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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 교회의 적, 과학의 순교자
마이클 화이트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4월
평점 :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1938/39)에 등장하는 이 과학자의 모습은 퍽이나 인간적이다. '과학의 순교자'로서 영웅적인 면모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그의 인간적 허물과 비굴한 태도에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종교재판정의 고문기구를 보고 겁에 질려 지동설을 철회했다니!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는 그러나 진리탐구의 학문적 열정과 이를 억압하는 기득권 세력과의 팽팽한 줄다리기와 첨예한 갈등 속에서 갈릴레이가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마이클 화이트의 <갈릴레오 Galileo Antichrist - A Biography>이다.
이 책은 로마교황청의 종교재판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신화적' 인물이 되어버린 인간 갈릴레이의 일생을 각종 자료를 토대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장을 넘기며 갈릴레이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는 학문적 열정에만 사로잡힌 상아탑 학자도, 교회의 권위에 맞서 용감하게 항거한 순교자도 아닌 상당히 탁월한 현실감각을 지닌 현실주의자(!)였다는 확신을 굳히게 된다.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을 이어받아서인지 갈릴레오 그 자신이 뛰어난 류트 연주자였고 재능있는 화가였다는 사실은 갈릴레이도 다방면에 출중한 전인적 '르네상스인'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는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갈릴레이가 쓴 저술에서도 드러난다. 나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는 발견이었는데 (하긴 몇백년 전 과학저술을 읽을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당시의 과학적 저술이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논문 쓰는 방식과는 달리 상당한 문학적 상상력과 묘사를 토대로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갈릴레이는 프롤레마이오스 천체관과 코페르니쿠스 천체관을 비교하는 그 유명한 저작인 <대화 Dialog sopra i due massimi sistemi>를 사르레도, 살비아티, 심플리초라는 세 사람의 대화형식으로 구성했는데, 책에 짧게 인용된 심플리초와 살비아티의 대화만 보더라도 그가 자신의 이론이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얼마나 고심해서 쓰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갈릴레이는 과학적 내용이나 자신의 신념을 다채로운 은유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문학적 재능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쓴 편지들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바티칸에 보관되었다가 최근에서야 일부 공개된 갈릴레이 관련 문헌을 근거로 새롭게 주장하고 있는 사실, 즉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정에 세웠던 이유는 그가 코페르니쿠스의 천체관을 과학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카톨릭 교회의 성체성사를 부정할 수 있는 위험한 원자이론을 <황금계량자 Il Saggiatore>라는 저서에서 개진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별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갈릴레이가 쓴 <토스카나의 크리스티나 대공 부인께 드리는 편지>에 담긴 신학적 내용은, 그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음을 부인하기에는 어려울만큼 깊은 신앙적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교황청이 갈릴레이의 영향력의 파급을 두려워해서 그를 '적그리스도 antichrist'라고 낙인찍었을 수는 있겠지만, 갈릴레이가 교황청과 대립했던 것은 신앙의 진리 때문이 아니라 학문의 진리 때문이지 않았나? '적그리스도'의 명칭을 달기에 갈릴레이는 21세기를 사는 카톨릭 신자인 내가 보기에 신앙심이 너무 깊다. 하지만 그만큼 당시의 교회의 권력은 하늘을 치솟는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던 것이다.
