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마 만화를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기본층 독자를 꼽는다면 아마 저도 들어갈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원서로 된 걸 100권 가까이 모았었고(그 돈으로 금융투자를 했더라면...)

한국판도 제법 모았더랬죠. 어느날, 인생 허망하다며 책 정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제 취향의 만화대여점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아니면 도서관을 하나 지었던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네명이라는 사실입니다.

 

1. 에미코 야치(사바스 카페, 내일의 왕님)

2. 니시무라 미츠루(헬즈 키친, 노부나가의 셰프, 대사각하의 요리사도.)

3. 요시나가 후미(BL작가로서보다는 앤티크의 작가로서 기억할 수 있는.)

4. 니노미야 토모코(노다메 칸타빌레보다는 역시 천재패밀리 쪽이...)

 

이 넷의 취향을 조합하면 참으로 다양한, 그리고 협소한 책장이 만들어집니다.

취향 별로 안 벗어나요. 코믹, 다정, 가족드라마, 다소 이상한 감정들 등등...

이중에서 니시무라 미츠루는 스토리 작가인데, 워낙 작품 별 갭이 심해서 한 사람의 작품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요리만화의 한계상, 그렇게 다양한 천상의 음식들이 겹쳐서 나오긴 하지만요.

 

 

니시무라 미츠루는 정치감각이 굉장히 좋은 요리사 겸 작가입니다.

상상력도 굉장히 풍부한 것 같구요. 왜냐하면[대사각하의 요리사]에서 처음에 의도했던 게 헬즈 키친같이 방방 뛰는 스토리에 안하무인 주인공이었다니 말입니다. 물론 그랬으면 천하 난장판을 볼 수 있었을텐데. 좀 아쉽군요.

[대사각하의 요리사]는 전반적으로 품위있고, 지성적으로 흘러갑니다.

대체적으로 주인공이나 그밖의 인물들이 말이 안 통하는 천상 당나귀같은 인간들이 아니거든요.(좀 재수가 없을 뿐이지. 특히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에 대해서 헬즈 키친에도 재수 없다는 표현이 많이 들어가는 걸 보면 대사관에서 일할 때 아마 프랑스인에게 크게 데인 모양입니다.(그걸 제외하고는 정치적인 감각으로 풀어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프랑스 알레르기를 제외하면 한국, 중국에 대한 외교적인 자세도 얼핏 보면 문제가 없어보일 정도지요.

 

 

근데 완결권까지 다 사모아놓고 나중에 다 팔아버린 건,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인 특유의 변명정신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변명을 하고 싶으면 자기 입으로 해도 됩니다. 변명이니까요.

근데 그 변명을 왜 다른 나라 사람의 입으로 해야 할까요?

그 유명하고 선비같았던 주은래 선생이 왜 일본 편을 들어줘야 하는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앞에 있었던 것이 주인공의 대사선생이라고 해도 말이죠.

특히 그게 심했던 것은 대사각하의 요리사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총리대신의 요리사(일명 그.라.메)에서는 전반적으로 막 튑니다. 이야기도 튀고, 균형감각도 튀고...

보다가 신경질이 나서 그 다음부터는 결제를 안했습니다.

그리고는 기존에 갖고 있던 책까지 몽땅 다 처분해버렸죠.

(그.라.메는 아마 철저한 내수용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대사까지는 괜찮아요. 일국의 정치를 어느 정도 수습하는 거지만, 총리대신은 그야말로 빼도박도 못할 나라가 흔들리는 이야기니까요. 정말 곤란합니다. 이런 내용은... 자기 한계를 드러내기 딱 좋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센스가 워낙 좋은 작가(페이스 조절이 능숙하지요.)라 개그물도 무난하고, 역사물도 굉장히 잘 소화해냅니다. 개그는 헬즈 키친에서 팡팡 터졌고, 역사물은 요 4권의 아동용 햄버그가 좀 웃기긴 했지만 역사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그러나 절름발이가 되는 구로다 간베에가 어째서 그렇게 아픈 데 없어보이고 아름다운 소년인건지는 미스터리...아직까지는 다리 절기 전인 모양이지만.)너무 요리만 튀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전반적으로 일본사를 무난하게 보여준 만화가 아닌가 싶어요. 그 당시 식생활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아무래도 무난한 일식 요리사보다는 서양 요리사가 등장하는 것이 대조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었겠죠.(그래도 햄버그는 아니다...햄버그는...)

