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한은 뒤도 보지 않고 말을 달렸다. 하지만 말이 워낙 잘 달리는 탓에 우리가 따라가기는 버거웠다. 띠동갑인 친구 둘이서 애초에 보조를 맞춰 달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더더군다나 그 친구는 노새를 타고 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노새를 떠나서 노쇠하기까지한 모양인지 숨소리마저 거칠었다.

 

허억허억. 저 놈 잘도 달리는군.”

 

이 친구야. 그러게 아무 생각 없이 달리지...”

 

아닐세. 정의를 위해서...”

 

3시간 전에 기생의 보쌈을 논하던 친구치고는 극적인 변화였다.

마치 심장이 터질 것처럼 괴로워하기에, 나는 내 뒤에 친구를 태우고는 다음 객주에서 친구를 내려놓고 다시 궁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것처럼 객주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괴한도 객주에 들어섰다.

 

저놈! 잡을 수 있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져서 친구의 목에 수면침을 놓았다. 눈이 스르르 감기기 전에 잠꼬대처럼 말을 쏟아냈다.

 

꼭 잡아서 내가 노인이 아니라는...”

 

뒷말을 미처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좋았다. 나는 노새치고는 기운을 발휘해 여기까지 달려온 그의 노새의 등을 어루만졌다. 헉헉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이미 죽기 일보 직전인 듯 했다.

하긴 노새와 말이 나란히 달려봤자 얼마나 달렸겠는가.

애초에 노새를 타고 괴한을 추적한다는 것부터가 무리였다.

나는 말과 노새를 어둠속에 숨긴 채 괴한과 객주의 심부름꾼이 말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가기를 데려왔다고 말씀드려라. 주인님께서는 아직 안 주무실터이니...”

 

알겠습니다. 어른께 말씀드리지요. 3시간전부터 계속 기다리고 계셨습니다요. 비둘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가 하구요.”

 

비둘기! 육황자의 비둘기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객주로 다가가, 좀 더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괴한은 객주의 3층방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심부름꾼은 괴한의 말에 다가가 보따리를 풀고, 다가기를 끌어내었다.

불쌍한 다미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거칠게 끌려나갔고, 나는 철없는 친구가 말한대로 구출할까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황자가 개입되어 있으니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노릇, 나는 객주 건물에 몸을 밀착시키고, 3층으로 기어올라갔다.

 

그래. 다미야. 무슨 말을 들었느냐.”

 

육황자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울렸다.

 

댁은 뉘시기에 저에게 그런 것을 물으십니까.”

 

다미의 목소리가 냉기를 띄었다.

 

이 몸 다미, 지금은 비록 노래부르는 기생이오나 이 혍통에 흐르는 피는 진정 궁의 관료의 것입니다. 어찌 잔치자리에 있던 비밀 이야기를 함부로 하오리까.”

 

“...호오.”

 

육황자는 잠시 미소를 머금었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말을 못하겠느냐.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줄은 아느냐.”

 

모르...”

 

보쌈패들은 이 몸의 검 앞에 무릎 꿇고 죄를 빌어라!”

 

다미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늙은 친구가 소리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한때 짧게나마 함께 강호에 있던 친구답게 수면침이 말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혈도 혈도마다 꽂아놓을 것을, 방심한 탓이었다.

 

자네, 뒤를 밟혔군.”

 

육황자가 여유롭게 말했다.

 

일부러 뒤를 밟히게 한 것이겠지?”

 

설마 그렇겠습니까.”

 

두건을 벗으며 괴한이 대답했다. 흰 두건이 벗겨지면서 나는 그 얼굴이 유랑안에서 설교를 하던 포교사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하여간 들통이 났으니 도망치세나. 악극에서 악역이 그렇듯 말일세. 자넨 내 말을 알겠지?”

 

그리하지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객주에서 바닥으로 심하게 내동댕이쳐졌다. 객주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내가 기어올랐던 것은 객주가 아니라 심하게 썩은 거목이었다.

 

으잉. 자네 안 다쳤나!”

 

친구가 비틀비틀 걸어오면서 소리치면서 다가왔지만 나는 거기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어느샌가 육황자와 포교사가 말을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나랑 같이 저 괴한들을 쫓...”

 

닥치게!”

 

나는 나도 모르게 거칠게 내뱉고는 묶은 끈을 풀어 말에 올라탔다..

 

아니, 자네 왜 그러나...”

 

여기서 꼼짝 말고 있게.”

 

나는 그렇게 외치고는 육황자를 따라 달렸다. 이것은 잘못하면 반정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더 따라갈수도 없었다. 그들의 말이 하늘로 날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내가 패설사관을 하면서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야깃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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