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에요. 저는 그 사람에게 홀린 모양입니다. 눈을 감아도 그 사람이 떠오르고 귀를 막아도 그 사람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마 전 미친 모양입니다.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보통은 사랑에 빠져도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근데 전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아마 절 경멸하면 전 울어버리고 말거에요. 하지만 그래도 전 아마 그 사람을 그리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잊어버릴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이 죽는 것 말고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다자이 오사무의 글에서처럼 예수를 죽인 가룟 유다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알아요. 가룟 유다에게는 핑계가 있었던 겁니다. 절실히 사랑했지만 죽일 수 있는 이유.
하지만 전 핑계를 댈 것이 없군요.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이 없어져야 할까요.
단지 제 눈에, 제 귀에 들린다고 해서, 괴로워진다고 해서 죽일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밝은 겁니다. 그 밝음에 동화될 수 없는 그 어두움 때문에 괴로울 뿐이죠. 아름다운 사람.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밝음을 당신은 좋아하지 않습니까? 왜 제게 그 사람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어째서 추종하느냐고, 노예근성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아, 사랑은 마치 노예와도 같은 것입니다. 오로지 노예같은 사랑이 아닌 것은 신에 대한 사랑뿐일 것입니다. 아니오, 그런 것이 없다고요?
제가 말씀드릴 것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사랑. 그것은 고귀한 것. 옛적 그리스 시대에 그 시대의 사람들이 고귀했던 것은 노예에게 귀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고귀한 것은 그 사랑의 대상에게 무조건적인 노예의 헌신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쌍방간의 사랑도 있지 아니하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그것이 서로에게 노예에 가까운 헌신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렵니다.
노예. 그것과 밝음이 어찌 공존하느냐. 그걸 제가 당신에게 어찌 다 설명하겠습니까. 노예라고 해도 사랑의 노예인 것.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헌신할 수 있고 그것이 밝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정 섬김을 받는 자도 노예인것을요. 사랑이 없어지면 그렇게 허무하고 어두운 것을 당신은 아십니까?
저는 그래서 고민합니다. 아아, 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제 사랑이 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에 와서 그 마음을 헌신짝 버리듯 해서 그 사람을 짓밟는다면...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사랑은 쓰레기가 되어버리겠죠.
그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참으로 어떻게 해야 옳을까요. 그 가련하고 순수한 마음을...이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볼때마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도망치는 것입니다.
저기 또 다가오는 군요. 아아 멀리로 그냥 도망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