 근근이 접했던 독일 현대 소설도 매우 좋았다든가. 그런 저런 편협하고도 주관적인 이유들 때문에 이 책도 관심이 간다.


   화자인 는 여행 중 가는 곳마다 나치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 흔적은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도 살아있는 현재진행형 사상이다. 책의 제목 파저랜드(Faserland)”는 작가가 만들어낸 말이지만 우리는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파더랜드(Fatherland)]에서 그 어원을 유추할 수 있다. 파더랜드(조국)는 나치가 2차대전에서 패배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대체역사소설이다. “파더랜드의 독일이 여전히 나치즘 국가라면, “파저란트는 여전히 나치의 과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포스트 나치즘 국가다.


크라흐트는 나치즘을 역사의 우연이 만들어낸 지극히 특수하고 비정상적인 괴물이라기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어떤 본질적인 면에 대한 반영으로 본다. (...) 요컨대 파저란트에서 나치라고 욕을 먹는 것은 전체의 규율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개인들이다.”


   독재와 자유의 문제를 분석한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에리히 프롬은 2차대전 당시 사람들이 왜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나치즘을 따랐는지를 분석한다. 답은 자유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자유가 부과될수록 그는 자유로운 선택을 대신 결정해줄 영웅에게 저항하기 어렵다. 당시 나치즘이 독일 국민들에게 힘을 얻은 이유다. 만약 그렇다면, 개인에게 책임을 넘기는 자본주의 논리가 세상의 이치가 된 현재 나치즘을 들먹이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독일은 과거를 철저히 청산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에는 네오 나치즘 사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들었다. 살기 힘들수록 개인보다 집단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집단주의적 논리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파저란트]의 문제는 지금의 문제다.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

맥스 애플 외 지음, 리차드 포드 엮음, 강주헌 하윤숙 옮김, 홍시 펴냄


   이쪽의 테마는 이다.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 노 칼라 시리즈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과연 화이트-블루-노를 망라하는 다양한 직업을 다루는 모양이다. 수리공이나 변호사의 삶은 예상할 수 있지만, 카우보이나 비밀군사기지 연구원의 일은 어떤 작품으로 나왔을지 궁금하다.

   문학에서 직업을 다루는 것이 어떤 점에서 매력적인가? 엮은이는 여기에 암암리에 반복되었던 문학과 현실의 대립을 끌어들인다.

영국의 소설가이던 V. S. 프리쳇은 "나는 산업체에서 일하며 살기를 바랐다. 전통적인 전문가의 숙련된 솜씨를 보고 듣고 싶은 충동은 지금도 견디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 위대한 단편소설가였다면 내 어머니의 생각을 오래전에 은밀히 인정했을 것이다. 또 내 어머니의 생각에 나는 항상 실패한 사람이었고, 글쓰는 일은 진정으로 일하는 게 아니며, 우리가 각자 고유한 이야기를 지어내기는 하지만 글 쓰는 일은 기껏해야 우리 같은 작가들이 진실이라고 끝까지 우기는 허구에 불과하다고도 인정했을 것이다.”

   그는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예술이란 쓰잘데기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한다. 얼기설기 구성된 단어들의 나열에 비해 전통적인 전문가의 숙련된 솜씨란 말 한 마디 없이도 얼마나 분명하고 강렬한지. 하지만 그렇기에 직업의 세계는 문학적으로도 강력한 힘을 가진다. “우리가 인간사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일의 진실한 모습도 우리 상상의 행위에서 가장 분명하게 찾아진다.”


   이 시리즈에는 총 32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2권으로 나뉘어 나오는 듯하다. 잡다한 직업을 다루는 만큼 작가들의 배경도 다양하다. 생각해보면 이런 민족적/문화적 다양성이 미국의 강점이긴 하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펴냄.


   밀실 미스터리 소설. 마술사, 오컬트, 서커스가 나온다. ‘고전시기에 나온 추리소설이라 관심이 간다. 추리소설에 한해서만은 20세기도 무조건 환영이다. 덧붙여 출판사 '피니스 아프리카에'는 [스틸 라이프] 등의 추리소설을 내고 있는데,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으면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책들이라 좋아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안에서 문이 잠긴 방에서 마술사 하나가 살해당했다. 그를 방문했던 사람들, 즉 용의자 역시 모두 마술사다. 쇠사슬로 묶어놔도 감쪽같이 탈출하고, 손짓 하나로 물건을 여기서 저기로 옮길 수 있고, 공중 부양이나 인체 절단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물론 진짜 마법이 아닌 이상 이들의 능력은 속임수에 불과하지만, 트릭을 알기 전까지는 전부 마술이다. 따라서 마술사를 잡기 위해서는 마술사가 필요하다. 이 소설의 탐정은 개비건 경감과, 마술사이자 아마추어 탐정인 그레이트 멀리니 두 사람이다.


