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포도알이 터졌다.
즙이 터지면서 입에 침이 고인다. 
포도알 하나당 삼삼한 꿈들이 터져나왔다.

포도 하나 건져올려 시큼한 요구르트에 섞는다. 스푼에 휘휘 저인 포도알은 여전히 상큼하다.
첫 사랑의 치마가 흔들리던 순간도 요구르트에 녹아드는 포도알 같았다.
녹아들고 녹아들어 요구르트는 달콤하면서도 시큼하고, 그 시큼함의 냄새는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소년의 냄새와 같았다.

첫 사랑 누나가 떠나는 정거장에서 소년은 전하지 못한 편지를 가슴에 품었다. 가슴에서는 급하게 뛰어오느라 풍기는 땀냄새가 시큼했다.
포도알은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고 탱글탱글한데 나이든 소년은 더 이상 생글생글한 포도같은 추억을 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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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날 고양이를 호수에 던지셨어요? 알버트 삼촌."

유산을 물려받기 전 임종을 맞이하고 있는 삼촌에게 했던 말이다.

"......"

삼촌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비밀로 지키려는 걸까.
그러다가 다른 생각이 났는지 조용히 말했다.

"고양이는 아홉개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알버트를 잘 부탁한다."

그것이 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내 질문에 대한 근원은 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내가 티없고 철없이 뛰놀던 시절, 어느날 삼촌은 내게 수영을 가르쳐준다면서 어디에선가 고양이 한마리를 주워왔다.
집고양이인지 길고양이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추물은 다시 못 볼 듯 싶었다.

"삼촌?"

"지금부터 이 고양이가 수영하는 걸 보자꾸나."

삼촌은 그때당시 직업이 없는 상태였고, 하루하루 꾸려나가는 생활도 전적으로 전당포에 의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할머니는 마치 백년은 더 묵은 사람같았는데, 별로 수익도 안나는 전당포를 꾸려나가면서도 그다지 쪼들려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우리 삼촌같은 사람이 열명만 더 있어도 꾸려나가는데는 지장이 없었을 테니까.
삼촌은 고양이를 번쩍 들어서 호수를 향해서 던졌다.

퐁당.

다행히도 멀리 던져지지는 않았는지 고양이는 헤엄을 쳐서 우리쪽으로 다시 건너왔다.
삼촌은 다시 한번 고양이를 집어들었고, 고양이는 삼촌을 할퀴려고 했지만 민첩한 삼촌은 할퀴어지기도 전에 다시 고양이를 호수에 멀리 집어던졌다.
세게 집어던졌는지 이번에는 더 큰 소리가 났다.

야옹!

고양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번에도 고양이는 우리쪽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몇번의 던짐과 몇번의 돌아옴이 있었고, 마지막에 삼촌은 말 그대로 고양이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말 그대로 가라앉아버린 것이었다.
후에야 그 고양이가 전당포 할머니가 매우 아끼던 고양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삼촌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다.
전당포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아서 마을을 떠났고, 이내 모 도시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고양이 한마리가 없어진 일에 지나치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고양이를 싫어했던 양반이 그때 그 고양이보다 더 못생기고 재수없는 고양이를 남길 줄이야. 생각같아서는 삼촌이 그랬듯이 호수에 넣고 익사시키고 싶었지만, 고양이를 기르는 일이 조건에 들어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아홉개의 생명 운운했으니 특별한 고양이긴 한 모양인데.

"알버트."

내 부름에 알버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야옹

보면 볼수록 기분 나쁜 종자다.
내가 더 오래 살지 저 추물이 더 오래 살지 모르겠다. 하긴 알버트 삼촌도 몇번 기르는 고양이가 바뀌었다고 하니까 저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아니, 꼭 길러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잃어버렸을 때의 경우에 대한 말은 없었으니까 몰래 길을 잃어버리게 하면 된다. 왜 이 생각을 진작 못했을까.

그 다음날 나는 알버트의 목에 목줄을 매고 걸어가다가 저 멀리 공원에 풀어놓고 와버렸다.
그리고 저택의 문을 열고, 집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럴 수가, 물려받은 알버트를 그만 길에서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집사는 지그시 날 바라보더니 짧게 말했다.

"싫어하시더니 잘 되었군요. 알버트 주인님께서도 고양이를 자주 잃어버리셨지요."

집사는 내가 고양이를 갖다 버리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마디 덧붙였다.

"알버트는 그래도 늘 집을 잘 찾아왔답니다."

"네?"

"고양이 이름말입니다. 알버트. 알버트 주인님이 8번만에 다시 찾으시면서 그렇게 고양이 이름을 지으셨죠. 그 고양이, 30년동안 한번도 주인님 곁을 떠난 적이 없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야옹하고 발치에서 소리가 났다. 알버트였다.

"제 말이 맞지요? 30년동안 한번도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답니다."

"30년? 알버트가?"

"네."

집사는 알버트를 번쩍 들어올리고는 알버트에게 간식을 주었다.