 

 

헬즈 키친의 경우는 역사물은 아니지만, 만화적 재미는 충분한 물건입니다. 괴작이긴 하지만. 주로 무리무리라는 말만 하던 어중간한 성격의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그리고 악마와 함께)요리의 즐거움을 느끼는 만화입니다. 사실 이 소년보다는 주변의 배합이 더 재미있는 편인데...이것도 사실 무리의 극한을 달리죠. 칼로 대형 건물을 썰어버린다던가...등등...

악마가 나오긴 하지만, 악마치고는 좀 특이한 케이스라.(특정 종교인은 보면 아마 책을 썰어버리고 싶을 겁니다. 저도 약간 썰고 싶었어요...)이야기는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만화적 재미가 충분한 데, 그 안에 들어있는 찝찝함.

프랑스인에 대한 알게 모르게 있는 작가의 비난, 분노.

그리고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에 대한 일본적인 이해, 변명들.

이건 작가 스스로의 경향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사각하의 요리사에서는 향기만 피우고 넘어갈 정도였지만, 노부나가의 셰프에 이르면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 라는 그 말이 가지는 강도에서는 넘어가기가 힘든 것입니다.

일본 만화가, 소설가들 중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포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것이 임진전쟁의 원인이다.라는 주장을 펴는 작가가 많습니다.

현재 4권까지 읽었기에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지금 내용으로만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소 평범한 무장으로 등장합니다. 권수가 늘어날 수록 아마 성격도 바뀌겠지만 현재 본 노부나가의 모습은 전쟁을 합리화하는 무장으로서의 면모가 있습니다. 아마 그 성격대로라면 살아서 임진전쟁을 일으켰을 사람으로 보이죠.

전쟁광, 이라기보다 인간 노부나가를 보여주겠다고 시작한 만화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보게 되니...

일본인이 열광하는 모습은 아마 천하포무, 그리고 히노마루, 욱일승천기....그런게 아닐까 싶어 씁쓸합니다.

 

 

 

ps. 덤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본 장군이 죽은 장면이 나온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도 읽지 않습니다. 몇권 읽었지만 그 장면 나오는 소설 읽고, 아예 소세키의 작품은 몽땅 다 읽지 않기로 했죠. 그 정도로 일본 중도파에 대해서도 감정이 안 좋습니다. 우익은 더 하고요.

아마 일본 우익의 뼈는 땅바닥에 묻으면 썩지도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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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최초의 인간이야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마지막 인간이야

 

 

 

세상은 멸망했어.

아무도 노래 부르지 않고

아무도 그림그리지 않고

아무도 글을 쓰지 않아서

 

 

 

어린 시절

어른들이 그랬지.

그거가지고 살 수 있겠니?

사는 건 전부 다야.

나한텐 이게 전부였지.

 

 

 

어느 날

만화에서 보듯이

외계인들이 우릴 모두 죽였어.

왜 죽였을까.

 

그건 몰랐지만

난 기타 리프를 튕기다가

부활했어.

 

 

좀비라고 해도 좋아

난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음악을

다시 쳐보고 싶었어.

 

그래서 좀비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난 지구에서 기타를 튕굴 줄 아는

처음이자 마지막 인간이지.

 

 

 

CD 가게에 들어가서 아무도 사지 않는

마이클 잭슨과 커트 코베인과 제 8극장의 음반을 사.

그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기타를 튕기지.

가끔은 DVD를 틀어놓고 밥 아저씨의 말을 따라 유화를 그리기도 해.

나한테는 시간이 많으니까 할 일도 많지.

 

 

마지막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로

이만한 일이 어디 있겠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찾아보라는 누군가의 말에

난 대답했지.

죽으면 될거야. 아마. 죽으면.

그래서 난 좀비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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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역시 붕가붕가 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의 패러디입니다.

마이클 잭슨이나 커트 코베인은 제 학창시절 가장 유명한 가수들이었죠.

밥 아저씨도 마찬가지고...

보통은 제가 시를 쓸 때는 흥에 겨워서 쓸 때가 많은데, 이 시는 중간까지 템포가 느리다가

중간부분부터 조금 흥이 나서 써봤습니다.

흥에 겨워서 쓴다고 다 잘 써지는 건 아닌데...어쨌거나 저로서는 처음 시도해 본 내용이네요.

아마 웜 바디인지 뭔지 하는 그 영화 영향도 있을...지도?(한 10분 보다 껐으니...)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을 듣고 썼습니다.(그러고보니 이쪽도 붕가붕가 레코드와 연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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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극장은 유명한 그룹이죠...아시는 분들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는 전에도 적었지만 대항해시대 ost 찾다가 우연찮게 찾게 되었죠.

