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희곡 1
폰비진 외 / 열린책들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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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거 열린책들은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이너한 작품들도 많이 번역되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로, 한국에는 덜 알려졌지만 수준 높은 희곡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다.


미성년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폰 비진 이전 러시아 희곡들은 서구 희곡을 흉내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미성년”은 러시아 고유의 언어와 구어체가 적극 활용된 희곡이라고 하며 아마 그 이유 에서인지 명작들을 모아놓은 선집에도 꼽힌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오늘날 읽을 가치가 1도 없는 작품으로, 작가의 사고관은 교장님 훈화 말씀 마냥 최악의 방식으로 표출되며 등장인물들 또한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지혜의 슬픔


모스크바로 돌아온 주인공이 다양한 부정적인 인간군상들을 접하며 좌절하는 이야기이다. 위선, 모방, 속물근성, 거세된 수컷, 클럽 지식인, 남편을 휘어잡으려는 아내, 로맨스 중독자 등의 인간상들이 짧은 대사에 사실적으로 함축되어 표현되는 반면, 차즈끼의 절망으로 가득 찬 긴 독백은 낭만주의적인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있어 대조를 이룬다. 대단히 잘 쓴 사회비판 희곡이며 고골의 “죽은 혼”,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보리스 고두노프


러시아의 동란 시대를 역사극으로 창조해냈다. 감상은, 푸슈킨은 역사극에 있어 쉴러와 셰익스피어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다. 로맨스를 쓸데없이 추가해서 작품의 흐름이 깨지고, 전반적으로 구성이 다소 산만하다. 그는 서사시의 형식을 빌려 끊임없이 주절주절 거려야 하는 수다쟁이이지 언어를 응축해야만 하는 일류 비극 작가가 못된다.


가면무도회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를 뛰어넘는 낭만비극이다. 레르몬토프는 푸슈킨과 함께 언어적 재능을 타고난 작가로, 그는 비극에는 영 소질이 없는 푸슈킨과 달리 오직 불행한 이야기만을 쓰도록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사람이다. 셰익스피어 대비 다루는 언어의 무게가 약간 가볍다는 느낌도 들지만 엄청난 환멸로 그 이상을 충당한다. 희곡을 쓰면서 환멸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무대이며 거짓된 가면무도회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며 영혼을 담아 작가는 글을 적었다. 


검찰관


 직설적이고 적당히 코믹한 사회비판 희극 이랄까? 그의 걸작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와 죽은혼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주의의 대가와 표현에 제약이 있는 희곡이라는 장르는 애시당초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작품이 대부분의 희곡들보다 퀄리티가 높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단독 작품이라면 아마 별점 4점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싶은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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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 개정판 ㅣ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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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성" 으로 처음 카프카를 접했으며, 그를 진정한 천재라고 생각했다. "소송" 은 "성" 만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대단히 훌륭한 소설이다. 그러나 그의 단편집은 실망스러웠고, "실종자" 또한 두 걸작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카프카는 다루는 주제가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성" 과 "소송" 의 내용이 상당 부분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실종자" 가 그나마 차별화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들 수 있다. 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은 주인공의 의도를 얼마든지 곡해할 수 있고, 역할만이 중요할 뿐 개개인의 개성은 점차 사라진다. 연고지와 보호자가 없는 주인공이 사회에서 얼마나 약자의 입장에 처해있는지 또한 어느 정도 담아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대단히 세련되지 못하다는게 문제이다. 주인공은 소년이니까 순진멍청하고, 그러니 건달 들라크루쉬와 로빈슨에게 휘둘린다는 것이다. 정박아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였으니 정상적인 지능을 지닌 독자가 어떻게 그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주인공을 받아들였던 외삼촌이 조금 비위에 안 맞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 만으로 집에서 주인공을 추방하는 것 또한 어처구니 없는 전개이다. 최악은 브루넬다라는 존재이다. 정녕 "성" 에서 열쇠구멍이라는 환상적인 알레고리를 고안해낸 작가가 맞는가...? 그녀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은 "성" 에서도 다루어지며, 브루넬다같은 폐급 돼지년이 아닌 클람과 바르나바스라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멋지게 구현된다.


 그럼에도 작품을 끝까지 읽을 수 있던건 그의 문체 덕분이다. 아직 다소 투박하고 직설적인 감이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건조한 대화 사이사이 그의 천재성이 묻어 나온다. 다른 문호들보다 따라하기 쉬운지 많은 현대 작가들이 그의 문체를 흉내 내는데,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쓰레기 같은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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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로르의 노래
로트레아몽 지음, 황현산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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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로르가 벌이는 사악한 행동들과 그의 사유를 담은 시집이다. 여아를 강간하고, 짐승과 성교하고,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조난자에게 화살을 쏘고, 젊은 소년을 납치하여 포대기에 넣고 공중으로 던져버리며, 천사를 죽여버리는 등 끔찍한 짓을 여럿 말도로르는 저지른다. 그 외에 인간, 짐승들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여러 고통과 고난이 묘사되어 있다. 말도로르는 이들을 모욕하고 비웃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절대자를 계속 언급한다. 말로는 신을 모욕하지만 속으로는 왜 지상의 여러 생물은 이렇게 고통받는데 신은 먼 곳에서 무심하게 바라만 보는지를 원망하는 것이다. 잔인하고 엽기적이며 초현실적인 형식을 띄고 있을 뿐 저자의 본질은 휴머니스트 쪽에 더 가깝다. 