   저자의 미스터리 경력은 일러스트레이터부터다. 그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첫 미국판 표지를 디자인했고, 트루 디텍티브 매거진의 편집장을 지냈고, 7년 동안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의 편집 주간으로 있었다. 그리고 미국추리작가협회의 창립 멤버이자 영국추리작가협회의 멤버였으며, 프로 마술사였다고 한다. 놀랄 일은 아니지만 예상하지는 못했다. 이 책은 마술사 탐정 그레이트 멀리니 시리즈의 1권이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이 탐정도 꽤나 매력적이다. 본문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멀리니는 종종 자신을 드러내지 않다가 갑자기 입을 뗄 때가 있는데 그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을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마술로 속임수를 쓸 때면 간단히 관객의 주의를 옆으로 돌리고 일순간에 현혹시켜 버리는 것이다. 늘 천연덕스럽고 아이러니하며 유머러스한 그의 언변은, 때때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최면술이나 다름없는 설득력 있는 말투로 바뀌곤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든 팔 수 있다. 그는 불가능을 파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솜씨 좋은 탐정일 것이다.


 



[메타트로폴리스]

존 스칼지 외 지음, 홍인수 옮김, 책세상 펴냄.


   이거 나왔네! ‘미래 도시를 주제로 한 SF 단편집. [노인의 전쟁]으로 수많은 팬을 만든 존 스칼지가 주도했다. 이 아저씨라면 분명히 재미있는 기획을 했을 것이다. SF쪽이 워낙 근간이 잘 소개되지 않다 보니 더 반갑다. 최근에 나온 작품이니까 절대 촌스럽진 않겠지 하고 막 믿음이 간다. 참여한 작가는 다섯 명. 국내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다들 한창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가들이다. 개중 칼 슈뢰더는 [하드 SF 르네상스] 1권에서 <헤일로>로 소개된 적이 있다.


   미래 도시라고 해도, 80년대에 상상하던 해저 도시 이런 걸 다룬 작품은 아닌 모양이다. 다섯 작가가 모여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고, 그 도시가 지닌 각 면모를 각기 다른 스타일로 썼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권은 개별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완성도를 갖는다. 팀으로 창작할 때의 꿈이지만 실현되긴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다들 글 깨나 쓰는 사람들이니 완성도에 있어서는 안심해도 되리라 보인다.

 




[사막에서 연어낚시]

폴 토데이 지음, 김소정 옮김, 마시멜로 펴냄.


   “예멘에서의 연어낚시가 주제다. 예멘이라고? 거기서 연어? 작가는 영국 사람이다. 정치판과 유머와 풍자가 주요 내용이고, 2007년 작인데 이미 냉큼 영화화되었다.


   주인공은 영국 정부 산하 국립해양원에서 근무하는 어류학자 알프레드. 그는 어느 날 스코틀랜드의 연어를 예멘에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제안 받는다. 예멘 어느 부족의 족장님이 사막에서 연어를 보고 싶으시단다. 알프레드는 합리적인 사람인지라 말도 안 된다며 거절하지만, 높으신 분들이 얽힌 복잡미묘하고도 불가해한 이유로 프로젝트 담당자로 발령이 난다.


   꽤나 어이없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거기다가 진지한 면도 있는 모양이다. 예를 들면 연어, 족장님이 원하는 게 왜 하필 연어인가. 그는 고향인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여행이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자신의 여행을 상징한다고 믿었고, 자신의 부족민들에게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 프로젝트를 의뢰했다고 한다. 중동과는 한참 떨어진 곳에서 합리적이고도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던 알프레드 입장에서는 생각할 게 많다.


   중동 지방의 이야기를 다루되 유쾌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영국 유머는 취향을 탄다는 게 문제지만, 이 책은 한번 보고 싶다.

 





[흰 개]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펴냄.


   [자기 앞의 생][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저자인 로맹 가리의 소설. 주인공으로 로맹 가리 본인과 아내 진 세버그가 등장하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 소설 역시 냉소적이고 신랄하고 사색적일 게 분명하다. 읽는 내내 인간의 어리석음과 세상의 부조리가 쓸쓸하게 펼쳐질 테고, 다 읽고 나면 작가가 택한 자살에 감정적으로나마 동참하게 될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텍스트가 머릿속을 떠다니는 동안은 우울함과 회의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그는 집단이나 이념에서 광기를 발견하는 데 더 익숙하다. 그리고 그걸 쓴다. 이 사람의 소설이 사랑스러운 점이다.


