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우리를 버리고 떠날 때

어떤 표정으로 그 시기를 맞이할까.

나무가 우리 뒤를 스치고 지나가고

자동차가 연기를 뿜으며 서 있을 때

우리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렇게 버림당할 것이다.

 

 

산이 도망간다.

강이 정지한다.

나와 함께 했던 그대들도

굳어지고 움직이며

그렇게 변해갈 것이다.

 

 

지구는 우리를 버린 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가 지구를 버린 것일지도 모르고

그 어느쪽이건

상처를 받고 헤어짐의 통고를 받은 것은

우리들이다.

 

상처주지 말았어야 했다.

상처를 주면서 언제나 그들이 참아주리라 생각한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가 가진 종이는 힘이 없다.

다만 가졌다고 착각하였을 뿐이다.

종이로, 그것도 산의 힘으로 나온 그것으로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해왔던가.

 

이제 마지막을 고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들이 우리에게

 

우리는 언젠가 이별을 맞이할 때

이곳을 떠나리라.

하지만 그 이별이

눈물의 통곡보다

다른 별로 향하는 묵묵한  방황이 될 뿐이라면.

 그리하여 몇백 광년의 머나먼 걸음이 될 뿐이라면

우리는 아직도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은

짝이었을 뿐이라.

 

이별을 맞이할 때

언젠가 이별의 때가 온다면

적어도 그들의 손을 붙잡고

잠시 미안하다고 말하고 떠날 수 있도록

 

그렇게 나무가 우리를 뛰어넘고

강이 얼음처럼 얼어붙을 때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면

 

그때를 다만 기다릴 뿐이다.

다만 그렇게 될 수 있기를.

희망의 민들레 솜털을 날려본다.

 

 

----------------------------------------------------------------------------------일본에서 원전 사태가 일어난 이후 우리나라도 이제 안전한 곳이 아니게 되어버렸죠.

원전사태가 이 시의 일부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아무 일도 없어야 하는데, 자꾸자꾸 안 좋은 일들이 생기네요.

앞으로는 좋은 일들만 생기기를. 저 하나부터라도 환경에 나쁜 일은 하지 않는지 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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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은 뒤도 보지 않고 말을 달렸다. 하지만 말이 워낙 잘 달리는 탓에 우리가 따라가기는 버거웠다. 띠동갑인 친구 둘이서 애초에 보조를 맞춰 달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더더군다나 그 친구는 노새를 타고 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노새를 떠나서 노쇠하기까지한 모양인지 숨소리마저 거칠었다.

 

허억허억. 저 놈 잘도 달리는군.”

 

이 친구야. 그러게 아무 생각 없이 달리지...”

 

아닐세. 정의를 위해서...”

 

3시간 전에 기생의 보쌈을 논하던 친구치고는 극적인 변화였다.

마치 심장이 터질 것처럼 괴로워하기에, 나는 내 뒤에 친구를 태우고는 다음 객주에서 친구를 내려놓고 다시 궁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것처럼 객주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괴한도 객주에 들어섰다.

 

저놈! 잡을 수 있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져서 친구의 목에 수면침을 놓았다. 눈이 스르르 감기기 전에 잠꼬대처럼 말을 쏟아냈다.

 

꼭 잡아서 내가 노인이 아니라는...”

 

뒷말을 미처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좋았다. 나는 노새치고는 기운을 발휘해 여기까지 달려온 그의 노새의 등을 어루만졌다. 헉헉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이미 죽기 일보 직전인 듯 했다.

하긴 노새와 말이 나란히 달려봤자 얼마나 달렸겠는가.

애초에 노새를 타고 괴한을 추적한다는 것부터가 무리였다.

나는 말과 노새를 어둠속에 숨긴 채 괴한과 객주의 심부름꾼이 말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가기를 데려왔다고 말씀드려라. 주인님께서는 아직 안 주무실터이니...”

 

알겠습니다. 어른께 말씀드리지요. 3시간전부터 계속 기다리고 계셨습니다요. 비둘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가 하구요.”

 

비둘기! 육황자의 비둘기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객주로 다가가, 좀 더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괴한은 객주의 3층방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심부름꾼은 괴한의 말에 다가가 보따리를 풀고, 다가기를 끌어내었다.

불쌍한 다미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거칠게 끌려나갔고, 나는 철없는 친구가 말한대로 구출할까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황자가 개입되어 있으니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노릇, 나는 객주 건물에 몸을 밀착시키고, 3층으로 기어올라갔다.

