욤욤 공주와 도둑 - [초특가 편집판]
에이치디디브이디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착시와 3차원적 표현 기법을 이용해서 평면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어요. 내용은 구두수선공이 나라를 구하고 공주와 결혼한다는 전형적인 동화지만 그걸 다루는 방식도 촌스럽지 않아서 좋았고요. 비디오로도 구매했었는데 DVD로 소장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 학교수업이 즐거워지는 9가지 인지과학 처방
대니얼 T. 윌링햄 지음, 문희경 옮김 / 부키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쉽고, 실용적이고, 저자 자신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교수법에 충실해서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고 내용을 제대로 학습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친다. 교사로서의 마음가짐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지과학자가 인지과학을 기초로 교육현장을 분석한 책이라는 점도 좋은 점이다.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예시와 연구결과와 질문이 적절하게 들어가 있으며, 인지과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한 수준은 아니다. 챕터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앞서 설명한 내용을 교사가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으로 정리해준다. 학습법보다는 교수법 중심이기 때문에 공부하려는 사람보다는 강단에 서는 사람에게 유용하다. 혼자서 활용하려 한다면 설명문을 쓰거나 공부할 때 응용할 수는 있겠다.

저자는 인지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바지니아대 심리학 교수라고 한다. 전문 분야는 학습과 기억, 그리고 인지심리학을 K-12(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에 적용하는 연구라고. 대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쓴 책치고는 초등교육이 주로 예시로 나오는데, 학교교육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지막 챕터인 <학교 수업을 맡아 하는 교사는 어떠해야 할까?> 부분이 제일 좋았다. 앞에서는 교사가 수업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한 내용이었다면(교사가 되는 사람은 대개 학창시절에 학교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마지막은 교사 자신을 교육하는 방법을 다룬다. 여러 모로 교육자가 스스로 갈고 닦을 힘을 얻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저자는 아메리칸 에듀케이터에 인지과학자로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비록 영어긴 하지만 추가적인 정보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의 창녀 온우주 단편선 3
정도경 지음 / 온우주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관능`이라는 말이 붙어있지만, 사실 이 책의 핵심에 들어있는 건 슬픔과 견고함에 가깝다. 계속 마음에 품게 되는 이야기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어머니가 죽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아버지는 딸의 짐을 정리해 보냈다. 딸의 기대와는 달리 무사히 도착한 25kg짜리 박스 여섯 개에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입양된 딸의 유년시절이 담겨 있었다. 양부모와 함께한 시시콜콜한 추억과 친모와 포대기에 싸인 아기, 즉 딸 자신이 함께 찍힌 사진까지도. 여태까지 자기 이름이 왜 카밀라인지 궁금해 하던 딸은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된다. 사진의 배경에 동백꽃이 흩뿌려져 있으므로. 카멜리아(camellia flower), 동백, 카밀라. 딸은 여섯 개의 박스에 담긴 것들에 대해 글을 썼고, 우연한 기회에 글은 책이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딸은 어머니를 찾아 모국에 들어온다. 대한민국의 전라남도 진남. 그곳에서 이야기가 시작하고 또 끝난다.



  바다를 건너 고향을 찾은 딸을 맞은 것은 의뭉스럽게 속내를 보이지 않는 진남 사람들이었다. 17살에 딸을 낳은 어머니는 진남여고에 다니고 있었다. 진남여고의 교장은 딸에게 열녀비를 보여주며 진남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잘못 알았을 거라고. 서류도 믿을 수 없다고. 그런, 학교 재학 중에 아이를 낳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학교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게 된 딸은 지역 신문에 인터뷰를 싣는다. 그제야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어머니는 진남여고에 다니고 있었고, 17살에 딸을 낳았으며, 이듬해 자살했다. 딸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오빠, 그러니까 큰삼촌이라고도 했다.

 


  어머니는 늘 고독했다. 타인과의 간극이 가장 넓은 이는 어머니 당신이었다. 부당한 대우와 질투, 오해와 이해관계에 따른 희생은 모두 어머니가 감당해야 하는 짐이었다. 어머니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위태로워졌다. 누구보다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어머니는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발 디딜 자리를 잃어버린 어머니는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는 자살이며 또한 타살이기도 하다. 이십여 년이 지난 뒤 어머니의 동창은 말한다. "우리가 걔를 죽인 거잖아."