   소설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 베트남전과 인종 차별이 한창일 때다. 로맹 가리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프랑스 인이고, 이곳에서는 외부인이다. 아내 진 세버그는 백인이지만 흑인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 안에서 겪는 충돌은 다양한 대립으로 나타난다. 흑인과 백인, 개인과 집단, 남자와 여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한쪽이 틀렸다면 다른 한쪽은 옳을 것이다그러나 로맹 가리는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한 채 양쪽의 부조리를 본다. 어쩔 수 없다. “악한 진영에도 있듯이 이 착한 진영에도 상황을 이용하는 자들과 개자식들이 있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출판사 소개글을 더 끌어와보면, “이 작품은 인종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흑인을 두둔하지도, 백인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로맹 가리의 눈에 집단의 이념에 사로잡힌 인간은 늘 광기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로맹 가리는 이 책의 전면에 나서 인종주의를 고발하는 동시에, 당시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선 과격파 흑인 단체의 위선과 말론 브란도 등 스타급 인사들의 '숟가락 얹기'를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흑인 단체에 놀아나는 아내 진 세버그의 혼란과 자기모순을 비판적으로 어루만진다.”


   로맹 가리의 말에 끌리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로 손도 대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굳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생각을 떠맡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 거 없이 살아도 우리네 삶은 충분히 바쁘니까. 하지만 비록 우울해질지라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쪽이 더 좋다.

 




   


[한국 추리소설 걸작선]

김내성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한즈미디어 펴냄


   국내에서도 추리소설 역사는 상당히 길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한국 추리작가 협회에서는 매년 추리 전문 잡지 [계간 미스터리]를 출판하고 있다. 계간 미스터리가 국내 유일한 장르 전문지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어쨌건 추리소설 창작이 계속 이어져 온 건 사실이다. 이 책은 [한국 추리소설 걸작선]이라는 담백한 이름답게 1930년대 데뷔한 [마인]의 작가 김내성부터 시작해서 2012년 현대의 작품까지 수록되어 있다. 모두 44편이고 총 2권으로 나왔다.


   추리소설은 읽지만 국내 추리소설은 잘 몰랐다면, 참고 삼아 읽어보길 권한다.

 





[조이 이야기]

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샘터 펴냄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 마지막 편. 앞 편이 인기가 좋다보니 시리즈가 전부 번역되는 모양이다. 이전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따로 추천할 말이 필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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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별을 스치는 바람 1, 2]

이정명 지음, 은행나무 펴냄, 2012

 

 

이 책은 2차대전 때 징집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간수병으로 살았던 어린 청년 와타나베 유이치의 기록이다. 그런 형태를 한 소설이다. 그리고 시인 윤동주를 기록하고자 한 소설이다. ‘바람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별과 바람의 시인을 다룬다. 그런 의도를 고려하지 않으면 소설 내용만으로는 누가 주인공이라고 꼽기 어렵다. 화자인 유이치가 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의 기록은 형무소에서 살해당한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의 생애를 훑어나가는 작업이다. 윤동주, 일본명 히라누마 도주는 그 뒤에 부차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과감하게 나누면 1권은 스기야마 도잔, 2권은 윤동주를 파고든다고 볼 수 있다.

 

유이치는 선임 간수 스기야마 도잔 살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임무를 받는다. 어떤 놈이 왜 그를 죽였는지 밝혀서 보고서를 제출하는 일이다. 그는 얼마 전에야 3 수용동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죽은 간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스기야마는 3 수용동의 검열관이었고, 누군가의 말로는 잔학한 짐승이었고 누군가의 말로는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또 누군가는 스기야마를 두고 일본어만 겨우 익힌 까막눈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그를 책벌레라고 한다.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남긴 기록들을 조사해야 한다. 대조되는 기록을 비교 대차하며 생각하는 것이다. 유이치는 문장을 통해 진상을 더듬어나간다.

 

문장에는 힘이 있다. 사형집행서는 사람을 죽인다. 죽는 모습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형수의 죽음을 증거하는 것은 사형집행서다. 흉기를 지닐 수 없는 형무소에서는 문장이 흉기다. 검열관이 하는 일은 불온한 문장을 불태우는 것이다. 편지, 서적, 기록을 철저히 검사해 반란의 씨앗을 제거하는 일이다. 한글로 쓰인 글은 무조건 소각 대상이다. 문학 작품이라도 예외는 없다. 그렇게 충실하게 일하던 검열관 스기야마는, 그리고 그의 작업을 역추적하던 유이치는, 형무소의 문장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문장을 만난다. 잔인한 짐승에게도 인간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문장, 바로 윤동주의 시다.

 

 

 

작중에서 윤동주는 한번도 의 입장이 되지 않는다. 시인의 세계는 재구성할 수 있지만 시인의 내면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와 대화한 사람들의 변화에서 간접적으로만 읽을 수 있다. 스기야마나 유이치가 조사하고 심문하고 관찰한 윤동주의 모습이 윤동주를 구성한다. 그리고 둘 다 문학에 감화된 인물이다. 이들은 윤동주와 함께 아름다운 문구를 거듭 주고받는다. 이 소설이 택한 표현방법이다.

