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마 만화를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기본층 독자를 꼽는다면 아마 저도 들어갈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원서로 된 걸 100권 가까이 모았었고(그 돈으로 금융투자를 했더라면...)

한국판도 제법 모았더랬죠. 어느날, 인생 허망하다며 책 정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제 취향의 만화대여점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아니면 도서관을 하나 지었던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네명이라는 사실입니다.

 

1. 에미코 야치(사바스 카페, 내일의 왕님)

2. 니시무라 미츠루(헬즈 키친, 노부나가의 셰프, 대사각하의 요리사도.)

3. 요시나가 후미(BL작가로서보다는 앤티크의 작가로서 기억할 수 있는.)

4. 니노미야 토모코(노다메 칸타빌레보다는 역시 천재패밀리 쪽이...)

 

이 넷의 취향을 조합하면 참으로 다양한, 그리고 협소한 책장이 만들어집니다.

취향 별로 안 벗어나요. 코믹, 다정, 가족드라마, 다소 이상한 감정들 등등...

이중에서 니시무라 미츠루는 스토리 작가인데, 워낙 작품 별 갭이 심해서 한 사람의 작품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요리만화의 한계상, 그렇게 다양한 천상의 음식들이 겹쳐서 나오긴 하지만요.

 

 

니시무라 미츠루는 정치감각이 굉장히 좋은 요리사 겸 작가입니다.

상상력도 굉장히 풍부한 것 같구요. 왜냐하면[대사각하의 요리사]에서 처음에 의도했던 게 헬즈 키친같이 방방 뛰는 스토리에 안하무인 주인공이었다니 말입니다. 물론 그랬으면 천하 난장판을 볼 수 있었을텐데. 좀 아쉽군요.

[대사각하의 요리사]는 전반적으로 품위있고, 지성적으로 흘러갑니다.

대체적으로 주인공이나 그밖의 인물들이 말이 안 통하는 천상 당나귀같은 인간들이 아니거든요.(좀 재수가 없을 뿐이지. 특히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에 대해서 헬즈 키친에도 재수 없다는 표현이 많이 들어가는 걸 보면 대사관에서 일할 때 아마 프랑스인에게 크게 데인 모양입니다.(그걸 제외하고는 정치적인 감각으로 풀어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프랑스 알레르기를 제외하면 한국, 중국에 대한 외교적인 자세도 얼핏 보면 문제가 없어보일 정도지요.

 

 

근데 완결권까지 다 사모아놓고 나중에 다 팔아버린 건,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인 특유의 변명정신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변명을 하고 싶으면 자기 입으로 해도 됩니다. 변명이니까요.

근데 그 변명을 왜 다른 나라 사람의 입으로 해야 할까요?

그 유명하고 선비같았던 주은래 선생이 왜 일본 편을 들어줘야 하는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앞에 있었던 것이 주인공의 대사선생이라고 해도 말이죠.

특히 그게 심했던 것은 대사각하의 요리사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총리대신의 요리사(일명 그.라.메)에서는 전반적으로 막 튑니다. 이야기도 튀고, 균형감각도 튀고...

보다가 신경질이 나서 그 다음부터는 결제를 안했습니다.

그리고는 기존에 갖고 있던 책까지 몽땅 다 처분해버렸죠.

(그.라.메는 아마 철저한 내수용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대사까지는 괜찮아요. 일국의 정치를 어느 정도 수습하는 거지만, 총리대신은 그야말로 빼도박도 못할 나라가 흔들리는 이야기니까요. 정말 곤란합니다. 이런 내용은... 자기 한계를 드러내기 딱 좋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센스가 워낙 좋은 작가(페이스 조절이 능숙하지요.)라 개그물도 무난하고, 역사물도 굉장히 잘 소화해냅니다. 개그는 헬즈 키친에서 팡팡 터졌고, 역사물은 요 4권의 아동용 햄버그가 좀 웃기긴 했지만 역사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그러나 절름발이가 되는 구로다 간베에가 어째서 그렇게 아픈 데 없어보이고 아름다운 소년인건지는 미스터리...아직까지는 다리 절기 전인 모양이지만.)너무 요리만 튀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전반적으로 일본사를 무난하게 보여준 만화가 아닌가 싶어요. 그 당시 식생활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아무래도 무난한 일식 요리사보다는 서양 요리사가 등장하는 것이 대조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었겠죠.(그래도 햄버그는 아니다...햄버그는...)

 

 

헬즈 키친의 경우는 역사물은 아니지만, 만화적 재미는 충분한 물건입니다. 괴작이긴 하지만. 주로 무리무리라는 말만 하던 어중간한 성격의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그리고 악마와 함께)요리의 즐거움을 느끼는 만화입니다. 사실 이 소년보다는 주변의 배합이 더 재미있는 편인데...이것도 사실 무리의 극한을 달리죠. 칼로 대형 건물을 썰어버린다던가...등등...

악마가 나오긴 하지만, 악마치고는 좀 특이한 케이스라.(특정 종교인은 보면 아마 책을 썰어버리고 싶을 겁니다. 저도 약간 썰고 싶었어요...)이야기는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만화적 재미가 충분한 데, 그 안에 들어있는 찝찝함.

프랑스인에 대한 알게 모르게 있는 작가의 비난, 분노.

그리고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에 대한 일본적인 이해, 변명들.

이건 작가 스스로의 경향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사각하의 요리사에서는 향기만 피우고 넘어갈 정도였지만, 노부나가의 셰프에 이르면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 라는 그 말이 가지는 강도에서는 넘어가기가 힘든 것입니다.

일본 만화가, 소설가들 중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포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것이 임진전쟁의 원인이다.라는 주장을 펴는 작가가 많습니다.

현재 4권까지 읽었기에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지금 내용으로만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소 평범한 무장으로 등장합니다. 권수가 늘어날 수록 아마 성격도 바뀌겠지만 현재 본 노부나가의 모습은 전쟁을 합리화하는 무장으로서의 면모가 있습니다. 아마 그 성격대로라면 살아서 임진전쟁을 일으켰을 사람으로 보이죠.

전쟁광, 이라기보다 인간 노부나가를 보여주겠다고 시작한 만화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보게 되니...

일본인이 열광하는 모습은 아마 천하포무, 그리고 히노마루, 욱일승천기....그런게 아닐까 싶어 씁쓸합니다.

 

 

 

ps. 덤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본 장군이 죽은 장면이 나온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도 읽지 않습니다. 몇권 읽었지만 그 장면 나오는 소설 읽고, 아예 소세키의 작품은 몽땅 다 읽지 않기로 했죠. 그 정도로 일본 중도파에 대해서도 감정이 안 좋습니다. 우익은 더 하고요.

아마 일본 우익의 뼈는 땅바닥에 묻으면 썩지도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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