"고양이 생명은 9개라죠? 전 주인님이 그렇게 자주 말씀하시곤 했죠."

"잠깐만, 애슐리. 그럼 알버트가 언제부터 알버트 삼촌옆에 있었단 소리에요?"
 
"주인님이 자수성가하실 무렵이 아마 고향을 떠난 후였죠? 그때부터 주인님을 모셨으니 아마 제가 알버트보다 좀 더 뒤에 들어왔을 겁니다. 그렇지? 알버트?"

그 말에 알버트는 딱 한마디를 했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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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즘은 생각이 좀 많아집니다.
안녕 안녕 검은새야 는 원 착상과 거리가 멀어졌고, 덕분에 써놓은 것도 하나도 안 맞게 되어버리는 바람에 연재를 접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하면서 생긴 일 때문이었죠.
칭찬받기 위해서만 쓴다...
한때는 쓰는 게 그저 즐거울 때도 있었고, 괴로웠던 적도 있었는데 글쎄요...그런가봅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블로그에는 자주 옵니다. 글이 안 올라와서 그렇지 하루에 한번은 꼭 오지요.
근데 생각이 안 납니다. 무엇을 어떻게 무엇때문에 쓰는 건지.
그래서 연재를 접고, 연습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블로그에는 앞으로 글들이 올라올 겁니다. 단지 연재를 안 할 뿐이고,
노출도 아마 비밀글은 아니겠지만 중앙노출은 안 될겁니다.(이걸 뭐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블로그에까지 오시는 분들은 연습중인 글들을 보시게 될 겁니다. 아마도.
그리고...글을 안 남길 뿐이지, 종종 블로그에 오니까 저하고 이야기하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 남겨주세요.
냉동 블로그 아닙니다. 그냥 글을 안 쓸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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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8-06-09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코로님께는 죄송하지만 창작블로그 없어지면서 여기서는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검은새야는 예전부터 중단되었고요....아마 다 보셔도 완결된 건 어둠의 대륙횡단열차 정도일 겁니다.나머지는 개인적인 취향이 지나쳐서 연재중단이거나 네이버로 옮긴 상태이구요, 여하간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사정으로 연재를 접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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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뼈다귀를 찾자는 말에 나는 화를 낼뻔했다. 그렇지. 옛날의 나라면 화를 내다 못해서  뺨때기를 날려야 시원할터였다. 하지만 전화를 준 건 대학신입때까지 친했던 친구가 건 전화였다. 그것도 내가 그 애의 남자친구를 뺏은 후 절교한 이후로 처음으로.

"무슨 뼈가 필요한데?"

갑자기 뼈타령을 하면 필연적으로 우리 유년시절의 스티븐 킹이 생각나기 마련이었지만...

"이번에 동창회를 했는데 안 온 사람이 두명 있더라?"

그애의 말에 또 울컥했다. 또 나왔다. 저 버릇.
말 하다말고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드는...

"그게 뼈랑 무슨 상관인데."

"얼마 전에 신문기사 읽었어?"

아마도 예전처럼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하고서 멍한 눈동자로 앞을 응시하고 내 전화를 받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애인을 뺏기고 마는 거다!라고 소리쳐주고 싶다. 정말.

"어떤 신문기사?"

"무연고묘지에 들어간 시체 하나. 붉은 비즈로 하나하나 수놓은 공들인 옷을 입은 아름다웠을거라고 추정되는 여자 한사람."

"그래서?"

"걔 우리 동창 아닐까?"

무연고 묘지에 묻힌 신원미상의 시체가 갑자기 동창생이라고 생각되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때문이냐...싶었지만.

"동창회 안 나온다고 다 시체니? 그럼 나도 시체겠다."

"어머, 너도 시체야. 좀비지. 투명인간이고."

예의 머리를 비비꼬면서 말하는 어투라서 그런가 말투도 신랄하게 꼬여있었다.

"미안하다."

"어머, 미안해할 필요없어. 나도 결혼했는걸."

그 애 말에 따르면 올해 결혼했고, 결혼하자마자 연락을 끊다시피한 동창들이 그리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창회장을 닥달, 올해 동창회를 10년만에 처음으로 열었는데 거기 빠진 사람이 바로 나와 그 신원미상의 여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가 걔라는 보장은 없잖아. 어디 멀리 가서 연락이 끊어졌을 수도 있고."

"난 걔라고 생각해."

멍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생각보다 머리 회전이 빠른 게 장점이다. 경찰도 못 찾은 신원미상의 시체를 어떻게 찾겠다는 건지.

"손가락이 다 없어졌는데 무슨 수로 찾아."

내 말에 그애가 대답했다.

"손가락을 찾으러 가는 거야. 마침 사고난 곳에서 10m도 안된 곳에 우리 집이 있거든."

내가 그렇게 한가한 인간처럼 보이냐고 말하려다가 또 참았다. 나는 남의 애인을 빼앗아 결혼까지 한 사람이다. 아무래도 상대에게 심리적으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았어. 도와줄게. 근데 동창회에 안 나왔다는 애는 도대체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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