 

작품 자체가 시에 푹 빠져있다 보니, 시를 자아내는 시인에 대한 묘사도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작중의 윤동주는 입에는 그린 듯한 미소가 항상 걸려있고 빛나는 눈에 곧은 코를 지닌 아름다운 청년이다. 온갖 인용구를 막힘 없이 읊는 기억력을 가졌고, 시의 화신 같은 문장력을 보여준다. 그에겐 간수마저 존댓말을 쓰게 만드는 위대함이 있다. 윤동주가 슬퍼하거나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는 아름답고 희망찬 위대한모습을 보인다.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공감하기는 힘들다. 진짜 주인공은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가 아니라 그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아름다운 시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다. 시에는 실제로 그만한 위력이 있으니까.

 

다만 이 소설에 삽입된 시가 그 위력을 보여주는지는 의문이다. [별을 스치는 바람]에서는 윤동주의 시를 인용할 때 무조건 전문을 삽입한다. 그 뒤 화자가 그 시어를 해석하고 시의 느낌을 묘사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동의는 하지만 감동하기는 힘들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시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정규교육을 받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읽어보고 들어보고 자잘한 해석 방법까지 배우는 시니까. 윤동주 시를 처음 접한 등장인물이 어떻게 이런 시가!” 하고 감동에 젖더라도, 이미 알던 사람 입장에선 그렇다더라, 이제 알았니.” 하는 심드렁함을 떨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 아쉽다. 교과서와 시험의 기억에서 벗어나 시 자체에 순수하게 빠져들 수 있도록 제시됐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

 

예전에 다른 소설에 삽입된 시를 보며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누가 따로 해석해주지 않아도, 소설 속 맥락에 빠져들고 나니 시가 나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시는 산문보다 함축적이기 때문에, 소설이 배경으로 고조되어야 그 안에 삽입된 시가 무게를 갖는 것 같다. “시가 내게로 왔다를 삶에서 경험하는 게 아니라 소설 속의 삶으로 대리 체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야 그 구절이 소중해지고, 읽는 사람도 다시 한번 되뇌이게 되는 듯 하다. [별을 스치는 바람]의 방식으로는, 시 읽기 단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감흥을 얻기는 좀 힘들 거라 보인다.

 

 

 

대신 인용구의 아름다움은 확실하다. 구절이나 문단 단위로 삽입된 문장들은 참 좋았다. 여기엔 화자인 유이치가 문학청년이라는 점도 한몫 한다. 그는 징집되기 전까지 헌책방 집 아들로서 책에 푹 빠져 살았다. 그는 가게에 들어온 고흐 화집의 아름다움에 반해 구석에서 순수하게 취하곤 하던 인물이다. 어느 날 그 화집을 사러 온 사람에게, 비싸게 팔 수 있고 그 돈으로 물자를 구해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거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배부름보다 예술에 대한 욕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들의 세계에서 자라다가 전쟁에 내던져진 것이다.

 

그가 윤동주를 만나고 그의 시에 정신이 멍해진 뒤 접하는 책은, 어릴 때 보던 것과는 또 다를 것이다. 릴케가 쓴 [말테의 수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는 아무 뜻도 없는 짤막한 허위의 첫 문장을 쓰기까지 평생이 걸린다는 것을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 했다.”

 

유이치가 이 구절을 다시 만나는 건 윤동주에게 책을 건네줄 때다. 형무소에 보관되어 있던 [말테의 수기]는 유이치가 밑줄을 치며 읽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그리고 책을 유이치네 헌책방에 맡겼던 사람은 윤동주였을 것이다. 둘은 같은 책을 사랑했고 같은 시인을 사랑했다. 흘러 흘러 하필 그곳까지 도달한, 윤동주와 유이치를 이어주는 책. 그걸 보면 누구라도 운명 같은 걸 느끼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희망, 영혼이라는 이름의 운명 말이다.

 

유이치는 입영 영장을 받은 날 고흐 화집을 사러 왔던 사람을 찾아간다. 그리고 화집을 넘긴다. 고흐는 그의 영혼의 일부였다. 윤동주는 그에게 고흐의 이야기를 한다. 별의 화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다.

 

지도를 볼 때 도시나 마을을 표시한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단다. 그럴 때 난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 가듯 왜 하늘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는 갈 수 없을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두 문학청년이 나누는 시인의 이야기에는 반짝임이 있다.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더 가치롭게 느껴지는 작은 반짝임이다. <별 헤는 밤>에서, 별을 보면서 불러보는 시인들의 이름이 왜 그리 절절하고 아름다운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시를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 속 깊은 곳에 시를 간직할 수 있는지도. 고흐가 별의 화가라면 윤동주는 별의 시인이다.

