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갑론을박이 오갔다. 하고많은 배우들이 있는 와중에 유명세에서 한참 밀리는 윤승아가 어째서 메인을 맡느냐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쁜 사랑 하세요! 라는 팬들이 아직까지 있으니 화제성이야 없진 않겠지만. 그건 그거고, 진짜 검증된 유명세! 그 필수적인 한방이 필요했다. 더더군다나 그걸 보충하려면 대표가 도와주어야 했다. 이름으로만 사장인 길원택은 필요없는 존재였다.

 

"길대표님!"

 

그렇게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회사의 매니저가 달려왔다.

 

"권선생님이 쓰러지셨습니다! 심장병이라는데요...어떻게 할까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했다. 길원택의 살짝 일그러진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비쳤다고...

 

"본래 심장이 약하신 분이니까...그리고 병훈씨. 우리 지금 회의하고 있는 거 안 보이나? 참 마음 아프고 서글픈 일이지만 일 끝나고 나서 이야기해도 되잖아. 권선생님은 우리 일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분이니까 말이야..."

 

권선생. 실제 길그룹의 실질적인 대표. 물론 한때 조직폭력배와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사장을 길대표에게 맡기긴 했지만 실제로 대표가 권선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자아..."

 

길원택이 다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제 말 뜻이 어떤 건지 아시겠죠? 이 뮤지컬은 길그룹으로서도 돈을 엄청나게 투자한 작품이라 혼선이 생기면 안되거든요. 승아씨로 합시다."

 

"하지만! 그 앤 뮤지컬의 뮤자도 모른다고요!"

 

연출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호오, 윤연출. 연출 처음 합니까? 아이돌이 뮤지컬 하는 거야 한해 두해 있었던 일도 아니고. 정 의심스러우면 윤승아씨 데려다가 조윤아씨가 하다 막힌 부분을 해보라고 합시다. 어느 쪽이 더 잘 하나. 병훈씨! 승아 데려와."

 

"......"

 

사람들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너무 짜맞춘 것처럼 돌아갔다. 만약 길원택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그 모든 배후에 길원택이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길원택은 우아하고도 확신에 찬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압박했다.

 

"자아, 한번 시작해봅시다. 공연에는 항상 악운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럴 수록 더 잘 된다고 하더군요. 자아, 승아. 끊긴 부분부터 다시. 너도 조유나처럼 개구리소릴 내면 그 자리에서 강판이다. 잘 부르라고...하나~ 둘~ 셋~!"

 

승아가 생각보다 부드럽게 잘 이어부르자, 길원택은 처음으로 칭찬을 했다.

 

"보십쇼. 얼마나 잘 부릅니까! 이런게 바로 공연의 귀신이 도와준다고 하는 겁니다!!!이 공연은 볼 것도 없이 대박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1.

 

뮤지컬 선정이 끝났다. 조유나가 주역으로 확정되었고 길원택의 강력한 주장으로 승아는 앙상블 및 언더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뮤지컬만 해온 배우들의 차별대우와 피해의식이었다.
사실 아이돌이 특혜를 받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조유나나 윤승아는 전문적인 뮤지컬 교육을 교육생시절부터 받아왔기 때문에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말해줘요~ 어떻게 이럴 수가..."

 

하지만 전문 배우에 비하면 무대끝까지 연기와 노래를 전달하는 것이 힘들다보니 연습 중 킥킥 소리가 나는 건 예사였다.
특히나 그 둘이 주역을 맡은 뮤지컬은  뮤지컬 한니발.

 

"로마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어이, 거기서 끊어. 개구리 소리같은 게 난다. 야. 조유나, 뭐 먹을 거 잘못 먹었어?  한번 더 딕션!"

 

"로마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조유나가 마지막 음을 뱉고 나서 마루바닥에 넘어졌다.

 

"야. 조유나! 다들 이리 와서 좀 봐봐. 유나야!"

 

"비켜봐요. 길선생! 길선생! 당신 전직 의사잖아. 유나 상태 좀 봐줘요."

 

유나의 상태를 살피던 길원택은 조용하게 결론을 내렸다.

 

"얼핏 봐서는 토사곽란인데, 음성만 들어봐서는 성대에도 무리가 간 것 같습니다. 일정이 촉박하니까 우리 그룹의 언더인 승아가 대신 해야 할 것 같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0.

 

사장이 길원택을 부른 건 1시간 뒤였다.

 

"유선생이 입원했어. 급한 김에 유선생이 맡던 애들 좀 맡아줘. 요즘 주가 떨어진 승아보다 애네들이 낫거든. 메인으로 올리게 신경 좀 써 줘봐."

 

너때문에 윤승아 인기가 떨어졌어.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길원택과 윤승아가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고는 해도 딱 한장면 뿐이다.
특히나 얼굴까지 다친 가수와의 연애는 깜짝 소재로는 쓸 수 있어도 아이돌을 제대로 키우는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특히나 조유나는 내가 미는 애야. 이번에 유선생이 지도를 잘 해서 대작 뮤지컬에 주인공으로 선정되다시피 했거든? 윤승아도 거기 참가했다지만 아무래도 밀리..."

