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배상문 지음 / 북포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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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의 유혹은 집요하다. 서점에 진열된 이런 종류의 책들 앞에서 눈을 질끈 감으려고 해도 늘 한 권 정도는 나에게 끈질긴 추파의 눈길을 보낸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냉큼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 동의한다. 저자의 단순명쾌한 이 일갈(一喝)은 그냥 쓰면 될 것을 가지고 무슨 고민이 그리 많냐고 나를 질책하는 것 같다. 잡문을 쓰든 논문을 쓰든 '글쓰기' 자체는 노동이다. 직업적 작가라 하더라도 하얀 백지를 일정 분량 채우기 위해서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책상 앞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사유의 언저리에서 산만하게 부유하는 언어들을 손가락으로 잡아챈 다음 "글이 생각을 명료하게 만들어가는 경지"(김원우)까지 써내려간 후에는 "내 문장에 구토가 나오는 순간까지"(정여울) 고쳐야 비로소 어느 정도 괜찮다싶은 글 하나가 탄생한다. 저자도 인용하고 있는 김원우의 중편소설 <벙어리의 말>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다고 한다. "자꾸 써 보면 알아져, 글이 생각을 불러들인다는 걸." - 그걸 알면서도 노동하려 하지 않기에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누가? 바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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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 교회의 적, 과학의 순교자
마이클 화이트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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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1938/39)에 등장하는 이 과학자의 모습은 퍽이나 인간적이다. '과학의 순교자'로서 영웅적인 면모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그의 인간적 허물과 비굴한 태도에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종교재판정의 고문기구를 보고 겁에 질려 지동설을 철회했다니!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는 그러나 진리탐구의 학문적 열정과 이를 억압하는 기득권 세력과의 팽팽한 줄다리기와 첨예한 갈등 속에서 갈릴레이가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마이클 화이트의 <갈릴레오 Galileo Antichrist - A Biography>이다.   

이 책은 로마교황청의 종교재판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신화적' 인물이 되어버린 인간 갈릴레이의 일생을 각종 자료를 토대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장을 넘기며 갈릴레이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는 학문적 열정에만 사로잡힌 상아탑 학자도, 교회의 권위에 맞서 용감하게 항거한 순교자도 아닌 상당히 탁월한 현실감각을 지닌 현실주의자(!)였다는 확신을 굳히게 된다.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을 이어받아서인지 갈릴레오 그 자신이 뛰어난 류트 연주자였고 재능있는 화가였다는 사실은 갈릴레이도 다방면에 출중한 전인적 '르네상스인'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는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갈릴레이가 쓴 저술에서도 드러난다. 나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는 발견이었는데 (하긴 몇백년 전 과학저술을 읽을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당시의 과학적 저술이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논문 쓰는 방식과는 달리 상당한 문학적 상상력과 묘사를 토대로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갈릴레이는 프롤레마이오스 천체관과 코페르니쿠스 천체관을 비교하는 그 유명한 저작인 <대화 Dialog sopra i due massimi sistemi>를 사르레도, 살비아티, 심플리초라는 세 사람의 대화형식으로 구성했는데, 책에 짧게 인용된 심플리초와 살비아티의 대화만 보더라도 그가 자신의 이론이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얼마나 고심해서 쓰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갈릴레이는 과학적 내용이나 자신의 신념을 다채로운 은유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문학적 재능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쓴 편지들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바티칸에 보관되었다가 최근에서야 일부 공개된 갈릴레이 관련 문헌을 근거로 새롭게 주장하고 있는 사실, 즉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정에 세웠던 이유는 그가 코페르니쿠스의 천체관을 과학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카톨릭 교회의 성체성사를 부정할 수 있는 위험한 원자이론을 <황금계량자 Il Saggiatore>라는 저서에서 개진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별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갈릴레이가 쓴 <토스카나의 크리스티나 대공 부인께 드리는 편지>에 담긴 신학적 내용은, 그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음을 부인하기에는 어려울만큼 깊은 신앙적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교황청이 갈릴레이의 영향력의 파급을 두려워해서 그를 '적그리스도 antichrist'라고 낙인찍었을 수는 있겠지만, 갈릴레이가 교황청과 대립했던 것은 신앙의 진리 때문이 아니라 학문의 진리 때문이지 않았나? '적그리스도'의 명칭을 달기에 갈릴레이는 21세기를 사는 카톨릭 신자인 내가 보기에 신앙심이 너무 깊다. 하지만 그만큼 당시의 교회의 권력은 하늘을 치솟는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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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 Angelus Novus>(1920)라는 작품을 보고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1940)에 실린 아홉번 째 역사철학테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의 날개는 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나는 기꺼이 되돌아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영원히 머물더라도  

나는 행복을 갖지 못할 테니까.  