 

 

 

서문이나 주석을 참고하면, 저자는 소설을 통해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록을 하고 싶었던 듯 하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역사가가 사료에 해설을 달듯 주석을 적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윤동주가 자신의 육필 원고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으며, 하지만 자기조차 지키지 못한 원고를 누가 간수할 수 있겠냐는 말을 하는 장면이다. 저자는 여기에 친절하게도 소설 밖의 사실을 끌어온다. 이 부분의 주석에는 윤동주의 원고를 받은 친구 정병욱은 목숨을 걸고 이를 지켜냈으며 결국 해방 후 시집을 출간했다는 첨언이 붙어있다.

 

소설은 어차피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상 정확한 내용을 포함해도 전부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윤동주의 생애를 다룰 때마다 나오는 주석은 불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이야기 구조부터도 윤동주 하나에 초점을 맞춘 구조가 아니다. 윤동주의 공식적발언마다 굳이 “-에 기초했다는 주석을 끼워 넣는 건 되려 흥을 깬다. 다른 부분의 허구성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주석이 있다고 소설 속 윤동주가 더 굳건해지는 것도 아닌 듯 하다. 그를 형상화하는 질료는 말과 행동의 묘사이지, 본문 밖의 주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석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소설이 야기할 수 있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연설명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주석을 넣는다면 미주나 작가의 말을 통해 맨 뒤로 빼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페이지마다 각주로 넣은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 본문의 완성도를 추구한다면 말이다.

 



철저히 윤동주 하나만을 따라가는 구조였다면 이런 열성은 별로 거슬리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여러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취하는 장점이 더 크다. 개성을 가진 인물들의 결합을 통해 이 책은 내면적으로 풍요로워진다. 윤동주 주변에 배치한 인물들을 통해 그가 상징하는 가치를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덕분에 윤동주 자체는 비인간적인 느낌이 나지만, 그가 말하는 시는 아름답다.


화자인 를 관찰자로 정한 것도 장점으로 보인다. 소설의 시작이었던 스기야마 도잔 살인사건의 진상, 문학청년의 갈등, ‘악독하고 쓸모없는조선인 죄수들이 공유하던 비밀 등을 모두 다루는 구조다. 형무소 안에 숨겨진 여러 겹의, 그리고 여러 군데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수용소에서 자행되던 인체 실험 때문에 윤동주가 단명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그 시기가 종전 6개월 전이라는 것도 유명하다. 그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에, 반일감정에 불타 읽으면 앞서의 감상과는 다른 식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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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하시겠습니까?]

민족문학연구소 엮음, 김미월 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젊은 작가들의 책이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주제에 이런 책을 놓치고 지나갈 수는 없다. 콕 집어 젊은 작가를 바라는 이유는, 지금을 살아가는 독자 입장에서 볼 때 기존 문학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에는 괴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절망, 새로운 무력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는 아직 문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배부른 소리라고 호통치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기성 세대는 젊은이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 위로를 건넨다. 그러나 필요한 건 충고나 위로가 아니다. 필요한 건 이해와 해결책이다. 지금 젊은이를 그리기 위해서는 동 세대의 젊은 작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김사과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은 눈 먼 분노로 가득 차 있고,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거북하다. 반면 그 분노에 공감하면, 분노 이면의 절망을 읽어내고 나면, 머리에 달라붙어서 떨쳐내기 어렵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불안감, 두려움, 무력함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단에서는 그 동안 젊은 작가들이 현실이나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하다며, 동세대의 독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평이 있었다. 이는 서로 바라보는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별 거 없는주인공의 개인사를 다루는 소설들은 어쩌면 개인으로 파편화되고 개인으로 침잠하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포맷하시겠습니까?] 20~30대 초반 세대인 작가들이 동세대의 삶을 실감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각자의 언어로 현실과 대결하며 현실 '너머'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다산책방 펴냄.

 

광기와 비극을 다루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 편안한 공간에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독자를 등장인물과 같은 비정상적인 상태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도망가는 쥐의 퇴로를 하나씩 차단하듯 단계를 밟아가며 치밀하게 사람을 내몰아야 한다. 이 작가가 플롯의 탄탄함, 겹겹이 구성된 진실을 파헤치며 독자의 혼을 빼놓는 솜씨는 믿을 만 하다. 저자의 다른 작품 [알렉스]는 정말 최고였다. 특히 1부의 긴박감은 여느 스릴러를 압도한다. 납치된 여자와 이를 수소문하는 형사의 시점이 번갈아 제시되는데, 여자는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데도 시점이 교차할 때마다 새로운 위험이 목까지 차오른다. 정말 피 말리는 과정이었다. 위기가 지나간 1부 이후로는 뒤통수를 맞는 과정이었고.

 

제일 좋았던 점은 문장이었다. 입체적인 인물상을 한 문단 안에 묘사해내는 실력과, 이미지와 상징과 사실이 적절히 결합된 표현 방식은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알렉스] 한 권만으로 이 사람의 책이라면 뭐든 사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기쁘게도 다산책방에서 순조롭게 출간될 모양이다.