 

"윤승아를 보내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사장인 내 선에서 결정된 건데."

 

"무슨 일이 있어도 승아가 그 뮤지컬에 나갈 겁니다."

 

"야! 길원택!"

 

"......"

 

"음악밖에 모르는 널 이만큼 키운 게 누군데,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

 

"윤승아를 그 뮤지컬에 보내건 말건 이미 결정된 거니까 억지 부리지 말고 유나나 잘 챙겨줘.
너도 프로니까 사감없이 레슨을 시킬 수 있는 거 아냐."

 

"알겠습니다."

 

길원택은 그렇게 말한 후 천천히 자기 레슨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중간에 조유나를 만났다.

 

"어머, 이번에 레슨 선생이 바뀌었다더니. 저, 뮤지컬 나가는 거 잘 부탁드려요."

 

"......"

 

길원택은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딱 한마디 했다.

 

"넌 못 나가."

 

"네?"

 

"못 나간다고."

 

그리고는 가타부타 더 할 말도 없다는 듯이 길원택은 나가버렸다.

 

"뭐야. 저 또라이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8.
커플이 되면서 윤승아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졌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가 몰인정하고 어이 없는 어린애라고들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구해달라고 한 적도 없고, 하필이면 그 샹들리에가 중우씨 자리에 떨어진 것 부터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진중우는 이 사고로 인해서 형에게 한동안 보디가드를 꼭 붙이고 다니고, 아니면 아예 출입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윤승아는...

 

"넌 음이 깨끗하지가 못해. 요즘은 아이돌만 해가지고는 먹고 못 산다고. 이번에 새로 올라갈 뮤지컬의 주역으로 올라갈 준비를 해. 연습하라고."

 

길원택에게 달달한 연애과정을 거치기 보다는 가수대 가수로 일대일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고, 괴롭히는것처럼 레슨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곡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고,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럴수록 윤승아는 진중우가 언제 공연에 올 것인지, 또 집에 갇혀 있는지만 궁금해했다.

 

9.

 

"길선생 성공했네요."

 

혹독한 레슨을 본 다른 선생이 길원택에게 시비붙이듯 했다.

 

"품속에 그렇게 오다싸고 있으니  어떻게 돌아가는지나 알아? 당신네 공주님이 맨날 당신 눈치만 본다잖수. 연애야 아이돌이니까 본래 못 한다지만 애초에 자기 여자로 도장이나  찍고 말야. 그것도 사고를 위장해서 말이지."

 

그 말에  상한 얼굴을 그쪽으로 돌린 길원택은 다짜고짜 말도 없이 선생의 멱살을 잡았다.

 

"뭔 소리야."

 

"내가 모르는 줄 알아. 진중우씨 의자에 샹들리에 떨어지게 만들어놨잖아!"

 

길원택이 살짝 입가를 올렸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거 범죄라고."

 

"난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어. 예를 들어볼까? 지금 네 목 잡았으니까 그대로 넥타이로 목을 죄는 거 못할 거 같아?"

 

그리고 진짜로 길원택은 그의 목을 졸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화무십일홍의 경제학
 

미디어에 따르면 여자는 25세가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기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신체도 나이를 먹고, 정신은 더더욱 노화되어 간다. 결혼 적령기를 운운할 때가 이맘 때이고, 그 시기가 더 지나가면 어느새 폐품이라는 소리까지 듣기 마련이다. 아, 요즘은 듣기 좋게 골드미스라고도 불러주던가?
아서라. 그건 돈 있는 사람한테나 하는 소리일 뿐이다.
그나마도 서른 넘어 사십에 이르면 그 박대의 정도는 심해져서 어느 책의 저자에 따르면 유목사회에서는 오히려 지참금을 두둑히 받아도 신부로 맞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거 이거 나이에 대한 핍박이 이 정도면 최악이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 들어보았나 모르겠다. 25세때 너무 아름답고 지혜로웠던 여왕이 점점 나이들면서 늙어가는게 억울해지자 그 나이보다 더 어린, 아마 16살이었던 것 같다. 소녀와 몸을 바꾸고 신분을 바꿔서 살아가는 이야기. 근데 애는 애대로 이빨아파, 머리 아파, 세상 돌아가는 거 모르겠어! 타령이고 여왕은 주름진 얼굴이나 갈수록 빠져가는 머리카락이 아쉬울 지언정 그걸 장식하던 보석이 그리워진거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는 다시 바꾸는데 여왕이 말한다.

"아, 25세만 되었어도 바꾸지 않았을 것을!"