  어머니가 딸을 낳기 전 낙태를 권하기 위해 어머니를 찾은 다른 동창은 어머니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사람과 사람이 통할 수 있는 때는 아주 잠시뿐이다. 보통 다른 사람의 마음 같은 것은 당연히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날개 같은, 생각하기 쉽지 않은 접근법이 필요하다. 평생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지 못한 어머니는 그래서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날개. 그것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 분명한 날개를. 날개의 사명을 띤 딸은 어머니의 메신저다. 따라서 딸과 어머니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이다. 평생 단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어머니의 흔적을 좇는 딸이 느끼는 고독은 어머니가 느낀 고독과 같다. 차이가 있다면, 딸은 그 고독을 고독이라고 소리 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머니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다. 동시에 딸은 어머니를 둘러싼 인물들의 고독을 읽어낸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고독하지 않은 자는 없다. 우리 모두 차고 넘치는 값싼 고독에 지쳐있듯이. 어머니의 동창이나 몰락한 가문의 적자가 느끼는 고독은 어머니가 느끼는 고독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또한 관계 속에서 고독하기 때문이다.


 

  이미 죽고 사라진 어머니는 딸을 바라보며 말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메신저인 딸은 어머니에게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어머니의 아버지에게 보내던 모스 부호 HOPE와 마찬가지로. 딸을 바라보는 것은 어머니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한편, 끝내 내려놓지 못한 책임이다. 어머니에게는 최후의 전언을 맡은 딸의 끝을 바라봐야 할 의무가 있다.



  마침내 하나로 합쳐진 딸과 어머니, 어머니와 딸은 입을 모아 외친다. 도와달라고. 누군가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그토록 먼 길을 힘들게 돌아와야 했다면, 그 누군가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럴 필요가 없으며, 그러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 내가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멀고 길게 돌아갈 필요가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나와 당신의 고독은 같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다산책방 펴냄.

 

 

0. 유럽권 추리소설

 

노르웨이의 전 법무부 장관이자 추리소설가인 안네 홀트는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나라를 알고 싶으면, 그 나라의 범죄소설을 읽으세요.”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의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는 그저 한 작가일 뿐이지만, [알렉스] [그 남자…]를 연이어 읽다 보니 현대 유럽권 추리소설의 흐름이 보이는 듯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북유럽권 베스트셀러 출신인 헤닝 만켈의 발란더시리즈부터, 네덜란드의 국민 작가 헤르만 코흐의 [디너]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공통점이었다. 바로 법, 정의, 도덕에 대한 회의다.


 

1. 누가 죽였지?

 

이 책은 소피프란츠의 부분으로 나뉜다. 이야기는 소피가 눈물에 젖고 목이 멘 채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실성한 이후부터 그녀는 매일 울면서 깨어난다. 소피는 교육받은 사람 특유의 교양 있고 엄숙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물건을 자주 깜박하거나 갑자기 멍한 상태에 빠지는 등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다. 그녀에겐 주변인의 죽음과 관련된 과거의 사연이 있고, 현재는 제르베 부부라는 부유한 집안에서 보모를 맡고 있다. 일 때문에 귀가시간이 들쭉날쭉한 부부를 위해 여섯 살 난 남자아이 레오를 돌보는 일이다. 그녀가 누렸을 과거만큼 행복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안정된 생활이었다. 추락은 레오가 시체로 발견된 날 아침부터다.

 

그 어린아이는 잠옷으로 온 몸이 묶이고 신발끈으로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집에는 그녀 혼자 뿐이다. 아이를 죽인 끈은 소피의 신발끈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미쳤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다.

 

현장에서 정신 없이 도망치는 장면을 보면 소피는 진짜 정신병자로 보인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사실은 간단한 이야기야. 네가 애를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와서 그애를 죽인 거야. , 레오…… / 하지만 잠깐! 도망쳐 나올 때 발견한 거지만, 아파트 문이 안에서 이중으로 잠겨 있었던 건 어떻게 설명하지? 아냐, 그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이후의 도망생활에도 시체는 그치지 않는다. 법이 명하고 경찰이 붙인 그녀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소피 뒤게, 최소 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아니다. 진상은 프란츠의 이야기까지 읽어야 알 수 있다.


