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중간에 덮어버린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이 작품 생각이 많이 났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앞 부분만 읽어서 뒷 내용은 모르지만 두 작가 모두 기성 교육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션 반항아 찌질이 홀튼 터커랑 다르게 야콥 폰 군텐은 떡잎이 다르다.
야콥 폰 군텐은 사회적인 성공을 바라지도, 진정한 인간과의 교류를 꿈꾸지도 않는다. 주인공은 과거의 가치가 해체되어버린 20세기에 살고있으며 본인이 사회적인 성공에 걸맞은 인간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군텐은 지식과 교양을 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출세와 권력을 쫓는 것을 혐오하고 주체성을 갖는 것 마저 거부한다. 귀족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하인학교에 자진입학하며 벤야멘타 원장선생님과 함께 편력하는 삶을 진정으로 꿈꾼다. 그는 삶을 "움직임" 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별다른 고뇌 없이 움직이며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소시민적 삶을 지향한다.
다들 배금주의를 혐오하면서 돈은 좋아하고, 초라한 현실에 만족하는 척 하면서 성공을 바라는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로베르트 발저는 세속의 욕망을 초월한 작가다. 작가는 과거를 마냥 그리워 하지도, 해체된 현대 사회를 마냥 부정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중심부에서 벗어나 세속을 겸허히 관조 하는 외부인의 삶을 작가는 살았으며, 그런 맑은 정신이 이렇게 훌륭한 문학작품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