글쎄. 25세 이야기,뻥 아니냐고?
어디 가서 물어보라고,

-------------------------------------------------------------------------------2005년 25세인 나, 소주란은 한숨을 쉬면서 한손에는 졸업증명서를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이 포즈, 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졸업앨범에 사진이 있다고 설명해도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느네 사촌 언니 졸업했을 때 얼빠지게 앨범사진 안 찍은 것도 모르니?"

 

알지. 사촌 언니 말에 의하면 그날따라 시험이  2개나 있어서 다 치고나니 기운이 빠져서 한잠 자려던게 그만...이었다니까.
얼이 빠지긴 빠졌던 모양이다. 잠을 잤으니까. 그냥 잠만 잤던가? 졸다가  졸다가 소화전에 얼굴이 부딪혀서 얼굴이 깨졌으니 어머니 말 뒤에 숨겨진 말의 의미는 알만한 것이었다.

 

"엄마는. 이제 그만 사진 찍자. 허리도 아프고 돈도 너무 많이 들어."

 

"안돼. 더 이쁘게 나온 걸로 골라야 된다. 적어도 아양이보다는 이쁘게 나와야지."

 

왜 엄마는 딸보다 겨우 4살 많은 조카에게 그렇게 경쟁심을 갖는 걸까?
4살 차이니까 물론 같은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시기심이 들기도 하겠지만.

 

"엄마. 누가 내 얼굴이 아양이 언니보다 못 하다고 그래?"

 

"그럼 그 세숫대야는 도대체 누가 데려간거라니. 걘 그 사고 난 후에 성형수술해서 찍은 사진이라..."

 

이 시대의 모든 여성들이 한번은 지나간다는 시험대. 성형 수술.
물론 나도 조금 손을 보긴 했다. 아직 틀이 덜 잡혀서 그렇지 나름 깨끗하게 된 편이라고 자부도 하는 편이고.

 

"엄마는..."

 

"이제 25살. 한참 꾸며서 시장 나가야 될때지. 이때 아니면 누가 데려간대니."

 

아양이 언니가 재벌 3세급과 결혼한 건 전 캠퍼스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더 놀라운 것은 아양이 언니가 그렇게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었는데다가 신랑도 마찬가지였다는데 있었다.

 

"개구리같이 생겨서들...."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어머니가 입을 오므렸다.

 

"이런."

 

엄마가 말을 하기가 무섭게 길바닥에 개구리 한떼가 개굴개굴 거리면서 뛰어간다. 철 모르는 개구리가 그저 얼어죽지만 말아야 될텐데.

 

"개구리네..."

 

그 말에 뒤에 있던 한껏 치장을 한 대학원 졸업생들이 질겁을 한다.
-------------------------------------------------------------------------------
아양이 언니 이야기를 다시 들은 건 훨씬 뒤의 이야기였다.
내가 졸업한 게 2005년도. 그리고 지금은 2015년도니까. 정확하게 언니 나이 40세.
근데 사람들 말에 의하면 졸업때만 해도 개구리같이 피부가 늘어지고 주글주글해서 화장을 아무리 예쁘게 해도 50대는 되어 보였다고 했다, 최근에는 마치 25세처럼 아름다워졌다고...남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돈을 얼마나 퍼썼으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는 덜컥덜컥 국을 소리나게 펐다. 아버지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양이가 그렇게 싫나? 당신?"

 

"...싫긴."

 

말이야 맞는 말이지. 언니가 엄마한테 잘못한게 뭐가 있다고. 시집 잘 간 덕분에 놀러올때마다 비싼 선물이야, 덕담이야 입에 한금 물고 오는 사람한테.

 

"그냥 어처구니 없어서 그래요. 걔 나이가 벌써 40줄인데 다시 25살. 말이나 되는 소리에요? 피부과에 돈을 얼마나 퍼나르면..."

 

"여보!"

"엄마!"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다시 취업준비를 하러 대학 도서관을 가는데,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전에 언니가 얼굴을 갈아버렸다는 호수전 거기에 한 아름다운 소녀가 서 있었다.

 

"......"

 

"너, 사지 않을래?"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 눈동자는 까맣고 반들거리고, 입술은 마치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붉다. 속눈썹은 자연스럽게 내려와있고, 풍성하기그지없었다.
마치 어린 시절 아양이 언니 같은 얼굴이었다.

 

"미성년성매매는 불법이야."

 

"내 나이는 이제 25살인걸."

 

내말에 소녀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소화전에 얼굴을 갈아붙인 후 변하면 아무도 모를거야. 대신 넌 나한테 안정된 자리를 줘야해. 돈같은거."

 

"얼마면 되는데?"

 

"글쎄...얼마나 될까. 너 혹시 졸업 앨범 찍었니?"

 

"응."

 

"그럼 안되지."

 

소녀가 빙긋 웃었다.

 

"재벌이랑 결혼해서 그 돈을 나한테 다 줄 거 아니면 안되고 말고..."

 

소녀는 소화전에서 뛰어내렸다.

 

"요즘은 선불이 아니라 후불인데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네...별 수 없지. 빈익빈 부익부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