[문 콜드2]

퍼트리샤 브릭스 지음, 이수현 옮김, 시공사 펴냄

 

 지금껏 본 어반 판타지 중 유일하게 마음 속으로 밀고 있는 시리즈. 1권 나온 후 출간 계획이 불투명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무사히 2권이 출간된 모양이다. 표지는 보다 얌전하게 바뀌었다. 원서 표지에서는 권수를 거듭할수록 여주인공 일러스트에 문신이 하나씩 늘어나는데, 국내판에서는 아예 인물을 빼버렸다.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만큼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지만, 얌전한 표지 쪽이 호응은 좋을 듯.

 

 여주인공 머시는 독일 클래식 카 전문 자동차 정비공이고, 자유자재로 코요테로 변신할 수 있다. 그녀에게 기술을 가르쳐준 스승은 그렘린이고, 단골 고객 중에는 뱀파이어가 있고, 앞집에는 늑대인간이 산다. 이 세계관의 늑대인간들은 엄격한 서열제로 무리를 운영하는데, 늑대가 권력관계에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초자연적 존재들 사이의 그 알력다툼이 또 현실감이 묻어난다.

 

 이야기 군데군데 섞인 로맨틱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같은 로맨스라도, 달콤함과 끈적함이 넘쳐나 쉽게 질리는 책들과는 다르다. 메마르고 절제된 상황에서 언뜻 스쳐가는 두근거림이 참 사람 마음에 불을 지른달까. 그리고 솔직히, 어릴 적 첫사랑부터 해서 연애 가능 대상이 여럿 나오긴 하지만 개중에서 여주인공 머시가 제일 매력적이다. 이 여주인공에게 반한 결과 코요테 사진집까지 구했다. 원서는 꽤 많이 나왔는데, 국내에도 계속 번역되길 바란다.

 



   

 

[신의 손1], [신의 손2]

구사카베 요 지음, 박상곤 옮김, 학고재 펴냄.

 

 의사는 전문직이기 이전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합법적으로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직업은 현대에는 군인과 의사밖에 없다. 의사는 보다 일상적으로 목숨을 다룬다는 점에서 군인보다 훨씬 도덕적 딜레마를 심하게 겪을 테다. 여기에 돈과 정치가 얽혀서 의학 미스터리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구사카베 요는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을 비롯한 가이도 다케루의 뒤를 잇는 작가라고 하는데, 과연 공통점이 많긴 하다. 현직 의사가 쓴 소설이라는 점, 의학계와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논쟁거리를 다룬다는 점, 이를 범죄를 다루는 미스터리에 녹여낸다는 점이다. 가이도 다케루의 소설은 가볍고 흥미진진하게 읽기 좋았는데, 과연 이 책은 어떨지.

 

 구사카베 요의 이력 중 외무성 의무관으로서 여러 곳의 대사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노인 데이케어, 재택 의료에 종사했다고. 현장에 서 있는 사람의 문제의식이니만큼 그 깊이와 무게가 기대된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감동 실화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하면 일단 경계심이 생기는데, 아름답다는 이름으로 치장된 소비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감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건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로 충분하다. 하지만 질문에 마음이 움직였다. “우린 이 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그러게, 우리가 이 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불치병을 다루는 소설치고는 신파보다는 재치 함량이 높은 소설일 듯 하다. 등장인물의 재기가 마음에 든다. 책 소개에 따르면, “주인공 헤이즐은 책 속에서 특유의 멋들어진 재치를 담아암 이야기란 원래 재미대가리 없는 거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죽음의부작용일 뿐이다.”라고 비꼬기도 한다.” 유머를 아는 인물은 언제나 좋다. 예문을 하나 더 첨부한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수학 이야기를 할게요. 전 수학자가 아니지만, 이건 알아요. 0 1 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0.1도 있고 0.12도 있고 0.112도 있고 그 외에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죠. 물론 0 2 사이라든지 0과 백만 사이에는 더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커요. 저희가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가 이걸 가르쳐줬죠. 제가 가진 무한대의 나날의 크기에 화를 내는 날도 꽤 많이 있습니다. 전 제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를 원하고, , 어거스터스 워터스에게도 그가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있었기를 바라요. 하지만, 내 사랑 거스,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 난 이걸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거야. 넌 나한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폴라북스 펴냄

[작년을 기다리며]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폴라북스 펴냄


 PKD의 작품은 수없이 영화화되고 인구에 회자되었음에도 국내에 소개된 장편 작품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높은 성의 사나이] 이외에는 이렇다 할 게 없다. 그런 점에서 폴라북스에서 내고 있는 PKD 작품집은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책도 예쁘겠다, 쑴풍쑴풍 잘도 나온다 했다. 다만 정신병과 마약에 시달린 위대한 작가답게 내용이 너무 무거워서 한 권 읽어 삼키는데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였다. 쭉 읽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정신이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단편집이 다시 반가워지는 시점이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작년을 기다리며] PKD 작품집 중 비교적 쉽게 넘길 수 있는 책이다. 전자는 단편집이고, 후자는 보다 말랑말랑한 게 우주적 스케일의 이혼 분투기라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이 작가에게 손을 뻗지 못하고 있었다면, 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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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추천신간

 

이번 달엔 어째 한국 소설이 많다. 심지어 장르소설도 눈에 들어오는 게 별로 없는데, 타닥타닥 빗소리 들으면서 간만에 문학에 빠져야 할 모양이다. 번역서를 많이 읽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 소설에 소홀해지곤 하는데, 국내의 젊은, 혹은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에 기대가 쏠리는 것이 참 반갑다.