-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 <천사의 인사 Gruß vom Angelus) 

 

파울 클레의 그림이 있다. 앙겔루스 노부스라고 하는. 천사 하나가 그려져 있다. 마치 그의 시선이 응시하는 곳으로부터 떨어지려고 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의 눈은 찢어졌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그의 날개는 활짝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는 아마 이런 모습이리라. 그의 몸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거기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눈앞에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그는 단 하나의 파국을 본다. 끊임없이 폐허 위에 폐허를 쌓아 가며 그 폐허들을 천사의 발 앞에 내던지며 펼쳐지는 파국을. 아마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죽은 자를 깨우고, 패배한 자들을 한데 모으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한 줄기 난폭한 바람이 파라다이스로부터 불어 와 그의 날개에 와 부딪치고, 이 바람이 너무 강하여 천사는 날개를 접을 수가 없다. 이 난폭한 바람이 천사를 끊임없이 그가 등을 돌린 미래로 날려 보내고, 그 동안 그의 눈앞에서 폐허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간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폭풍이리라.

 

   

벤야민의 이 구절에 영감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독일작가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는 1958년, 1979년, 1991년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이 '역사의 천사'에 관한 시를 지었다. 

Heiner Müller: Der glücklose Engel (1958) 

Hinter ihm schwemmt Vergangenheit an, schüttet Geröll auf Flügel und Schultern, mit Lärm wie von begrabnen Trommeln, während vor ihm sich die Zukunft staut, seine Augen eindrückt, die Augäpfel sprengt wie ein Stern, das Wort umdreht zum tönenden Knebel, ihn würgt mit seinem Atem. Eine Zeitlang sieht man noch sein Flügelschlagen, hört in das Rauschen die Steinschläge vor über hinter ihm niedergehn, lauter je heftiger die vergebliche Bewegung, vereinzelt, wenn sie langsam wird. Dann schließt sich über ihm der Augenblick: auf dem schnell verschütteten Stehplatz kommt der glücklose Engel zur Ruhe, wartend auf Geschichte in der Versteinerung von Flug Blick Atem. Bis das erneute Rauschen mächtiger Flügelschläge sich in Wellen durch den Stein fortpflanzt und seinen Flug anzeigt.

Heiner Müller: Ich bin der Engel der Verzweiflung (1979)  

Ich bin der Engel der Verzweiflung. Mit meinen Händen teile ich den Rausch aus, die Betäubung, das Vergessen, Lust und Qual der Leiber. Meine Rede ist das Schweigen, mein Gesang der Schrei. Im Schatten meiner Flügel wohnt der Schrecken. Meine Hoffnung ist der letzte Atem. Meine Hoffnung ist die erste Schlacht. Ich bin das Messer mit dem der Tote seinen Sarg aufsprengt. Ich bin der sein wird. Mein Flug ist der Aufstand, mein Himmel der Abgrund von morgen.

Heiner Müller: Glückloser Engel 2 (1991)  

Zwischen Stadt und Stadt
Nach der Mauer der Abgrund
Wind an den Schultern Die fremde
Hand am einsamen Fleisch
Der Engel ich höre ihn noch
Aber er hat kein Gesicht mehr als
Deines das ich nicht kenne  

* 한국어 번역은 나중에 시간날 때 첨부^^  

* 이와 관련하여 진중권은 미학 에세이 <앙겔루스 노부스>(아웃사이더 2003)의 마지막 장에서 이 그림을 다룬 바 있다.  

 

 

   

 

