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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환상이다
기시다 슈 지음, 박규태 옮김 / 이학사 / 2000년 11월
평점 :
페미니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남자/여자라는 생물학적 개체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실현과 욕망충족을 추구하는 사회적 개체로서 사람들은 누구나 '성(性)'과 관련해서 나름대로의 의문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저자 기시다 슈의 기본테제는 '사적유환론(史的唯幻論)'이다: 인간은 본능이 고장나 버린 동물이기에 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 사회, 가족, 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문화"가 바로 본능의 결함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성본능 또한 고장나 버린 인간은 '성불능'이라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하여 성과 관련된 여러가지 환상장치를 고안해냈다 - 성욕, 성차별적 관념, 매춘, 연애, 낭만적 사랑 등등. 이를 논증하기 위한 저자의 이론적 토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남자로서, 여자로서의 성욕이 심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누구나 흔히 은밀히 갖고 있는 성과 관련된 고정관념들이 심리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저자는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형성과정에서 지금까지 간과해왔던 성의 역할을 서구와 일본의 근대에 초점을 맞추어 살피고 있는 - 서구(죄의 문화)와 일본(수치의 문화)의 성문화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성과 관련된 관념들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내 안에 있는 성관념들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근대적이라는 놀라운 발견! 고장난 성본능이 근대 이후의 새로운 '성'을 만들 때까지 우리의 내부에는 아마도 여전히 근대의 성이 구축해 놓은 환상장치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