그때는 버전만 다른 대항해시대만 나와 있었던터라...어라, 인디인가? 아님 음악가 지망생들이 음원만 올려놓은건가...했는데.

지금은 알고 봤더니 곡만 해도 제법 되는 그런 그룹...그것도 기존 그룹에서 이름만 바꾼...

잠깐 저의 무식을 탓했으나 어쨌든 그동안 좋은 곡을 들었으니.

처음에 그곡들을 들었을 때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보컬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평범하지 않고 꽤 튀는데다가 유머감각이 넘치는 목소리라서...

그 약간 맹맹한 듯한 그 목소리로 엄청난 비극인 [식물인간]을 부를 때 느껴지는 인생의 쓴 맛!

제가 제 8극장에서 제일 좋아했던 건 대항해시대였지만 [식물인간]도 좋았어요.

그리고..한가지 궁금한 점은 가사를 누가 쓰느냐 하는거죠.

가사가 굉장히 받아들이기 편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밤도 제8극장의 노래들과 함께 합니다.ㅎㅎㅎ

(비정기 가요 음악 파트는 여기서 종료합니다.하하하. 읽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조만간 나의 포르테들에서 다른 게 올라올지도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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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천천히 주택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저택. 그리고 그 저택에서 벌어진 사고. 그와 관련된 사건은 형사계로 넘어갔다. 하지만 특별한 배려로 정의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얻어들은 정보가 있었다.

다만 의아한 것은 어째서 자신인가? 하는 것이었다.

 

“뭘 두리번거려?”

 

형사계에 있는 노태운이 그의 등을 툭 쳤다.

 

“아니오.”

 

“이상도 하지?”

 

노태운의 말에 정의가 순간 긴장했다. 유약한 그의 성품은 항상 긴장감이 주어질 때마다 떨리곤

했다.

 

“예?”

 

“흥신소 직원놈들이 본래 그렇게 나쁜 놈들인지 아닌지 우린 모르지. 하지만 이 부근의 저택은 이거 하나하고 나머지 고택들이 전부 다야. 총알을 맞았다면 숲에서 쏘진 않았을테니까-시야가 가려지니까 밤시간대에 함부로 쏘진 못했을 테고- 저택 침입을 하다가 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 근데 이 탄피.”

 

흥신소 직원이 갖고 있었다던 그 탄피의 조각과 비슷한 금속판을 꺼내면서 태운이 말했다.

 

“총알이 아니야.”

 

“......”

 

그런 건 정의도 알고 있었다. 탄피.라기엔 좀 가볍다.

 

“모의권총인거죠. 그건 밝혀진 사실이잖아요.”

 

“모의권총을 왜 쐈을까?”

 

“...이 탄피의 흔적은.”

 

노태운이 후배에게 강의를 하듯이 정의에게 탄피를 건네주며 설명을 했다.

 

“관통상은 상대방이 쏜거야. 그나마 위력이 약해져 있었지. 아마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을테고. 그 외에 서에 끌려온 놈들의 상처는 주로 얼굴, 팔, 목 등이었지. 자잘하게 긁힌 흔적과 화약으로 인한 경미한 화상 등은 권총에 다소의 개조를 통해서 이 놈들이 다른 놈을 쏘려다가 자기들이 그 덫에 빠졌다는 걸 의미하는 거야.”

 

“......”

 

정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자신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 사건에 부딪히자 자신의 머리만으로는 도저히 따라가는게 힘들 것 같았다.

 

“좀 웃기지?”

 

태운이 정의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그럼 그 다음 문제.”

 

“......”

 

“고택, 아무도 살지 않는 저택에 누군가가 침입했다면 그 저택에 금품이 있다거나, 매우 나쁜 버릇이지만-사건 의뢰주가 있어서 그 의뢰를 실패했을 때 무마하려고 살인을 의도했다거나.-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그 놈들의 말에 신뢰성은 없다고 봐.”

 

“금품이...”

 

“금품을 단순히 노렸다면 그 놈들은 어떤 경로를 선택했을까? 말해보시죠. 송정의씨.”

 

노태운의 질문에 정의는 천천히 손가락을 구부렸다. 하나, 둘 , 셋.

 

“사람이 많은 곳을 선택했겠죠. 아니면 자신들이 익숙히 잘 아는 사람의 집이거나. 그런 거라면 이미 흥신소와 그 사람의 관계가 밀접했을 수...”

 

“그렇다면 이 고택들이 있는 곳에서 어느 집일까?”

 

“...잘 모르겠습니다.”