* 조르조 아감벤은 <내용없는 인간 L'uomo senza contenuto>(1970)에서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화 <멜랑콜리아 Melancolia>(1514)에 나오는 멜랑콜리한 '예술의 천사'를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와 비교하고 있다고??? (확인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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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 데리다 들뢰즈 지식인마을 33
박영욱 지음 / 김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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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푸코 & 하버마스: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하상복 지음)은 푸코와 하버마스에 대한 탁월한(!) 탄탄한 입문서였다. 데리다와 들뢰즈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기대를 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지식인 마을> 시리즈로 출간된 책이라 하더라도 항상 일정 정도 이상의 학문적 질을 보증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 저자는 데리다와 들뢰즈 사상의 핵심을 논하기보다는 그들의 '예술론'을 논할 것이라고 '프롤로그 1'에서 공언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사상가의 핵점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이 시리즈의 본래 의도에서 벗어난다고 본다. 약간 미심쩍어 하면서 그래도 끝까지 읽었으나, 그렇다고 그들의 예술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저자는 두 사상가의 생각을 그저 이런저런 예술작품들 - 그것도 대부분 이미 회자된 - 에 기대어 설명하고자 했을 뿐이다. 따라서 데리다와 들뢰즈의 사상적 개요도, 그들의 예술론도 둘 다 모두 여기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2. 입문서에서는 사상가의 핵심적인 사상을 소개하기 위해서라도 원전(일차문헌)에 대한 인용이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단 두 군데에서만 원전 인용을 했을 뿐이다. 또한 두 대가의 사상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저작들에 대한 맥락도 각 저작의 핵심내용에 대한 설명도 없다. 과연 저자가 이 두 대가의 원전들을 모두 꼼꼼히 읽었는지 의심조차 들었다.  

3. 두 대가의 사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다른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가 너무나도 산만하게 전개되고 있다. 가끔은 본말이 전도된 서술의 경향도 있을 뿐더러, <제한경제를 넘어선 차연의 경제학>이란 장에서는 이 책이 오히려 헤겔과 바타유를 소개하고 있는 느낌을 줄 정도로 정작 데리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장의 1/3을 넘지 못한다. 이러한 영향관계의 산만한 설명은 '에필로그 1'에 실린 <지식인 지도>를 마지막으로 놓고 봤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데리다와 들뢰즈를 중심으로 한 15명의 지식인들의 영향관계를 난 도저히 복기(復棋)할 수 없었다.  

4. 저자가 가상으로 구성한 '대화'에는 데리다와 들뢰즈 말고도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과 벤 판 베르컬이 등장한다. 이 대화는 데리다와 들뢰즈의 사상의 차이나 공통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종일관하다가 정신분석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급하게 마무리된다. 위에서 언급한 두 건축가나 현대 건축에 대한 이해 없이는 도대체 이들의 대화에서 무엇이 논점인지 알 수가 없다. 

5. '이슈'로 설정된 <과연 포스트모더니즘이 대세인가?>에서도 주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건축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현대건축에 대한 담론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저자의 관심이 주로 이 분야에 있다고 하더라도 (저자 소개에 보면 현재 저자는 "건축 디자인의 방면에서 그 사회철학적 의미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슈'라는 항목이 무색할 만큼 도대체 무슨 이슈를 제기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데리다와 들뢰즈에 대한 언급은 마지막 문단 딱 한 문단 뿐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이슈'의 결말을 짓는다.

데리다와 들뢰즈에 대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 귀동냥을 했던 독자라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너무다도 많이 들어 익숙한 몇몇 핵심개념들(차연, 파르마콘, 대리보충, 기계, 수목, 리좀)에 대한 다소 산만한 설명 외에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의 설명을 위해 제시된 예시들도 별로 흥미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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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환상이다
기시다 슈 지음, 박규태 옮김 / 이학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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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남자/여자라는 생물학적 개체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실현과 욕망충족을 추구하는 사회적 개체로서 사람들은 누구나 '성(性)'과 관련해서 나름대로의 의문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저자 기시다 슈의 기본테제는 '사적유환론(史的唯幻論)'이다: 인간은 본능이 고장나 버린 동물이기에 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 사회, 가족, 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문화"가 바로 본능의 결함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성본능 또한 고장나 버린 인간은 '성불능'이라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하여 성과 관련된 여러가지 환상장치를 고안해냈다 - 성욕, 성차별적 관념, 매춘, 연애, 낭만적 사랑 등등. 이를 논증하기 위한 저자의 이론적 토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남자로서, 여자로서의 성욕이 심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누구나 흔히 은밀히 갖고 있는 성과 관련된 고정관념들이 심리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저자는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형성과정에서 지금까지 간과해왔던 성의 역할을 서구와 일본의 근대에 초점을 맞추어 살피고 있는 - 서구(죄의 문화)와 일본(수치의 문화)의 성문화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성과 관련된 관념들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내 안에 있는 성관념들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근대적이라는 놀라운 발견! 고장난 성본능이 근대 이후의 새로운 '성'을 만들 때까지 우리의 내부에는 아마도 여전히 근대의 성이 구축해 놓은 환상장치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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