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를 쓴 그는 볼록한 볼살이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볼록한 안경알에 의해서 그렇지 않아도 통통한 볼이 도도록해보이는 것이었다.
붉은 기가 도는 이마에 볼에도 아기처럼 홍조가 있었다.
이것이 굶어죽어간다는 사람이라고 한다면야...
검사관도 난색을 표했다.

"집은 그렇다지만 영양상태도 아주 좋으신걸요."

사실 굶어죽어가고 있으며, 집도 망가져가고 있다는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를 노릇이었다. 집이야 쓰러져가고 있긴 했지만 입식 부엌으로 개조한지 얼마 안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기계를 사용해서 집 주춧돌을 약간 기울게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럼 나더러, 굶어죽으란 말이오. 이 나라는 세금만 거두나? 이날이때껏 세금낸 건 어쩌고!"

항상 이런 식이었기에 동리의 서기들은 다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였다.
내가 제일 경력이 길었기에 쫓겨나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이 노인의 억지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객관적으로 안되니 항상 불통이었는데, 이 노인이 3년에 한번 나온다는 전국검사관이 나온다는 말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었다.

"검사관 나리, 내 말 좀 들어봐요. 여기 놈들은 전부 다 세금 도둑놈..."

또 시작이지...벌써 3년째 여기 있는 나로서는 듣기 괴로운 소리였다.
3년이니 떠날 때가 되었건만 윗선에서는 이 노인네를 다룰 수 있는게 나뿐이라면서 남겨둔 것이었다. 

"물론, 선생님의 의견은 정부에서 반영을..."

"......"

근데 이상한 것이 매년 민원을 제기할 때마다 가보면 그 기울기나 혈색이 항상 같다는데 있었다. 기울어져 있어도 20도 이상 기울어진 일도 없으며 혈색도 항상 같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인은 잘 때마다 집이 기울어져서 어땠다는 둥 하는 것이었다.
물론 사진을 찍어서 보여준 적도 있었다. 사진에는 약 30도 정도 기울어져 있곤 했는데 막상 와보면 20도에 그치는 것이었다.
신규 서기의 말에 따르면 그건 정교한 사진장난질이라는 것이었다.
이해가 안가는 건 이 노인이 올해로 70세가 넘어가고 있으며 사진쪽으로는 도통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컴퓨터를 쓸 리도 없고...

"하여간 알겠습니다."

검사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무관님."

내말에 검사관은 어깨가 뻐근한지 손으로 어깨부분을 꾹꾹 누르고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자네 여기 있은지 얼마나 되었나."

"3년입니다."

"그럼 내가 여기 근무한 적이 있었다는 건 모르겠군."

"에...여기 계셨었습니까?

"...저 노인 말대로 해주게. 자네 때문에 저 노인만 고생이로군."

"예?"

뜨악해져서 사무관의 뒤통수에 대고 물음표만 남발하는 내게 사무관이 말했다.

"상부에는 내가 알아서 보고할테니 앞으로 저 노인 말 잘 들어주게나. 그게 자네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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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하루에 실패한 30분초쓰기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길 생각입니다.
이번주에 시작해서 실패한  첫 기록입니다.
다행히 아주 못 쓸 정도는 아니라서 퇴고를 한 세번 정도 고치고 난 다음에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르는 시.
내용은 아직 다듬지 않아서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벚꽃과 봄, 그리고 향기에 대한 시입니다.
한 1주일 잘 간다 싶었는데, 가끔 이런 암초를 겪게 될 줄이야.
뭐, 꾸준히 쓰는게 제일이다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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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를 쓰다듬는다. 그건 옛날부터 정해져있던 일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는 장한나의 연주를 들으면서 있지도 않은 첼로의 현을 고르고 보잉했다.
그 보잉은 투첼로스처럼 격정적인 것도 아니요, 원곡으로 제공하고 있는 장한나의 은근한 열정과도 달랐다. 그저 허공을 가르고 있을 뿐인 그의 손가락은 마치 지휘자처럼(그래 로린 마젤이나 장한나의 지휘처럼.-그는 언제나 첼리스트 장한나와 지휘자 장한나를 다르게 보곤 했다.)
언제였던가. 그가 더 이상 연주를 하지 못하게 되었던때가?
피아노를 배울 때 그 떨림, 바이얼린을 처음 배웠을 때의 그 감동, 그리고 첼로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떄의 심장이 울리는 듯한 그 고통.