 

 [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이거 재미있겠다:)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도망쳤던 할머니, 개잡년이니 뭐니 하는 욕을 들으며 자식들한테는 전쟁 때 죽었다고 알려졌었다. 이제 와 새삼 돌아와 하는 말이, “너희들에게 줄 재산이 60억 있다.”는 말. 사투리와 욕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과연 본문은 얼마나 구성질지.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라는 평을 받았다는데, 할머니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마냥 웃기기만 할 리 없다. 일본 사람과 만난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존재가 지워졌다. 60억을 지닌 지금에야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돈은 유산으로 상속될 때만 가족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족들이 주판을 튕기는 대상은 할머니 개인이 아니라 그 돈이다. 분명 할머니가 다른 남자랑 도망갔다고 말하느니 병으로 죽었다고 말하길 택했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보고 개잡년이라고 욕부터 한다. 분명히 살아서 돌아왔는데도 인간으로서는 받아들여지기가 힘들다.


 제목이 [오빠가 돌아왔다]를 연상시키는데, 모양새만 따온 줄 알았더니 어쩌면 주제도 관련 짓자면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소설로 모든 할머니들이 조금이라도 위로 받는다면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일제강점기와 전쟁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창작물이 나오길 바랐다. 역사교과서도 아닌 이상 엄숙주의를 고집할 필요도 없고, 그 역시 창작물이 택할 수 있는 한 방법이고, 그래야 마음 속에서부터 애착도 생기고 이해도 가니까. 이 책은 어떨지 기대된다.




 

 [코끼리는 안녕], 이종산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1회 수상작. 귀엽다. 발랄하다는 말을 붙이면 엇나갈 것 같은데, 귀엽긴 귀엽다. 하지만 귀엽기만 하면 실망할 거다. 그보다는 깊이 있는 글을 원하니까. 기성 작가들보다는 80년대 생들의 감상에 관심이 많이 간다. 이전 세대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을지 몰라도 그보다 더 고차원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지금의 20-30대가 보여주는 분노, 절망, 능청, 허튼소리 같은 것에 매력을 느낀다. 그것들은 보통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지금의 현실에 맞는 진정성과 흡입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 책에선 어떨지, 문학동네에서 어떤 글을 뽑았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소설에서 늘어놓는다는딴청이 과연 얼마나 매력적일지 읽어보고 싶다.

 





 [아홉 개의 붓], 구한나리 지음, 문학수첩 펴냄.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당선작. 전통적인 혹은 한국적인 요소가 강한데, 그런 이야기 대부분을 좋아하다 보니 눈길이 간다. 아홉 감()과 그들이 만든 아홉 개의 붓에 관한 이야기들, 붓을 모두 모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말. 붓이라는 신기가 주는 축복이 소유자의 행복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조화라는 점에서 친밀감이 마구 솟아나고 있다. 서양 쪽의, 기사들이 갑옷 입고 칼 들고 설치는 전형적인 판타지도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 한국의 고전 설화 같은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반갑다. 이건 좀 재미있을지도.


 책에는 불만이 없는데 책 소개가 줄거리 나열에 그친 것 같아 좀 아쉽다. 어떤 의미를 품는지, 어떤 앎을 얻을 수 있는지 등도 소개해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문단 쪽 문학에 대한 소개글은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와닿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데, 환상문학 쪽은 반대로 너무 피상적이라 안 와닿을 때가 있다. 결국, 읽어보고 확인해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삼풍], 문홍주 지음, 선앤문 펴냄.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당시의 이야기를 재현한다고. ‘삼풍두 글자만으로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유명한 사건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를 다룬 창작물은 거의 없다. 어쩌면 이 시기에 책을 살필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이름을 남긴 책은 딱히 없는 듯 하다. 미국에서 9/11 이후 이를 다룬 창작물(예를 들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같은)이 쏟아져 나온 걸 생각하면 좀 비교되는 일. 이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의 잠재성을 품고 있는 사건인데 왜 다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뿐이다. 그런 점에서 관심이 가는 책이다.


