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회의 장편소설 <콰이어트 걸>을 관통하는 바흐의 '샤콘느'.  

  

 

 

 

'샤콘느'는 세 부분으로 나뉘죠. 종교화처럼 3부작이죠. 나는 이 음악이 천국으로 가는 문을 제시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것은 소리의 우상이에요. 난 샤콘느가 죽음에 관한 음악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539)

  

D단조는 죽음의 음조예요. 바흐는 마리아 바르바라와 자식 둘을 잃었어요. 바흐는 아이들과 그녀를 사랑했죠. 샤콘느의 테마는 죽음이에요. 운명의 불가피성, 불변성을 들어보세요. 우리는 모두 죽어요. 그리고 여기 1악장에서 여러 대의 바이올린이 서로 대화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바흐가 음역을 바꾸면서 네 개의 현을 동시에 긁어 소리를 낸 주법을 들어보세요. 이 소리들은 우리 각자,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수많은 목소리에요. 어떤 목소리는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어떤 목소리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이제 길게 이어지는 아르페지오 악절이 시작돼요. 한 악장에 화음을 세 개 혹은 그 이상 연주해서 에너지가 쌓이는 느낌이 강해지죠. 들려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최소한 세 대의 바이올린으로 이 음악을 연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542)

 

두 번째 악절은 장조입니다. 연민과 깊은 슬픔에 차 있죠. 이 두 번째 악절은 내 영혼의 진통제입니다. 바흐도 나처럼 상실의 아픔을 겪었죠. 그의 고통을 들을 수 있어요. [...] 위로의 음악이 승리의 음악으로 바뀝니다. 바흐는 바이올린에서 트럼펫 같은 소리가 나게 만들었어요. 여기, 165번째 소절로 시작되는 부분, 여기에 바흐는 4분의 4박자를 넣고, 세 번째 손가락으로 D현을 연주해서 팡파르 효과를 강조하는 동시에 A현을 열고 연주했어요. 이렇게 연주하면 A현의 배음이 강해지죠. 들어보세요. 이 부분이 177번째 소절까지 계속됩니다. 바로 여기서 고요하고 깊은 환희가 시작되는 겁니다. 음악적인 정지 효과를 풍부하게 써서 커다란 갈망의 느낌을 주는 거죠. 바흐는 죽음과 화해한 겁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죠.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좀 더 위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어요. 201번째 소절에서 우주선이 이륙하기 시작해요. 2악절은 1악절처럼 아르페지오로 끝나죠. 이제 세 번째 악절의 첫 부분을 들어보세요.(543)

   

다시 D단조로 돌아왔어요. 브람스가 그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 서두의 테마에 사용한 것과 같은 현이에요. '샤콘느'는 모든 고전 음악을 통틀어 가장 빛나는 작품이에요. 이제 229소절에 가짜워지고 있는데, 그 소절에서 바리올라쥬로 바뀌죠. 바흐는 개방된 A현과 D현에서 음을 바꾸는 방법을 번갈아 사용합니다. 이 음악은 애도하면서도 동시에 활력으로 가득 차 있어요. 1악절의 죽음이 다시 나타나지만 이제는 위로와 승리 그리고 2악절의 내면의 평화가 드러납니다. 이것은 천장을 뚫고 가는 음악입니다. 이 음악은 죽음이 항상 옆에 존재하지만, 힘과 에너지와 연민으로 가득 찬 위대한 삶의 한 방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길 들어보세요, 241소절부터. 깨달음의 빛이 죽음 자체를 관통해 비추고 있습니다. 바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죽음을 지켜볼 수 있다고 말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음악에서 직접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 비결이 뭘까요? 이것이 제 질문입니다.(544)

  

 카스퍼의 질문에 블루 레이디는 이렇게 대답한다.  

용서죠. 비결은 용서예요. 용서란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용서는 건전한 상식으로 하는 겁니다. 상대방이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 없었다는 걸 깨달을 때 용서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달리 행동할 수 없었다는 걸 알 때 가능하고요. 우리 중에 결정적인 상황에서 진정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545)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오히려 그 대위법적 세계에 깊이 빨려들어가는 바흐의 음악..  

읽어야 할 책들, 써야 할 논문들.. 이런 작업을 하는데 가장 적합한 음악은 바로크 음악, 그 중에서도 바흐의 음악이다. 내가 좋아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비롯한 건반악기 작품들과 천상의 성악곡들..  

내가 소장하고 있는 CD들.. 유학시절 궁핍한 생활에도 ebay에서, 중고가게에서 하나 둘씩 모아놓은 것들이 한국에서의 각박한 일상에서 유용한 정신의 양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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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2010-07-20 11:13   좋아요 0 | URL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곡이라 여러 연주를 가지고 있는데요.
요제프 시게티의 연주를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죽음' 바로 그 영감이 떠오르는 연주입니다.
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675124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