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가 있던 자리
웬디 매스 지음, 정소연 옮김 / 궁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망고가 있던 자리]는 만화화된 작품을 먼저 접했다. 만화로도 인상적이었는데, 책으로 읽으니 책이 더 좋았다. 만화에서는 다루지 않은 보다 자세한 내용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 소녀 미아가 공감각자라는 걸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까지의 갈등이 기억에 남는다.

 

미아는 글자에 색이 보이는 공감각자다. 숫자에도 하나하나 색깔이 입혀져 보이기 때문에 수학 시간에는 집중하기가 힘들다. 상담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미아가 가운데 아이 증후군이라고 말한다. 가운데인 둘째 아이는 첫째나 막내나 달리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을 끌어보고자 특이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미아 입장에서는 진짜이고 진심인데, 다른 사람들은 진지하게 듣지 않고 헛소리로 치부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다 억울했다. 공감각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아는 입장에서 보면 가운데 아이 증후군이니 하는 건 어리석은 해석으로 들리기도 한다. 문제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제 깜냥으로 재단하려 들거나, 손쉽게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자폐아를 다룬 만화 [사랑하는 내 아들아]의 첫 부분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온다. 막 결혼한 신혼 부부는 행복한 미래를 예감한다. 첫 아이도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거나, 웃지 않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자폐아의 전형적인 증상이지만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다들 엄마가 잘못 키워서 그런다고 수군거리고, 남편조차 엄마가 똑바로 못 하니까 애가 이상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성질을 부린다. 이런 오해는 병원을 찾아가고 나서야 바로잡힌다. 자폐는 선천적 결함이고 엄마의 양육 방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엄마가 잘 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잘 못 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의사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설명해준다. 그때서야 이 초보 엄마는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다른 아이를 기르는 건 어렵다. 아이가 남 앞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면 남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람 마음이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고깝게 보는 시선도, 다른 사람들의 아무 생각 없는 말도 마음이 아프다. 그게 거듭되면 우리 아이는 왜 평범하게 행동하지 않을까 내심 원망스러운 마음도 든다. 주인공 미아가 다른 공감각자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이의 부모도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들은 아무리 다그쳐도 아이가 색을 보는 일을 막을 수 없으니까, 대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혼을 낸다. 그들은 난처함, 부끄러움, 부모로서 부족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상태였을 것이다. 미아의 부모도 처음부터 미아를 지지해준 것은 아니었다. 남들과 다른 것에 자신감을 갖기까지는 미아만큼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매우 난폭하다. 눈에 띄기 전까지는 없는 것이고, 눈에 띄면 기분 나쁜 것이다. 공감각, 자폐아, 문제행동, 모두 분명히 실재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맞닥뜨리기 전까지 자기와는 관계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문제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모른 척 하고 살았을 뿐이라는 걸 안다. 통계적으로 공감각자는 2천 명에 한 명꼴로 나타나고, 자폐 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만 명당 15-20명 정도라고 한다. 한국 국민 수를 5천만으로 잡으면 각각 2 5천 명씩이다. 계산해 보면 전교에 한두 명은 있다는 말이고, --고를 거치면서 안 만나기가 더 힘든 비율이다. 당장 자기 옆 사람의 현실이어도 이상하지 않다. 평범함에서 이를 배제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너는 특별해. 너 자신은 그 자체로 소중하단다. 그런 말이 정답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그리고 정답은 쉬운 답이 아니다. 정말로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정말로 신경을 써야 한다. 정확한 지식, 그걸 수용할 수 있는 열린 태도, 사려 깊음, 관심과 애정,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사람인 이상 실천하기는 당연히 힘들다.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할 수는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라는 문제로 고민해본 사람은 다른 사건에도 무관심하지 않은 걸 거다. 다른 소수자에게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감수성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마주하게 되는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난 다음엔, “사람은 누구나 특별하고,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작중 미아가 보는 색채의 세계는 참 아름답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의 단어를 간직하는 것처럼, 알록달록한 단어를 간직하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한다. 원제가 [A Mango-shaped Space]던데, 고양이 모양의 망고색 흔적은 보기만 해도 따뜻하고 귀여울 거라 생각한다. 그런 걸 본다는 게 조금 부럽다. 미아의 입장에서 나온 책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편견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이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제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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