 

정의는 고개를 떨궜다. 아무래도 자신을 생각해서 소개해줬던 병률에게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쓰지 않는 저택이라고 그 놈들은 말했지만.그 중 단시간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건물이지. 즉 가장 최근의 저택. 바로 저어어어어쪽에 있는 건물.”

 

그 건물은 삼층으로 지어진 일제시대에 가장 부자가 살았다던 별장이었다.

 

노태운이 말했다.

 

“아마, 금품이 있다면 세콤장치를 했을 거야. 그리고 사건이 끝난 직후 세콤기계들은 완전 철거를 마쳤고, 서류상에도 말소되었겠지.”

 

“그건!”

 

정의의 외침에 노태운이 말했다.

 

“난 아주 불쾌해.”

 

“예?”

 

“너한테 이 일을 맡긴 그 놈이 굉장히 불쾌해.”

 

“그놈이라면...”

 

“세콤장치, 금품강도, 추락사,모의 권총 자동폭발...”

 

노태운이 또박또박하게 읊었다. 그 표정에는 냉소와 짜증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놈은 모든 걸 말소하고 우리 경찰들에게 쓰레기 정리를 맡긴 거야. 사건 파악? 보고? 정리? 엿먹을 자식!”

 

그 짜증을 그대로 담배 필터를 우그러 뜨리는 것으로 표현하면서 노태운은 나직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도와주겠다던 그 약속을 그만둬. 정의. 네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야. 진짜 정의는 종이에 적힌 글씨에만 존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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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을 재운 후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이들의 키에 맞춘 책상에 억지로 다리를 밀어넣고 앉아서 쓰고 있는 것이다.

엉덩이는 아프고, 몸을 구부려야 하기에 어깨가 심하게 아파온다.

언젠가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소설은 기계처럼.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말을 한 인간의 등짝을 발로 심하게 차주고 싶다.

연애를 했던 시절, 어느 썸남에게서 들은 말인것 같다. 그때는 그말이 신성한 경구처럼 여겨졌는데 애 둘을 싸지르고 나니 교통사고가 단순히 스포츠카에 치여서 멍만 살짝 들고, 스포츠카 주인과 함께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이거야?”

 

 

사랑에 빠진 결과야 어찌됐든 남자에게서 버림받았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았다.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로 쌍둥이를 키우자니 삶이 버거웠다.

 

 

“엄마 밥...”

 

 

그 쌍둥이들은 이제 아버지 없이 사는 것이 익숙한 조숙한 여섯 살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름만 대면 알 외국계 기업의 유통 알바로 일한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곳의 비린내와 역한 냄새, 혹은 향기로운 공간에서 일을 한다.

그런 공간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부분별로 나뉜 곳에서 일을 하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현대는 놀라운 공장을 만들어냈다. 시장에서는 한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던 것이 그 건물 안에서는 조화롭게 칸에 나뉘어져 각자의 냄새를 뿜어낸다.

혼란스럽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혼란스럽지는 않다.

혼란스러운 것은 매 주기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 알바들의 얼굴들뿐.

 

 

“깼어?”

 

 

하지만 어린이집은 밥에 수면제를 태우는 듯하고, 내가 근무하는 곳은 분위기가 흉흉하다.

실수로 아이를 가진 여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혹하다.

아이들은 이제 2년만 지나면 학교에 가야 한다.

가족관계등록부를 떼어오라는 말이 있는데, 아버지가 될 인간은 애초에 도망가버려서 이 아이들은 사생아가 될 수 밖에 없다. 만나지도 않는데 그 인간이 인지를 해줄리 만무하니까.

 

 

"또 그거 써?“

 

 

나는 12평의 작은 공간을 또 다른 아이와 함께 쓴다. 미혼모는 아니고, 그냥 집이 싫어서 나왔다는 아이와 매달 월셋방 비용을 같이 낸다. 물론 주인이 알면 곱빼기로 받을 게 뻔해서 주인이 올때는 나만 남아있기로 했다.

 

 

“응.”

 

 

“가망이 없다는데 그러네.”

 

 

H가 팔을 쭉 폈다. 아무래도 아닌 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붙여가며.

밉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비참한 기분이 들지도 않는다.

그런 걸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 들었나...

 

“언니, 그런 건 아무도 안 읽으니까. 난혼관계라던가, 달달한 연애소설을 써. 언니 그 칙칙한 이야길 누가 읽는다고,”

 

 

H는 한때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다가 말았다고 한다. 워낙 말이 적은 애라서 잘 알 수는 없지만...그 애가 먼저 입을 여는 건 소설에 대해서뿐이다. 더 이상 느낄 감정이 없어서 소설에 대해서 애정을 버렸다는 그 말에 수긍한 건 나또한 그런 과정에 있기 때문이리라.모순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르다. 그런 것과는.

