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게 아기를 낳게 하기 위해서 그녀의 남편과 그 아내는 온갖 회유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는 점점 힘들어했고, 힘들어할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세미.”

 

 

기왕 아이를 낳는다면 어차피 누구 아이인지 상관없지 않은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

 

 

“기왕 아이를 낳는 거라면...”

 

 

힘들게 하루가 입을 뗐다.

 

 

“그 아이가 세미 아이면 좋겠어.”

 

 

“넌 남편이 있잖아.”

 

 

내가 하루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걸 무서워한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을까?

사람과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고?

 

 

“그 사람...”

 

 

하루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무서워.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나는 내 아인지 아닌지 모르는, 아버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는 낳을 수 없어. 바라지 않아.”

 

 

“...하루...”

 

 

일본으로 돌아가봤자 가족은 아무도 없다.

그 외로움이 싫어서, 하루는 종교에 빠졌다.

그리고 아버지를 닮은 남자를 남편으로 삼기로 하고 그 종교 지도자가 허락한 그와 결혼하기로 했었다.

 

 

“아이를 낳으면 돌아가도 된다고 했어.”

 

 

“하루...”

 

 

하루의 가벼운 몸이 내게 의지해온다.

나는 기대어오는 그녀의 몸을 잡으며 그녀의 얇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에서는 차가움만 느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슬며시 그녀를 밀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녀가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로움에 지쳐 자신의 난소를 이용한 아이인지 아닌지도 모른채, 병원의 힘을 빌려 임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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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였던가. 의외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하루의 남편과 하루, 그리고 하루의 남편의 아내가 셋이서 행복하게 장을 보는 모습을.

중혼이라서 문제가 될 뿐, 세 사람은 종교가 같았던 것이다.

 

 

“하루, 우메보시가 없어서 미안하긴 한데...내가 절임 해줄게.”

 

 

하루의 남편의 아내의 말에 하루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루는 우메보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줌마. 그냥 우리 김치 먹어요.”

 

 

“하루. 착하군.”

 

 

남편이 하루의 머리를 스윽스윽 만져주었다.

나는 그들의 파국을 머리에 그릴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마트를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세미!”

 

 

하루의 약간 비음섞인 목소리에 하루의 남편이 나를 불렀다.

 

 

“소설가 양반. 이리로 오지 그래? 만난 김에 우리 넷이서 차라도 한잔 하자구. 이리와.”

 

 

“세미가 무슨 뜻이에요? 순수 우리말인가?”

 

 

그 두 사람의 눈매는 다정했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 접근하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그들에게서 떨어져나갔다.

 

 

“세미. 왜 부를 때 안 왔어?”

 

 

마트를 다녀온 후 하루가 내 집으로 놀러왔다.

 

 

“하루. 난 하루의 친구가 아냐.”

 

 

“놀러오고 놀러가고 그게 친구 아닌가?”

 

 

“세미는 외로운 곤충이야. 주변에 누가 오면 물을 끼얹고는 도망가 버리지.”

 

 

“저런...그래도 같이 있어주면 좋을 텐데...그런 외로운 곤충은 죽어도 슬퍼해줄 가족도 없겠네. 가족한테도 물을 끼얹고 도망갈 테니까. 그럼 나는 그 위에 꽃을 얹어 줄래...”

 

 

그래. 나는 할 말이 없어서 하루의 이마에 가벼운 알밤을 먹였다.

 

 

“내 무덤에는 꽃을 얹지마...”

 

 

“......”

 

 

“난 하루의 친구도 아니고, 하루의 오빠도 아니고, 하루의 남편도 아니야...그냥 세미야. 물뿌리고 도망가는 세미...나는 하루의 친구도 되고 싶고, 오빠도 되고 싶고, 남편도 되고 싶어...하지만 안되잖아...”

 

 

“그럼 애기 아빠는 되어줄 수 있어?”

 

 

하루의 말에 난 잠시 몸을 뒤로 뺐다. 가장 듣기 무서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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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골에 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소설가니까, 여러명이서 사는 것보다 혼자서 사는 것이 더 편하다. 물론 관공서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혼자 살기 때문에 불리하다. 전기도, 물도, 교통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있는 것보다 불편하다.

 

기왕이면 마을에 가서 사는 게 좋았겠지만, 내가 작업실로 정해놓는 조건과 하나도 맞지 않았다. 사람들도 참견쟁이들같았고, 더더군다나...

 

 

“세미!”

 

 

그녀는 나를 매미라고 부른다. 예전에 선배가 붙여준 별명인데, 그녀가 한국어 사전을 뒤져서 찾아낸 모양이다.

 

 

“그래그래.”

 

 

그녀는 오래 전에 종교적인 문제로 이곳의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행복한 결혼이었다.

 

 

“세미는 왜 이렇게 혼자 동떨어져 있어?”

 

 

“하루가 찾아와주잖아.”

 

 

하지만...하루의 남편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중혼은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불법이다.

 

 

“그거야 나도 심심하니까...”

 

 

23살의 젊은 아가씨가 그저 종교적인 열망으로 결혼을 했는데, 상대는 그걸 기만한다.

그와 그의 아내는 불임이라고 했다. 대리모를 원한다는 그 말에 하루는 완강히 거부했다.

사랑하고 믿어서 한 결혼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녀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그 말들.

 

 

“하루...”

 

 

“응?”

 

 

하루는 나이보다 좀 덜 떨어져 보이긴 해도 성숙한 어른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와 어른이 반쯤 섞인 모습이 내게는 한없이 편해보였다.

 

 

“손가락 이리 줘봐.”

 

 

“어...그래.”

 

 

“이건 클로버야. 일본에도 그런 말 있던가?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의미한다고...”