 

그래. 다미야. 무슨 말을 들었느냐.”

 

육황자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울렸다.

 

댁은 뉘시기에 저에게 그런 것을 물으십니까.”

 

다미의 목소리가 냉기를 띄었다.

 

이 몸 다미, 지금은 비록 노래부르는 기생이오나 이 혍통에 흐르는 피는 진정 궁의 관료의 것입니다. 어찌 잔치자리에 있던 비밀 이야기를 함부로 하오리까.”

 

“...호오.”

 

육황자는 잠시 미소를 머금었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말을 못하겠느냐.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줄은 아느냐.”

 

모르...”

 

보쌈패들은 이 몸의 검 앞에 무릎 꿇고 죄를 빌어라!”

 

다미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늙은 친구가 소리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한때 짧게나마 함께 강호에 있던 친구답게 수면침이 말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혈도 혈도마다 꽂아놓을 것을, 방심한 탓이었다.

 

자네, 뒤를 밟혔군.”

 

육황자가 여유롭게 말했다.

 

일부러 뒤를 밟히게 한 것이겠지?”

 

설마 그렇겠습니까.”

 

두건을 벗으며 괴한이 대답했다. 흰 두건이 벗겨지면서 나는 그 얼굴이 유랑안에서 설교를 하던 포교사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하여간 들통이 났으니 도망치세나. 악극에서 악역이 그렇듯 말일세. 자넨 내 말을 알겠지?”

 

그리하지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객주에서 바닥으로 심하게 내동댕이쳐졌다. 객주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내가 기어올랐던 것은 객주가 아니라 심하게 썩은 거목이었다.

 

으잉. 자네 안 다쳤나!”

 

친구가 비틀비틀 걸어오면서 소리치면서 다가왔지만 나는 거기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어느샌가 육황자와 포교사가 말을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나랑 같이 저 괴한들을 쫓...”

 

닥치게!”

 

나는 나도 모르게 거칠게 내뱉고는 묶은 끈을 풀어 말에 올라탔다..

 

아니, 자네 왜 그러나...”

 

여기서 꼼짝 말고 있게.”

 

나는 그렇게 외치고는 육황자를 따라 달렸다. 이것은 잘못하면 반정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더 따라갈수도 없었다. 그들의 말이 하늘로 날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내가 패설사관을 하면서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야깃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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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에요. 저는 그 사람에게 홀린 모양입니다. 눈을 감아도 그 사람이 떠오르고 귀를 막아도 그 사람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마 전 미친 모양입니다.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보통은 사랑에 빠져도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근데 전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아마 절 경멸하면 전 울어버리고 말거에요. 하지만 그래도 전 아마 그 사람을 그리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잊어버릴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이 죽는 것 말고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다자이 오사무의 글에서처럼 예수를 죽인 가룟 유다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알아요. 가룟 유다에게는 핑계가 있었던 겁니다. 절실히 사랑했지만 죽일 수 있는 이유.

하지만 전 핑계를 댈 것이 없군요.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이 없어져야 할까요.

단지 제 눈에, 제 귀에 들린다고 해서, 괴로워진다고 해서 죽일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밝은 겁니다. 그 밝음에 동화될 수 없는 그 어두움 때문에 괴로울 뿐이죠. 아름다운 사람.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밝음을 당신은 좋아하지 않습니까? 왜 제게 그 사람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어째서 추종하느냐고, 노예근성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아, 사랑은 마치 노예와도 같은 것입니다. 오로지 노예같은 사랑이 아닌 것은 신에 대한 사랑뿐일 것입니다. 아니오, 그런 것이 없다고요?

제가 말씀드릴 것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사랑. 그것은 고귀한 것. 옛적 그리스 시대에 그 시대의 사람들이 고귀했던 것은 노예에게 귀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고귀한 것은 그 사랑의 대상에게 무조건적인 노예의 헌신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쌍방간의 사랑도 있지 아니하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그것이 서로에게 노예에 가까운 헌신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렵니다.

 

노예. 그것과 밝음이 어찌 공존하느냐. 그걸 제가 당신에게 어찌 다 설명하겠습니까. 노예라고 해도 사랑의 노예인 것.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헌신할 수 있고 그것이 밝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정 섬김을 받는 자도 노예인것을요. 사랑이 없어지면 그렇게 허무하고 어두운 것을 당신은 아십니까?

