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뒤였던가. 의외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하루의 남편과 하루, 그리고 하루의 남편의 아내가 셋이서 행복하게 장을 보는 모습을.

중혼이라서 문제가 될 뿐, 세 사람은 종교가 같았던 것이다.

 

 

“하루, 우메보시가 없어서 미안하긴 한데...내가 절임 해줄게.”

 

 

하루의 남편의 아내의 말에 하루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루는 우메보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줌마. 그냥 우리 김치 먹어요.”

 

 

“하루. 착하군.”

 

 

남편이 하루의 머리를 스윽스윽 만져주었다.

나는 그들의 파국을 머리에 그릴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마트를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세미!”

 

 

하루의 약간 비음섞인 목소리에 하루의 남편이 나를 불렀다.

 

 

“소설가 양반. 이리로 오지 그래? 만난 김에 우리 넷이서 차라도 한잔 하자구. 이리와.”

 

 

“세미가 무슨 뜻이에요? 순수 우리말인가?”

 

 

그 두 사람의 눈매는 다정했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 접근하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그들에게서 떨어져나갔다.

 

 

“세미. 왜 부를 때 안 왔어?”

 

 

마트를 다녀온 후 하루가 내 집으로 놀러왔다.

 

 

“하루. 난 하루의 친구가 아냐.”

 

 

“놀러오고 놀러가고 그게 친구 아닌가?”

 

 

“세미는 외로운 곤충이야. 주변에 누가 오면 물을 끼얹고는 도망가 버리지.”

 

 

“저런...그래도 같이 있어주면 좋을 텐데...그런 외로운 곤충은 죽어도 슬퍼해줄 가족도 없겠네. 가족한테도 물을 끼얹고 도망갈 테니까. 그럼 나는 그 위에 꽃을 얹어 줄래...”

 

 

그래. 나는 할 말이 없어서 하루의 이마에 가벼운 알밤을 먹였다.

 

 

“내 무덤에는 꽃을 얹지마...”

 

 

“......”

 

 

“난 하루의 친구도 아니고, 하루의 오빠도 아니고, 하루의 남편도 아니야...그냥 세미야. 물뿌리고 도망가는 세미...나는 하루의 친구도 되고 싶고, 오빠도 되고 싶고, 남편도 되고 싶어...하지만 안되잖아...”

 

 

“그럼 애기 아빠는 되어줄 수 있어?”

 

 

하루의 말에 난 잠시 몸을 뒤로 뺐다. 가장 듣기 무서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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