그의  부모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첼로와 이별을 하게 한 것은 중학생때였다.
남자아이였기 떄문에 더 이상 음악을 배워서는 안된다는 그 말이 그를 놀라게 했다.
그랬다. 그는 사랑의 가족에 나오는 프리다만큼이나 악기들을 사랑했다.
악기들. 음악이 아니라 악기들을 사랑한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만난 첼로를 붙잡고 울었다.
그 눈물은 마치 연인을 위한 것보다 죽음을 앞둔 부모를 둔 것 같은 울음이었다.
샘속에서 퍼낸 한방울의 눈물은 미적지근한 수돗물 한 리터보다 더 진실했다.
그 이후로 그는 악기를 만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자유로워진 시점에서도 그는 그 상대적인 명령에 복종했다.


그리고 임종이 다가오는 이 순간에야 그는 다시 보잉한 것이다.
물론 이 보잉은 결국 마지막임을 그에게 알리는 것과 같았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첼로라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어야 했다.
그의 가족들은 장한나의 곡이 울려퍼지는 것과 동시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흔들리는 그의 팔을 보며 이야기했다.

"도대체 뭘 하시는거지?"

"유언인가?"

유언이라면 이보다 더 서글픈 유언은 없으리라.
그는 팔로 말했다.
절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남이 막는다고 해서 멈추지 말것!
그리고 그의 팔이 멈췄다.
그가 보잉을 처음 시작했을 때 틀어놓았던 포레의 시실리안느는 다른 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 곡이 무슨 곡인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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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5-01-2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이 쪽글에 나오는 장한나 음반은 제가 가지고 있는 음원이기도 합니다...
사실 클래식 음원은 그리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라서 소설에 넣는 것도 조금 옹색하긴 했습니다.
좀 더 어울리는 곡도 있을텐데, 첼리스트에 대해서 제가 아는 건 장한나-적어도 첼리스트 중에서는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연주가라서-정도라서 이 정도입니다. 그나마 들어본 곡이라고 넣었네요...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을 읽었다.
문학동네 블로그에서 부분을 읽었을 때는 영 별로였는데, 도박하는 기분으로 어제 이북으로 나오자마자샀다. 그리고 잡자마자 다 읽어버렸다.
내용은 너무 급하게 읽어서 잘 생각나지 않는데, 그나마 기억나는 건 굉장히 유머러스했달까.
아니ㅡ 그 이전에 이동도서관에서 지지 않는다는 말을 미리 읽어서인지도 모르지.
사실 몇년전에 김연수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었는데  그게 좀 취향이 아니어서 그동안 별로 였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편이 있는데, 너무 성급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맘에 들어하는 작법책을  쓴 작가들은 애초에 나랑 거리가 백만년이나 떨어져있는지도 모르고.
참고로 내가 최고로 치는 작법서 작가들은 김탁환, 조정래, 김연수되시겠다.
저런!
하여간 굉장히 감동깊게 읽었고-성공가능성이 거의 없어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쓰기도 하니까 조금은 기대를 가져도 되나? 나도 계속 쓰는 작가지망생이니까.-즐거웠다,
프로작가에게서 그런 힘든 시기가 있다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마추어 작가는 희망을 얻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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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자전거는 눈덮힌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 밑으로 굴러떨어져 속도를 내어 미끄러지기시작했다. 중2병에 걸린 녀석들같으면 스노우보더같다고 생각했겠지.물론 자기들은 나보다 더 잘탈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게 다 일기 떄문이다. 하필이면 어머니에게 일기장을 걸릴 게 뭔가.
일기에 날씨부분이 빠져 있었기 떄문에 어머니는 다른 숙제들도 비슷한 꼴이 되어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기상청에 전화했지만 그건 역시 구시대의 유물인지 자동응답기로만 연결되어 있었다.
누군 내게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인터넷이 되어서 안되는게 없는데, 왜 하필 그렇게 어처구니 없이 기상대로 달려가느냐고


우리 동네는 기상청 아래 가장 가까운 동네다. 가끔 장을 보다보면 기상청 직원들을 몇명 만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걔중에는 교회누나라고까지 불리며 주말에 교회까지 나오는 직원도있다. 그러니까 가장 가까운걸로 따지면...
아니,솔직하게 이야기하자. 기상대 바로 밑 동네가 전기를 안 쓴다는 건 좀 이해가 안 가지만.
우리는 한달에 일주일은 점등하지 않는다.
그말인즉슨, 겨울에도 춥게살고, 봄에는 그거보다는 좀 덜 춥게 살고, 여름에는 덥게 살며
가을에는 좀 덜 덥게 산다는 말이다.
학교도 그런 점에서는 충실해. 이 동네의 조그만 분교들은 오후 4시만 되면 모든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 점에서는 초, 종, 고가 어김이 없다.
그런고로 학교에서 더 공부하겠다고 울부짖는 아이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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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5-01-22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몇일이 지나서야 30분초쓰기로 돌아왔군요. 그동안 조금 피곤했고 게을러져서요....
그래도 근래의 성현들의 말씀하신대로 작파삼일이라고 삼일 지나 다시 시도합니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