 

2. 법을 무시한 복수는 정의로운가?

 

고전적인 추리소설에서는 대개 정의의 편인 탐정이 승리한다. 범죄자는 살인 등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자수하는 대신 도피를 꾀하는 악인이다. 탐정(혹은 경찰)은 법을 등에 없고 범죄자를 심판한다. 가끔 [오리엔트 특급살인] 같이 정의가 법을 앞서는 예외가 있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탐정은 법의 수호자이고, 그렇기에 그는 옳다. 탐정이 법의 편에서 벗어나는 때는 그 탐정이 물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만약 가공할 만한 악인이 있는데, 법이 그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기지만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법의 그물은 그냥 크고 성길 뿐이다. 법이 악인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똑똑한 사립 탐정이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많은 추리소설이 사립 탐정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남자…]에는 경찰도 탐정도 등장하지 않는다. 법을 등에 업지 못한  [그 남자…]의 희생자인 소피는 법에 의지하는 대신 스스로 복수하기를 택한다. 범죄자를 법의 처분에 넘기는 대신 스스로 죽이는 것이다.

 

이는 미국식 액션 영화 히어로들이 보여주는 사적 수호와도 닮은 면이 있다. 법이 미덥지 못할 경우 개인이 총을 집어들고 스스로를 지킨다는 점에서다. 다른 점은, 주인공의 행동이 정의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희생자는 언제나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지만, 힘을 행사하는 희생자는 더 이상 도덕적이지 않다. 또 다른 희생자를 낳기 때문이다. 액션 영화는 그런 고민을 제외한 채 재미를 추구한다. 현대 유럽권 추리소설들은 도덕적 딜레마를 남겨놓았다.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가 소설에 깊이를 더하는 방법이다.

 


 

3. 정신병

 

국내에 먼저 소개된 작품 [알렉스]에서도 보였지만, 이 작가가 이야기를 이리저리 전환하며 사람 혼을 빼는 솜씨는 정말 뛰어나다. 플롯을 잘 짠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알렉스]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초기작 티가 나긴 하지만, 똑같이 정신 없이 읽었다.

 

똑똑하고 능력 있고 행복한 여자 한 사람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집요함. 유일하게 페이지가 안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특별히 잔인한 묘사도 없건만, 집요한 악의가 너무 끔찍해서 읽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소설로서는 생생해서 좋긴 하지만, 참 가차 없는 사람이다.

 

법에 따르면, 가해자가 심신미약 상태라면 정상참작이 인정된다. 정신과 진단서를 떼오면 크게 처벌받지 않는다는 거다. 이 소설의 범인은 분명 처벌대상 밖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정신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욱 소름 끼치는 피해를 끼치지만 법적으로는 오히려 관대한 처분을 받는다. 그래서 여기의 피해자는 법과 정의의 실현 대신 개인의 이득을 택한다. 법으로, 공개적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매우 귀찮고 어렵다. 옳은 선택일까? 이 소설이 은연중에 지적하고 있는 딜레마다.

 

심신미약에 대한 정상참작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피해자가 사적으로 복수를 해 법의 빈틈을 메우는 게 옳다는 뜻도 아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고, 불확실하다. 다만 기존 추리소설의 탐정==정의=옳다는 공식이 무너졌다는 건 확실하다. 앞서 언급한 안네 홀트의 말을 따르면 그만큼 도덕적 딜레마가 전면에 부각된 사회라는 뜻이 될 수도, 유럽권 추리소설(과 그 독자들)이 그만큼 깊이 있게 발전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추리소설의 트릭으로 활용하기엔 정신병은 부실한 선택지다. ‘중국인의 신기한 기술이나 숨겨진 쌍둥이처럼 손쉽고 허무한 해답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알렉스]에 비해 [그 남자…]의 구조적 완성도가 부족해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전 추리소설처럼 작가와 독자가 정직한 머리싸움을 벌이는 류의 소설이 아니므로, 그보다는 법-정의-도덕에 따르는 딜레마를 거듭해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