 

 

중혼이라고는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어차피 동시에 결혼하는 건 안되게 되어 있으니...

말이 좋아 결혼이지, 속여서 데려온 거다.

 

 

“응. 일본에도 그런 말 있어.”

 

 

“...빨리 일본에 돌아가면 좋겠다.”

 

 

“...왜?”

 

 

“왜냐니? 하루, 계속 그렇게 살 순 없는 거잖아. 그 아저씨는 이미 부인이 있고...”

 

 

“세미, 이건 신의 뜻이야. 대리모가 되는 건 나쁘지만, 난 이미 남편의 아내인걸...”

 

 

“하루...종교가 삶의 전부는 아니잖아...”

 

 

하루는 시무룩해져서 돌아갔다. 나는 그날 하루가 입고 있던 면티하고 청바지를 생각하면서

그 단순함이 그녀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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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녀는 내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거 이름이 뭐야?”

 

아, 일본하고 우리나라는 무덤 모양이 다른가? 난 한번도 일본에 가지 않아서 잘 모른다.

납골당에 데려갔으면 이해는 더 빨랐겠지만 그건 이 무덤 주인에게 미안한 노릇이다.

 

“...무덤이야.”

 

“무덤 이름이 뭐야?”

 

그녀의 말에 난 잠시 침묵했다. 그래. 무덤에 이름이 없을 리가 없지. 있을 거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꽃무덤...”

 

“그럼 공양을 꽃으로 해야겠네. 다자이 오사무처럼...”

 

“...그래...”

 

은빛 선이 어깨부터 발끝까지 내려오는 천을 일직선으로 가르고, 옅은 청색이 점점이 박힌 기모노. 화려하게는 보일 수 있어도 그다지 기품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럼 꽃은 뭐로 해야 하지? 아, 난 참 귀국하지...그럼...안되겠다.”

 

그녀는 살짝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놓진 않았지만 그녀가 눈치챌 수 있을만큼 살짝 손가락을 쥐었다.

 

“세미 시구레 할때쯤이면...”

 

“여름...여름 꽃무덤이구나...기왕이면 봄이면 좋았을 걸...”

 

“봄이라도 상관없을 거야...꽃무덤이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따스한 봄바람.

그리고 마치 일부러 그런것처럼 벚꽃잎이 무덤에 톡 하고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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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해왔다.”

 

 

털보의 말에 지윤은 아궁이에 꺼져가려는 불씨를 가늠했다. 나무가 잘 말라있으면 차주전자 하나쯤은 끓일 수 있으리라. 아직도 그들은 형과 자기를 감시하고 있을 터였다.

돌아가면 죽지는 않더라도 소문 하나 내지 않고 감금될 수도 있을 터였다.

이게 다 눈치없는 형 때문이다. 라고 생각은 하긴 했지만 형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답이 안 나오는 현실에 절망하고 말았으리라.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많았다. 병률과 길준.

그 두사람이 지향하는 것은 달랐지만 자신 위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신문도 갖고 오셨네요.”

 

 

지윤이 힐끗 돌아보면서 말했다.

 

 

“음. 연합통신이지. 넌 대부분의 신문기사들이 연합통신에서 나온다는 건 알고 있겠지? 이 친구들이 쓴 걸 보면 그날 그날의 중심을 알 수 있지.”

 

 

“형, 죽을지 어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직 그걸 읽을 만한 배짱이 있군요. 형다워요. 내가 그래서 형을 좋아하지만.”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털보는 지윤에게 나무를 넘기고는 의자에 앉아 그날치 통신을 읽었다.

 

 

“주가는 상승세. 얼마 전 사람이 없는 주택을 털려다가 총알에 관통당해 다친 흥신소 직원 몇 명이 발견...그 당시 약제를 투여받았는지 기억이 없음...경찰은 마약상습투약여부를 조사중.”

 

 

“......”

 

 

지윤은 세상사에 염증이 났다. 이기적이기로 따지자면 병률이나 길준이나 다 똑같았다.

그걸 해결해보려고 잠깐 나왔더니 병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덤벼들었고...

이젠 신부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닌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요. 흥신소 직원?”

 

 

“어, 그렇다만?”

 

 

“형, 혹시 형 가게 부근에 왔던 사람들하고 관련은 없을까요?”

 

 

“아서라. 아무리 세상이 막나가도...그럴 수도 있겠군.”

 

 

털보는 아궁이에 나무를 넣으면서 불꽃을 지그시 응시했다.

 

 

“상대는 보통 상대가 아니었군. 그렇다면 이젠...”

 

 

털보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아궁이속에 휙 하고 던져넣었다.

 

 

“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형?”

 

 

“이젠 진지하게 싸워야겠다. 이젠 맨 몸 하나가지고는 싸울 수 없어. 그리고 너와 내 힘만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역시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건가요?”

 

 

“음...어쩔 수 없겠지. 넌 일부러 거길 나왔지만.”

 

“아니오.”

 

 

지윤은 항상 옆에 두던 로만 칼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형이 뭔가를 집어넣은 그곳에 그 옷을 집어넣었다.

 

 

“전 이제 신부로 살지 않겠습니다. 기왕 뛰어든 거 흙탕물도 백비탕도 다 마셔버릴 각오로 뛰어들겠습니다. 형한테만 폐를 끼칠 순 없죠.”

 

 

“그래?”

 

 

털보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아궁이 옆에 있던 부젓가락으로 집어넣었던 것을 꺼내들었다.

 

 

“그럼, 이제 진짜로 이야기해볼 수 있겠군. 고맙다. 지윤아.”

 

 

지윤은 눈앞에 있는 그 무언가에 글자가 잔뜩 새겨져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만 있으면 우린 무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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