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을 재운 후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이들의 키에 맞춘 책상에 억지로 다리를 밀어넣고 앉아서 쓰고 있는 것이다.
엉덩이는 아프고, 몸을 구부려야 하기에 어깨가 심하게 아파온다.
언젠가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소설은 기계처럼.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말을 한 인간의 등짝을 발로 심하게 차주고 싶다.
연애를 했던 시절, 어느 썸남에게서 들은 말인것 같다. 그때는 그말이 신성한 경구처럼 여겨졌는데 애 둘을 싸지르고 나니 교통사고가 단순히 스포츠카에 치여서 멍만 살짝 들고, 스포츠카 주인과 함께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이거야?”
사랑에 빠진 결과야 어찌됐든 남자에게서 버림받았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았다.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로 쌍둥이를 키우자니 삶이 버거웠다.
“엄마 밥...”
그 쌍둥이들은 이제 아버지 없이 사는 것이 익숙한 조숙한 여섯 살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름만 대면 알 외국계 기업의 유통 알바로 일한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곳의 비린내와 역한 냄새, 혹은 향기로운 공간에서 일을 한다.
그런 공간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부분별로 나뉜 곳에서 일을 하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현대는 놀라운 공장을 만들어냈다. 시장에서는 한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던 것이 그 건물 안에서는 조화롭게 칸에 나뉘어져 각자의 냄새를 뿜어낸다.
혼란스럽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혼란스럽지는 않다.
혼란스러운 것은 매 주기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 알바들의 얼굴들뿐.
“깼어?”
하지만 어린이집은 밥에 수면제를 태우는 듯하고, 내가 근무하는 곳은 분위기가 흉흉하다.
실수로 아이를 가진 여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혹하다.
아이들은 이제 2년만 지나면 학교에 가야 한다.
가족관계등록부를 떼어오라는 말이 있는데, 아버지가 될 인간은 애초에 도망가버려서 이 아이들은 사생아가 될 수 밖에 없다. 만나지도 않는데 그 인간이 인지를 해줄리 만무하니까.
"또 그거 써?“
나는 12평의 작은 공간을 또 다른 아이와 함께 쓴다. 미혼모는 아니고, 그냥 집이 싫어서 나왔다는 아이와 매달 월셋방 비용을 같이 낸다. 물론 주인이 알면 곱빼기로 받을 게 뻔해서 주인이 올때는 나만 남아있기로 했다.
“응.”
“가망이 없다는데 그러네.”
H가 팔을 쭉 폈다. 아무래도 아닌 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붙여가며.
밉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비참한 기분이 들지도 않는다.
그런 걸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 들었나...
“언니, 그런 건 아무도 안 읽으니까. 난혼관계라던가, 달달한 연애소설을 써. 언니 그 칙칙한 이야길 누가 읽는다고,”
H는 한때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다가 말았다고 한다. 워낙 말이 적은 애라서 잘 알 수는 없지만...그 애가 먼저 입을 여는 건 소설에 대해서뿐이다. 더 이상 느낄 감정이 없어서 소설에 대해서 애정을 버렸다는 그 말에 수긍한 건 나또한 그런 과정에 있기 때문이리라.모순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르다. 그런 것과는.
꼭 소설 쓰는 법을 배워야, 꼭 국어국문학과를 나와야...쓰는 것만은 아니리라.
나는 그렇게 믿는다.
“언니는 같은 것만 스무번째 고치고 있는데ㅡ 그렇게 잘 고쳐서 성공한다고 치고.
그 다음 작품은 얼마나 고치려고 그래.“
“성공은 한다고 봐?”
“한 천억분의 일 정도?”
“말을 말자...”
“엄마...밥.”
“어, 웅아. 그래. 밥 잠깐만...좀 기다려...형이가 아직 자고 있으니까...한 30분 뒤에 먹자.”
“난 배고파.”
먹성이 좋은 큰아들, 그리고 조금 비리비리한 둘째.
같은 날 태어났고, 몇분 차이만 있었을 뿐인데 너무 다르다.
“엄마...”
웅이는 다시 잠들기로 결정한 듯 다시 자리에 눕는다.
요즘 잠자는 시간이 늘어난 두 아들을 불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
수면제를 태우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나같은 입장에서는 오후늦게까지 아이를 봐줄만한 데가 거기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쉽게 말을 꺼냈다가는 더 이상 맡아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게 뻔했다.
약자. 사회의 약자.
그러면 어떻게...
아이들이 그만큼의 양의 수면제를 이겨낼 수 있을까? 부작용이 없는 걸까?
나는 그러다가 잠시 비극적인 상상에 빠진다.
아이들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부작용을 겪고,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갑자기 아르바이트들을 다 잘라버리는 그런 상상.
한꺼번에 일어나면 버티기 어려울 그런 상상.
“그런 건 최고지.”
H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소설을 쓸 때 한 번에 이겨낼 수 있는 고난을 주는 건 의미가 없다고. 한꺼번에 닥쳐서 무지하게 쓰러뜨리고 극한까지 몰아가는 게 드라마라고. 그 드라마가 없다면 소설은 안 쓰느니만 못하다고 했다.
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소리를 죽여서 닥쳐. 라고 말했다.
그런 소설을 쓰느니 죽는게 나을 정도다.
상상만 해도 온 몸이 오글려 오는데 그 아이는 태연하게 최악까지 가야지...라고 했으니.
잠시 동거생활이 깨질 듯 했지만 우리들의 경제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같이 있었고, 그렇게 우리들은 모든 것을 잊었다.
다행히 30분 뒤 형이가 그 최악의 그림자에서 걸어나온다.
다시 잠이 깬 웅이도 눈을 뜨고 250ml 우유를 입에 문다.
밥은 정부미로 지어서 푸슬푸슬한 밥이다.
반찬은 사회적 기업에서 지은 것을 받아온 것이다.
“언니ㅡ 기왕 등단을 노리려면 말이야.-가 그럴 생각이 있다면 말이지만.”
“?”
“언니 자신의 이야기도 좋아. 하지만 같은 데서 맴돌지 말고, 좀 극단으로 치달아봐. 전에는 나한테 닥쳐. 라고 말했지만 언니 인생 자체도 소설에 가깝다고 언니도 생각하잖아.
그럼 그렇게 써. 대신, 종이에 써내려간 이상, 그건 언니의 도플갱어라고 생각하고 쓰라고.
그건 언니의 그림자야. 언니가 아니라고...상상하는 것만 최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근데...”
“아니 내 말 잘 들어. 그런거 안쓰고 계속 언니 식으로 쓰면 문단에 가지도 못하고 계속 미끄러진다고. 솔직히 말해봐? 언니 일상 재미있어?”
고개를 끄덕였나보다. H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내 원고지위에 손을 탁 내려놨다.
“재미없잖아. 그지? 비참하고 구질구질하잖아. 그럼, 거기다가 언니 마음을 다 털어놓고ㅡ 가는 거야. 끝까지. 진짜? 가짜? 심사위원들은 그런 거 관심없어. 그냥 극한까지 가는게 보고 싶은 거라고. 새디스트들 같으니.”
H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배우던 애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하지만...나는 몇백번째 하고 있는 지 모를 말을 계속 하고 있다.
“닥쳐.”
모든 삶이 소설을 위해서 존재하는 삶이 아니다. 그걸 H는 모른다. 아마 끝까지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