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래지 않아 휴일다운 기분 좋은 날씨가 찾아왔다. 따뜻하고 새가 지저귀는 듯한 날씨는 그를 유인하여 언짢은 기분에서 조금씩 끌어내는 듯했다.

볼이 발그레한 춤추는 소녀 ‘4월‘과 ‘5월‘이 사람을 싫어하는황량한 겨울 숲으로 돌아올 때처럼, 가장 헐벗고 우툴두툴하고 벼락을 맞아 둘로 쪼개진 늙은 참나무도 그 명랑한 손님들을 환영하기 위해 초록빛새싹을 적어도 몇 개는 내보낼 것이다.

에이해브도 결국 그 소녀 같은 바깥 공기의 상쾌한 유혹에 조금은 반응을 보였다.

그의 얼굴에 작은 꽃봉오리 같은 희미한 미소가 나타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같았으면 그 꽃봉오리는 곧 환한 웃음으로 활짝 피어났을 것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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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국어선생이 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글에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듣게 될 때, 혹은 그 아이만의 개성과감성이 반짝이는 문장을 만나게 될 때 가슴이 벅차다.

기차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 무리 군중처럼 엉겨 붙어 있던 커다란 덩어리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분화된다.

얼굴과 몸통이 돋고 팔과다리가 가지처럼 뻗어 나온다. 무채색에서 컬러로 표정이 생기면서,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아이들의 글을 통해 개별성을확인하는 나는 영락없는 국어선생, 옛 제자를 만나도 이름과 등시에 그 애가 썼던 글이 생각난다. - P182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일수록 그 아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책이 재미없다는 아이에게는 예전에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책이 있었는지, 없다면 지금 무슨 과목을좋아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등을 물어보고 조금이라도 흥미를갖는 분야와 연결시켜야 한다. - P177

"난 아침 독서는 안 해. 아이들이 아침에 헐레벌떡 학교에 오면 얼마나 정신이 없는데. 자리에 앉으면 한숨 돌리고 친구 얼굴도 보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해야지. 
어떻게 아침부터입 다물고 책에 코를 박으라고 하냐고. 아침 독서는 너무 비인간적이야." - P184

홀랜드 직업 유형에 따라 진로도서 목록을 만든 건 2017년여름이다. 2학기에 비문학 도서를 읽는데, 단순히 지식을 주는 책보다는 학생 개개인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추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홀랜드 직업 유형 검사였다. 1학년 진로시간에 홀랜드 직업 유형 검사를 하는데, 검사 결과에 따라 각자의 진로 유형을 알고 있으니 그에 맞는 책을 추천하면 되는 것.
중학생에게 필요한 진로 교육은 직업 교육이 아니다. 특정 직업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정보보다는 직업인으로서 삶의 경험을 들어 보는 의미가 더 크다.
- P187

책이 좋았는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혹은 불편했는지를 글로 써 보자고 한다. 말은 날아가니 글로 남겨 보자고, 대단한 발견이나 결심이 아닌 사소한 느낌이어도 좋다고, 책을 읽으면서 타인을 보고, 글을 쓰면서 나를본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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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할 만큼 했다"는 말을 권진규가 무심히 내뱉었을 때, 당시 고등학생이던 허명회는 ‘곧 소나기가 올 것 같다‘고 직감했다.

허명회는 오랫동안 권진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미술을 전공할 생각도 있었지만, "미술보다 아름다운 학문이라고 스스로 판단한 수학의 세계에 빠졌다.

그는 고학으로 스탠퍼드대학교를 나와 한국 통계학 분야에 선구적 업적을 남긴 학자가 되있다.

허명회의 아들 허준이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30대에 세계 수학계의 난제인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 등을 증명했고,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해 한때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한 인터뷰에서 허준이는 수학을 공부하는 원동력이 "아름다움의 추구‘에 있다고 말했다. 

수학 이론은 현실에서 경험적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를 암시하기 때문에 마치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매우 순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학자의 내적 동기는 예술가의 그것과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음악가, 조각가, 수학자는 불멸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게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 너무나도 먼 응시! - P364

이 형상은 위로 자라면서도 옆으로는 좌우 균형을 유지하려고 실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견고한 안정감과 극도의 긴장감이 절묘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태어나는 존재라고나 할까. 생은 바로 그런 극단적인 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균형감각이다.

그러하기에 우주에 던져진 어떤 존재에게나, 생은 그만큼 어렵고, 신비롭고, 기적 같고, 엄중하다.

문신, 태양의 인간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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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는 ‘바람‘으로 시작된 제주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 살아남은 사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미술 양식을 전부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원의 고요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그리는방식으로는 도저히 제주의 원시적이고 척박한 미학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는 거친 바람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그것과 마주하는 법을배워야 했다.

ㅡ변시지 - P348

휘몰아치는 격정의 바다를 그리던 화가는 말년으로
갈수록 작품에서 더욱더 여러 요소를 제거해
나가더니, 종국에는 노란 화면에저 멀리 쪽배 하나를
그리고 말았다.

변시지는 "선 하나, 점 하나로 모든 것을 그린 것과 똑같은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30년이 걸렸다고 말했는데,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방황하고 자기 갱신을 계속하며, 평생 예술과 고독한 사투를 벌였던 화가 변시지.
그는 유화와 드로잉 약 5천점, 수묵화 약 1천점을 남긴 2013년 87세의 생을 마감했다.

ㅡ변시지, 점하나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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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글라디올러스와 석류, 2002

글라디올러스와 석류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이지만, 화가가 강조한 것은 결코 아름답다고만은 할수 없는 처절한 느낌 자체이다.

꽃과 과일의 붉은색은 강렬하지만 피처럼 끔찍해 보이기도 한다.

김병기는 어느 한쪽으로도 단정 지을 수 없는 경계의 미학을 추구했다. - P314


김병기는 잭슨 폴록의 말을 인용하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기시작하기 전에 나는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릴지 알지 못한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 않나.

다만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서도 하루하루 용기를 내어 도전할 뿐! 그것이 인생이니까.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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