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를 쓰다듬는다. 그건 옛날부터 정해져있던 일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는 장한나의 연주를 들으면서 있지도 않은 첼로의 현을 고르고 보잉했다.
그 보잉은 투첼로스처럼 격정적인 것도 아니요, 원곡으로 제공하고 있는 장한나의 은근한 열정과도 달랐다. 그저 허공을 가르고 있을 뿐인 그의 손가락은 마치 지휘자처럼(그래 로린 마젤이나 장한나의 지휘처럼.-그는 언제나 첼리스트 장한나와 지휘자 장한나를 다르게 보곤 했다.)
언제였던가. 그가 더 이상 연주를 하지 못하게 되었던때가?
피아노를 배울 때 그 떨림, 바이얼린을 처음 배웠을 때의 그 감동, 그리고 첼로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떄의 심장이 울리는 듯한 그 고통.

그의  부모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첼로와 이별을 하게 한 것은 중학생때였다.
남자아이였기 떄문에 더 이상 음악을 배워서는 안된다는 그 말이 그를 놀라게 했다.
그랬다. 그는 사랑의 가족에 나오는 프리다만큼이나 악기들을 사랑했다.
악기들. 음악이 아니라 악기들을 사랑한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만난 첼로를 붙잡고 울었다.
그 눈물은 마치 연인을 위한 것보다 죽음을 앞둔 부모를 둔 것 같은 울음이었다.
샘속에서 퍼낸 한방울의 눈물은 미적지근한 수돗물 한 리터보다 더 진실했다.
그 이후로 그는 악기를 만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자유로워진 시점에서도 그는 그 상대적인 명령에 복종했다.


그리고 임종이 다가오는 이 순간에야 그는 다시 보잉한 것이다.
물론 이 보잉은 결국 마지막임을 그에게 알리는 것과 같았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첼로라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어야 했다.
그의 가족들은 장한나의 곡이 울려퍼지는 것과 동시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흔들리는 그의 팔을 보며 이야기했다.

"도대체 뭘 하시는거지?"

"유언인가?"

유언이라면 이보다 더 서글픈 유언은 없으리라.
그는 팔로 말했다.
절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남이 막는다고 해서 멈추지 말것!
그리고 그의 팔이 멈췄다.
그가 보잉을 처음 시작했을 때 틀어놓았던 포레의 시실리안느는 다른 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 곡이 무슨 곡인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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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5-01-2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이 쪽글에 나오는 장한나 음반은 제가 가지고 있는 음원이기도 합니다...
사실 클래식 음원은 그리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라서 소설에 넣는 것도 조금 옹색하긴 했습니다.
좀 더 어울리는 곡도 있을텐데, 첼리스트에 대해서 제가 아는 건 장한나-적어도 첼리스트 중에서는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연주가라서-정도라서 이 정도입니다. 그나마 들어본 곡이라고 넣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