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플로리앙 젤레르 지음, 임선옥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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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모로 영화감독이 쓰고 연출을 기획한 티가 나는 작품이다. 화면의 전환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화에서 쓰일법한 기법들을 상당히 자연스럽게 무대에 적용 시킨 작가의 기획 및 연출 능력은 상당히 경이롭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어머니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아니면 실제로 일정 부분은 현실에서 일어난 일인지 독자로서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상징과 무대장치의 활용 능력도 극히 우수하고, 적어도 극의 정교함에 있어서 만큼은 대작가 스트린드베리와 입센을 젤레르가 뛰어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는 늙고,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으며, 할 일도 별로 없어 심심하지만 별다른 몰입거리를 찾지 못한 여성과 아무래도 살아보거나 오래 곁에 있어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분이 이 작품의 "어머니"와 유사한 언행을 보이기 때문에 작가의 관찰력과 묘사력에는 다소 경의가 들기도 하였다.


 치명적인 단점은 텍스트의 깊이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입센과 스트린드베리가 평범한 인간들을 극무대로 올렸다고 하나 그 평범한 인간들은 비범하고 시적인 대사들을 내뱉는다. 체호프 등장인물들의 대사들은 다소 평범하지만, 대화의 속도 및 호흡 조절 능력에 있어서 작가는 독보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 젤레르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우리 평범한 인간들의 그것처럼 상당히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노망난 할망구의 허망함을 제법 잘 구현했다고 순간적인 인상을 줄 순 있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필력을 작가는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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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뷔 왕 동문선 현대신서 128
알프레드 자리 지음, 박형섭 옮김 / 동문선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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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극들을 여럿 접했던 독자들은 제목만 보고 영웅적인 등장인물의 통치에 관한 극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막이 열리면 처음부터 위비가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고, 매우 초라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그는 천박한 부인의 말에 홀려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왕위를 찬탈한다. 그는 사치를 부리고,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며, 반항하는 자들을 모조리 몰살시켜 버린다. 그러나 반대 세력의 반격을 맞고 위비 왕은 도주길에 오르며 비겁한 행태를 보이는데......


 맥베스 부인이 맥베스가 왕의 지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달리 위뷔 부인은 그냥 배가 고프고 소세지를 마음껏 쳐먹기 위해서 남편의 악행을 부추긴다. 위뷔는 왕이 되고서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마음껏 쳐먹고 돈이나 긁어모으며 마음에 안드는 놈들을 죄다 숙청해버리는 기분파다. 망명길에서 곰을 만나자 그는 높은 곳으로 도주하며, 부하가 곰을 처치한 뒤에는 내가 주기도문을 외워서 곰을 처치했다고 하며 고기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한편 아내는 위뷔가 자리를 비운 사이 국고 재산을 훔친 뒤 도주를 시도하는 천박한 면모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교양이 없고 상스러운 언어나 내뱉으며, 비겁하고 욕심만 가득 찬 "위뷔왕" 의 캐릭터성은 몰리에르, 셰익스피어등의 대가들의 등장인물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기존 극문학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대단히 강렬한 인간상을 묘사해낸 "위뷔 왕"은 극의 본질을 잊고 현대 미술, 철학처럼 변질된 대다수 부조리극들 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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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노벨라33 세계 중편소설 전집 1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나미 옮김 / 다빈치 노벨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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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예브게니는 결혼 전 성욕을 분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농촌의 유부녀에게 돈을 주고 성욕을 해소한다. 그는 젊고 슬렌더한 아내와 결혼을 하고 그녀는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 중일 때 전에 관계를 맺곤 했던 유부녀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와이프를 결혼 상대방이자 정신적으로 사랑하지만, 육체적으로 더 끌리는 것은 과거 인연을 맺었던 여자다. 


 그리 재밌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리얼리즘을 완성 시킨 작가의 우수한 역량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결혼을 준비하며 주인공이 아내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 장모와 어머니와의 갈등, 야동과 성인만화가 없는 시대 성욕을 분출하지 못해 스트레스 받는 젊은이의 고통 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무덤덤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작중 후반부 욕구의 대상이 되는 유부녀의 등장 장면이 반복되는 것이 다소 편의적이고, 이러한 감정으로 인해 고통 받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 주인공은 실존하는 등장인물로 인해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성욕이라는 "악마"로 인해 고통받는데, 이를 한 여인에게만 투사하는 방식은 리얼리즘의 격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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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최후의 날 노벨라33 세계 중편소설 전집 5
빅토르 위고 지음, 백선희 옮김 / 다빈치 노벨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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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등 코너에 몰린 개인의 리얼한 행태 및 진솔한 고뇌를 접한 사람은 이 작품의 사형수가 하는 고뇌가 강남좌파스러운, 위선적이고 거짓된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70p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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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을유세계문학전집 13
에밀 졸라 지음, 최애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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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아 소녀 앙젤리크는 운이 좋게 선량한 자수공 부부의 자녀로 입양된다. 그 부부의 집에는 "황금빛 전설" 이라는, 기독교의 성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한 권 있다. 그 이야기에 경도 된 그녀는 성인 숭배가 활발했던 원시 기독교스러운 여자로 자라난다. 가난한 주제에 재산이 생기면 가진 것을 모두 베푼다. 그녀는 부자가 되길 원하는데, 사치스러운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라 황금빛 전설에 묘사된 아름다운 기독교 상징들 속에 살기 희망하기 때문이며 빈자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자 하기 위함이다. 그녀는 운 좋게 재산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한류 드라마 스러운 싸구려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폄하하기엔 묘사가 너무 아름답다. 책을 읽으면서 시골에 세워진 엄숙한 교회,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와 성상, 화려하면서도 경건한 제의(祭衣) 등에 대한 묘사를 즐겼으며, 티없이 순수한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도 매우 재밌게 읽었다. 꿈처럼 덧없지만 아름다운 소설 하나를 읽은 기분이다. 


 돈, 욕망, 출세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가 지쳐서 "골짜기의 백합" 을 쓴 발자크처럼 졸라도 지저분한 민중들 묘사를 관두고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나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결과 성인 숭배, 원시 기독교와 로맨스가 섞인 퓨전 요리 같은 작품이 하나 탄생하였다. 제법 아름답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소설로, 그의 "제르미날", "목로 주점" 같은 걸작들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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