 소개글만으로는 흥미롭다는 감이 안 오는데, 미리보기에 나와 있는 문장들은 또 괜찮아 보인다. 재난 소설에서 꼭 희망을 역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재난과 그 한복판에 선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것은 흥미로운 과정이리라 생각한다.

 



 [여신과의 산책], 이지민 외 지음, 레디셋고 펴냄.


 젊은 작가들의 단편집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저번 달에 나온 것도 채 못 읽었건만 이번 달에도 하나 나왔다. 이건 좀 읽어보고 싶어서 몸이 단다. 한유주 작가의 팬이 되고자 나온 책들을 읽고자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박상 작가의 발랄함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지민 작가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등등. 인터파크에 연재되었던 소설들을 추려 모았다는데, 그럼 최소한 실망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예전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모은 [오늘의 문학]도 참 괜찮았었기에 인터넷에서 검증됐다는 말에 신뢰가 생겼다.


 특히 이 단편집은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강한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환상소설로는 흐르지 않는 잔잔한 현실성, 그런 걸 그려내는 한국 소설에 관심이 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남미 출신 책이라면 고민할 거 없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할 텐데, 그건 또 아니고. 현재로는 열심히 읽어봐야 알 일이다.

 



 [바람의 그림자 1,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문학동네 펴냄.


 잊혀진 책들의 묘지, “이곳의 기본 수칙은 첫 방문 시 자신만의 책 한 권을 얻을 수 있는 대신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누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 책에 관한 책은 언제나 신난다. 게다가 적당한 환상성과 미스터리가 버무려져 있는 모양이다. 저 책들의 묘지에서 얻게 된 책을 시작으로 하여 겹겹이 쌓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스페인에서 150주 이상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다고. 그런데 여기에성인 한 명이 일 년에 평균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스페인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이라는 말이 붙어있는 걸 보니, 스페인도 어지간히 소설 안 읽는 모양이다. 또 그런데도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다면, 전 국민적인 화제가 됐을 법 하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항상 만족스러운 책인 건 아니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책에는무언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대된다.

 



 [내 욕망의 리스트],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김도연 옮김, 레드박스 펴냄.


 일확천금의 꿈은 지루할 정도로 통속적이지만, 일확천금을 얻은 사람들의 양태에는 시사점이 많다. 270억 원짜리 로또에 당첨된 후의 이야기, 남편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어느 날 당첨금 수표가 아예 사라져버린 걸 알게 된 주부, 몰래 돈을 펑펑 쓰다 270억 중 5억 밖에 못 쓰고 외로움과 괴로움에 시달리다 연락을 해온 남편, 둘의 이야기는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을까.


 저자의 본업은 카피라이터라는데,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흥미를 이끌어내는 문장을 쓴다. 예를 들어우린 다시 읽지 않는 메일을 보내고 문자를 날리지요. 맞춤법이 주는 우아함이나 예의, 사물의 의미를 잃어버렸어요. 전 아이들이 제가 그토록 싫어하는 페이스북에 자기 사진들을 올려놓는 걸 봤어요.”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나는 이 말이 대체 어느 내용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서라도 읽어볼 예정이다.

 



 [아멘 아멘 아멘], 애비 셰어 지음, 문희경 옮김, 비채 펴냄.


 강박장애의 증상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행동, 다른 하나는 자꾸만 이를 유발하는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생각이다.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인 자꾸만 손을 씻는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보통 빨리 씻지 않으면 손이 오염되리란 생각에 시달린다. [아멘 아멘 아멘]의 주인공 애비는 차가 지나갈 때마다 기도를 한다. 그래야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일을 빼먹으면 사고가 날 것이고, 사람이 죽을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그것은 무시무시한 공포다.


 많은 어른들은 자기가 기도를 하는 것과 교통사고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 잘 닳아서 희박한 확률의 불안에는 시달리지 않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비에게는 세상이 무탈하게 자신을 받쳐주리라는 확신이 없다. 어리석은 두려움이지만, 그래서 더 안타깝다. 자기가 살아가던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걸 테니까,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자기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생각에 시달릴 테니까, 그리고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을 테니까.


 강박증, 우울증, 거식증은 서로 가까운 관계다. 저자인 애비는 이 모두에 시달렸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다행히 저자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어 증상에 괴로워할 때마다 엄마가 등을 쓰다듬으며 안아주었다고 한다. 주인공 애비 역시 의지할 만한 엄마가 있고, 또 소녀에서 자라나 한 어머니가 된다고 한다. 그 과정에는 사소한 깨달음이 있다. 사람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누구나 죽는다는 것, 자식은 부모가 된다는 것, 삶은 계속된다는 것. 딸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딸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말이다. 나도 그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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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moon 2012-07-1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7월 추천신간으로 저희 회사의 첫 책인 삼풍 축제의 밤을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회사에서도 이번달에 서평단을 운용하는 중인데 혹시 도서가 필요하시다면 무상으로 한 권 보내드릴 수 있으니 메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