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세크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인경 옮김 / 꿈꾼문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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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창조력이 무르익기 전에 쓰인 습작이다. ˝사촌 퐁스˝ 에 이르러선 장의사조차 강렬한 생명력을 지니는데, 초기작 곱세크에선 주인공 격인 고리대금업자 곱세크가 너무 평이하고 박물지 같은 인물이라 실망스러웠다. 다른 주인공 백작과 백작부인의 고통도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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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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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덮어버린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이 작품 생각이 많이 났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앞 부분만 읽어서 뒷 내용은 모르지만 두 작가 모두 기성 교육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션 반항아 찌질이 홀튼 터커랑 다르게 야콥 폰 군텐은 떡잎이 다르다. 


 야콥 폰 군텐은 사회적인 성공을 바라지도, 진정한 인간과의 교류를 꿈꾸지도 않는다. 주인공은 과거의 가치가 해체되어버린 20세기에 살고있으며 본인이 사회적인 성공에 걸맞은 인간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군텐은 지식과 교양을 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출세와 권력을 쫓는 것을 혐오하고 주체성을 갖는 것 마저 거부한다. 귀족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하인학교에 자진입학하며 벤야멘타 원장선생님과 함께 편력하는 삶을 진정으로 꿈꾼다. 그는 삶을 "움직임" 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별다른 고뇌 없이 움직이며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소시민적 삶을 지향한다.


 다들 배금주의를 혐오하면서 돈은 좋아하고, 초라한 현실에 만족하는 척 하면서 성공을 바라는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로베르트 발저는 세속의 욕망을 초월한 작가다. 작가는 과거를 마냥 그리워 하지도, 해체된 현대 사회를 마냥 부정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중심부에서 벗어나 세속을 겸허히 관조 하는 외부인의 삶을 작가는 살았으며, 그런 맑은 정신이 이렇게 훌륭한 문학작품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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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고전주의 대표희곡선집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윤도중 옮김 / 집문당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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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희곡 들 중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 "에그몬트",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 "토르타소 콰쏘" 를 수록한 희곡집이다. 전반적으로 극을 이끌어나가는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고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수다스러워 기대 이하였다. 그러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 라는 걸작 하나만으로도 독서가 만족스러웠다.


에그몬트


 네덜란드의 영웅 "에그몬트"가 말년에 겪는 고초에 대해 다룬 희곡이다. 정직하고 올곧은 그는 예상하지 못한 파국에 직면한다. 그 과정의 고뇌를 다룬 작품인데, 흥미를 돋우는 서스펜스가 결여되었고 심리묘사가 그렇게까지 탁월한 지도 잘 모르겠다. 똑같이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을 소재로 하면서, 팽팽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인물들도 살아있는 쉴러의 "돈 카를로스" 를 읽는 것이 더 낫다.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들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피게니에가 국왕의 청혼을 받는다는 설정이 추가되었으며, 거처를 마련해준 왕에게 은의를 느낀다는 설정 또한 추가되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지만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오레스테스의 고통, 고향 그리스로 돌아가고 인신 공양의 악습도 철폐하고 싶지만 자신을 구해준 왕을 기만하기 싫어하는 이피게니에의 고뇌가 대단히 수준 높은 언어로 묘사되었다.


* 이 작품을 20대 초반 민음사를 통해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뭐 이리 재미없는 작품이 있냐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이를 먹고 독해력이 개선될 것일 수도 있지만 번역이 끔찍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알라딘 평점으로 미루어 보아 후자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토르타소 콰쏘


 2막까지 읽고 덮었다. 끝까지 읽어봤자 "에그몬트" 처럼 재미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사들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 읽다가 질려버리고 말았다. 줄거리도 모르지만 이 작품은 예술성과 시민성의 대립을 다뤘다고 고평가 받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콰쏘를 끝까지 읽을바에 토마스만의 단편들을 읽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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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샤베르 대령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0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선영아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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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랑티백작가문에서는 멋진 무도회가 열린다. 그 백작 가문의 막대한 부는 출처가 불분명하며, 기괴하고 생명력 없는 노인 한 명이 구석에 앉아있다. 백작 가문에는 아름다운 인물의 초상화도 걸려있다. 화자의 애인은 이에 대해 궁금해 하며, 주인공은 그녀에게 노인은 초상화와 동일인물이며 과거 사라진과 노인과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화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여자가 사교계에 환멸을 느끼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정도로 적는다. 사라진과 노인의 이야기는 발자크의 천성이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기술되어 있다. 다만 그것이 사교계에 대한 환멸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보며, 굳이 복잡한 액자식 구성을 채택할 이유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작가라면 그럭저럭 잘 썼다고 생각했겠지만 작가가 발자크다 보니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샤베르 대령


 나폴레옹 치하 시절 전쟁에 참여한 샤베르 대령은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중상이지만 생명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그는 전사자로 등록된다. 살아있지만 죽어 있기도 한 그는 자신이 샤베르 대령이라고 주장하나 주변으로부터 비웃음만 산다. 다행히 샤베르 대령의 처지에 흥미를 느끼는 데르빌 이라는 소송 대리인을 만나고, 그는 대령이 살아있음을 주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대령의 부인을 상대로 법정 공방전을 펼치고자 한다...


 발자크는 전업작가가 되기 전 법률사무소의 서기로 수년 간 일했다고 한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들도 날카롭게 관찰하는 사람이 본인이 경험하고 목격한 일을 적으니 그 묘사가 가히 예사롭지 않다. 당대 파리의 법률 시스템, 법조계에 종사하는 상급자 및 하급자들의 행태 묘사를 보며 엄청난 걸작을 하나 읽겠거니 하고 두근대며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중반부 까지는 이야기의 전개도 대단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긴 페이지를 할애해야 할 법한 내용을 작가는 노벨레, 즉 중편소설로 기획하였고 이는 캐릭터성의 급격한 붕괴와 급작스러운 내용 전개로 이어진다.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 샤베르 대령의 IQ가 고작 10페이지도 안되어 80 이하로 떨어지며, 이로 인해 대령은 우수한 소설의 단계적인 절차를 차근차근 따르지 않고 갑작스럽게 파멸하고 만다. 조금만 더 플롯을 가다듬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랬다면 작가가 80편이 넘는 소설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므로 독자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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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건달 - 어느 쓸모없는 자의 삶에서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 지음, 오청자 옮김 / 부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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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이라고는 밥말아먹은 이 작품은 애초에 그런 의도로 쓰여졌다. 바이올린을 켜면서 근심걱정없이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상당히 부럽고 또 낭만적이다. 아름다운 문장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천천히 읽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그 정도로 탁월한 작품은 또 아니어서 적당히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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