 아쉬운 점은 시성이 메마른 것인지, 아니면 글을 쓰다 자신에게 취해버린 것인지 네번째 노래부터 내용과 형식의 본말전도가 일어나는 듯 하다. 휴머니스트로서의 저자는 실종되고 문장으로 장난질이나치는 모더니스트로서의 저자가 표면으로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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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 하나의 비극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최두환 옮김 / 시와진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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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그의 작품들을 읽어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원인의 1순위를 개인적으로는 민음사의 형편없는 번역으로 본다(민음사는 세계문학을 보편화한 공도 있지만 끔찍한 번역으로 세계문학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든 과도 있다. 후자가 훨씬 더 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이며, 세계문학 전집 초기 수록집들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둘째 이유로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가 괴상망측하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파우스트 1부는 명실상부 세계문학에서 최상위에 위치한 걸작이며, 2부는 졸작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1부 이야기만 하도록 하겠다.


 이야기는 메피스토텔레스가 신과 내기를 하면서 시작된다. 하느님은 멈추지 않고 고뇌하며 방황하는 파우스트를 높게 평가하지만 악마는 그를 타락시키겠다고 한다. 성경의 욥기 테마를 괴테는 따온 것이다. 그는 어두운 밤 책상에서 우주의 진리를 탐하지만 본인이 하잘 것 없는 일개 인간이라는 것을 통감한다. 성문 앞에서 다양한 민중들을 접하고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는 하지만 막상 본인은 지상에서조차 무력하고, 하늘을 동경하나 결코 다다르지 못한다. 짧은 분량에 이 정도로 고뇌하는 인간상을 담아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약 120 페이지 까지의 내용은 파우스트의 진리탐구 여정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 뒤로 갑자기 그레트헨과의 로맨스로 이야기는 변질된다. 진리를 탐구하겠다던 녀석이 갑자기 계집질이나 하며 시시덕거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레트헨은 너무나도 순진하고 귀여우며, 메피스토텔레스는 유쾌하고 인간적이어서 갑작스런 느낌은 있어도 읽는 재미가 있다. 아마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찌르고 빌헬름 텔이 사과에 화살을 맞추는 장면과 더불어 연극사에서 가장 유명할, 그레트헨이 꽃잎 점을 치는 장면도 여기서 등장한다. 여기까지가 121~186페이지 까지의 내용이다.


 파우스트는 초기의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자로 돌아간다. 발푸르기스의 밤에 브로켄 산에 올라가 이상한 존재들을 목격하고 현 시대를 비판하기도 한다. 또 괴테는 한여름밤의 꿈을 읽고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발푸르기스 밤의 꿈을 썼는데, 뜬금없이 이상한 요정새끼들이 뛰쳐나와 개잡소리를 해댄다. 이 부분은 실제 연극 무대에 파우스트가 오를 경우 주로 생략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토마스 만 마의 산 사육제에서 오마쥬되는 영예를 누리긴 했지만 기실 하등의 의미가 없는 파트라고 생각한다. 그 뒤는 그레트헨이 파멸하는 엔딩이다(비록 누군가는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사실상 3가지 줄거리가 한 작품 안에 혼재 되어 있는데다 원체 빠른 호흡으로 이야기가 정신없이 전개되다 보니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파우스트를 읽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발푸르기스 밤 파트를 제외한 그레트헨과의 로맨스, 악마와 계약을 맺으며 발생하는 기이한 에피소드들, 파우스트의 고뇌 등은 전부 다 수준이 매우 높고, 등장인물들은 한명 한명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서 숨을 쉰다. 비록 난잡하지만 괜히 세계문학의 정전에 속한 작품인 것이 아닌 것이다. 좋은 평가를 받아서인지 괴테는 2부에서 더욱이 괴팍한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건 2부 리뷰 글에서 적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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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의 유희 ㅣ 범우희곡선 29
로맹 롤랑 지음, 유호식 옮김 / 범우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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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는 프랑스 혁명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를 펼치던 시절... 일종의 정치범으로 험난한 삶을 영위하던 발레를 버리고 소피는 제롬과 결혼한다. 그러나 소피는 아직 발레를 잊지 못하고 있었으며 다급하게 쫓기던 와중 그는 소피가 살고 있는 집에 침입하고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제롬은 혁명세력의 일원이나 공포정치에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러지 않아도 로베스피에르 측의 감시 대상이 된 처지였는데 아내는 그 집안에 정치범까지 들였다.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명약관화 한 것이다.


 제롬은 전 애인을 집에 들이는 아내를 나무라지 않고, 아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 난 이 부분에서 헛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덮었으나, GEMINI가 알려준 뒷 내용은 더욱 더 가관이었다. 제목이 "사랑과 죽음의 유희" 인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본질은 사라지고 닭살돋고 역겨운 로맨스나 쓰는 작가가 오늘날 잊혀지고 읽히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리라.... 이 작품을 읽고 로맹롤랑의 작품들을 모두 알라딘 장바구니에서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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