 

저는 그래서 고민합니다. 아아, 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제 사랑이 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에 와서 그 마음을 헌신짝 버리듯 해서 그 사람을 짓밟는다면...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사랑은 쓰레기가 되어버리겠죠.

그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참으로 어떻게 해야 옳을까요. 그 가련하고 순수한 마음을...이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볼때마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도망치는 것입니다.

저기 또 다가오는 군요. 아아 멀리로 그냥 도망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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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본 그 친구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앉아있는 흰비단 옷을 입은 사나이가 고개를 살짝 밑으로 까닥였다. 그 움직임과 동시에 객주에 여기저기 앉아있던 검을 패용한 사내들이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가기가 보쌈당했다! 저 놈 잡아라!!”

 

3층에서 누군가가 흰 보따리를 짊어지고 마차에 뛰어들었다. 나는 유쾌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친구에게 일침을 놨다.

 

자네같은 자가 또 있구만.”

 

설마...”

 

친구는 빙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자위에 심부름꾼에게 주는 은전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세.”

 

?”

 

또로록. 은전놓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친구는 내 팔뚝을 잡아챘다. 나는 그 은전 색깔을 지금도 눈으로 보는 것처럼 기억하고 있다. 약간 녹이 슬어 하얀색깔 안쪽에 녹색빛이 돌던 그 은전.

잠깐만. 보쌈한다고 하지...”

 

때로는 반대의 일을 해도 좋은 법이지.”

 

친구가 웃었다.

 

다가기를 보쌈하려고 했었는데, 마침 보쌈을 당했으니 구해오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인 것 같네.”

 

가기. 노래만 부르는 기생. 다미.

성과 이름이 모두 가짜인 기생세계에서 그녀의 존재는 이채로웠다.

50년전에 이조에 이름을 올렸던 벼슬했던 자의 자손이 미끄러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조상을 존경하는 이조의 관리들은 그녀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지켰다. 가끔 노래를 불러당하고 청하기는 했지만 그녀에게 돈을 주거나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들에게 기생이 아니라 이조의 관리의 따님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 그때 육황자의 비둘기가 거기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우선 거칠게 끌고 가는 친구를 따라 말을 타고 그 괴한을 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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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갑자기 예전의 친구로부터 비둘기 서신을 받았다. 옛적에 짓궂은 장난질을 치던 친구인데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다시 만났을 때는 수염을 길게 기른 품이 노인처럼 보였다.

가족에 대해서 물어보니 벌써 손자를 다섯이나 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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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근 20년만에 다시 보니 많이 늙었지?”

  

손자를 물어본다고 은근 타박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열여덟살같은 기분이네.”

  

“.....”

  

“자네도 지금은 궁중관리지만, 예전에는 나랑 같이 장난도 많이 치지 않았나.”

  

“그랬...었지.”

  

가지각색의 장난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질 일이었다.

  

“내가 왜 대로 왔는지 아는가?”

  

“.....”

  

“나는 몇 년뒤면 환갑이네. 이제 완전히 노인취급이야.”

  

“.....”

  

그러고보니 그와 나는 거의 띠동갑이었다.

  

“난 아직 노인이 아닐세.”

  

“아니, 자네가 그런 말을 한다고해서 달라질...”

  

“그러니까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

  

“...기루에 침입해서 기생을 하나 보쌈하자고.”

 

“자네, 아내 얼굴을 어찌 보려고.”

  

“그 사람이 설마 대까지 오겠나? 더더군다나 자네와 나의 실력이라면 들키지도 않을 걸세. 자네도 옛날에 기루에 뛰어들어서 무기, 예기를 보쌈하지 않았나. 불행하게도 자네가 나같은 풍류남이 아니어서 그저 장난치는 걸로 끝났으니 그게 애석하이.”

  

...철이 덜 들어도 한참 덜 든 놈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도망치려고 하자 이 친구는 내 소매를 붙들고 늘어졌다.

  

“내가 이제 몸이 좀 느려져서 그러니 자네도 같이 가세.”

  

“.....”

  

“같이 가세나.”

  

“나는 관리일세. 더더군다나 지금은 근신 중이야.”

  

그때 육황자의 비둘기가 갑자기 탁자에 뛰어들었다. 온통 하얀 빛깔인 비둘기.

그건 육황자의 상징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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