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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생각한다
존 코널 지음, 노승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제가 유치원을 다녔을 무렵인 1980년대의 중엽까지 농촌에서는 집집마다 소를 한마리씩은 키우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이미 농기계들이 슬슬 도입되서 밭에서 일하는 소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지만, 송아지도 가끔씩 태어나곤 했고 할아버지를 따라서 우시장에 송아지를 팔러 가보기도 했답니다.
국민학교 때는 목장을 하는 친구집에 가면 갓짠 따끈한 우유도 한잔씩 받아 마실 수도 있었네요. 하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점점 공장식 사육목장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조그마한 외양간은 사라졌죠. 그 다음에는 수입 쇠고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소고기와 우유는 그저 슈퍼마켓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쌤앤파커스의 신간 사라바움의 '소를 생각한다'는 그 시절의 추억으로 저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종의 귀농 에세이 정도로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만 읽을 수록 내용이 풍부하고 감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라는 전문가가 쓴 글이다 보니, 문체도 매끄럽고, 전달력도 뛰어납니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영어회화를 배운 선생님이 아일랜드 출신이셨는데요. 아일랜드는 목축이 주된 산업이어서 의사보다 수의사의 수입이 더 높다고 한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


책의 구성은 크게 3가지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1) 목장을 하고 있는 작가 가족과 동물들의 이야기
: 1월에서 6월까지 작가 가족의 농장에서는 끊임없이 새 생명들이 태어납니다. 말, 소, 양들이 출산을 하고, 또 새끼들을 키우지요. 하지만, 이 나라의 농부들 역시 넉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150여 마리의 동물을 키우고 있지만, 전업농으로서 사는 것은 경제적으로 힘든 일이구요. 아버지는 목수, 어머니는 유치원을 경영하며 농장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힘든 노동은 때로는 정신적인 여유마저 앗아갈 때가 있습니다. 묵은 감정들이 밖으로 표출되어 아버지와 아들이 싸우게 되기도 하지요. 끝없는 생명의 순환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2) 소에 대한 생물학적, 문화적 이야기
: 소의 조상인 오록스에 대한 이야기로 부터 소의 생물학적인 진화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인도에서의 소 숭배, 그리스 신화에서의 미노스 이야기 , 아메리카 대륙의 들소 이야기 등 소는 늘 우리곁에 있는 동물이었는데, 이제 우린 가축이라고 하면 고양이와 강아지 정도만 생각하게 되어 버렸네요.
(3) 아일랜드 축산업, 농업과 아일랜드의 역사
아일랜드는 영어가 통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사실 잉글랜드에 400-800년 정도 지배를 받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일랜드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제 지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네요. 고유의 언어인 게일어(켈트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구요.
이 책에서는 이런 아일랜드의 역사와 풍습에 대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나옵니다. IRA 등 내전이 남긴 슬픈 상흔에 대한 이야기도 있네요.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저도 잠깐 시골에 다녀올 계획인데요. 얼어붙은 땅이지만 몇 주만 기다리면 봄 냉이들이 찬바람을 이겨내고 조금씩 고개를 내밀겁니다.
이 책의 한 구절 처럼 " 농사란 어깨에 죽음을 짊어지고, 왼쪽에는 질병을 오른쪽에는 정신을, 앞쪽에는 새 생명에 대한 기쁨을 데리고서 생존과 함께 걷는 일"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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