꼭 소설 쓰는 법을 배워야, 꼭 국어국문학과를 나와야...쓰는 것만은 아니리라.

나는 그렇게 믿는다.

 

“언니는 같은 것만 스무번째 고치고 있는데ㅡ 그렇게 잘 고쳐서 성공한다고 치고.

그 다음 작품은 얼마나 고치려고 그래.“

 

“성공은 한다고 봐?”

 

 

“한 천억분의 일 정도?”

 

 

“말을 말자...”

 

 

“엄마...밥.”

 

 

“어, 웅아. 그래. 밥 잠깐만...좀 기다려...형이가 아직 자고 있으니까...한 30분 뒤에 먹자.”

 

 

“난 배고파.”

 

 

먹성이 좋은 큰아들, 그리고 조금 비리비리한 둘째.

같은 날 태어났고, 몇분 차이만 있었을 뿐인데 너무 다르다.

 

 

“엄마...”

 

 

웅이는 다시 잠들기로 결정한 듯 다시 자리에 눕는다.

요즘 잠자는 시간이 늘어난 두 아들을 불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

수면제를 태우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나같은 입장에서는 오후늦게까지 아이를 봐줄만한 데가 거기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쉽게 말을 꺼냈다가는 더 이상 맡아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게 뻔했다.

 

약자. 사회의 약자.

그러면 어떻게...

아이들이 그만큼의 양의 수면제를 이겨낼 수 있을까? 부작용이 없는 걸까?

 

나는 그러다가 잠시 비극적인 상상에 빠진다.

아이들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부작용을 겪고,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갑자기 아르바이트들을 다 잘라버리는 그런 상상.

한꺼번에 일어나면 버티기 어려울 그런 상상.

 

 

“그런 건 최고지.”

 

 

H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소설을 쓸 때 한 번에 이겨낼 수 있는 고난을 주는 건 의미가 없다고. 한꺼번에 닥쳐서 무지하게 쓰러뜨리고 극한까지 몰아가는 게 드라마라고. 그 드라마가 없다면 소설은 안 쓰느니만 못하다고 했다.

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소리를 죽여서 닥쳐. 라고 말했다.

그런 소설을 쓰느니 죽는게 나을 정도다.

상상만 해도 온 몸이 오글려 오는데 그 아이는 태연하게 최악까지 가야지...라고 했으니.

잠시 동거생활이 깨질 듯 했지만 우리들의 경제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같이 있었고, 그렇게 우리들은 모든 것을 잊었다.

 

 

다행히 30분 뒤 형이가 그 최악의 그림자에서 걸어나온다.

다시 잠이 깬 웅이도 눈을 뜨고 250ml 우유를 입에 문다.

밥은 정부미로 지어서 푸슬푸슬한 밥이다.

반찬은 사회적 기업에서 지은 것을 받아온 것이다.

 

 

“언니ㅡ 기왕 등단을 노리려면 말이야.-가 그럴 생각이 있다면 말이지만.”

 

 

“?”

 

 

“언니 자신의 이야기도 좋아. 하지만 같은 데서 맴돌지 말고, 좀 극단으로 치달아봐. 전에는 나한테 닥쳐. 라고 말했지만 언니 인생 자체도 소설에 가깝다고 언니도 생각하잖아.

그럼 그렇게 써. 대신, 종이에 써내려간 이상, 그건 언니의 도플갱어라고 생각하고 쓰라고.

그건 언니의 그림자야. 언니가 아니라고...상상하는 것만 최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근데...”

 

 

“아니 내 말 잘 들어. 그런거 안쓰고 계속 언니 식으로 쓰면 문단에 가지도 못하고 계속 미끄러진다고. 솔직히 말해봐? 언니 일상 재미있어?”

 

 

고개를 끄덕였나보다. H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내 원고지위에 손을 탁 내려놨다.

 

 

“재미없잖아. 그지? 비참하고 구질구질하잖아. 그럼, 거기다가 언니 마음을 다 털어놓고ㅡ 가는 거야. 끝까지. 진짜? 가짜? 심사위원들은 그런 거 관심없어. 그냥 극한까지 가는게 보고 싶은 거라고. 새디스트들 같으니.”

 

 

H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배우던 애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하지만...나는 몇백번째 하고 있는 지 모를 말을 계속 하고 있다.

 

 

“닥쳐.”

 

 

모든 삶이 소설을 위해서 존재하는 삶이 아니다. 그걸 H는 모른다. 아마 끝까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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